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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3-'한강정맥' 초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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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강 정맥' 등반 보고
윤 필 중
등반개요
등반대 : 동국대학교 산악부
목적지 : 오대산(두로봉)- 양수리 종주
기 간 : 1998.7.13-7.29
의 의 : 우리나라의 지형은 산경표에 따르면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나뉘어 있다.
1대간 1정간 13정맥에는 우리나라 산줄기가 거의 포함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게 되면 다른 정맥 못지 않게 세력이 큰 2개의 산줄기의 명칭이 빠져있다. 그 중 하나는 북쪽의 소백산부터 중강진에 이르는 산줄기이며 다른 하나 는 남한 오대산에서 시작을 해서 남한강과 나뉘는 양수리 쪽의 용문산으로 이어지 는 산줄기이다. 특히나 이 산줄기는 이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아직까지 산줄기상의 몇몇 산을 제외하고는 등반이 전무한 상태이다.
이에 우리는 한강정맥이라 이름을 붙이며 초등을 시도하려고 한다.
목 적: -백두대간 상의 지능 초등
-종주등반을 통한 독도법 활용
- 장기 등반을 통한 인내력 및 합동심 배양
대원명단 이름 직책 학번 학과 윤필중 대장 94 토목공학과 박강모 부대장 94 토목공학과 윤영남 장비 95 정보통신공학과 함동호 장비 96 전기전자공학부 성인혜 기록 96 역사교육학과 전호성 식량 97 국제통상학과 박재수 삭량 97 아시아지역학부 방득기 대원 93 일어일문과
종주에 필요한 지형도 5만분의 1(7장) 연곡 도암 봉평 청일 홍천 용두 양수 2만5천분의 1(15장) 비로 진부 노동 흥정 진조 서석 둔내 좌운 홍천 창봉 양덕원
청운 신점 국수 양수 운행일정
날짜 일수 운행구간(계획) 실제운행 도상거리 (Km) 총운행시간 7.13 1 부실-관대거리-비로봉-1315고지 두로봉-1265고지 10 7시간40분 14 2 1315고지-계방산 -운두령 1265고지-계방산-운두령 12 9시간30분 15 3 운두령-보래령-지나안부 운두령-보래령-회령봉부근(추정) 10 13시간 16 4 지나안부-흥정산-지나안부 회령봉-1058-유동 6 9시간 17 5 지나안부-운무산-먼드래재 유동-불발현-장곡현-임도 11.5 12시간30분 18 6 먼드래재-수리봉-920고지 임도-구목령-덕고산-운무산 전 헬기장 10.5 11시간30분 19 7 920고지-대학산-노천초교 화방분교 운무산 전 헬기장-운무산-속실리-먼드래재 5 7시간 20 8 예비일 support 예비일(먼드래재-운무산 보충 운행) 6 3시간30분 21 9 화방분교-덕구산-응곡산-작은 심마치 먼드래재-여무재-수리봉-대학산 전 안부 11 12시간 22 10 작은 심마치-오음산-음물산 대학산 전 안부-대학산-덕구산-개고개 10.5 12시간 23 11 음물산-시루봉-갈기산-새나무고개 임시 예비일 24 12 새나무고개-밭배고개-비손고개 개고개-응곡산-작은삼마치-오음산-공근면 12.5 13시간30분 25 13 비손고개-용문산-대부산농장 공근면-삼거리-금물산 전 안부 7.5 7시간30분 26 14 농장-유명산-청계산-벗고개 안부-금물산-발귀현-갈기산 전 공사현장 6 6시간 27 15 벗고개-양서종합고등학교-양서면 공사현장-갈기산-신당고개-밭배고개 5.5 11시간 28 16 예비일 밭배고개-빕솔고개-사리재-문례봉-유명산 17 10시간 29 17 부실 유명산-소구니산-양수리-부실 3 3시간 1. 2만5천분의 1 지형도 기준
2. 회령봉 갈림길에서 독도실패로 불발현 방향으로 약500미터 구간 잇지 못함
3. 오음산 정상은 군사통제지역이라 오음산8부 능선-정상-삼마치까지 생략
4. 용문산 정상은 군사통제지역이라 문례재-용문산-숫고개까지 생략, 계곡으로 우회
5. 유명산-청계산-벗고개-양서종합고등학교 구간은 잇지 못함
6. 이후 보충산행으로 소구니산 안부-청계산-벗고개 까지 운행
(`77 최성침, `79 호경필, `94 윤필중 )
각 구간별 안내
일자 구간별 길 상태 1 두로봉(1421.9)-A-상왕봉(1491)-A-비로봉(1563.4)-B,C(자연휴식년제)-호령봉(1561)-C-1265고지 2 1265고지-A,C-계방산(1577.4)-A-운두령(31번 국도) 3 운두령-B-보래령-B-회령봉부근 4 회령봉부근-1058-유동 5 유동-A(우마차도)-불발현-A-장곡현-C(암릉+잡목)-임도 6 임도-A,B-구목령-C-덕고산-B-운무산 전 헬기장 7 헬기장-B(암릉우회)-운무산(980.3)-B-먼드래재 8 예비일 9 먼드래재-B(암릉주의)-수리봉(959.6)-A-대학산 전 안부 10 안부-A-B(대학산 전 935.1에서 독도 주의)-대학산(876.4)-B-개고개(갈림길 주의) 11 임시 예비일 12 개고개-A-응곡산(603.7)-B-작은 삼마치-B-오음산(930.4)출입통제지역-공근면 13 공근면-삼거리-임도-금물산 전 안부 14 안부-금물산-B(송전탑)-발귀현-B(송전탑)-갈기산 전 (임도 공사중) 15 갈기산(685.4)-B(송전탑)-신당고개(235)-44번 국도-B(송전탑)-밭배고개 16 밭배고개-B(송전탑)-비솔고개(410)-383지방도-B(송전탑)-싸리재(811.9)-B(송전탑)-문례봉(1009.5)-B-용문산(출입금지)-계곡우회-임도-유명산 17 유명산(862)-A-소구니산-A-청계산(658.4)-B(구릉지대)-벗고개 18 벗고개-양서종합고등학교 1. 위 표는 각 종주시 통과 지역별, 길 상태를 표시한 것이다.
