재학생보고

I. 훈련보고
방득기

’96 추계 산행 - 양시열(96학번)

1) 기 간 : 96년 10월 2일~10월 6일
2) 대상지 : 북한산(인수봉)
3) 코 스 : 대슬랩, 우정B, 인수A, 우정A
4) 대 장 : 윤길중(화공3)
5) 대 원 : 양시열(경영1) 임호영(공학1)
박찬우(공학1) 김지호(공학1)
장경순(회계3) 성인혜(역교1)
박강모(휴가중) 토목과 94학번

10월 2일 수요일 (날씨 : 밤에 비)

드디어 출발이다. 이번엔 길중이형, 경순이형, 호영이, 찬우, 지호 이렇게 4명이서 같이 갔다. 버스에서의 달콤한 휴식도 끝나고 공포의 아스팔트 오르막을 올랐다. 처음온 찬우와 지호도 힘들어 했지만 나도 전보다 더 힘들었던 것 같았다. 중간에 잠시 쉬고 인수산장 근처의 야영지에 도착하니 72학번 OB형들이 와 계셨다. 텐트를 치는데 비가 왔다. 잠시후에 태곤이형하고 대원이형이 와서 같이 5시 반까지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10월 3일 목요일 (날씨 : 오전 비)

아침에 인혜가 와서 같이 아침먹고 대슬랩으로 이동했다. 기초훈련을 한후 고독의 길로 이동했다. 도중에 간간히 비가 왔다. 이번엔 암벽화를 신었고, 배낭도 가벼웠고, 한번 한 경험이 있어선지 대체로 무난하게 올라갔다. 그런데 찬우가 처음에 톱을 서다가 떨어져서 다릴 다쳤다. 맨 마지막에선 미끄러워서 계속 미끄러졌다. 나완 인연이 없는 곳이다. 잠시후 두번째로 인수봉에 도착했다. 서울시내와 인천 앞바다가 보였다. 백운대와 만경대를 감상한 후 비둘기길로 하강했다. 이번에는 하강기 없이 했는데 허벅지가 무척 아팠다. 내려오니 어두워져 서울시내 야경은 볼 수 있었지만 BC까지 오는데 길이 안보여 힘들었다. 저녁먹고 대원이형, 태곤이형, 인혜, 찬우, OB형등 5명이 내려가고 길중이형, 경순이형, 호영이. 나 이렇게 4명만 남았다. 술마시며 산노래를 같이 불렀다.

10월 4일 금요일 (날씨 : 맑음)

아침먹고 대슬랩으로 이동했다. 피로가 누적되선지 대슬랩을 오르는데도 다리가 아팠다. 오아시스까지 올라가서 잠시 휴식한후 우정 B를 올랐다. 해보니 고독의 길과는 차원이 틀렸다. 좀 힘들었지만 진정한 암벽등반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중간에서 한번 앵카를 먹었다. 손목이 약간 까졌지만 이것이 이번에 다친 전부가 됐다. 저번 정기산행과 비교하면 많이 발전한 것이다. 침니로 계속 올라가는 곳이 있었는데 이건 완전히 인내력과 지구력을 시험하는 것이다. 겨우 올라가 잠시 휴식한 후 오아시스까지 하강한 후 다시 인수 A를 올랐다. 침니와 레이백을 섞어가며 그런대로 무난히 올랐다. 올라가는 도중에 옆에서 사람들이 산노래를 불렀다. 진짜 산에 왔다는 기분이 확실하게 들었다. 가다보니 고독의 길이 나왔다. 한 피치만 오르면 돼는데 계속 미끄러져서 한참동안 해맸다. 겨우 올라가서 3번째로 인수봉에 도착했다. 남산 타워는 보였는데 우리 동국대는 보이지 않았다. 비상 식량을 먹은후 비둘기길로 중간까지 하강한 후 다시 올랐다. 올라오다 사진한장을 찍었다. 어려운 곳이 한곳 있었지만 불굴의 투지로 극복한후 정상에 올라 다시 하강했다. 오늘은 여러가지를 많이 한 힘든 하루였다. 저녁먹고 또 산노래를 불렀다. 밤에 자는데 장안전문대(?)가 와서 자기네 자리네 어쩌네 해서 텐트 하나를 치워줬는데 밤새도록 떠들어서 4시 반까지 잠을 못잤다. 도중에 화장실을 다녀오다 길을 잃어버릴뻔 했다. 밤에는 조심해야 겠다.

10월 5일 토요일 (날씨 : 맑음)

북한산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은 대슬랩을 거쳐 우정 A를 올랐다. 계속 레이백으로 오르는데 무척 힘들었다. 2~3번 정도 앵카를 먹었다. 턱을 넘어가는 곳이 힘들었다. 하강한후 기슬링을 싼후 도봉산으로 이동했다. 4명이서 들고 왔던것을 2명이서 짊어지려하니 무척 힘들었다. 겨우 내려와 도봉산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잠시 달콤한 휴식을 취한후 다시 도봉산을 올랐다. 도중에 경순이형은 예비군훈련 때문에 헤어졌다. 처음엔 그런대로 올라갔지만 중반부터는 겨우 기어서 올랐다. BC에 도착하니 다른 대학산악부에서도 많이 와 있었다. 저녁 먹고나니 강모형이 휴가나와서 찾아왔다.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중에 경희대 산악부들 하고도 잠시 자리를 같이 했다.

10월 6일 일요일 (날씨 : 비)

드디어 산행 마지막 날이다. 그런데 운이 없게도 새벽부터 계속 비가 내렸다. 원래 측면길을 할려고 했는데 비때문에 그냥 아침먹고 기슬링을 꾸려서 내려왔다. 강모형이 있어서 조금 괜찮아 졌지만 비맞아서 축축하고 찝찝해서 기분이 안좋았다. 내려오는데 거의 기어 내려왔다. 버스 기다릴동안 붕어빵을 먹었는데 꿀맛이었다. 동대문 운동장에서 내려 부실까지 걸어는데 조금 힘들었지만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힘내서 걸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부실에 도착해 기슬링을 벗었다. 야호! 마침내 모든것이 끝이났다. 짐 정리를 한후 닭 칼국수집에 가서 저녁을 먹은후 2차로 호프집에 가서 맥주를 먹었다. 이렇게 해서 추계 장기 산행도 모두 끝났다.

산행 후기

이번 추계 장기산행을 통해 우선 빌레이 보는법, 암벽기술(침니, 레이백등), 하강방법 등을 확실하게 배웠다. 기간이 길었던 만큼 힘든 일도 많았고 재미있는 일도 많았다. 산노래도 몇개 배웠고 형들로부터 옛날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암벽등반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것이 가장 값진 수확이었던 것 같다. 기슬링은 여전히 공포의 대상이지만 나름대로 젊은날의 추억이 될것 같다. 이젠 지나간 과거가 되어 머릿속에 추억이 되어 남아있을 이번 산행이 정말 값진 경험이 될것 같다. 점점 더 산사나이가 되어가는 나를 느낀다. 안녕! 인수봉이여 안녕! 안녕! 선인봉이여......

산으로 또 산으로
하루의 살림살이 어깨에 짊어지고
산 사나이 가는곳은 낭만의 세계라오
보아라 저구름을 들어라 저소리를
환희의 파노라마 산으로 또 산으로


젊은날 가기전에 몸과 마음 길러둘 곳
저기저 저산들은 우리의 터전이요
보아라 저구름을 들어라 저소리를
환희의 파노라마 산으로 또 산으로

’96 동계 산행 - 함동호(96학번)

1) 기 간 : 97년 1월 15일~1월 28일
2) 대상지 : 설악산 일원
3) 코 스 : 전부령 - 설악골 - 대청봉 - 귀떼기청봉 - 남교리
4) 대 장 : 윤길중(화공3)
5) 대 원 : 함동호(전자, 전기1), 양시열(경상1), 임호영(공학1), 김헌상(철학 4) 이장원(정외3)

1월 15일 수요일

4:40 기상 동서울에서 원통행 차를 타고 출발. 어제 못잔 잠을 보충하였다. 설레는 맘이 아니라 너무 걱정이 되어서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다. 알프스 리조트에 도착한 시간이 10:30. 창밖으로 보이는 많은 눈은 산행이 힘들거라고 생각되기에 충분했다. 호영이가 앞에서 많이 힘들어 했다. 전진을 할 수가 없었다. 짐은 무겁고 한번 빠지면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모두들 허수아비처럼 눈밭에 푹푹 쓰러졌다. 너무 힘들었다. 점심은 라면이었는데 눈을 퍼서 끓였는데 그 맛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한 30미터 가는데 2시간이나 걸렸다. 5:20분에 텐트를 치고 저녁준비를 했다. 시열이가 많이 아픈가 보다. 먹지도 못하고 헛구역질만 계속한다. 빨리 잤으면 좋겠다.

