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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3 '한강정맥' 초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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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의 철학적 의미와 산맥체계의 문제
최 성 침
1. 백두대간의 철학적 함축
백두대간은 일반적으로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지리산까지 끊김없이 이어진, 한반도의 중추를 이루는 산줄기라는 개념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 같은 개념은 그 자체로 아무런 모순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산맥을 가리키는 용어로서는 익숙치 않은 대간이란 말에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大幹의 幹은 '줄기 간'자로서 쉽게 말해서 나뭇가지를 의미하는 한자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山脈이란 말이 있는데 굳이 幹이란 말을 써서 표현한 것은 왜인가?
혹자는 산맥이란 말을 쓰지 않고 대간이란 말을 사용한 이유를 산맥이란 말은 20세기 들어와서 일본에서 쓰기 시작한 용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가당치도 않은 말이다. 山脈 혹은 脈이란 용어는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 산줄기를 표현하는 일반적인 용어였다. 그렇다면 산맥이란 말을 쓰지 않고 대간이란 말을 쓴 이유를 따지기 전에 얼마나 일반적으로 산맥 혹은 맥이란 말이 사용되고 있는가의 예를 들어보기로 한다. 擇里志 안에서만 대충 훌터보더라도 수없이 찾아볼 수 있다. 몇 가지의 예만을 들어보겠다.
精氣北走千里挾二江向南爲寧固塔背後抽一枝爲朝鮮山脈之首
(산 정기가 북쪽으로 천리를 달려가며, 두 강을 끼었고, 남쪽으로 향하여 영고탑을 만들었으며, 뒤쪽으로 뻗은 한 가닥이 조선산맥(朝鮮山脈)의 우두머리로 되었다)
一國最短之脈....... 萬山中脊脈
智異山在南海上是爲白頭之大盡脈
(지리산은 남해가에 있다. 이것이 백두산 산맥이 크게 끝난 곳)
이와같이 脈이란 말은 아주 일반적으로 쓰인 말이며, 더욱이 백두산을 '朝鮮山脈'의 우두머리라고 한 데서 '산맥'은 산줄기를 나타내는 가장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개념규정이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朝鮮山脈이란 한반도 내에 있는 모든 산줄기들을 총칭하는 개념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태백산맥, 소백산맥, 노령산맥..... 등등의 그릇된 산줄기 체계 속에서 산맥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본이 만들어냈다는 있지도 않은 사실을 핑계삼아 산맥이란 용어를 마치 벌레 보듯하고 있는 것은 아집에 찬 국수주의에 집착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논자 자신이 '산맥체계' 운운 하는 것 자체가 이미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山脈'이란 말은 우리나라 고유의 산줄기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山經'이란 말은 고대 중국의 인문지리서인 〈山海經〉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대로부터 중국에서는 산맥을 '山經'이라고 했던 것이다. 〈山經表〉는 바로 이러한 〈山海經〉의 용어를 답습한 것이다. 이에 반해 이중환이 '山經' 대신에 '山脈'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은 오히려 그 독창성을 확보하기 위한 의도에서 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이 사용한 '山脈'은 바로 이러한 우리문화로부터 채용한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둔다. 따라서 필자도 당당히 '山脈體系'라는 용어를 쓸 것이다. 그러므로 백두대간도 한반도의 산맥체계 안에서 백두산에서 지리산에 이르는 중추가 되는 산맥을 규정하는 개념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조상들이 왜 백두산맥 혹은 백두대산맥이 아니라 하필 보편적 용어라고는 볼 수 없는 '白頭大幹'이란 용어를 사용했으며, 그리고 그 개념규정 속에 어떤 독창적이고도 인문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는 않은지에 관해 살펴보기로 하자. '백두대간'식 표기의 근원에 대해서는 이미 백두대간에 관한 논자들에 의해 지적되어 왔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그들의 연구성과를 다시 확인하고 인용한 후 지금까지는 간과되어 왔던 그 철학적 배경과 의미를 밝혀 보기로 하겠다. '대간'식 표기의 근원에 관한 정설은 李瀷의 <성호사설>(1760년경)에 소개 된 고려 승려 道詵의 견해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고려 승려 道詵의 玉龍記에 '우리나라는 白頭에서 일어나 智異에서 끝났으니, 물의 근원(水根). 나무의 줄기(木幹)의 땅이다.
즉 백두산에서 지리산에 이르는 대산맥은 백두산 천지의 물을 근원으로 하여 자라나는 나무와도 같은 우리나라 땅의 형태에서 그 중심이 되는 줄기라는 인식이다. 이러한 도선의 사상에서부터 '백두대간'이라는 명칭이 도출되며, 도선의 사상을 이어받아 '대간'이라는 말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임덕순 교수의 견해를 따르자면 擇里志의 이중환이다.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백두대간은 조선후기 실학사상이 무르익어 가던 시대상황에서 국학의 발흥에 의해 회복된 주체적 사유방식을 상징하는 것이다. 백두대간과 장백정간 그리고 13개 정맥으로 산맥체계를 세운 산경표가 나온 것은 그 이후의 일이다. 따라서 백두대간이란 명칭에는 보다 근본적인 사상의 정체성이란 보다 본질적인 문제가 함유되어 있는 것이다.
