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학생보고

재학생보고 - 훈련보고 2(경주캠퍼스)
류주원(경주캠퍼스)


[동계등반]

참 아련한 그리움으로 떠오른다. 그 당시엔 참으로 힘들고, 외롭고도 서러운, 말 그대로 끔찍스러움의 복합체들을 다 끌어다 모아 놓은 것 같았는데.... 동계 산행의 기록장을 보니 그 때의 감정이 여지없이 느껴지는 것 같다. 그렇게 몸서리치도록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묘한 그리움이 일어나는 건 무엇이라 말해야될지.... 여기에 대해 글을 쓰려하니 많은 말들이 주저리주저리 떠오르지만 실질감을 더하기 위해 먼저 기록장에 쓰여있는 것들을 그대로 옮겨놓아야 할 것 같다.
99.1.19

AM 8:00 부실에 도착. 출발인원은 대장이었던 동욱형(비록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권혁 형, 상종형, 막내였던 나 이렇게 4명. 상종형이 지각하여 조금 늦게 출발했다.

9:30 경주 터미널에서 우동으로 아침을 떼우고, 서울행 버스에 올라탐

PM 2:40 서울동국대 산악부 부실 도착. 낯선 사람들과 말로만 들어왔던 미정언니를 처음보 았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제과점에가서 빵을 먹구 그곳에서 광민형이랑 합세

6:35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감

∼∼ 새벽까지 술. 머리가 멍함

→1월18일 저녁 대장님이랑 나는 권혁형 방에 모여 간단히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하다 그곳 에서 잠을자고 1월 19일 아침 부실로 출발했다.

그리고 경주 고속터미널로 가서 - 그때까지도 난 동계산행이란 것에 별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 버스를 타고 서울 고속터미널에 도착했다. 내가 '동계산행'이란 것에대해 어렴풋하게나마 실존이란걸 느끼기 시작했던 것은 서울 동국대학교 입구에서 부터였다. 배낭의 무게감에 짓눌려 있던 난 그 마의 오르막길을 보고 자지러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시작도 하지 않은 산행에서 벌써부터 이러면 어떻게해 라는 생각에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씩씩하게 내딛었다. 중간에 쉬고 싶었지만 이러면 안돼라는 말을 머리속에 수도 없이 뇌까리며 결국 다 올라온 오르막길. 땀방울이 뚝뚝 흘러 내리며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내게 미정언니의 한마디. "야 너 정말 잘올라오는 구나" 그때는 헤∼ 그러구 이것 쯤이야 라는 듯 웃었지만 난 이미 반쯤 퍼져있었다는 사실을...... 그러구 도착한 동대 산악부 부실 모든 것들이 낯설고, 낯선 사람들 뿐이어서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대장님 뒤만 졸졸졸 따라다녔다. 저녁 시간 부실에서의 소주 타임때 선배님들, 동기들과 정식으로 인사하면서 내 긴장감도 수그러지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동기' 들이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무척이나 좋았다.

동계의 전야는 그렇게 해서 흘러갔고

99.1.20.수

AM5:30 기상

6:00 터미널로 출발 (화물칸 같은데서 찌그러져서 실려감)

7:00 진부령 가는 버스 출발

10:20 도착(라면으로 식사)

11:35 출발

PM1:05 마산 아래서 휴식 (잘못들어가서 돌아나옴)

3:05 마산 도착

권혁형의 무릎부상으로 대장님과 권혁형은 3시30분에 도착

텐트치고 정리

6:00 식사준비, 식사

서울캠 : 닭도리탕. 경주캠 : 된장국에 밥

밥을 먹고 뜨뜻한 계피차 한잔씩

8:00 식사 끝. 신발 말리고 다움날 아침 준비후 취침

오늘 일기 → 힘들었지만 생각만큼은 아닌 것 같았다.

왜? 내가 퍼지지 않았으니까∼

아무래도 동기들 (민관이랑 상아)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차이가 많은 것 같다.

상아 덕분에(?) 속도를 좀 천천히 나가니까 어느정도

주변을 둘러 불 수 있어서 좋았다.

담엔 식량준비를 더 철저히 해야지.

암만해도 불편한건 화장실, 어쩔수가 없는 것일까?