1월 16일 목요일

지금은 01:12분 희미한 가스등 아래서 또 하루를 접는다.
계획은 깨지기 위해 존재? 마산 정상을 눈앞에 두고 했다. 7시 출발. 5시부터 패킹을 시작하였다. 허나 출발은 1시간 후인 8:05에 하였다. 우리중에 시열이가 선두로 서서 마산을 향해 올라갔다. 점심때쯤 되어서 길중이형이 빽을 선언했다. 아무 느낌도 없었다. 올라가던지 내려가던지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이유는 이상태로 가면 일주일도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어제 야영지에서 점심은 행동식으로 쨈바른 식빵과 율무차를 먹고 눈이 다져진 길로 내려오니 1:40분정도 되었다. 헌데 길중이 형이 쌕을 두고와서 다시 올라갔다. 그사이 동기들과 난 우리 도망가자!라며 말을 주고 받았다. 하지만 아무도 진지하게 말하지 않았고, 나서는 이도 없었다. 속초행 버스를 기다리다 다시 취소하고 백담사로 향했다. 하지만 그쪽도 눈이 많이와서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은 속초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기슬링도...... 1시간 정도 잤나?
시열이의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더니 아니 벌써 속초가 아닌가!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밤도 많이 깊었는데 어디까지 가려나? 너무 지쳤다. 몸도 마음도 그냥 주저앉고 싶다. 양 엄지 발가락에 물집이 생긴것 같다. 오른쪽 발목도, 난 지금 뭐하는 거지?

1월 17일 금요일

저항령 계곡에서 7:22 출발. 비교적 길은 좋았지만, 몸이 전혀 도와주지 않았다. 목 뒤와 어깨는 천근만근의 짐을 진것 같이 느껴졌고, 걸음은 점점 느려지고, 쉬는 것도 좋고, 가는 것도 좋고, 운행중에 기슬링을 맨 채로 서 있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그래도 걸을 때는 걸음 걸음마다 신경이 쓰여 배낭의 무게를 잘 못느끼지만 일단 멈추면 다시 움직이기 싫다. 너무 힘들었다. 10분 쉰다고 했는데...... 아마도 대장의 시계는 휴식시간에 빨리가나 보다. 그래서 오늘은 4:30분에 모두들 일어나 준비를 했다. 그런데도 늦어 버렸다. 이런! 웬 귤이 이렇게 맛있는 줄이야. 발바닥이 모두 닳아 없어진 기분이다. 허리도 끊어지는 것 같다. 이젠 우리 생각이 없다. 그냥 앞사람만 따라간다. 여기가 어디고 저기가 뭐야!하고 대장이 가르쳐 주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귀마개 때문인가? 3:20분 죽음의 계곡에 도착하여 텐트 바람이 무척 분다. 텐트가 견딜까? 후라이는 날라가지 않았을까? 내일은 눈이 온다던데...... 연인들이야 좋겠지만, 땅 꺼지는 큰 한숨만...... 내일은 설벽 훈련을 한다. 일단 기슬링을 안 매니 좋은데, 또 어떤 난관이 우리를 맞이해 줄지. 오늘보단 낫겠지. 지금막 비브람에 토코칠을 했다. 이젠 또 껴안고 자야지!

1월 18일 토요일

가장 추웠던 밤이었다. 정말 얼어 죽는줄 알았다. 그래서 선잠이 들어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했다. 결국 1:05분 늦게 출발, 오전엔 설벽 훈련, 개인 제동, 집단 제동, 삐올레 망쉬, 글리세이딩=미끄러짐.
제동! 하기전까지 미끄럼만 재미 있었다. 집단 제동도 그럭저럭 내가 제일 무거워서인지 경사면의 끝까지 내려갔다. 오후엔 빙벽훈련을 했는데, 발이 많이 피곤하다. 호영이는 피켈 부러뜨리고, 그래서인지 우린 백스텝이라고 하는 훈련(?)을 더 받아야 했다. 맞은편 봉우리를 향해 함성도 지르고 ‘야이 개새끼야!’하고 외쳤다. 그것도 3번. 물론 대장이 시켰다. 속이 다 후련하다. 왜일까? 이제 4일차야?
내일 아침은 절대로 늦으면 안되겠다.

1월 19일 일요일

출발시간 7:30 처음으로 늦지 않았다. 5시부터 준비했으니 아직도 준비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삐올레 라마쉬 방법으로 죽음의 계곡을 따라 올라가 화채능선에서 대청봉으로 올랐다. 와! 이렇게 센 바람은 처음 맞아본다. 몸을 제대로 가눌수 조차 없다. 너무 추워서 빨리 내려왔다. 경치 구경도 못하고 말이다. 희운각으로 내려 오는데, 소청과 희운각 사이는 경사가 매우 심했다. 물론 눈 썰매를 탔기 때문에 재미도 있었다. 점심먹고 휴식시간을 많이 가지고 3시부터 건폭을 하였다.
암벽 처음하는 기분과 같았는데, 암벽보단 쉬운 것 같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시열이가 뚫어놓은 물구멍에서 새어 나온 물이 나를 빨리 움직이게 했다. 난 정말 동상이라도 걸리는줄 알았다.
그렇게 건폭을 끝내니 6시가 다 되었다. 아! 피곤하다. 몸도 마음도.

1월 20일 월요일

7:30 출발예정. 5시 기상. 침낭속에서 나오기가 싫다. 아 그냥 이대로 자버릴까? 시열이가 계속 깨웠다. 그래서 겨우 일어났다. 아침에 떡볶이를 잠결에 먹고, 유자차 한 잔을 마셨다. 아! 이게 웬일. 길중이 형이 휴식시간을 1시간이나 더 주었다. 난 코까지 골며 잠에 빠졌다. 시열이는 손에 동상 증상이 심하다. 물집도 엄지손가락만하다. 해서 시열이는 텐트에 남아있고 건폭을 한번더 등반했다. 어제보다 쉬웠다, 그리고 패킹을 해서 칠선골로 내려왔다. 칠선골로 올라오는 길은 매우 힘들었다. 눈속에 허리까지 빠져 혼자서는 도저히 기어 나올 수가 없었다. 분명, 처음 출발때보다 짐은 줄었는데, 기슬링의 무게는 전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집에는 언제 가지?

1월 21일 화요일

아침에 칠선골 설폭을 했다. 눈이 조금씩 내려 굉장히 추웠다. 점심먹고 패킹해서 설악골로 내려왔다. 짐은 무거웠지만 모두들 마음은 가벼워 졌다. 이제 나갈때까지는 기슬링은 메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아. 지겹다. 이제 겨우 반밖에 안 지났다. 설악골은 물이 있어 참 좋다. 매일 눈 녹여 먹었더니 오랫만에 맛보는 물맛이 제일 이었다. 호영이는 앞으로의 일정이 매우 궁금한 가 보다. 끝났으니 빨리 비브람 말리고 자야겠다.

1월 22일 수요일

와! 신난다. 오늘은 예비일. 어제 일찍자고 7시에 일어나 속초에 나갈 준비를 하였다. 금강굴에 올랐다가 내려와 시장에 갔다. 7번 버스를 타고 노루목, 목우재, 토왕성, 빙폭도 보이고 홀가분하다. 순대국에 소주 한잔.
또, 횟집에서 오징어 회에 소주. 이렇게만 하면 얼마나 좋아? 근데, 한번에 너무 많이 먹었나 보다. 화장실에 너무 자주 간다. 돌아오는 길은 마음이 무거웠다. 정식 기념사진도 남기고, 지금은 헌상이형, 대원이형, 장원이 형을 기다린다. 2시에 출발했다면 도착할 시간이 벌써 지났는데...... 줄었던 짐은 다시 원상복귀.

1월 23일 목요일

토막골, 형제폭을 간다. 1피치까지 올라갔는데 정상에서 장원이 형이 빽하라고 했다. 형의 음성은 너무나 다급했고, 높았다. 하지만, 대원이 형과 나는 자일이 모자라 정상까지 올라가기로 하였다. 위에서 당겨주니 등반은 쉬웠다. 정상은 너무 추웠다. 마지막 직벽은 혼자 힘으로 올라갈 수 있을까하는 의문을 주었다. 날씨가 좋지 않았다면 나도 한창 찐빠를 부렸을 것이다. 그렇게 등반을 마치고 하산했다. 내려오는 길은 긴장이 풀려서인지 몰라도 시열이가 2미터 정도되는 바위아래로 떨어졌다. 내가 바로 뒤에 있었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했다. 시열이는 손도 동상에 걸려 몸이 안좋을텐데..... 저녁먹고 형들과 술먹는데 앉은 채로 졸았다.

1월 24일 금요일

오늘은 잦은 바위골에서 50미터 폭을 했다. 이젠 자신감이 조금 생겼다. 처음엔 후등자였고, 점심으로 라면을 먹고난후 톱 로핑을 하였다. 빙벽은 암벽보다 쉽지만 발이 많이 피곤하다. 아마도 물집이 터졌으리라. 그렇게 UP 한번씩, DOWN한번 하였다. 암벽은 정말 못하는데 이번에는 칭찬도 들었다. 더 잘하고 싶은데, 몸이 말을 잘 안 듣는다. 운동도 열심히 많이 하여야겠다.

1월 25일 토요일

아침 7시에 일어났다. 떡국을 먹고 서북주능 종주에 들어갔다. 장원이형이 장비는 거의 다 가지고 갔기 때문에 기슬링은 가벼워졌지만 체감 무게는 더 무겁다. 귀면암, 양폭, 희운각, 양폭에서의 점심 라면은 꿀맛이었다. 희운각 근처에 텐트를 쳤다가 산장지기 아저씨께 걸려 철수하고 산장에서 자기로 했다.
텐트치고 뽀갤일도 없고, 정말 좋다. 대청까지만 가면 이젠 내리막 길이다. 아! 빨리 오르고 싶다. 산장지기 아저씬 너무나 포근해 보인다. 잔은 채워야 맛이라며 코펠그릇 가득 소주를 채워 주셨는데..... 지금은 9:55분 내일 기상 시간은 4시! 꼭!