* 굵은 글씨 : A-길 상태 좋음
B-길이 있으나 묻혀있고 잡목이 있는 길
C-아예 길이 나타나 있지 않고 잡목, 암릉길
운행 보고서
7월13일
새벽5시 우리를 오대산 관대거리까지 태워주시기로 약속했던 태현이형과 성침이형을 정문에서 만나 두대의 차에 나누어 타고서 오대산부터 양수리까지 산행을 시작을 하였다.
그동안 이 산행을 계획해 주시고 많은 조언을 해주셨던 선배님들의 얼굴이 달리는 차안의 창문을 통해서 비추어 지고 그동안 수없이 체크하고 확인했던 앞으로의 일정을 머리속에서 체크해본다.
오대산 능선을 통과하는 446번 지방도로를 통해 능선까지 다다른 다음 선배님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본격적인 등반을 시작한다. 그곳에서 우리등반의 시작지인 두로봉까지는 지도상 30분 거리 하지만 시작부터 길을 잘못 들어 빽을 해야만했다. 등반전 독도법에 대해선 충분히 공부를 했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실제로 해보니 그 산이 그 산인 것 같고 한마디로 장난이 아니었다. 두로봉에 도착 표시기를 달고 기념사진 한장을 찍고 구보로 능선 도로까지 이동을 했다.
이후로부터는 휴식년제 구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립공원 이어서 인지 길이 뻥 뚤려 있어 오늘의 목표지인 1315고지를 약간 지나 1261고지 밑의 헬기장에서 첫날밤을 보내었다.
3주동안 이번 등반을 위해 하루에 두 번씩 남산순환도로 7km달린 효과가 있었는지 첫날이라 몸이 안풀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무거운 베낭을 메고도 잘 따라준 하루였다.
7월14일
어젠 첫날이라 운행거리가 짧았으나 오늘부터는 거리도 길고 길도 확실치 않기 때문에 모두들 긴장한 상태에서 빵과 스프로 아침을 때우고 5시 운행을 시작한다.
약간 쌀쌀한 날씨와, 심하지는 않으나 옷을 적시기엔 충분한 비바람이 불자 모두들 남방을 껴입는다. 예상과는 달리 길이 좋아 운행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길이 좋은 오대산 구간을 통과하고 계방산 구간으로 들어가니 길이 희미해지고 잡목 구간이 많아진다. 계방산이 보이고 갚아른 경사가 시작되자 잘가던 인혜가 힘들어하기 시작 나중에는 눈물까지 보인다.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인혜의 모습이었기에 그리고 16일로 예정되어있는 총 운행중 이틀째여서 대장인 나로서는 황당하지 않을수 없었다.
드디어 12시가 약간 넘은 시간 계방산 정상에 도착 눈앞이 확 트이면서 앞으로 우리가 가야할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과 함께 끝이 보이지 않는 저 산들을 과연 넘을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들기도 하였다.
정상에서 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바로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보이는 운두령을 향해... 그리고 휴게소에서 맥주한잔씩 하자는 나의 말에 인혜를 선두로 모두들 뛰기 시작한다. 오전에 제일로 힘들어 하던 인혜는 완전히 딴사람으로 변해서 쉬지도 않고 뛰어내려간다. 예정시간보다도 훨씬 이른 3시에 도착 판자집 휴게소에서 약속대로 캔 맥주를 한잔씩하고 물을 구하기 위해 그리고 계곡물에 몸도 씻을 겸 모든 대원들이 히치를 하여 계곡으로 내려갔다. 원래는 얼마 되지 않은 거리에서 씻으려 했으나 그곳 일대가 채석장이기 때문에 식수로 사용할 수 없다는 기사 아저씨말에 한참을 내려가 송어 횟집에까지 가게되었다. 그곳에서 동호가 주인누나와 몇마디 주고받고 우리는 앞으로 등반 끝날 때까지 못씻 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열심히 씻는데 주인누나가 수고한다며 저녁을 대접하는 것이 아닌가. 갑작스런 대접에 그리고 출발 당시에 강원도 해안에 무장공비가 침투해서 어수선한 때였기에 모두들 우리가 간첩으로 오인 받아서 우리를 붙잡아 두려고 이러는 것일지도 모른다며 경찰들 오기 전에 모든 음식 다 먹어 치워야 한다며 ... 주인 누나의 순수한 마음을 우리가 너무나 무시한 것 같아 지금도 미안한 생각이 든다.
