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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등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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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첸중가
윤필중
등반개요
1. 원정대 명칭: 99동국대학교 칸첸중가 원정대
2. 원정기간 : 99년 3월 19일-99년 5월 26일 (총69일간)
3. 등반 개요 : 동국대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세계 최초 8000m급 1년간 6개봉 등정에 (8000m급 최단시간 최다등정)이어 자이안트급봉우리 14좌 완등을 목표
4. 등반 대원
성 명 학 번 직 책 등반고도 박영석 83 대장 8586m 구경모 83(서울농대) 식량 6000m 강성규 86(제주대) 장비 8200m 김형우 87 장비 6200m 윤필중 94 행정 6800m 박강모 94 장비 7300m 정기현 SBS카메라멘 5600m 5. 등반일정
날짜 일수 일정 비고 99년
3월 19일 1 서울 -방콕 선발대 출국 25일 7 방콕-네팔 선발대 27일 11 서울 - 방콕 - 네팔 본대 출국 29일 13일 행정처리 및 화물 통관 상행카라반 31일 14일 카투만두 출발(버스이용) 4월1일 17일 타플레중도착 4일 18일 타풀레중-쿤자리 5일 19일 쿤자리-품페이 6일 20일 품페이-얀부딘(1990m) 7일 21일 얀부딘-3000고지 8일 22일 3000고지-나미티반장(93430m) 9일 23일 나미티반장-째람(3980m) 10일 24일 째람-옥탕(4800m) 11일 25일 예비일 12일 26일 옥탕-알룽빙하 통과 13일 27일 예비일 14일 28일 알룽빙하 통과- 베이스 입성 15일 29일 베이스 캠프 설치(5600m) 16일 30일 C1 루트 작업(6200m) 17일 31 라마제 18일 32 예비일 19일 33 C1 설치,C2 루트 작업 20일 34 C2설치 21일 35 C3 루트작업 22일 36 베이스 귀환 23일 37 휴식 24일 38 휴식 25일 39 고소 캠프 순응 26~30일 40~44 C3 설치(7,200m) 5월 2일 45 베이스캠프 귀환 악천후로 후퇴 7일 50 2차 등정 시도 12일 55 2차 정상 공격, 박영석,셀파 2명 등정 박영석 대장
8,100m에서 비박 14일 57 베이스로 무사 귀환 15일 58 하행카라반 시작 20일 63 고포타 도착 22일 65 카트만두 도착 23일 66 등반 보고 및 행정처리 완료 26일 69 서울 도착 방콕 경유 원정보고서
3월19일
선발대로 뽑힌 김형우대원과 나는 오전7시20분 비행기로 김포공항을 아니 다시는 돌아오지못할수도 있는 대한민국 서울을 떠났다.
비행기에 오르고 활주로를 이륙하자 내가 이번 원정대에 참가할 자격은 있는지 나로 인해서, 어렵게 준비된 이번 원정이 엉망이 되는 건 아닌지, 그리고 이번 원정에 참가할 수 있을 때까지 나를 키워주시고 도와주셨던 많은 선배님들의 얼굴이 떠오름과 동시에 만감이 교차하였다.
3월23일
19일 방콕에 도착 네팔항공의 파업으로 인해 5일 동안 호텔방안에서 방콕 하다가 드디어 오늘 10시30분 비행기로 방콕을 떠나 12시30분 꿈에 그리던 네팔에 도착, 빌라하우스에 여정을 풀었다.
이곳 네팔은 듯던데로 길거리에서 끊임없이 울려대는 경적소리와 함께 코를 톡쏘는 매연 그리고 허물어져가는 벽돌집들이 처음인 나를 반겨주었다. 짐을 풀고 우리 나라의 명동거리라 할 수 있는 타멜거리를 둘러보았는데 이곳은 인종전시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인종들의 사람들로 붐볐고 보기에도 조잡해 보이는 수공예품을 팔기 위해 애쓰는 상인들과 흥정하는 사람들로 우리 나라의 남대문시장을 연상케 했다.