1월 26일 일요일

중청을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서북주릉길에 올랐다, 희운각에서 소청까지는 내려오는 이들도 많고해서 올라가기가 힘들었다. 능선 종주는 내리막길이 대부분이어서 쉬웠지만 몸이 많이 지쳐서인지 힘들었다. 짐도 많이 줄었는데도 말이다. 오늘중으로 내려가는 줄 알았는데, 반도 못 왔다. 우리 모두 운동이 많이 필요하다. 괴롭다. 지쳤다. 집이 그립다. 지겹다. 얼음물이 제일 먹고싶다. 한증막에서 땀도 흘리고 싶다. 아침에 17분 늦어 PT 170번 했다. 마지막에 구호를 붙이는 것인데, 서로들 눈치만 본다. 한 20번은 더 한것 같다. 아! 내일이면 서울로 갈수 있는데 시베리아 찬바람 같이 매서운 바람.

1월 27일 월요일

8시 출발. 오늘 중으로 산을 내려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운행을 시작했다. 봉우리는 넘어도 넘어도...... 왜 그리 산이 많은지. 사방을 둘러보아도 보이는 것은 산뿐. 하늘도, 갑갑하다. 첩첩산중에 갇힌 것 같다. 오후 2:15분 푯말에 남교리 9km 4:00 희망을 더 가졌다.
몸은 많이 지쳤는데, 산을 내려갈 수 있다는 생각에 지친줄 모르고 내려왔다. 점심먹고 시열이가 아주 잘 가더니만, 거기서 제속도로 돌아왔다.

내일은 정말 정말 서울로 갈 수 있다. 하루 빨리 이산을 벗어나고 싶다. 지긋지긋하다. 단 몇초라도 ...... 걸어온 능선길을 뒤돌아보니 웬지 뿌듯했다. 이 산봉우리 곳곳에 내 발자욱이 흔적으로 남아있으니, 그게 다 내 땅이고 내가 주인이 된 기분이랄까? 하여튼 산행은 내일로 끝이난다.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이다. 몇일간.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먹지 않고 깰때까지 자고 싶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고, 유종의 미를 거두는 산행이 되도록 해야겠다.

’97 춘계 산행 - 양시열(96학번)

1) 기 간 : 97년 5월 2일~5월 5일
2) 대상지 : 북한산 인수봉
3) 코 스 : 인수 - 우정 - 만경대 릿지 - 비둘기
4) 대 장 : 김정훈(정보4)
5) 대 원 : 함동호(전자, 전기2), 양시열(경상2), 성인혜(역교2), 전호성(경동1), 장경순(회계3), 김환민(무역3), 윤길중(화공4), 방득기(일문2)

5월 2일 금요일 (날씨 : 흐림)

춘계 장기 산행을 떠나게 되었다. 3박 4일 이지만 첫 장기산행이니만큼 기대와 걱정이 교차가 되었다. 우리가 산행하는 것을 아는지 날씨가 흐리고 비가 올 것만 같았다. 97년도는 고생좀 할 것 같다. 8시에 출발. 야영지에 도착하니 자리가 없어서 제일 아래쪽에 텐트를 쳤다. 덕분에 물뜨러 가는데 고생좀 했다. 잠시후, 김헌태, 김진성 선배님 두분이 오셔서 고기 구워 먹으면서 소주를 마셨다. 웃고 즐기는 가운데 시간은 흘러 3시 30분 경에 잠이 들었다. 피곤한 나날의 시작이군.
5월 3일 토요일 (날씨 : 흐리다 갬)

이제부터 본격적인 산행의 시작이다. 나, 동호, 길중이형, 환민이형과 정훈이형, 경순이형, 인혜, 호성이 이렇게 2파트로 나누어서 암벽을 했다. 언제나 처럼 길중이형이 톱을 섰다. 오늘의 코스는 인수A이다. 나는 전에 해봤던 곳이라 크게 긴장하지는 않았다. 대슬랩은 뭐 무난히 올랐다. 오아시스에서 잠시 쉰 다음 인수A를 올랐다. 경험이 있어선지 크게 어렵진 않았다. 첫 피치 끊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뒷팀이 모두 오아시스에서 쉬고 있었다. 정훈이형이 사진을 몇장 찍었다. 잘 나와야 할텐데...... 그런데 뒷팀은 우리쪽으로 오지않고 우정B로 올랐다. 내 기억으론 그쪽이 더 어렵던데 호성이가 고생을 좀 하겠군. 영자 크랙 밑까지 가서 좀 쉰후 하강했다. 그런데 한 피치 내려와서 자일을 내리다가 바위 틈새에 끼는 바람에 환민이형이 다시 올라가서 자일을 푸는데 1시간 가까이 걸렸다. 오아시스에서 점심으로 제과점에서 산 빵을 먹었는데 맛있었다. 자주 이용을 해야겠다. 오후엔 우정A를 올랐다. 고생한 기억이 있기때문에 좀 걱정이 되었다. 공포의 대 크랙을 보니 아찔했다. 길중이형은 언제나처럼 잘 올랐다. 크랙이 길다 보니까 올라갈수록 힘이 빠져서 마지막에 고생을 했다. 허리가 많이 아팠다. 나무 있는데서 한피치만 끊고 바로 하강했다. 암벽화를 계속 신고 있으니까 발가락이 많이 아팠다. 지난 추계 갔다와서 발톱이 빠졌기 때문에 마음이 좀 불안했다. 내려오다가 대슬랩쪽을 지날때 일행을 만나서 같이 야영장으로 돌아왔다. 저녁으로 꽁치찌게를 먹었는데 내가 생각해도 맛이 없었다. 태곤이형과 득기형이 오기전에 약 2시간 30분 정도 휴식시간을 가졌다. 한시간 가량 텐트옆에 있는 바위 위에서 잠을잤는데 처음에는 시원하고 좋았는데 나중에는 추워서 텐트안에 들어가서 잤다. 나중에 형들이 와서 다시 술을 마시면서 놀았다. 동호는 오늘도 고기를 구웠다. 형들이 딸기와 바나나, 콜라를 사오셔서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막판에 우리 2학년으로 인해 약간의 트러블이 생겨 경순이형이 하산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앞으로 2학년으로서 똑바로 처신을 해야겠다. 4시 30분쯤에 잠이 들었다. 내일도 피곤하겠군.

5월 4일 일요일 (날씨 : 비오다 갬)

새벽에 비가 내렸다. 태곤이형이 비박을 하다가 그만 홀딱 젖고 말았다. 오늘은 날씨가 안 좋아서 바위는 못하고 대신 만경대 릿지를 하러 갔다. 안개가 자욱하게 껴서 경치는 보이지 않았지만 분위기는 멋있었다. 서로 자일을 연결해서 릿지를 좀 하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는 바람에 그만두고 백운산장에 내려와서 막걸리를 마셨다. 시간이 많이 남아서 텐트로 돌아와서 쉬려고 했는데 불행히도(?) 대 선배님이신 강정수 선배님께서 와계셔서 계획이 무산되고 말았다. 처음에 양주를 마시다가 술이 떨어져서 맥주를 사러 인수산장에 2번이나 갔다 왔다, 산에서 맥주를 마시니 이상했지만 맛있게 잘 마셨다. 오후 저녁 먹기전까지 붙잡혀서 꼼짝없이 술을 마셨다. 춘계는 완전히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나는 것 같다. 선배님 가실때쯤 되어서 날씨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화창하게 개었다. 저녁으로 참치찌게를 먹고 인혜랑 호성이는 8시쯤에 일찍 자고 정훈이형하고 나, 동호는 동덕여대랑 같이 2시간 가량 술마시고 놀다가 10시 30분쯤에 잤다. 오랜만에 푹 자겠군.

5월 5일 월요일(어린이날) (날씨 : 맑음)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완 아무 상관없는 날이다. 산행 마지막 날이다. 집으로 돌아간다니 기뻤다. 동계를 같다와서 그런지 3박 4일이 길게 느껴지진 않았다. (호성인 물론 반대겠지만) 오늘의 코스는 그이름도 유명한 비둘기 길이다. 어프로치가 길어서 가는데 좀 힘들었다. 내가 톱을 서야 했기에 걱정이 좀 됐다. 첫 피치까지 끊는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떨어지지 않고 무사히 완수했다. 톱을 서니 역시 많이 떨렸다. 뒤이어 동호, 호성이, 인혜순으로 올라왔다. 호성인 역시 1학년답게 어렵사리 올라왔다. 시간때문인지 정훈이형이 더 올라가지 말라고 해서 거기서 그냥 하강했다.(휴! 살았다)내려와서 대슬랩에서 다시 기초훈련을 했다. 동호가 톱을 서서 올라갔는데 잘 올라갔다. 한군데 떨리는 부분이 있었는데 정말 톱으로 가면 조심해야 되겠다. 동기끼리만 하니까 부담없고 좋았다. 이런 기회를 자주 가져야 하겠다. 취나드B쪽으로 하강을 해서 대슬랩쪽으로 내려오니 다른 부원들이 쉬고 있어서 같이 간식을 먹고 텐트로 돌아왔다. 점심으로 라면을 먹고 짐을 싼후 하산했다. 어린이 날이어서 아이들이 많이 보였다. 종점 부근에서 생맥주를 2잔씩하고 부실로 돌아왔다. 이렇게해서 ’97춘계 산행도 모두 무사히 끝이 났다.