7월15일
아침에 눈을 떠보니 가스가 많이 끼었지만 어제 정찰한 결과 길 상태가 좋았으므로 랜턴을 끄고 5시 운행을 시작하였다. 가스가 많이 끼고 간간히 비를 뿌리는 좋지 않은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잘 나있는 길과 간간히 보이는 표시기를 따라 날이 밝을 때까지 빠른 운행을 보였다. 하지만 표시기를 너무 믿었던 탓인지 날이 밝고 얼마 안 있어 길을 잃고 말았다. 몇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길을 찾는데 실패 이른 시간이지만 점심을 먹으면서 가스가 걷히길 기다려보지만 하늘은 우리가 원하는 데로 따라주질 않았다. 결국 길을 찾긴 찾았으나 너무많은 시간을 허비 이후로 거의 휴식없이 운행을 한다. 보래봉을 향할수록 숲이 우거지기 시작을 하고 군데군데 허리를 최대한 숙여야만 통과할수 있는 구간이 늘어 나기 시작을 했다.
보래봉 밑에 도착 이 봉만 넘어가면 야영할 거라는 말에 모두들 힘을 내어 오르기 시작을 하는데 가도가도 끝이 보이질 않는다. 저기가 정상이겠지 하면 또 나오고 이번은 맞겠지 하면서 올라보면 또 나오는 봉우리에 모든 대원들이 오기가 발동을 했는지 말 한마디 없이 씩씩거리면서 오른다. 주변이 울창한 나무로 둘러 싸여 정상 같지 않은 정상에 도착 휴식이라는 구호와 함께 배낭을 벗어 놓으면서 모두들 욕 한마디씩을 내뱉는다.
이곳으로부터 야영 예정지까지 30분 거리 모처럼 만에 충분한 휴식을 취해본다.
휴식이 끝나고 길을 재촉하는데 산꾼들이 내놓은 것 같은 길이 여러갈래로 나뉜다. 5분정도의 빽이 한번 있은 후에 서두르기 시작 1시간 가까이 내려간다. 그런데 갑자기 길이 끝나고 동시에 우리가 길을 잘못 들었다고 생각을 했으나 너무나 서둘러 내려오는 바람에 가장 중요한 우리의 위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곳에서 보래봉까지 다시 갔어야 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고 주변에서만 3시간 가량 멤 돌며 시간을 소비 어딘지도 모르는 곧에서 야영을 해야만 했다. 강모와 영남이는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계곡을 찾기 위해 비상식까지 준비를 해서 물을 구하러 가는데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와 함께 내일 운행에 대한 막막함 까지...
강모와 영남이가 3시간 30분만에 물을 구해오고 밥을 먹으니 12시가 넘은 시각 힘든 하루였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모두들 눕자마자 골아 떨어진다.
7월17일
어제의 치명적인 실수로 인해 하루를 완전히 까먹은 하루였다.
날이 밝기를 기다려 여기저기 뛰어 다닌 결과 우리의 현재 위치가 주능에서 새어서 회령봉 밑에서 야영을 한 것으로 판단. 늦어진 시간을 맞추기 위하여 주능까지 바로 가기로 하고 운행을 시작. 바위와 덩쿨로 엉망인 계곡을 2개 통과하니 내가 예상했던 대로 길이 나오기 시작. 이거다 싶어 걸음을 재촉한다. 하지만 이 길 또한 잘못 든 길임을 알게 되었고 하는 수 없이 계곡으로 떨어졌고 그 곳에서 다른 대원들은 모처럼 만에 내리 쬐는 햇살에 텐트와 신발을 말리고 나와 강모는 노부부만 사시는 농가에서 길을 물어 우리의 위치를 파악했다. 점심을 먹고 주능선에 붙기 위해 계곡을 치고 올라 간다. 길이 없음은 물론이고 급경사에 가시덩쿨은 왜 그리도 많은지 얼마 되지 않은 봉우리를 2시간이나 올라 쳐야만 했다. 어렵게 오른 봉우리 정상에 도착. 기분이 좋아야 정상인데 굉장히 이상한 기분만 드는데 나 혼자만 그런 것이 안이라는 말에 주변을 자세히 둘러 보니 오전에 지나쳤던 봉우리가 아닌가. 할아버지가 길을 알려주시면서 주의하라고 했던 계곡으로 올라 간 것이었다. 대원들의 일그러진 얼굴을 볼 수가 없어 그리고 못난 대장 욕이나 실컷 하라고 화장지를 들고 잠시 자리를 피해주었다. 이때의 심정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를 것이며 앞으로의 삶 속에서 또다시 아니 생각하기도 싫은 경험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랴! 대장 잘못만이 내 탓이냐 라는 생각으로 다시 대원들을 재촉, 우리의 현재위치는 확실히 파악되었기에 주능과 만나는 계곡을 향해서 무작정 치고 내려갔고 그곳에서 무지무지 길고 보람없이 헤메고 다녀야만 했던 하루를 접어야만 했다.