3월29일
영석이형 sbs카메라 감독님을 비롯한 4명으로 구성된 본대가 오국근 지도교수님과 함께 밤늦게 도착 썰렁하던 이곳 숙소에 활기가 넘친다.
내일부터는 지금까지와 달리 모든 대원들이 모였기에 본격적인 준비작업으로 인해 무척바빠질것같다.
3월30일
항공사의 파업으로 인해 늦게 네팔에 도착 선발대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못했기에 영석이형은 지금쯤은 받아놓았어야 하는 등반허가를 받기 위해 아침부터 관광성으로 뛰어다니고, 나머지 대원들은 식량과 장비를 구입하느라 타멜거리를 뛰어다닌다.
식료품가게에서 이 나라 중산층의 평균연봉인 20만루피(200만원)의 식료품을 구입하니 점원들이 입을 다물지 못하고 마치 외계인 쳐다보듯이 한다.
3월31일
아침부터 본격적인 포장작업이 시작되었다. 포터 1인당 30Kg을 초과할 수 없다는 이곳 법률 때문에 무거운 것과 부피가 큰 것을 나누고 이것을 다시 부서지는것등으로 나누어서 담프라박스, 카고백, 드럼통에 나누어 담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 하루종일 해야만 했다.
이렇게 포장된 량은 카고23개 드럼통5개 담프라박스 18개 석유가 9통 등 포터만 50명이 필요할 정도로 어마어마하였는데 처음인 나로서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4월1일
오전에 어제 마무리하지 못한 포장작업을 완료하고 등반허가증을 받기 위해 남았다가 비행기편으로 타플레중에서 합류하기로한 영석이형과 형우형을 제외한 오국근 교수님과 나머지대원5명 그리고 셀파5명 쿡3명이 오후 4시20분 빌라 종업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버스에 오른다.
4월2일
도로사정과 차의 성능이 별로 여서 그런지 밤새도록 달렸으나 앞으로도 하루이상을 더가야 한다는 소리에 버스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할말을 잃은 표정이다. 예상과는 달리 오늘까지는 평지를 계속해서 달리는데 .....
4월3일
어제까지와는 달리 오늘은 아침부터 산길로 접어들었는데 길이 가관이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산길은 곳곳에 공사하는 부분만 빼고는 모두 비포장도로인데 잠자기도 힘들 정도로 험하다.
저녁 늦게 서야 차로 이동을 할 수 있는 마지막마을인 타플레중에 도착을 하였는데 도착하였다는 기쁨보다는 앞으로 버스를 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모든 대원들을 더욱 기쁘게 하였다.
4월4일
아침에 눈을 뜨니 어떻게 알았는지 포터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을 하더니 나중에는 정신이 없을 정도다. 이제 12살 정도 되 보이는 아이부터 50이 넘어 보이는 사람들까지 모두들 일자리를 얻기 위해 사다에게 메달 린다. 50명의 포터를 고용하는데 그 중에는 돈을 더벌기위해 2명분 60Kg의 짐을 메는 이도 있는데 모든 대원들이 혀를 내두른다.
영석이형과 형우형이 행정업무를 마치고 오전비행기로 이곳 타플레중에 도착 오랜만에 전대원들이 한자리에 다 모이게 되고 내일부터 시작될 본격적인 상행카라반을 기념하고 성공을 기원하는 축배를 들고 각자의 텐트로 돌아간다.
4월5일
새벽5시20분 쿡들이 가져다준 밀크 티를 마시며 시작된 아침은 정말로 상쾌하기 그지없다.
아마도 지난 4일 동안의 고통에서 벗어나 오늘부터는 걸어서 간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그 동안 우리와 함께 하시던 오국근 지도교수님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사다가 주는 부적과 행운의 목걸이를 서로 묶어주면서 본격적인 상행카라반의 첫날은 시작되었다.