산행 후기

2학년이 된후 처음으로 장기 산행을 다녀왔다. 우선 반성할 점이라면 아침밥을 너무 못했다. 밥이 설익어서 나도 먹기 싫을 정도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이 느낀 것은 우리 2학년들이 2학년으로서의 자질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 선배님들께서도 많이 지적을 하셨는데, 산 노래나 암벽 기술등 많은 부분에서 미흡함을 느꼈다. 모두 노력을 소홀히 해서 생긴 결과이다. 이번일을 계기로 앞으론 이런 일이 없도록 정진해야겠다. 날씨가 안좋아서 바위를 별로 못했는데 그게 아쉽다면 아쉬웠다. 가장 기억나는 것은 무지하게 술을 마신 것이다. 이번 산행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한 것이 아닐까싶다. 어쨌든 재미있는 시간들이었다. 모두 아무 사고없이 무사히 마쳐서 다행이다. 기억 한편의 추억으로 접으며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우레우레우레우레우레우레우레우레우레........

’97 하계 산행 - 전호성(97학번)

1) 기 간 : 97년 7월 5일 ~ 7월 19일
2) 대상지 : 설악산 일원
3) 코 스 : 진부령 - 천화대 - 울산암 - 장군봉 적벽

4) 대 장 : 김정훈 (정보4),
5) 대 원 : 함동호(전자, 전기2), 양시열(경상2), 성인혜(역교2), 전호성(경동1), 장경순(회계3), 김환민(무역3), 이장원(정외공4), 방득기(일문2), 윤영남(휴가중)

산에서 큰다

나는
산에서 큰다
언제나 듣고 싶은
그대의 음성
대답없는 대답
침묵의 말씀

고개 하나
까딱 않고
빙그레 웃는 산

커단 가슴 가득한
바위
풀향기

덤덤한 얼굴빛
침묵의 성자

인자한 눈빛으로
나를 달래다

호통도 곧잘 치시는
오라버니 산

오늘도
끝없이
산에서 큰다.

<민들레의 영토 中> 이혜인

7월 5일

시열이 형의 알람시계에 눈을 떠보니 새벽 4시 30분 이였다. 출발시간이 6시인데 너무 일찍이여서 모든 대원들이 다시 잠을 청했다. OB형들이 밖에서 계속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밤을 지세운 모양이다. 어제 저녁에 이미packing을 다 마쳤기 때문에 옷만 갈아입고 바로 출발할 수 있었다. 밖에는 부슬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고 하늘은 먹구름만 잔뜩 꼈다.
5시 40분 대원들 모두 긴장된 마음으로 [D-ONE]을 외쳤고 드디어 하계 장기산행이 시작되었다. OB형들의 파이팅 외침을 뒤로하고 상봉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거기서 아침을 먹은 후 7시 30분 버스를 타고 알프스 스키장으로 떠났다. 차창 안에서 나도 모르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주말산행도 쉬지 않았는데 15일씩이나 되는 산행을 어떻게 할까하는 막연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더구나 배낭도 너무 무거웠다. 내가 왜 지금 이 자리에 있어야 되나 하는 푸념만이 머리속을 맴돌았다. 11시 40분 알프스 스키장에 도착. 드디어 종주가 시작 되었다.
목적지는 마산이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곳 같았다.
점심을 마친 후 마산으로 향하는데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숨을 쉬기가 곤란할 지경이었다. 뒤에 오던 인혜누나가 따라오지를 못해서 나하고 자리를 바꾸게 되어서 그 다음부터는 조금 견디기가 수월했다. 드디어 마산에 도착. 눈앞에서 산등성이가 펼쳐지고 멀리 동해가 보였다. 그런데 거기서 그만 길을 잃어버려 우리 일행은 마산에서 첫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저녁을 먹은 후 시계를 보니 8시 40분 내일 종주를 위해 모두가 일찍 잠이 들었다. 이 정도면 견딜만 하다.

7월 6일

4시 30분. 형들의 분주함에 눈을 떠서 아침준비를 시작했다. 멀리 동해에서 뿌려지는 석류색의 일출은 비록 선명하지는 않지만 산에서만 볼 수 있는 장관이었고 산악부에 남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6시 20분경. 각자가 맡은 짐을 빠르게 패킹하고 새이령으로 출발 했다. 짐이 많이 준것 같아 속으로 흐뭇했는데 막상 들어보니 여전했다. 짜증이 나기 시작했고 때려치우고 싶었다. 첫 산행이 기억난다. 내가 동호형보고 왜 이렇게 짐이 무겁냐고 했을때 동호형은 입다물고 가만있으라고 얘기했다. 배낭을 맨 그 순간부터 대장을 빼 놓고 그 누구도 얘기를 해서는 안된다고 말이다. 그때는 xx하고 지나갔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마산에서 출발. 다음은 말 그대로 고통이었다. 오르막길을 오르니 숨이 막혀오는데 정말 미칠 것 같았다. 내 자신이 미웠고 형들이 다 미웠다. 대장형이 특히! 빨리 나가는 2학년들을 생각해서는 다 밀어버리고 싶었다. 계속되는 종주. 끝이 없어 보이고 ‘겨우 이틀 지났구나’라고 생각하니 치가 떨렸다. 13일을 어떻게 버티나? 걱정만이 앞섰다. 그때 동호형이 그만 넘어져서 발목을 다쳤다. 처음부터 형은 발이 편하지 않았다. 대장형이 치료해 주었지만 내가 보기에도 심한 것 같았다. 운행속도는 한참 늦어졌고 덕분에 힘은 들지 않았지만 순간 동호형의 상처를 핑계로 내가 쉴수 있다는 생각에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비겁해 보였다.

종주의 방향을 바꿔 새이령을 거치지 않고 바로 미시령을 향했다. 점심을 먹었지만 별로 들어가지를 않았다. 미시령을 향해 아스팔트를 따라 걸어가는데 동호형이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대장형이 지나가는 봉고를 세워 10분만에 미시령을 올랐다. 올라오면서 계속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역시 인간은 간사한 동물이라는 진리가 틀리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휴게소 근처의 공터에다 BC를 설치하고 식사를 마친후 틀리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휴게소 근처의 공터에다 BC를 설치하고 식사를 마친후 가볍게 한잔을 했다. 다들 피곤한지 빨리 취침을 했는데 나는 잠이 오지를 않았다. 옆에서 정훈형이 코를 골며 자는 게 부러웠다. 그때 밖에서 자꾸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누가 TENT를 건드리는 것 같았다. 바람이려니 했는데 자꾸 신경쓰이고 예사롭지 않아 목에 있는 army knife를 꺼내들고 살며시 tent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맞은편 tent의 동호형이 나를 불렀다. 형도 수상했는지 야전삽을 챙겨들고 막 나오려고 했다. 형과 함께 주위를 몇분 정도 살펴본 뒤 아무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다시 tent로 기어들어 갔다. 식구들 생각이 간절하다.

7월 7일

아침부터 대장형에게 꾸중을 들었다. 엉망이고 밥도 제대로 짓지 못했다고 말이다. 사실 처음으로 내가 실전에 임했는데 꾸중부터 듣게 되어 기분이 언짢았다. 다행히 맞지는 않았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겨우 트럭 뒤에 타고 설악산 국립공원까지 갈 수 있었다. 차 뒤에서 바라보니 설악의 진풍경이 펼쳐졌는데 정말 그 위엄은 대단했다. 비선대까지 와서 휴식을 취하고 대장형이 올때까지 기다렸다. 허가서 문제로 우리끼리 먼저 출발했기 때문이다. 비선대에서 맞은편에 있는 장군봉과 그 유명한 적벽을 보게 되었다. 말로만 듣던 적벽을 바라보니 벌써 겁이 들기 시작했다. 이건 바위가 아니고 마치 타잔 놀이하는 것처럼 보였다. 오버행이 내 눈으로 실감이 났다. ‘씨x,도대체 나보고 어떻게 저기를 오르란 말이야? 나는 겨우 바위 두번밖에 해보지를 않았는데!’ 그때 정훈형이 올라왔다. 나는 계속해서 형한테 적벽이 어렵냐고 물어 봤고 형은 의대길보다 쉽고 우정B보다는 조금 쉽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정말 믿어지지가 않았다. 점심을 먹은 뒤 갑자기 정훈형이 tent및 필요 없는 물건을 다 빼라고 말했다. 순간 힘이 불끈 솟고 정신이 팍 들었다. 이것저것 다빼고 배낭을 매어 보니 기분상인지는 몰라도 꽤 가벼운 것 같았다. 동호형은 비선대 산장에 있기로 하고 나머지는 대청봉을 향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집에까지 걸어가라고 해도 갈수 있을것 같았다. 귀면암을 지나 양폭폭포를 가게 되었는데 정말 아름다웠다. 따로 물을 챙길 필요없이 흐르는 물을 그냥 떠먹어도 전혀 탈이 없었다. 더이상 인간이 자연을 훼손시키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들었다. 앞에 가는 인혜누나가 계속 못 올라가고 힘들어해서 뒤에 가는 나는 쉬엄쉬엄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 희운각을 지나 소청으로 가는 길목에서는 힘이 들고 지치기 시작했다. 그건 대장형도 마찬가지 였다. 계속해서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왔고 내 숨결도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앞만 보고 걸어가다 인혜누나의 배낭에 머리를 받은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야, 아직도 더가야 돼냐?”라는 정훈형의 질문에 시열이 형은 더 가야 된다고 대답했고 이제는 설 힘조차 없었다. 휴식을 취하면서 뒤돌아보니 내 눈앞에 설악산의 모든것이 보였다. 공룡능선, 천하대, 칠형제봉등 설악산은 위엄에 찬 거대한 요새 같았다. 시열이 형이 앞에서 다왔다라고 외쳤고 순간 기쁨이 싹트기 시작했다. 소청에 도착 휴식을 취한뒤 설악산장을 향하는데 손가락을 움직일 힘조차 내게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때 정훈형이 산노래를 불러보라고 해서 노래를 부르며 길을 걸어가니 한결 나았고 그렇게 흥겨울 수가 없었다. 산장에서 밥을 먹는데 진짜 꿀맛이었다. 내일 대청에서 일출을 보러가기 위해 일찍 잠을 자라고 대장형이 말했지만 난 밖에 나가서 동해를 보고 싶었다. 정훈형이 농담으로 “여기서는 도망치기 힘들걸”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도망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희뿌연 안개사이로 오징어 배의 조그마한 불빛이 보이고 밤하늘에 빛나는 북두칠성의 섬광은 지금까지의 어둠을 말끔히 씻어내 주었다. 다시 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7월 8일