7월17일
이른 새벽에 계곡으로 치고 올라 가다 보니 물에 젖은 발이 더욱 차갑게 느껴진다. 2시간 가량을 올라 갔을까? 능선과 만나게 되었는데 어제와 달리 기분이 너무나도 좋았다. 바른 길임을 확인한 후 어제 허비한 시간을 만해해보려고 강행군을 시도했다 .다행히 길도 잘 뚫려 있고 시야도 좋아 독도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불발현부터 장곡현까지 국유임도가 건설되어 있어 우리들은 모처럼만에 산길이 아닌 도로를 걸을 수 있었고 입에서 절로 노래가 나왔다. 이곳을 통과하면서 나의 제안으로 "얼굴찌푸리지 말아요."를 이번 하계송으로 정하고 가사를 모두 알고 있는 인혜에게서 한 소절씩 배우며 힘든 줄 모르며 운행을 했다.
임도가 끝나고 이름 모를 봉우리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운행을 했는데 저곳이 정상일거라며 몇 번이나 속은 후 정상에 올랐으나 둘러 앉을만한 공간도 없어 더 운행을 한 다음 먹어야만 했다. 메뉴는 비빔면이었는데 모두들 몇일씩 굶은 사람들처럼 달려든다. 먹는 시간 만큼은 대장도 막내도 사라진지 오래다.
즐거운 그러나 활동량에 비해 양이 적은 관계로 아쉬움이 남는 점심시간이 끝나고 다시 시작되는 운행 시작부터 칼날능선이 시작되고 잡목이 많이 우거져 뚫고 나가는데 많은 애로를 겪는다. 이런 식으로 5km를 나아가야 하는데 배낭에 달아놓은 매트리스가 이리저리 찢기면서 많은 고생을 해야만 했다. 4시쯤 앞이 훤히 보이는 암봉우리에 도착을 하고 평화롭게 보이는 농가들을 감상하는 여유를 가져보기도 했으나 긴장을 풀어서인지 이때부터 약간의 내리막 능선을 찾지 못해서 1시간 가량을 헤메야만 했다. 원래 구목령까지 가서 야영을 하려했으나 시간이 늦어져 능선과 이어져 있는 임도의 시작점에서 잠자리를 마련해야 했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고 한둘씩 보이기 시작한 별들은 시간이 더 흐르자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은하수까지 보였다. 대부분의 대원들이 처음 보는 은하수에 입을 다물지 못했으나 이도 잠시 각자의 텐트로 돌아가 파스와의 전쟁을 치룬 뒤 바로 곯아 떨어졌다. 대원들 서로간의 코고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해본다.
7월18일
새벽4시 이제는 모두들 익숙해져 눈을 뜨면 바로 자기 일을 알아서들 한다. 스프와 건빵으로 아침을 먹고 5시 운행을 시작, 8시쯤이 되자 어제의 목표지였던 구목령에 도착을 하였는데 이때부터는 길이 완전히 사라지고 잡목과 대나무만이 존재하는데 오로지 나침반과 감각으로만 운행을 해야만 했다. 약 2시간을 이런 식으로 길을 만들어 가면서 나아가니 능선이 두 갈래로 나뉘고 우리는 독도를 하기 위해서 나무를 올라가야만 했고 가까스로 길을 찾을 수 있었는데 이 구간을 지나니 잡목들도 사라지고 길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덕고산 전, 이름모를 봉우리 정상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그 동안 많이 지쳐진 운행을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 속도를 높이는데 덕고산부터 운무산까지 마을 사람들이 자주 다녀서 인지 고속도로라 할 만큼 길이 잘 나있었다. 점심먹은 곳으로부터 3시간 가량 운행을 하니 운무산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곳에 도착을 하였는데 그 동안의 길과 달리 오르막, 내리막길이 많아서인지 막내 호성이가 정제염을 찾으며 많이 힘들어 했다. 하지만 텐트 사이트가 마땅치 않아서 계속해서 운행을 해야 했는데 호성이는 정신이 반쯤 나간 표정을 짓는다. 하는 수 없이 영남이를 정찰을 보내면서 가까운 곳에 자리가 없으면 그곳에서 야영을 하기로 했는데 시간이 꽤 흘러도 영남이에게 연락이 없어 자리가 없는 줄 알고 야영 준비를 하려고 하는데 저 위쪽에서 "형, 여기 헬기장 있어요" 순간 호성이의 얼굴은 ...
그 날 저녁에 물은 호성이 대신 영남이와 동호가 떠와야만 했다.
7월19일
내일이 예비일이라는 생각에서인지 아침부터 모두들의 얼굴에 생기가 돈다.