4월7일
이곳의 풍경은 사진과 이야기로만 듣던 우리 나라 50-60년대 산골동네의 풍경과 매우 흡사하다. 밭에서 소와 쟁기를 사용하여 농부가 밭을 갈고, 여자들은 밥을 나르고, 학교에서는 종을 사용하여 수업의 시작과 끝을 알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합장을 하며 라마스테라며 인사를 하는 순박함과 정겨움까지도, 다른 점이라면 주변의 산들이 우리 나라의 한라산보다도 높다는 점을 들 수 있겠지만...
4월9일
상행카라반의 마지막 마을인 이곳 얀부딘에 어제 도착 필요한 식량을 구입하고 오늘도 이른 아침에 기상 출발을 하려고 하는데 포터들의 행동이 이상하다.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일으킨 것이다. K2 같은 영화에서나 일어나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 우리 팀에서도 일어날줄이야...
그러나 다행히 영석이형과 사다가 잘 처리를 하는 바람에 출발시간만 약간 늦추어 졌을 뿐 운행은 차질 없이 이루어진다.
4월13일
드디어 흰 산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인가 모든 대원들이 좋아 어쩔 줄을 몰라한다.
조금만 더가면 우리의 칸첸중가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다들 속도를 높여본다.
아직까지 몸의 이상을 호소하는 대원들이 없어 다행이다.
4월15일
드디어 베이스캠프지에 도착을 하였다. 카투만두를 떠난 지 15일 만이다.
모든 대원들이 그 동안의 힘들었던 카라반을 무사히 마치고 베이스에 입성했다는 사실에 너무나 기뻐하고 흥분하고 있다. 베이스에 무사히 도착을 하면 등반의 반을 마친 거나 다름없다고 한 이름 모를 산악인의 말이 떠오르는 하루였다.
4월17일
내일 있을 라마제로인해 셀파들은 베이스에서 쉬고 우리대원들은 그 동안 늦추어 졌던 일정을 맞추기 위해 캠프1루트공작을 나선다. 컨디션이 않좋은 형우형과 카메라 감독님을 제외한 모든 대원들은 각자의 배낭엔 픽스로프한동과 탠트한동씩을 넣고 베이스를 출발 캠프1을 향해 힘찬 첫발을 내딛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석이형이 루트를 개척하였는데 형의 파워에 모든 대원들은 부러워할 뿐이었다. 더우이 처음인 나에게는 형의 등반하는 모습이 가히 충격이었을 정도였고 그 런형을 따라가기 위해 정말로 힘든 등반을 해야만 했다.
예상과 달리 계속되는 경사 60-70도의 설사면으로 인해 시간이 많이 소비되어 캠프1까지는 못하고 중간에 가져간 짐을 데포시켜놓고 베이스로 하산을 하였다.
4월18일
성공을 기원하는 라마제를 지내기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쿡들과 제단을 정리하고 깃발을 세우느라 셀파들이 아침부터 무척이나 바쁘다.
라마제를 마치고 몸상태가 최악인 카메라감독님과 형우형을 강모와 셀파들을 시켜 고도가 낫은 곳으로 데리고 이동을 할 것을 영석이형이 지시를 내린다.
7명의 대원들이 다함께 식사를 하다 4명으로 줄어드니 기분이 이상해진다.
4월22일
그 동안 캠프1이 만들어지고 영석이형과함께 캠프2 루트공작을 하던 강성규대원이 그동안의피로로인해 아침부터 코피를 쏟기 시작을 하는데 멈출 줄을 모른다.
이에 영석이형과 성규형은 베이스로 하산을 하고 나는 캠프1에서 강모와 함께 하루 밤을 보내고 내일 캠프2로 진출하기로 한다.
4월23일
성규형의 상태가 더욱 악화되어 카메라감독님이 쉬고있는 째람으로 내려보내기로 한다.