아침에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대청봉을 올랐다. 내 옆으로 말로만 듣던 운해가 넘실넘실 춤을 추기 시작했고 멀리서 꿈틀거리는 햇살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전생에 지은 죄가 많아서 인지 일출의 광경은 볼 수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 한채 비선대로 내려가기 위해 준비를 마치니 부슬비가 뿌려지기 시작했다. 어제 그렇게 고전했던 오르막길을 10분만에 내려왔다. 어제의 고생을 산이 보답해 주는 것 같았다. 천불동 계곡에서 시원하게 휴식을 가진 뒤 수석을 고른다고 대장형앞에서 재롱떨다가 내 머리보다 조금 더 큰 돌덩이를 지고 내려오게 되었다. 저만치 앞서가는 2학년들이 야속했다. 드디어 비선대에 도착. 자고있는 동호형을 보니 부럽기도 하고 멋진 광경을 나만 볼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다. 비선대에 와서 야호 외치며 내려가는 관광객들을 보니 우습기도 했다. 산장 주인의 무용담을 들으며 방에 누워있으려니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갈구했던 모처럼만의 휴식인데 막상 주워지니 너무 지루했고 다시 산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고생뒤의 약간의 휴식이 진정한 또 소중한 추억이 되는 것 같다. 저녁에 모두가 술을 마시면서 많은 담소를 나누었다. 정훈형이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아 내일 간다고 하니 너무 섭섭했다. 하지만 형은 4학년이고 해서 이때까지 같이 동행한 것이 고마웠다. 산악부의 진지한 면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고 내가 이전에 듣지 못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그리고 2학기 되어서 득기형을 잘 따르며 이제는 수동자가 아닌 능동자로서, 산악부의 주체로서 행동할 것을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7월 9일

동호형의 생일축하 곡을 부르며 즐거운 아침식사를 했다. 또, 정훈형, 시열형과 함께 토막골에서 샤워를 했다. 속세의 모든 번뇌와 부질없는 생각들이 한 순간에 경종을 울리는 차가운 물에 씻기는 것 같아 상쾌했다. 동호형의 도중하차가 섭섭했지만 발목상태가 안 좋아 개인적인 내 기분만을 고집 할 수는 없었다. 버스 정류장까지 가벼운 배낭을 매고 걸어가니 언젠가 이 길을 끝으로 집으로 가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를 타고서 다시 시내로 빠지는 도중 말로만 듣던 토왕성 폭포를 보게 되었다. 마치 하늘에서 솟구치는 것처럼 보이는 폭포를 직접 보니 절로 토왕성 찬가가 흘러나왔다. 터미널에서 경순형을 만났는데 너무 반가웠다. 횟집에서 실컷 먹고 장을 본뒤 정훈형이 사준 cola를 먹으면서 아쉬웠지만 정훈형, 동호형과 작별을 했다. 택배회사에 들려 서울에서 형들이 부쳐준 짐을 찾았는데 장난이 아니었다. 혼자서는 들 수가 없을 정도였다. 짐을 매고 비선대로 오르니 술이 확 깼다. 닭죽을 저녁으로 먹으면서 경순형과 많은 담소를 나누었다. 잘 기억은 안나지만 1학년인 나로서는 참 마음에 닿는 좋은 충고였다. 내일 코스는 천화대인데 그리 어렵지 않은 리찌코스라고 경순형이 상세히 얘기해 주었다. 물론 제일 먼저 적벽 할거냐고 형한테 물어 보았고 경순형은 아무래도 안할 확률이 높다고 안심시켜 주었다. 동호형이 없어서 여러가지 특히 따까리 하는데 지장이 많았다.

7월 10일

AM 7시 기상인데 시열형은 5시에 깨웠다. 짜증이 났지만 1학년인 나로서는 불평할 처지가 되지는 않았다. 아침일찍부터 짐을 패킹해 설악골로 BC를 옮겼다. BC로 옮기는 과정 또한 나에게는 곤욕이었다. 짐을 정리한 후 바로 천화대 리찌로 향했다. 바위와 종주의 짬뽕이었는데 할 만 했다. 2피치 조금 넘어서 앵카를 몇번 먹었다. 그리 짠 코스는 아니었는데 겁을 먹어서 그런 것 같았다. 경순형이 먼저 올라갔는데 내가 앵카 먹은 데를 형은 그냥 프리로 올라갔다.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계속해서 오르막, 하강을 했는데 하강하고 나서 몰래 수통에 있는 물을 혼자 다 먹고서 형들한테는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미숫가루는 정말 안먹혔다, 왕관봉에 오르기전 크랙에서 밖으로 빠졌으면 훨씬 수월했을 텐데 겁먹어서 안으로 들어갔다가 힘만 더 뺐다. 왕관봉에 올라서 주위를 살펴보니, 염라길, 공룡능선, 석주길, 흑범길, 울산바위가 보였다. 울산바위는 정말 거대했다. 왕관봉에서 하강하는데 경순형이 주의를 많이 주었다. 오버행으로 하강을 했는데 정말 몸이 공중에 붕 떠서 내려왔다. 스릴 있는 경험이었다. 경순형 몰래 시열형 보고 사진 좀 찍어 달라고 해서 몇장 더 찍었다. BC로 오니 8시 30분경 이었다. 하루종일 움직여서 인지 몸이 정말 피곤했다. 밥을 먹는데 졸음이 마구 몰려왔다. 발이 퉁퉁부어있고 다리가 특히 무릎이 쑤셨다.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리속을 채웠다. 내일은 7형제봉이라는데 정말 끔찍하다.

7월 11일

어제의 무리한 행군때문이어서 인지 아침에 일어나 보니 몸이 내몸 같지가 않았다. 짜증만 나고 다 때려치고 싶었다. 나뿐만 아니라 시열이 형도 지칠때로 지쳐서 인지 천천히 걷기 시작했고 경순형은 뒤에서 계속 다그쳤다. 정말 나도 힘들어서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형들한테 맞고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제와 달리 칠형제봉은 바위가 많지가 않았다. 그래도 힘들었다. 점심을 먹으려고 해도 빵이 먹히지가 않았다. 간식도 사탕을 제외하고는 먹을수가 없었다. 그때 경순형이 노래를 불러서 자기맘에 들면 탈출구로 간다고 했다. 이때다 싶어 힘차게 한곡조 뽑으니 경순형이 탈출로를 통해 내려간다고 운행일정을 바꾸었고 조심스럽게 내려오기 시작했다. 막상 내려오니 이상하게도 힘이 났고 별 문제없이 BC로 와서 산장으로 짐을 옮겼다. 이때 시열형이 너무 짐을 가볍게 지고가는 바람에 내가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되었고 정말 형이 야속했다. 산장으로 와서 앞으로의 운행일정에 맞게 짐을 분리 정리하고서 밥을 먹은후 휴식과 동시에 취침에 들어갔다. 저녁이어서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홀딱벗고 비선대앞에서 샤워를 했다. 저녁에 충주대학교 산악부 똘마니 하나가 오는 바람에 경순형하고 똘마니하고 나하고 밤새도록 술먹는 처지가 되었다. 죽는줄 알았다. 지방 사람이어서 인지 소주를 물 마시듯이 마구 마셔댔고 그 덕분에 나는 거의 인사불성(人事不省)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환민형, 득기형, 장원형, 영남형이 오는 것을 마중 나가지 못했고 형들한테 꾸중을 듣게 되었다. 형들이 회를 사가지고 와서 맛있게 잘 먹었다.