인혜와 같은 텐트를 쓰는 강모는 인혜가 일부러 자기 자리를 돌 있는 곳으로 잡아 잠을 설쳤다고 투정을 부리며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어제 힘들어 하던 호성이도 하루 저녁만에 기운을 차린 듯 잘 따라 와서 생각보다 이른 2시간만에 운무산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운무산은 경사가 있는 암릉인데 초반부 왼쪽으로 나있는 우회하는 길을 잘 찾아야 하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해 배낭을 메고 암벽등반을 하듯이 올라야만 했다. 이곳을 오르면 주변의 경치가 한 눈에 들어오는데 가히 장관이었다. 모두들 헝클어진 머리와 지저분한 옷 그리고 냄새까지 나는 아주 원시적인 모습 그 자체였는데 사진을 찍는다고 하니 모두들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포즈를 취하는데 그 모습이 가관이었다.
그러나 운무산 정상은 기대와 달리 볼품이 없었는데 다행히 PCS가 잘 터져서 모두들 집으로 안부 전화를 한 통씩하고 우리를 위해 이른 아침 서울을 출발한 지원팀과도 통화를 하였다. 지원팀이 사 올 맛있는 음식을 기대하는지 모두들 서두르는 눈치다. 다시 운행은 시작이 되고, 등반이 시작되고 우리를 계속해서 쫓아 다니던 비바람이 또 동행을 하기 시작했고 여기서 길을 잘못 들어 우리는 양쪽으로 깎아지르는 절벽으로 된 칼날능선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양쪽 폭이 50cm 정도되는데 이곳을 통과 할 때는 뒤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실제로 통과하는 사람 모두 다가 떨어야만 했다. 이곳을 조심조심 통과해 나가고 있는데 계속 이어져야 할 길은 사라지고 가스가 걷히면서 낭떠러지가 나타나는데 ...
길을 잘못 든 것임을 깨닫고 또다시 헤메기 시작, 결국 계곡을 따라 밑으로 떨어졌고 거기서 히치를 하여 지원팀과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있는 먼드래재로 히치를 하여 이동을 하였다. 지원팀으로 우리를 위해 이곳까지 오신 성침이형 경필이형 그리고 득기형 그리고 이곳에서부터 우리와 운행을 같이 하기로 한 재수까지 모두 4명의 지원팀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는데 우리의 모습이 우스운지 자꾸만 쳐다보신다. 먼드래재의 바로 옆에는 작은 탕이 있었는데 먼저 몸을 씻고 빨래를 하니 더 이상 바랄게 없다는 듯이 서로 웃기만 했다. 여기에 형들이 주신 술을 한잔씩 마시고 나니 그 동안의 피로 가 순식간에 풀리는 것 같았다. 또 형들은 인혜가 3일 동안이나 등에 붙이고 다니면서 정성스레 길러온 진드기를 떼어 주었는데 인혜는 그냥 물집인 줄로만 알았다는 말에 한참동안 놀려댔다. 이후로 이어진 푸짐한 저녁과 술로 그 동안의 피로를 가신 우리들은 형들의 고마움을 느끼면서 달콤한 꿈나라로 빠져들었다.
7월20일
등반이 시작된후로 아침에 짐을 싸지 않아도 되는 예비일이 밝아왔다. 모두들 어제의 숙취가 풀리지 않았는지 얼굴이 푸석푸석하다. 성침이 형과 득기형 그리고 재수는 어제 우리가 완주하지 못한 구간을 잇기 위해 산행을 준비하고, 간만에 뜬 해에 모든 장비를 말리고 몸도 말렸다. 등에 파우더를 잔뜩 바른 호성이의 모습은 이 세상에 더 바랄 것 없는 평온한 모습이었다. 점심은 짬장의 특식으로 수제비를 해먹었는데 매일 라면만 먹다 그런지 맛이 굉장했었다.
다음날 출근을 해야하는 경필이형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내일부터의 운행을 위해 장비와 식량을 체크하고 나니 날씨가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모두들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며 아쉬워했다.
7월21일
예비일의 후유증인지 평소보다 훨씬 늦은 6시 05분에서야 출발을 하였다. 오늘 넘어야 하는 두 개의 커다란 봉우리중 하나인 수리봉을 향하는데 잠깐 동안 모습을 보여 주더니 이내 모습을 감추었다. 주변에 큰 포장도로가 있고 마을들이 많아서인지 대체로 길들이 모두 선명했으며 독도에도 큰 불편함이 없었다. 그런데 앞에서 운행을 하던 강모의 비명소리가 들려오고 모두들 긴장을 하는데 높이 7m 가량의 바위를 내려오다 미끄러졌던 것이었다. 다행히 약간의 찰과상뿐 다른 곳은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간단히 치료를 하고 나자 그때부터 강모는 자기의 실수를 만회하려는 듯 하루종일 뛰어다녔다.
한편 이날부터 우리와 함께 하기 시작한 재수는 무거운 배낭과 산에 적응이 된 우리들과는 달리 우리를 따라오느라 수리봉부터 힘들어 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표정으로 괜찮냐는 질문에 대답도 않고 땅만 쳐다보면서 걷는다. 이름모를 안부에서 점심으로 짜파게티를 먹는데 정말 한순간에 모든 라면들이 사라지고 이를 바라보던 성침이형과 득기형은 할 말을 잊은 듯 가만히 우리 얼굴만 쳐다보았다.