한편 캠프1에서 하루 밤을 보낸 막내인 두 대원들은 캠프2로 이동을 하던 중 갑작스러운 가슴의 통증을 호소하는 나 때문에 베이스로 철수를 한다.
4월29일
그 동안 몸이 좋지 않아 밑으로 내려갔던 대원들도 모두베이스로 돌아오고 계획했던 대로 영석이형 형우형 성규형 강모 그리고 나까지 1차 정상공격을 위해 베이스를 출발한다.
그러나 날씨가 오전에는 맑다가도 오후만 되면 겆잡을수 없을 정도로 변한다.
예전보다도 훨씬 빠른 시간에 캠프1에 모두 무사히 도착 앞으로의 계획을 다시 한번 확인해본다.
4월30일
오늘 계획인 캠프2까지의 이동을 위해 아침부터 서둘러 7시에 캠프1을 출발 캠프2로 향한다. 캠프2까지는 플라토의 연속인데 눈으로 보기에는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실제로는 무지하게 길고 이 구간이 끝나면 다시 70도경사의 설벽이 시작되는데.....
내가 도중에 뻗긴 했지만 모든 대원들이 캠프2까지 무사히 진출을 하였다.
5월1일
몸상태가 좋지 않은 나와 캠프3으로 진출하던 중 되돌아오던 형우형은 캠프1로 돌아오고 나머지대원들은 캠프3으로 무사히 진출한 하루였다. 그런데 날씨가 점점 악화되는 분이기에 모두들 앞으로의 기상예보를 얻기 위해 사방으로 연락을 취해보지만 .....
5월2일
기상상태의 악화로 인해 캠프3으로 진출한 대원들과 캠프1에 있던 대원들이 베이스로 철수를 하고 다음기회를 노리기로 한다.
한편 전대원들이 모처 럼만에 다 모이게된 베이스에서는 야크 고기파티가 벌어진다.
5월8일
그 동안의 기상악화로 인해 베이스에서 머물러야만 했던 영석이형은 2차 정상공격을 위해 셀파들은 어제 출발을 시키고 성규형과 함께 베이스를 출발한다. 공격 조에는 강모 또한 포함되어 있었으나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인해 제외되는 불운을 겪는다.
5월11일
예정대로 정상공격조가 캠프4에 무사히 도착을 하였다는 무전이 전해지고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내일 또한 오늘 처럼 날씨가 화창하기를 칸첸중가 여신에게 빌어본다
5월12일
새벽2시 영석이형으로부터 무전 연락이 온다.
"베이스 베이스 여기는 캠프4 "
"여기는 베이스 말씀 하십시오. 이상"
"지금 셀파2명과 성규 그리고 내가 캠프4를 출발한다."
"지금 대원들 컨디션은 어떻습니까. 그리고 그곳의 날씨는요. 이상"
"아 모두들 좋다. 날씨도 안정이 되어있고 예감이 좋다. 이상."
이때부터 시작된 영석이형과의 무전은 매시간 우리가 시간을 알려 주는 것으로 이어져 정상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는데 그때그때 힘들어하는 목소리를 들을 때면 우리가 전혀 도움이 되질 못한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고 형에게 미안하기만 하였다.
오후6시40분 형으로부터 정상이라는 무전이 오고 베이스에 있는 모든 이들이 환성을 질러본다.
이때부터의 우리는 정상을 올랐다는 기쁨도 잠시 시간이 너무 늦어졌기 때문에 하산하는 데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했다. 중간에 무전이 오고 안전한곳까지 내려왔다는 말에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쉬었으나 우리가 잘못안 것을 알고 부터는 모두들 말 한마디도 조심하는 긴장된 상황이 계속되었다. 나중에는 무전도 두절되고 최악의 상황도 고려 나와 강모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먼저 잠자리에 들기로 하였으나 잠을 잔 이는 아무도 없었고 연락두절8시간만인 오전 6시 다시 연락이 되고 형을 비롯한 모두가 무사하다는 내용 있는데 대원모두가 칸첸중가의 여신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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