7월 12일

느닷없이 시끄러운 소리에 깨어보니 진욱형, 대원형, 미옥누나가 산장에 와 있었다. 졸린 눈을 마구 비비면서 대충 짐을 정리해서 설악골로 BC를 옮겼다. 잠이 덜깨서 인지 몸이 말을 듣지를 않았다. 미옥이 누나가 자두를 하나 줬는데 이건 꿀맛이었다. 두 팀으로 나누어서 경순형, 환민형, 득기형하고 석주길 리찌를 오르기로 했다. 다행이 장원형이랑 한팀이 되지는 않았다. 석주길은 RC가 그리 많지가 않았다. 대부분이 리찌였다. 득기형이 계속 톱을 섰는데 오르는 걸 보니 인간 같지가 않았다. 인간같지가 않고 다람쥐 같았다. 가는 도중에 부슬비가 내려서 걱정이 좀 되었지만 별 문제는 없었다. 석주길의 정상으로 가는 마지막 길목에서 조금 까다로운데가 있었다. 어렵지는 않았지만 고도감이 있어서 두려웠는데 막상 붙으니깐 재미있었다. 말 타듯이 갔는데 칼바위에서의 스릴은 대단했다. 바람이 불면 몸이 넘어갈 것만 같았다. 내려오면서 석주동판을 보니 마음이 숙연해진다. 내려와서 BC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었다. 형들이랑 같이 돌판에다가 돼지고기 구워먹으며 먹다남은 양주(captain Q)를 먹었다. 다 먹으면 다른 팀들이 눈치 챌까봐 병뚜껑에다가 조금씩 먹었다. 수고했다고 형들이 나한테 많이 권했는데 참 고마웠다. 그리고 내일은 몰래 코펠이랑 중국라면을 챙겨서 우리끼리 먹기로 의기투합(意氣投合)했다. 다른 팀들이 예상외로 너무 늦어져 형들이 직접 저녁을 했는데 역시 형들답게 요리를 잘했다. 다행히 다른 팀들이 아무 사고없이 무사히 도착해서 전부다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저녁에는 형들이랑 술을 먹으면서 담소를 나누었다. 다들 피곤해서인지 많이 마시지는 않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동호형이 없어서인지 일하는데 2학년들의 손발이 잘 맞지가 않았다. 서로들 짜증을 많이 내고 나도 보고 있으려니 답답했다. 다행히 득기형이 여러모로 많이 도와 주셔서 별 탈없이 순조롭게 진행했다. 또 저녁에 대청갔던 진욱형 미옥누나가 왔는데 너무 피곤해서 마중나가보지도 못하고 곯아 떨어졌다.

7월 13일

오늘은 어제 팀과 코스를 바꿔 우리가 흑범길을 올랐다. 아침에 시열형이 코펠이 없어졌다고 난리를 쳤는데 나는 천연스럽게 저기에다가 내가 잘 보관했다고 안심 시켰다. 어제 흑범팀들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 나는 처음부터 겁을 좀 먹었다. 더군다나 시열형도 나보고 많이 어렵다고 겁을 줘서 잔뜩 긴장이 되었다. 그러나 막상 붙어보니 그리 어렵지도 않았고 순식간에 올랐다. 마지막에 조금 짠 코스가 있었는데 슬랩으로 올라가면 될 것 같아 자신있게 올라갔다. 마지막 코스에서 수직으로 슬링이 걸려 있는 곳이 나왔다. 득기형이 올라갔는데 팔, 다리를 덜덜 떨면서 힘겹게 올라갔다. 더군다나 앵카도 한번 먹었다. 공격하면서 득기형이 나한테 “호성아, 조금 어렵다.”라고 해서 또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천화대할때 경순형이 “어려운데는 겁먹지말고 계속 매달려 있으면 펌핑오니깐 과감하게 해야돼.”라고 한말이 떠올라 득기형이 박아논 프렌드를 잡고 자신있게 뛰어올라갔다. 확보지점에 올라가니 득기형이 “어쭈 이제 잘 올라오는데......”라고 칭찬해 주어서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왕관봉 밑에서 어제 꽁쳐 놓은 중국라면을 형들과 나누어 먹었다. 내려오다가 시원한 계곡물에서 수영을 했다. 그날의 여독이 다 풀리는 것 같았다. 마침 석주 팀들도 와서 같이 샤워를 했다. 바위가 밋밋한데서 미끄럼을 타다가 팬티가 찢어질뻔 했다. 사진 몇장 박고 BC로 와서 저녁을 먹은후 재미있게 형들이랑 술을 먹었다. 노래도 부르고 무서운 얘기도 주고받고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알찬 이야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OB형들이 설악준령가를 불렀는데 노래가 신나고 패기가 있는 곡이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배워보고 싶다.

7월 14일

5시 40분에 기상. 오늘은 말로만 듣던 울산바위 리찌다. 그 거대한 울산바위를 드디어 올라가게 된다는 생각에 무척 기뻤다. 그러나 BC를 옮기기 때문에 배낭이 의외로 무거웠다. 게다가 울산바위까지는 한참을 가야된다. D-ONE을 크게 외치고 출발. 계속되는 종주, 형들은 쉬지않고 계속 행군했고 숨이 가빠왔다. 인혜누나가 갑자기 울기 시작해서 겨우 쉴 수가 있었다. 남자인 나도 이렇게 힘든데 여자니깐 얼마나 힘들겠는가! 지옥문을 지나 신루트 P-1을 오르기 시작했다. 형들도 결코 쉽지 않음을 인정했다. 태양은 이글거리고 정말 말그대로 지옥 같았다. 처음으로 시열형이 톱을 섰는데 형도 긴장이 꽤나 되는 것처럼 보였다. 어려운 슬랩부분 드디어 걱정했던 사고가 터졌다. 시열형이 “앵카! 앵카! 앵카!”소리와 함께 추락한 것이다. 그때 인혜누나가 톱 빌레이를 봤는데 제대로 보지를 못해 형이 많이 떨어졌고 다리를 다치게 되었다. 순간 나도 겁을 먹게 되었고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형들은 냉정하게 아무일 없다는 듯이 득기형을 올려 보냈다. 득기형은 SP(super climber)답게 한번의 앵카도 없이 바로 올라갔다. 그 다음은 인혜누나. 예상대로 몇시간을 개겼고 거의 득기형의 도움으로 올라갔다. 그 다음은 내 차례. 하지만 나는 이미 겁을 잔뜩 먹은 상태였다. 더구나 인혜누나가 빌레이 본다는 생각에 시열이 형 악몽이 생각나 혹시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바보같은 생각을 했다. 드디어 출발. 가파른 슬랩을 오르는데 짐이 무거워서 균형을 잡을 수가 없었다. 시열형이 앵카먹은데로 올라가자 말 그대로 이건 슬랩이었다. 잡을 곳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고 밋밋했다. 계속되는 앵카! 차라리 떨어져서 죽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위에서 득기형이 코치를 해주었지만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득기형이 빌레이를 본다고 생각하니깐 조금 안심이 되었고 형이 하라는데로 그대로 하니 겨우 확보지점에 오를 수 있었다. 힘들었고 기운이 빠졌다. 득기형이 내 배낭을 들어보더니 “진짜 무겁구나”라고 놀라워 했다. 그순간 형들이 한없이 미웠다. 조그만 배낭을 매고도 잘 오르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걸 메고 올라가라는 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너무나 오래 시간을 빼앗겨서 형들은 계속해서 우리를 다그쳤고 나 스스로도 짜증이 났고 형들 욕하는 소리가 무척이나 거슬렸다. 천당문을 올라갈때도 마찬가지였다. 시열형이 빌레이를 제대로 보지 못해 장원형한테 무지 욕을 먹었고 나도 한소리 들었다. 구석에서 쭈그려 가지고 내가 왜 욕을 먹으면서 여길 올라야하는지 이해가 안됐고 차라리 맞을만큼 맞고 내려갔으면 좋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거기다 인혜누나가 계속 개기는 바람에 분위기는 더 삭막해졌다. 내 차례.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오기가 생겨서 인지 이 꽉 깨물고 무작정 올라갔다. 그래서 욕은 먹지 않았다. 해는져서 어두 컴컴하고정상에 오르니 바람이 엄청나게 불었다. 몸이 날라갈 정도였다. 환민형이 바위에 바싹 붙어서 앉아 있으라고 했다. 하강을 해서 내려가는데 코스가 왕관봉 못지 않게 오버였다. 더군다나 배낭이 무거워서 균형잡기가 어려웠다. 인혜누나는 내려오다가 손을 찢기는 상처를 입기도 했다. 랜턴을 챙기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와서 B.C칠 장소를 물색했다. 거기서 부터는 형들이 조금 부드럽게 대해 주었다. 도대체 형들의 마음을 알수가 없었다. 밥을 먹는 도중에 나는 병든 닭새끼 마냥 꾸벅꾸벅 졸았다. 비박을 했는데 경순형 옆자리에다가 침낭을 깔고 잠을 청했다. 태풍이라도 올것처럼 소리가 요란했다. 아마 하계산행중 제일 힘들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기회봐서 도망칠 궁리를 하다가 그만 자버리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7월 15일