오늘의 두 번째 봉우리인 대학산으로 가는 길은 작은 봉우리들의 연속으로 이어지면서 길이 잘 나있는데 앞으로 남은 모든 길들이 오늘처럼만 같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갑자기 흐려진 하늘에서 소나기가 20분 가량 쏟아지고 안 그래도 모두들 힘들어 하는 과정에서 비까지 오게 되자 모두들 지친 모습이 역력하였다. 도상거리만 20km 가까이 운행을 했으니 모두들 지칠 만도 했다. 대학산 바로 밑의 안부에서 비록 장소는 협소했지만 야영을 한다는 말에 모두들 신나 했다. 이 날과 다음날 함께 하기로 한 성침이형이 오면서 뜯은 취나물과 도라지로 저녁을 먹고 득기형이 가져온 과실주로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7월22일
5시 조금 넘어 야영지를 출발 40여분을 오르니 대학산 정상에 이를 수 있었다. 정상에 오르니 오늘 갈 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학산과 덕구산 사이에 큰 포장도로가 나있는데 눈앞에 도로가 보인다고 우습게 보면 안되고 길과 능선이 문어발식으로 뻗어 있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를 필요로 했다.
이 도로변에서 성침이형과 득기형은 우리와 아쉬운 작별을 나누어야만 했다. 이후로 대원들의 사기가 급속히 떨어지고 또 힘들어하기 시작을 하는데 나뿐만 아니라 모든 대원들이 이러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특별한 해답이 없는지라 그냥 묵묵히 앞만 보고 걸음을 재촉한다. 더군다나 날씨까지 무더워지기 시작해서 슬슬 짜증도 나기 시작한다. 저 멀리 보이는 마을의 저수지로 뛰어들고 싶은 듯 모두들 그곳만 주시한다. 그래도 능선양쪽으로 마을들이 모두 보여서 그나마 짜증나는 우리를 위로해주었다.
대원들의 축 처진 모습과 사기를 위해 오늘은 일찍 야영을 하기로 하고 운행을 이끌어 가는데 야영지로 하기로 한 안부를 바로 눈 앞에 두고 헤메기 시작, 20분이면 갈 거리를 1시간 이상 걸려야 도착할 수 있었다. 내 자신부터가 얼마나 짜증이 나던지...
텐트를 설치하고 강모와 인혜가 물을 구하러 가고 나머지는 텐트 밖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나는 텐트 안에서 지도를 보면서 앞으로의 운행을 체크하는데 재수의 이름을 부르는 영남이의 목소리가 산 전체를 울린다. 밖으로 나가보니 감자를 깎던 재수가 없어 졌다는 것이다. 이때 강모와 인혜가 올라오고 화장실 갔을 거라 생각했던 나와 달리 상황을 알아차린 강모와 영남이가 물을 구해온 반대 방향으로 뛰어 내려간다. 믿기 싫은 현실은 시간이 흘러갈수록 사실화 되었고 뛰어내려 갔던 강모와 영남이가 히치해서 승용차를 타고 가는 재수를 보았다는 말에 모두들 할말을 잃어버렸다. 재수가 힘들어하는 모습도 보았고 그리고 얼마만큼 힘들다는 것도 알았지만 도망갈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무엇보다도 낮에서부터 지도를 유심히 살핀 것이 앞으로의 일정에 대한 관심이 아닌 도망을 가기 위한 계획의 일환이었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더 화나게 하였다. 더군다나 1학년이 아닌 2학년이...
7월23일
새벽에 일찍 일어나 많은 고민을 해야만 했었다. 재수가 버려 두고 간 짐들의 처리 문제도 있었고 동기 없이 지내오다가 재수가 합류하면서 기뻐하고 활기를 띄던 호성이가 받았을 충격 등도 생각을 해야했고 앞으로 남은 운행 또한 고려해야 했기 때문에 무척이나 고민스러웠다.
많은 생각 끝에 재수의 짐을 서울로 보내고 또 앞으로 남은 일정 동안 재수의 동기라는 이유로 우리에게 미안해 하고 자기자신 또한 힘들어 할 호성이를 위로해주기 위해서 동호와 인혜를 호성이와 함께 마을로 내려보내기로 하고 하루를 임시 예비일로 정하였다.
오전에 내려 갈 때의 얼굴표정과 달리 올라올 때는 한결 밝아진 호성이의 얼굴에 다들 기뻐하며 올라올 때 사 온 특별식으로 저녁을 먹고 지난 일을 잊고 앞으로 남은 일정에 최선을 다할 것을 서로 마음 속으로 다짐하면서 11일의 밤을 보내었다.
7월24일
모두들 새벽 일찍 일어나 전에 없이 활기찬 모습으로 운행을 준비, 정확히 5시에 야영지를 출발하였다. 이날 운행할 구간들은 대부분 완경사의 600-900고지라 운행하기에 더없이 좋을 것이라 예상을 했었고 또 오음산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실제로도 그렇게 운행이 되었다.