이제 문제의 본질에 접근해 보자. '백두대간'은 '산맥'과도 같은 보편적이고도 물리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한민족의 특수한 정신세계를 담고있는 특화된 정신적인 개념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백두대간'이란 말은 우리나라 고유의 풍수사상과 우주를 보는 가치관이 내포된 결정체라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을 거스를 수 없고 자연의 질서와 기운을 받아 자연의 품에 안겨 살아가는 자연의 일부분일 뿐이라는 것이 전통적인 풍수지리 사상이요 동양적 자연관이다. 백두대간은 단순히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끊김이 없이 이어지는 산줄기라는 의미만을 가지지 않는다. 거기에는 우주의 만물처럼 땅도 유기체요 생명체라는 독특한 사유방식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산과 그 산이 이어지는 산줄기에는 인간을 낳고 키우는 힘 즉 '氣'가 흐르고 있다. 그것은 비단 산의 힘이 아니라 우주의 원천이며 모든 존재의 원초적 형태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백두대간의 현대성과 아울러 미래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백두대간은 21세기의 화두가 된다. 무분별한 환경훼손으로 인한 인간 자신의 파괴를 낳은 산업화시대를 넘어 환경의 보존만이 인간 자신의 존재를 지킬 수 있다는 인식이 새로이 대두하는 이 시대에 백두대간의 사상은 가장 뚜렷한 상징으로서 제시될 수 있다.
백두대간은 우리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서 자연과 화해하고 자연을 가꾸며 자연 속에서 마음껏 호흡하기를 촉구하는 相生의 윤리 바로 그것이다.
2. 백두대간과 산맥체계의 문제*
2-1 산경표의 문제점
필자는 <사람과 산> 98년 10월호에 실린 '두로봉 - 양수리 능선' 초등반기 "한강정맥이라 제안한다"라는 글에서 산경표 자체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아울러 산경표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동국대 산악부가 이 능선의 초등을 시도하게 된 취지를 밝힌 바 있다. 필자는 그 연장선상에서 지금까지의 문제점을 보다 상세하게 검토하고 그 바탕에서 필자 나름대로의 새로운 산맥체계를 제시하려 한다.
산경표는 지금까지의 잘못된 산맥체계를 바로잡을 수 있는 바탕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소중한 문화유산 중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그러한 산경표를 널리 일반에게 알리는 일은 시급한 과제이며 마땅히 높이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산경표 체계가 안고 있는 모순점들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는 일이 용납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산경표의 체계가 굳어지기 전에 그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보다 정교한 체계로 고쳐나가기 위해 문제를 제기하고 모색하는 노력 또한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산경표의 문제점들로 지적된 것은 주로 정맥의 겹침, 정맥주행의 일관성 결여, 누락된 산줄기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이외에도 가장 근본적인 정맥체계 설정의 방법론에 관한 문제와 백두대간의 범위설정, 장백정간의 인정여부, 금남정맥의 인정여부 등 수 많은 문제들이 난마와 같이 얽혀있다.
필자가 보기에 이런 모든 문제의 핵심에는 산줄기를 이해하는 방식, 즉 산을 보는 의식에 있어서 불완전함이랄까 미숙성이 있는 것 같다. 확고한 의식에서 확고한 체계가 나올 수 있다. 산경표를 지나치게 호도하고 체계화하기 위해 내세우는 논리는 실제결과와 따로따로 겉돌고 있다. 필자는 산줄기를 이해하는 방식에 새로운 조명을 하면서 백두대간을 새로이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맥체계 설정의 방법론을 포함한 그 밖의 문제들을 같이 검토한 후 마지막으로 필자 나름대로 새로운 산맥체계를 제시하려 한다.
2-2 산줄기 이해의 방식 - 백두대간의 범위
이제는 대동여지도와 산경표를 한번쯤 들여다 본 산악인이라면 '산은 물을 만나면서 산이기를 그친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즉 산줄기는 물을 만나기 전에는 절대 끊어지는 법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평범한 사실을 알고 있고, 입으로 뇌이면서도 백두대간의 범위에 대해 이의제기가 없었다. 백두대간도 분명히 산줄기이다. 산은 산줄기인 한에서 산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산이 산이기를 멈출 수는 없다. 따라서 백두대간의 끝점은 지리산이 아니라 남해 바닷가이다. 조석필씨는 "산경도의 대간, 정맥은 모두 주맥이다. 즉 끊이지 않고 바다에 이르는 산줄기들이다."라고 하면서도 '지리산이 끝점'이라 하며 산경표의 테두리를 벗어나려 하지 않고 있다. 필자는 그의 신중함 때문이라고 믿고 있지만, 논리와 실제의 모순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백두대간의 태백산 밑부분은 다음과 같은 <擇里地>의 산줄기 체계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
태백산 왼쪽에서 나온, 하나의 큰 지맥(支脈)은 동해(東海)에 다가 내려오다가 동래(東來) 바닷가에서 그쳤고, 오른쪽에서 나온 하나의 큰 지맥(支脈)은 소백(小白),작성(鵲城),주흘(主屹),희양(曦陽),청화(靑華),속리(俗離),황악(黃岳),덕유(德裕),지리(智異) 등 산이 된 다음, 남해(南海) 가에서 그쳤는데, 두 지역 사이에 기름진 들판이 천리이다.