아침을 든든하게 챙겨먹은 뒤 패킹을 시작했다. 시열형과 경순형은 설악골 B.C로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열형이 너무나 부러웠다. 나머지 대원들은 간단하게 몸을 풀고 울산바위 정상으로 향했다. 어제보다 몸이 덜 무거웠고 컨디션도 괜찮았다. 그리고 형들도 기분좋게 산행하자며 조금 느슨하게 해줬다. 그래도 나는 장원형한테 자일 제대로 못 사린다고 조금 혼났다. 울산바위 정상에서 사진을 찍은 다음 차례대로 연등을 했다. 인수봉과 비슷한 스타일 이었고 형들도 어제 P-1에 비하면 훨씬 쉽다고 얘기를 해주었다. 또 나름대로 재미도 있었다. 볼트 따먹는 곳에서 앵카를 먹었지만 겁먹어서 그런것은 아니고 볼트 대가리가 틀어지는 바람에 그만 떨어진 것이다. 그다음부터는 침니의 연속이었는데 장원형이 “이제 침니에서 날아다니는 구만!”하고 칭찬해주어서 기분이 무지 좋았다. 장원형은 웬만해서는 칭찬을 안해주기 때문이다. 거의 다와서 P-14지점에 이르렀을때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슬링 2개가 박혀있는 곳이었는데 내가 보기에도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인혜누나가 먼저 올라 갔는데 슬링을 밟고 올라가지를 못했다. 힘이 없어서 그런것 같았다. 2시 조금 넘게 개겼는데 누나는 울기 시작했고 형들은 위아래서 연신 욕을 했다. 조금만 힘을쓰면 올라갈 것 같았는데 결국 오르지를 못했다. 환민형이 주마를 꺼내 올려 줄려고 했는데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누나는 주마방법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또 거기다 비구름이 몰려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할 수 없이 득기형, 장원형은 우리가 있는 곳으로 하강했고 위험하다면 위험할 수 있는 하강코스 아닌 P-14에서 하강을 시작했다. 낡은 슬링에다가 우리 슬링을 연결해서 하강을 하기 때문에 형들도 조금 긴장되어 보였다. 다행히 아무 사고없이 무사히 하강했고 좁은 동굴속을 기어나와서 탈출로로 접어들었다. 장비를 배낭에 넣고 내려오는데 비가 엄청나게 내렸다. 날파리 같은게 계속 몸에 붙어 다녔다. 내려오다 흔들바위에 도착해 직접 흔들어 보았지만 움직이기는 커녕 꿈쩍도 안했다. 무작정 밀지말고 손목 스냅을 이용해서 살살 흔들어야 된다고 형들이 말해주었다. B.C에 도착하니 온몸이 샤워를 한 것처럼 흠뻑 젖어 있었다. 대충 치우고 옷을 갈아입은 뒤 저녁을 먹으면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제 이틀 밖에 남지 않았다. 집생각이 간절했다. 어서 이틀간의 악몽이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7월 16일

오늘은 정말 기운이 없었다. 내가 그렇게 하기 싫어했고 두려워했던 적벽을 하기 때문이다. 득기형, 경순형과 함께 팀을 이루었는데 출발하는 그 순간부터 다리가 떨리고 팔에 힘이 쭉 빠졌다. 어제 저녁에 그렇게 비가 내리기를 기도했건만 비는 커녕 날씨만 좋았다. 드디어 적벽에서의 1피치를 공격하기 위해 장비를 착용하고 빌레이 준비를 했다. 득기형의 출발과 동시에 빌레이는 시작되었다.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비선대에서는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15미터 간격으로 하켄과 슬링이 걸려 있었다. “적벽은 인공등반이야. 바위로서의 가치는 없지만 한번 자신있게 붙어봐.”라고 경순형이 얘기했지만 마음속으로 욕만 했다. 득기형은 예상대로 쉽게 올라갔고 내 차례가 되었다. 처음은 괜찮았다. 차근차근 오르는데 조금 까다로운데가 있었다. “거기서는 그냥 걸어가” 경순형이 얘기했다. ‘어떻게 걸어가란 말이야!’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앵카!”외치며 나는 떨어졌다. 거기서부터 악몽이 시작되었다. 앵카를 먹으니 이때까지와는 다르게 몸이 공중에 붕 떠다녀서 홀드를 잡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더군다나 밑에 보니깐 이건 절벽이다.
“십X까! 정신차려. 어쭈, 내려오지, 거기서 한 발자국만 더 내려오면 박살날 줄 알아.”
“앵카!”
“놀고있네. 거기서 앵카를 왜 먹나? 전호성!! 십X놈아, 안 올라가! 어서 붙어!” “누가이기나 한번 해보자는 것 같은데. 좋아 랜턴끼고 계속 할테니깐 계속 매달려 있어”
“앵카!”
“전호성!! 십X놈아! 이게 평소에 잘해주니깐 정신을 못차리네. 한번만 더 밑에 쳐다보면 박살날줄 알아.”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부실에서는 그렇게 자상하고 잘해주던 경순형이 지금은 악마였다. 형이 무섭게 한적이 많지 않아서인지 형이 밉다는 차원을 넘어서 바위보다 더 두려웠다. 차라리 죽도록 맞고서 그냥 B.C로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번 붙은 이상 어쩔수가 없었다. 눈에서 눈물이 핑돌더니 급기야 흐르기까지 했다. 정말 죽고 싶었다. 만약에 살아서 부실까지 간다면 당장에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100번도 더했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첫 하켄과 슬링이 있는 곳까지 오게 되었다. 경순형이 하라는데로 확보줄을 하나 더 만들어서 하나하나 걸면서 올라갔다. 힘이 많이 들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죽기 싫어서 였던지 나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잽싸게 올라갔다. 경순형 차례. 그런데 왠걸 오버행이어서 인지 빌레이 보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허리가 다쳤던 나는 정말 곤욕이었다. 경순형은 내가 2시간 30분을 개긴곳을 10분만에 올라왔다. 10분만에 후등자를 빌레이보는 것도 이렇게 괴로운데 2시간 반동안을 빌레이 본 득기형은 허리가 얼마나 아팠을까? 형한테 너무 미안했다. 그때 경순형이 나를 하강시켜 주었다. 날씨도 점점 안좋아졌고 허리가 아픈 내가 불쌍했나보다. 그렇게 개긴 1피치를 내려오는데 5분도 안 걸렸다. 적벽에서는 자일을 사릴 필요가 없었다. 오버행이기 때문에 꼬일 염려가 없어서이다. 내려와서 땅을 만져보니 그제서야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분명 경순형한테 맞을게 뻔한데 아까 형을 봐서는 사망 아니면 반죽음이다. 그때 위에서 경순형이 불렀다. ‘머리박고 있으라고 할테지’그런데 의외로 “내 책가방에 담배 있으니깐 피고 자일에다가 묶어서 올려 보내줘. 그리고 간식먹고 있어” ‘오잉! 살았구나’ 형들이 올라가는걸 밑에서 혼자 지켜봤다. 시간이 흐르고 형들이 안보이기 시작하니 스스로가 그렇게 비참할 수가 없었다. 낙오자가 된 기분이었다. 올라갈때는 밑에서 쉬는게 소원이었는데, 내려만 주면 무슨 일이라도 할것 같았는데 내려오니 상황은 그게 아니었다. 나를 내가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도 니가 남자냐? 이런거 하나 제대로 못하면서 무슨 일을 하겠다고 너는 진짜 X다’내 자신에게 욕을하고 채찍질을 했다. 어느덧 형들은 하강해서 내가 있는 곳으로 왔다. 경순형이 나한테 욕한게 미안해서 인지 비선대에서 막걸리를 사주었다.

“처음이어서 그래. 요령도 없고 경험도 없고. 시간이 지나고 형들한테 하나하나 배우면 다음에 오를때는 ‘내가 왜 저번에 못 올랐을까?’하고 의아해 할꺼야. 기운내라. 그리고 아까 형이 욕한건 니가 미워서가 아니라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야. 그렇게 풀죽어 있지만 말고 좀 웃어라 새꺄.”

경순형이 다독거려 줬지만 나는 웃을수가 없었다. 나한테 너무 실망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짐했다. 서울로 돌아가면 우선 운동을 열심히 하고 노력해서 자신감과 요령을 터득하겠다고 말이다. 올라가는데 중점을 두는게 아니라 어떻게 오르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분석할 것이다. 오늘을 반성삼아 두번다시 내 자신에게 비참해지지 않겠다.

FIGHTING!!!

7월 17일

드디어 일이 터지고 말았다. 환민형에게 빠따를 맞은 것이다. 맞는것에 자신이 있던 나로서는 그리 아프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맞을 짓을 했다. 출발시간을 계속 어긴 것이다. 동호형만 있어도 이런일은 없었을 것이다. 인혜누나 역시 몸이 안좋아 B.C에 남기로 하고 환민형과 우리팀이 조인트로 장군봉에 올랐다. 우리가 늦어서인지 다른 팀들이 개미처럼 붙어 있었다, 그제서야 왜 환민형이 나무랐는지를 알 수 있었다. 2피치 공격할 때였다. 어려운 슬랩부분에서 출발하려하는데 다른 산악부 톱이 자기가 먼저 올라가겠다고 했다. 올라가는 걸 지켜봤는데 아슬아슬하게 겨우 올라갔다. 그런데 너무 바위에 몸을 붙여서 균형을 잡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반대로 홀드를 잡지 않고 디딜곳을 정확히 문질러서 오른쪽 발을 디딘다음 과감하게 쭉 일어섰다. 순간 오른쪽 발이 미끄러지는 기분이 들어서 앵카먹을 준비를 하고 몸을 바위에서 확 띄웠다. 세상에! 오른쪽 발에 무게가 실리면서 팍 먹히는 것 이었다. 순간 너무 기뻤다. 내 판단이 맞았고 형들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다는 것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그 다음은 오른쪽 발을 축으로 왼발을 깽깽이 하듯이 차올리며 홀드를 밟았다. 그 다음부터는 과감하게 차올렸다. 앵카 한번없이 난 해낼 것이다. 마지막 피치를 공격하는데 크랙 두개가 나왔다. 조금 섰기때문에 무서웠지만 득기형이 박아 논 프렌드를 딛고 자신있게 올라 쳤다. 두번째 크랙. 장원형이 가르쳐 준대로 발을 비스듬히 해서 크랙에 끼운 다음 무릎을 곧게 펴서 무게체중을 실었다. 그러니 역시 빠질것 같은 발이 고정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퀵드로우를 회수해야 하는데 무척 까다롭고 확보를 할 수가 없는 장소였다. 그래서 득기형한테 “타이트”라고 외치고 퀵드로우를 회수하다 앵카를 몇 번 먹었다. 나중에 형들한테 “타이트”라고 외쳤다고 혼이 났는데 득기형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퀵드로우 회수하느라 그런 것이다. 그런데 경순형이 원래 second는 자일만 통과시키는 거고 확보물등은 마지막 오르는 사람이 회수하는 거라고 해서 또 하나의 등반규칙을 배웠다. 확보지점에 오르니 득기형이 잘 올라온다고 칭찬해 주어서 기뻤다. 다른 팀들이 너무 많고 시간도 없고해서 바로 하강을 시작해 B.C로 왔다. 짐을 정리하고 패킹한 다음 낙산학사로 향했다. 득기형이랑 내려오면서 쓰레기를 들고 내려왔는데 너무 무거워서 올라올때보다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버스를 타고 설악산을 떠나는데 막상 갈려고 하니 힘들었지만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낙산에 도착. 집에 전화하니 부모님이 반가워 하셨고 다친데는 없는지 걱정을 하셨다.