8시가 조금 안된 시간에 응곡산 정상에 도착 각자의 집에 안부 전화 한 통씩을 하고 운행을 계속해 한번의 빽도 없이 작은 삼마치에 도착 그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빠른 운행의 보상으로 30분간의 오침 시간을 가져보기도 하였다.
다음의 목표이자 이날 최고의 봉우리인 오음산을 향하는데 멀리서 보이길 군사시설임을 어느 정도는 알았으나 우회로도 있고 또 주변의 산들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이기에 밀어 붙이기로 하고 계속 오르는데 때마침 작업 나오는 군인들과 만나게 되었고 이들에게 사정을 이야기해보지만 주변이 절벽이라 트레버스할 수도 없고 내려가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할 수없이 우리는 군사시설이라 정상부근의 사진 찰영도 안된다는 이들과 함께사진을 찍는 것으로 만족을 하고 이 산을 포기 군사도로를 따라 내려와야만 했다.
두시간이면 마을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말에 서둘러 보았지만 3시간을 걸어서 겨우 마을 버스 정류장에 도착을 할수 있었다. 도중에 산딸기 나무가 많아서 예전 같았으면 즐겁게 내려올 수 있는 길이었으나 모두들 맥이 빠져 땅만 쳐다보고 걸었다.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홍천군 공근면에 도착, 야영지가 마땅치 않아서 옆 공터에 텐트를 쳤다. 저녁엔 동호와 호성이의 생일을 맞아 초코파이로 만든 케랺으로 조촐한 우리들만의 생일축하파티를 열었다.
7월25일
차시간이 10시 40분이라 느지막히 기상을 하려했으나 우리가 야영한 장소가 공사구간이라 이른 아침에 기상, 아침을 컵라면으로 때우고 버스 오기만을 처량하게 기다려야만 했다.
11시20분 운행을 시작하였는데 철탑 공사구간이어서 정확히 산 능선으로 도로가 뻥뚫려 있는 신기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산길이 시작되자 하늘이 흐려졌으나 금물산이 바로 지척이라 모두들 즐거운 마음으로 운행을 했다. 저멀리 떨어진 곳에서 비구름이 비를 뿌리며 이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들 신기해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저 구름이 우리 쪽으로 이동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욱 앞섰다. 금물산을 오르는 길은 우마차로 길이 좋았다. 폭이 약 50cm에 주위보다 10cm정도 내려가 있어서 걷기가 굉장히 편했다.
또다시 '마의 4시'가 찾아왔다. 이는 항상 야영하기 1-2시간 전에 길을 잃고 헤메어 우리끼리 통하는 은어가 되었다. 갑자기 바람이 불며 비가 조금씩 내리고 가스가 끼기 시작, 때마침 우리 앞으로 넓은 안부가 펼쳐져 아무 미련 없이 야영을 하기로 하였다.
7월26일
간밤부터 많은 비는 아니지만 보슬비가 계속 내렸고 새벽에 기상을 해보니 안개가 자욱하였다. 운행을 하는데 20여분만에 신발이 다 젖고 가스로 인해서 앞을 볼 수 없어 독도도 하지 못한 채 오로지 감각에 의존한 채 나아갔다. 도상으로는 급경사를 따라 200여미터를 내려가야 하는데 1시간여 동안 주변을 헤멘 뒤에 봉우리 우측으로 숨어있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독도는 맞았지만 ,계속되는 비와 가스로 인해 우린 시루봉을 우회해서 내려 와야 했고 거기서 다시 작은 언덕을 넘고 논을 지나 발귀현에 도착하였다. 모두들 비에 흠뻑 젖어 옴몸을 떨어야 했으며 비는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그곳 도로가에 여섯 명이서 쪼그려 앉아 라면 먹는 모습이 않돼 보였는지 마치난민들을 쳐다보는 듯한 눈빛을 던지면서 지나가는 군인을 보고 있자니 서글퍼지기 까지 하였다.
비는 그칠 줄을 모르고 도중에 나타난 갈림길에서 어디가 어딘지 전혀 분간을 할 수 없어 이곳에서 야영을 하면서 날씨가 좋아지길 바라기로 했다. 그와 동시에 강모, 영남이와 함께 내일을 대비해서 정찰을 나갔는데 1시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파란 모습을 보이며 햇빛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곳에서 쉬지 않고 운행을 했어야 했는데 ...
7월27일
어제 허비한 오후의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평소보다 더 일찍 서둘러 야영지를 출발, 어제 정찰한 갈기산을 향해 나아갔다. 가는 도중 주변 군부대와 주민들이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 표지판들이 설치되어 있어 쉽게, 그리고 편하게 갈 수가 있었다. 정상에는 마을 청년들이 세운 것으로 보이는 비석도 있었다.
갈기산을 뒤로하고 100여미터를 내려오자 앞이 탁 트이면서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방향으로 높이가 100m 쯤 되어 보이는 표시기가 우리를 반겨주는데 이 표시기는 전에도 간간히 보였던 철탑들이었는데 반갑기 이전에 허리가 잘리고 능선에 덤프 트럭이 달릴 수 있을 정도의 도로가 나있는 모습은 흉물스럽기까지 하였다.