→술이 덜깬 상태에서의 기상 정말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정신없이 뛰어다니다 어떻게 어떻게 출발했던 것 같다. - 지금 생각해도 동계 출발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치 안개에 휩쌓여 있는 것처럼 -

첫날의 산행은 상아의 도움(?)으로 좀 수월했었다. 동기가 퍼졌으면 안타까워 해야지 당연한 것인데 실은 상아가 퍼져주는게 고마웠다. - 이런말 해두 되남? ^^; -

다음날의 공포는 생각지도 못한채 오늘 하루가 살만했다는것에 안도의 숨을 내쉬며 잠자리에 들었다.

99.1.21. 목

AM 5:30 기상 (식사준비)

6:20 실사 끝

7:40 출발

8:40 신선봉 올라가는 길에서 휴식

10:10 휴식 (눈을 다침,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음)

12:45 신선봉전에서 점심.

대장님이랑 권혁형은 한시간 늦게 도착. 서울팀 (필중형, 영남형, 강모형, 민권이, 상아)이 먼저가구 우린 권혁형의 무릎부상으로 뒤처짐.

4:30 목표 지점인 미시령에 도착하지 못하고 화암재에서 텐트를 침

10:40 취침

→둘째날이 되니 근육이 뭉쳐 팔다리가 다 쑤셨다. 그리고 산행도중 나무가지에 눈을 다쳐 눈물을 찔끔 흘리고 난 후로부터 왜 그렇게 힘이 들던지. 대장님과 권혁형이 뒤쳐져 올라오고 서울팀의 대장인 필증형의 인솔하에 영남형을 선두로 민권이, 상아, 나, 상종형이 나란히 저벅저벅 눈을 밟고 올라서는데 뭐가 그렇게 서럽던지 계속해서 눈물이 나왔다. 그런 와중 잠깐의 휴식시간에 필중형이 귤을 나누어주며 껍질채로 먹어보라고 했다. 그 맛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은 환상적인 맛이었다. 그것에 힘을 얻어 다시걷고 또걷고 드디어 점심시간.

점심을 먹고 서울팀과 경주팀이 나뉘어 졌다. 우리는 권혁형의 무릎부상이 심해 산행 속도를 천천히 하였고 결국 목표지점에 도착하지 못하고 화암재에서 텐트를 쳐야했다. 바람이 너무나 세차게 불었던 그날 저녁 우린 텐트 안에서 비상식인 '나폴레옹'을 한모금씩 마시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99.1.22. 금

AM 4:50 기상

7:20 출발

10:04 화엄사 계곡도착. 점심 (온몸에 알배김)

12:00 출발

12:26 하일라 콘도 주차장 도착

2:45 속초 어느 여인숙 도착

이것저것 시장보고

10:40 취침

오늘일기→깨끗히 씻고 다친곳 치료했더니 기분이 좋아졌다.

산행처음으로 화장실에가 성공하고 나왔다.

=> 권혁형 무릎이 더욱 악화되어 일정이 변경되었다. 미시령으로 빠지는걸 포기하고 속초로 내려가 여인숙을 잡고 이것저것 준비하고서 다친곳을 치료했다.

99.1.23. 토

AM 6:30 기상. 아침준비

9:20 여인숙에서 출발. 권혁형은 한의원에가 치료받고 우린 속초 시장에서 물건들을 삼

10:40 속초 시외버스 터미널 도착

11:30 원통으로 출발

12:30 장수대 도착. 야영장 임대료를 내어 생각지도 못한 지출

2:40 점심 (라면)

11:40 취침

→24일이 내 생일이어서 형들이 저녁에 맥주한캔이랑 황도복숭아를 선물해 주었다. 산행도중에 맞는 생일이라 기분이 아리송했다.

99.1.24 일

AM 5:30 기상

8:00 계곡 정찰

9:00 이름모를 폭포도착

10:00 가도가도 끝이 없다. (가지산아래 무명(?)골)

단순해짐. 힘들다는 것과 계곡물의 결빙이 너무나 아름답다는 생각뿐이다.

은은한 푸름의 빛이어라.