형들이 밖에서 돼지고기와 오징어, 멍게를 사가지고 와서 맛있게 먹었다.

7월 18일

편하게 자고난 뒤 형들이랑 고스톱을 쳤다. 처음 배웠는데 조금 복잡했지만 재미있었다. 바다에 가서 사진도 찍고 썬텐도 했는데 역시 바다보다는 산이 훨씬 더 좋은 것 같았다. 산에서는 그렇게 낙산낙산 했는데 막상 와보니 산에 도로 가고 싶었다. 너무 따분하고 무기력하기 때문이다. 저녁에 술을 먹으면서 형들과 많은 얘기를 했고 또 한번 내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깨달았고 형들의 깊은 뜻을 이해 할 수 있는 계기였다.

7월 19일

고속버스를 타면서 하계산행을 돌이켜 보았다. 많은 걸 느꼈고 그래도 지금까지 버텨온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다시 한번 산악부를 생각해 보았다. 결코 쉽고 만만한 동아리는 아니다. 하지만 한번 내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모험적이고, 도전적이고, 인간적인 동아리임을 새삼 깨달았다. 왜 형들이 그렇게 나를 데려 갈려고 붙잡았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주말산행보다 힘들지만 그만큼 얻는 것은 더 많았다. 내 스스로를 강하게 키웠고 자아의 폭을 넓혔다면 넓혔다. 한때 산악부를 그만 둘려고 했던 나를 여기까지 있게 해준 형들이 참 고마웠다. 물론 바위할 때 형들이 정말 밉고 싫지만 그게 다 내 안전을 배려해준 따뜻한 마음이었다는 것을 1학기가 지나서야 겨우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장기 산행을 갔다 오면 산악부 골수분자가 되는 모양이다. 이제 힘들었다면 힘들었던 1학기가 다 지났다. 처음에 내 모습과 비교해 본다면 분명 발전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많이 모자라지만 더 느끼고 배우면서 나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나는 분명히 멋있게 해낼 것이다. 끝으로 어려운 시간을 내서 산행에 참여해주신 정훈형, 경순형, 장원형, 환민형, 득기형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형들, 싸랑해요!!)

산처럼 바다처럼

산을 좋아하는 친구야
초록의 나무들이
초록의 꿈 이야기를 솔솔 풀어 내는
산에 오를 때마다
나는 너에게 산을 주고 싶다
수많은 나무들을 키우며 묵묵한 산
한결같은 산처럼 참고 기다리는 마음을
우리 함께 새롭히자

바다를 좋아하는 친구야
밀물과 썰물이 때를 따라 움직이고
파도에 씻긴 조가비들이
사랑의 노래처럼 널리 있는
바다에 나갈 때마다
나는 너에게 바다를 주고 싶다
모든 것을 받아 안고 쏟아 낼 줄 아는 바다
바다처럼 넉넉하고 지혜로운 마음을 우리 함께 배워 가자

젊음 하나만으로도
나를 기쁨에 설레이게 하는
보고 싶은 친구야
선한 것 진실한 것 아름다운 것을
목말라하는 너를 그리며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산의 깊은 마음과 바다의 어진 마음으로
나는 너를 사랑한다 <사계절의 기도 中>

’97 추계 산행 - 전호성(97학번)

1) 기 간 : 97년 10월 2일 ~ 10월 5일
2) 대상지 : 지리산 일원
3) 코 스 : 칠선계곡 - 천왕봉 - 노고단 - 정령치 - 남원

4) 대 장 : 방득기 (일문 2)

5) 대 원 : 함동호(전자, 전기2), 양시열(경상2), 성인혜(역교2), 전호성(경동1), 박재수(아시아1), 정승환(정산1), 윤필중(휴가중)

10월 2일

동기들, 그리고 신임대장 득기형과 처음가는 장기산행이라 굉장히 기대가 되었다. 더구나 6명이기 때문에 배낭도 가벼워 지리라는 나의 생각에 부실로 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배낭은 너무 무거웠고(예전보다) 가는 차속에서도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만 들었다. 함양에 도착. 다행히 주위에 계곡이 많고 캠프 사이트도 아주 요긴해서 편하게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막판에 승환이의 “산노래 엉터리로 부르기”때문에 분위기가 조금 삭막했다. (나는 재미있었다) 내일을 기약하며 나는 동호, 시열형과 함께 잤다. 동호형이 요즈음 내가 기운이 없어 보인다며 힘내라고 북돋워 주었다.

10월 3일

드디어 지리산 공격! 하지만 배낭은 여전히 무겁고 앞에가는 동호형은 아주 날아 다녔다. 다행히 승환이가 개겨주어서 쉴 수 있었지만 나도 진짜 힘들었다. 그런데 재수는 전혀 힘들어 하지 않고 오히려 경치 구경하면서 오는 것 같았다. 진짜 슈퍼다. 칠선계곡을 따라 계속 올라오다가 칠선 폭포쯤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잘 먹히지가 않았다. 승환이는 너무 힘들어서 인지 멍하니 다른 생각만 하고 있었다. 2시간쯤 걸려 겨우 천왕봉에 올랐다. 천왕봉을 주위로 내려앉은 지리산은 정말 단풍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러나 종주는 여기서 부터 시작이었다.
장터목 산장을 지나 연하봉, 삼신봉, 촛대봉을 오르면서 내 체력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장기산행까지 간 나인데 재수보다 더 못하는 것 같았다. 내 자신이 한심해 보였다. 드디어 세석평전 산장에서 하루를 보내며 나는 알 수 없는 우울감에 빠졌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 1학기 동안 산악부에서 뭘 했나? 이런 생각이 수도없이 머리속을 스쳤고 형들한테는 몸이 안좋다고 얼버무리고 잠을 청했다.
임걸령 쯤에 와서 드디어 일이 터지고 말았다. 내리막이라 마구 달렸는데 오른쪽 허벅지 위에 골반있는 곳에 전기가 오면서 오른쪽 다리는 위로 들지 못할 정도로 아팠다. 오르막은 문제가 안되지만 내리막이 문제였다. 정말 너무 아팠다. 인혜누나 배낭을 내가 짊어지고 내 배낭을 동호형이 맸는데 배낭이 상상외로 가벼웠다. 그래도 노고단까지 가는데 한참이 걸렸다. B.C를 치고 나서 나는 계속해서 조금씩 움직여 보았지만 여전히 아팠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축구를 3-0으로 이겼지만 별로 기쁘지가 않았다.

10월 5일

종주의 마지막 날. 하지만 나는 집에 가고 싶었다. 계속 아팠고 짜증만 났기 때문이다. 내가 아픈걸 고려했는지 배낭이 조금 가벼웠다. 그러나 선두하고 200m정도 거리가 났고 동호형하고 둘이서 맨뒤로 갔다. 산노래도 같이 부르고 시도 읊고 재미있었다. 성삼재까지 내려와서 고리봉으로 향했다. 오르는 도중에 앞에 가던 아저씨께서 고맙게도 지팡이 하라며 나무를 깎아서 주셨고 또 약바르라고 약까지 주셨다. 정말 너무나 감사했다. 오늘은 이때까지와는 달리 그리 오르막이 많지는 않았지만 내경우 다리가 아파서 쩔쩔 거렸다. 그리고 나보다 한참 앞서가는 우리팀을 보니 내 자신에게 화가 나고 죽어버리고 싶었다. 땀 삐질삐질 흘리며 겨우 따라잡으면 또다시 처지기 시작했다. 겨우겨우 만복대까지 올라서 천왕봉을 바라보았다. 오늘 코스는 나무들이 그리 크지가 않아서 멋진 장관들을 방해없이 볼 수가 있었다. 만복대에서 나때문에 대원들은 정령치 쪽으로 빠졌고 아스팔트에 도착. 히치 하이킹으로 지리산을 내려왔다. 아마 걸어왔었으면 지금 이글을 쓰고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남원역에서 입석표를 사서 기차에 올랐다. 이번 산행을 계기로 자기몸은 자기가 챙겨야 된다는 교훈을 얻었고 동기간에 더욱 가깝게 지낼 수가 있었다. 끝까지 완주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지만 내년을 기약하며 화이팅을 한번 외쳐보고 싶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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