능선길과 철탑건설 도로를 거쳐 신당고개로 내려왔다. 도로가 나 있는 능선길이 아닌 옆으로 100m 정도 트레버스해야만 겨우 바닥에 내려설 수 있었다. 이렇게 신당고개를 넘어서부터는 지루하고 따분한 도로를 따라 나아갔다.
통골 고개에서 비빔면으로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밭배고개를 향해 나아가는데 생각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도착을 하여 훈련중인 군인에게 물어보니 생긴 것과는 달리 친절하게 자세히 가르쳐주었다. 오늘의 목표지인 밭배고개에 너무 일찍 도착을 하니 허무하기까지 하였다. 잠깐의 휴식을 취한 후 조금 더 가기로 결정 한 후 적당한 야영지를 찾기로 하였는데 2시간 가량의 운행 후 670고지 안부에서 짐을 풀었다.
7월28일
이름없는 봉우리를 넘고 싸리재를 지나 비솔고개로 가는데 도중에 산을 깎아 도로를 만들어서인지 산 30m가량의 인공 절벽으로 능선이 완전히 끊겼다. 이후로는 또다시 철탑건설 도로로 걸어야 했는데 드디어 도로의 끝을 만나게 되었고 우리가 좋아하는 산길로 접어 들 수 있었다. 산길로 접어든지 얼마 되지 않아서 용문산과 그 앞의 문례봉이 눈에 들어왔다. 경기도 일원에서 제일 높은 용문산 정상은 군사시설로 인하여 통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멀리서나마 용문산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문례봉 정상을 향하여 오르기 시작을 하였는데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두들 한번의 휴식도 없이 약간씩의 시간차를 두고 정상까지 한번에 올랐다. 문례봉 정상에선 그동안 우리의 점심 식단으로 항상 함께 하던 라면이 그동안 일정이 늦어지는 바람에 다 떨어진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여유분으로 있던 아침식단인 건빵 한봉지와 스프를 그냥 물에 타먹기로 하고 먹었는데 거의 다 먹었을 무렵 스프는 인혜 것만 남고 건빵이 부스러기째로 꽤 남아 있었는데 이때 동호가 봉지를 가로 채 더니 인혜 스프에다 다 붓는 것이 아닌가! 이때 호성이의 표정은 한마디로 `동기 없는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 였다. 후에 동호에게 들어보니 동호의 원래 계획은 인혜에게 약간 부어주고 나머지는 자기가 먹으려고 하였는데 잘못해서 다 쏟아 버린 것 이었다고 자기도 그 건빵이 무지하게 아까웠었다고 하였다.
문례봉 정상에서 용문산을 비켜가는 길로 2시간 가량 내려가다 보면 우마차로를 만나게되고 이 길을 따라 갈현 분교를 지나 숫고개를 지나, 배너머 고개로 가면 오른쪽으로 농장 표시가 나있는데 이 길이 유명산 농장으로 이어 지는 길이다. 지도에 농장표시가 되어 있어 당연히 물이 있을 줄 알았는데 유명산에는 식수가 없다는 것을 도착해서야 알게 되었다. 하는 수 없이 가지고 있던 모든 물을 한곳으로 모으고 저녁은 비상식으로 대치하기로 하고 그 동안 무겁게 가지고 다니던 미제 씨레이션을 먹었다.
7월29일
원래의 목표지인 양서종합고등학교까지의 운행을 포기하고 내려가기로 결정하였다. 식량도 다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호성이가 집안 행사 때문에 오늘 집엘 꼭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오늘 서울에 도착하는 날이 맞았고, 호성이를 보내고 남은 구간을 끝내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동안 함께 고생을 했는데 그건 아니라는 생각에 하산하기로 결정을 한 것이었다. 못한 구간은 언제든지 와서 할 수 있지만 우리들이 그 동안 이번 등반을 통해서 함께 해왔던 많은 생활들의 마무리를 그런 식으로 짓고 싶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동이 트기 전에 출발을 하여 소구니산 정상에서 도로로 떨어지는 능선으로 1시간 가량 하산을 하고 그곳에서 신복 2 리라는 곳으로 도보로 이동, 서울로 이동을 하면서 등반의 끝을 마무리 지었다.
산행후기
군대를 제대하고 대장을 처음 맡았을 때의 계획이 백두대간을 완성해 보는 것이었기에 총무이셨던 성침이형을 만났을 때 나의 계획을 말했는데 이때 한강정맥의 정보를 주셨다. 형에게 이야기를 듣는 순간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 산에 다니는 사람들의 꿈 중에 하나가 남이 가보지 못한 산을 정복하는 것이라고 책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 나에게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도움을 주신 성침이형과 경필이형에게 그리고 나를 이 자리에 있을 때까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많은 도움을 주신 동국산악의 모든 선배님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리고 등반 내내 많은 잔소리와 빽으로 고생을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잘 따라준 윤영남, 함동호, 성인혜, 전호성 후배에게, 그리고 이번 등반이 무사히 끝날 수 있게 항상 내 옆에서 도와준 동기 강모와 득기형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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