11:14 계곡아래도착

11:50 베이스 도착. 점심

PM 12:40 대승폭으로 출발

1:14 도착 ( 드디어 퍼짐, 맛이 약간 가서 지금도 제정신이 아니다)

1:40 출발

2:22 베이스 텐트 도착

7:00 저녁식사 끝

8:50 취침

오늘일기 → 산행. 인간의 실존을 더없이 느끼게해준다.

대장님은 미역을 너무 좋아하나 보다. 입에 달고 사니까∼.

권혁형의 배속을 한번 보고 싶다.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는 것 같다.

99.1.25 월

AM 6:00 기상 (예비일)

드디어 서울팀과 경주팀이 다시 합쳐지다.

99.1.26 화

5:00 기상

7:30 출발 (아이젠 꽝꽝)

8:14 도착

너무 힘들어 오열했음.

처음부터 끝까지 눈물범벅으로 아이젠을 굴리고 다녔음

12:00 점심

이름를 폭포

→역시 힘이 드니까 산행 기록도 짧아지는 것 같다. 아이젠 꽝꽝! 지금도 들려오는 듯한....

생각해보면 힘은 하나도 없었으면서 목소리만 꽥꽥거리며 뾵어지게 컸던 것 같다.

99.1.27 수

AM 5:00 기상

6:20 출발준비 끝

7:00 출발(실폭)

하루종일 빙벽 (무서워서 죽는줄 알았음) 오늘역시 눈물 범벅

PM 6:00 저녁식사

소주타임

상아 없어졌다 다시 나타남

찾는다고 고생했음. 28일 새벽에 돌아왔음

오늘일기→주원인 현재 약간 맛이 간 상태

→태어나서 처음 해 보았던 빙벽

민준인 묵묵히 잘 찍어올라가고 상아도 아픈와중에도 필중형이랑 끝까지 올라갔는데 난 첫 번째 시도때 반정도 올라간 상태에서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내려왔다. 점심을 먹고 다시 올라가라는 말에 얼마나 몸서리 쳤는지 빙벽은 힘들었던 것 보단 공포감이었다 두번째 시도했을 때 중간까지는 덜덜 떨면서 낑낑거리며 올라갔지만 -왠지 내려보내줄 것 같은 기대감도 있었다.- 중간을 넘어서자 맹렬히 올라갔다. 왜냐하면 익숙해짐도 있었겠지만 그 보다 더 큰 것은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이제는 내려보내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감지했고 여기서 떨어지면 끝장이라는 생각에 물불안가리고 피켈을 찍어대었던 것이다. 그래두 지금 와서보면 빙벽은 참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빙벽만큼은 잘 해낼 수 있으리라는 어떤 자신감이랄까?

99.1.28 목

AM 4:30 기상

5:00 아침식사

텐트정리. 구두약 칠함

(대장님과 필중형, 권혁형은 폭포를 알아보러 갔다)

PM 2:30 상종형, 영남형, 민권이, 상아는 대승폭 출발. 난 텐트안에 남았음

→텐트안에 왜 남아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않는게 참 안타깝다.

99.1.29 금

집에 사정이 생겨 나 혼자만 대구에 내려왔다.

99.1.31 일

오늘일기

대구에서 다시 속초로

현재시간 9시 55분. 출발 5분전

머리가 무지 아프다. 대구의 공기가 탁해 온몸 구석구석 오염물이 접붙이고 있는 것 같다

얼마후면 동계 산행은 끝이난다.

끝마무리를 잘 해야지. 그렇지?

→집에 내려 갔다. 다시 속초로 가니 이게 왠일인가? 일정이 변경되어 모두들 낙산에 있다네. 오잉! 얼음이 녹아 빙벽도 할 수 없을뿐더러 텐트 옮겨서 친데가 사유지라서 주인이 나가라고 했단다. 이렇게 동계 산행은 막을 내렸고 낙산에서는 배터지게 고기와 술, 밥 등을 먹었다. 우리의 산행은 여기서 끝나게 되었고 서울팀은 좀더 산행을 하다가 내려온다고 했다. 아무튼 동계산행은 힘들었지만 절대 잊지 못할 소중한 기억들을 내게 던져 주었다.

이것저것 여러 가지 일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기럭장에 -힘든날은 기록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빠진 부분들이 많아서 참 아쉽고 세삼스레 모두가 무척이나 보고 싶어진다.

다들 잘 지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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