지맥이란 용어의 사용에 대해서는 이중환이 산경의 체계화를 시도하지 않은 입장을 이해하면 그다지 문제삼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와같이 擇里志에서도 백두대간 줄기가 지리산을 거쳐 남해에서 그쳤다고 기술하고 있는데도 백두대간의 끝점을 산경표의 기존 체계대로 고집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백두대간의 끝점은 지리산이 아니라 남해 바닷가, 정확히는 금오산(金鰲山), 연대봉을 지나 노량이다.
백두산을 어떤 시각에서 볼 것인가에 관한 문제도 남아 있다. 백두산은 옛부터 우리국토의 근원으로 인식되어 왔으며 이러한 인식은 마땅히 지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백두산이 한반도 뿐만 아니라 만주대륙도 포괄하는 지역의 근원이라는 인식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조석필씨는 "백두대간은 유한하지 않다. 바다에 멈춰 흐름을 마치는 게 아니라, 대륙을 향해 뻗어 대륙을 노린다." "백두산은.. 대륙을 향해 열린 창(窓)이요, 대륙을 향해 뻗는 창(槍)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백두산은 우리민족에게 있어서 만주지역의 뿌리이기도 한 것이다. 만주가 우리의 영토였던 고대 시대에서도 백두산은 이미 민족의 고향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따라서 백두산은 백두대간의 시작이라기 보다는 백두대간의 근원이자 정점(頂點)으로 규정되어야 한다. 그래야 만주로 뻗어간 산줄기가 끊기지 않는다. 백두대간이 백두산에서 지리산, 정확히 말하자면 지리산의 자락이 남해 바닷가에 발을 적시는 금오산까지의 대능선(大稜線)을 가리킨다고 해도, 백두산의 정기는 만주대륙의 벌판을 거쳐 멀리 중국의 곤륜산(崑崙山)까지 끊임없이 흐르고 또 반대로 거기에서 흘러오는 氣를 받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만주대륙의 광활한 벌판이 우리의 옛땅으로서 더욱 정겹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중환은 擇里志에서 이 산줄기의 이어짐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곤륜산(崑崙山) 한 가닥이 대사막(大沙漠)의 남쪽으로 뻗어서 동쪽으로 의무려산(醫巫閭山)이 되었고 여기에서 크게 끊어져서 요동(遼東)의 들이 되었다.
들을 지나 다시 솟아나, 백두산(白頭山)이 되었는데 <산해경(山海經)>에 불함산(不咸山)이라는 것이 이것이다.
물론 '크게 끊어져서'라는 말은 맥이 끊긴다는 의미가 아니라, 산의 줄기가 거의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미약해진다는 의미다. 擇里志에서는 백두대간의 형세를 서술할 때 산세가 약해질 경우에는 자주 끊긴다는 말을 쓰고 있다.
이상과 같이 살펴본대로 백두대간의 정점인 백두산은 그 근원을 만주를 지나 곤륜산에 두고 있으며, 또한 백두대간의 줄기는 남으로는 지리산의 정점인 천왕봉에서 끝나지 않고 그 여세를 몰아 금오산을 이루어 남해 바닷가에 자락을 적시기 전까지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고 보아야 마땅할 것이다.
2-3 새로운 정맥설정의 방법론의 모색
이와 같이 산줄기 이해의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는 백두대간의 범위설정 문제 뿐만 아니라 산경표의 허술한 체계를 재정립하는데 바탕을 제공해 준다.
논의의 편의상 정맥겹침의 문제부터 풀어 나가기로 하자. 조석필씨가 <태백산맥은 없다>에서 재구성한 산경표의 정맥체계<표1>에서 보듯이 한남금북정맥이 끝나는 지점에서 금북정맥과 한남정맥이, 금남호남정맥이 끝나는 지점에서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이 갈라진다.
또한 청북정맥과 청남정맥이 갈라지는 지점과 백두대간 상의 출발점 사이의 산줄기는 정맥에서 제외되어 있다. 이러한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뿐만이 아니다. 해서정맥과 임진북예성남정맥이 갈라지는 지점과 백두대간상의 출발점 사이의 산줄기 또한 정맥에 해당되지 않는다.
대간이 산줄기이듯이 정맥 또한 산줄기이다. 도대체 하나의 정맥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끝을 맺어놓고 거기서 또다른 대등한 정맥들이 생겨나게 하는 논리가 가능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명백히 대간과 이어져 있는 줄기를 건너뛰어 어느 한 지점에서 정맥들이 생겨나는 논리가 가능한 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맥은 산줄기 중의 대표적인 산줄기들을 일컫는 개념이다. 따라서 정맥에는 산줄기의 원리 즉 '물을 만나지 않는 한 산줄기는 소멸하지 않는다'라는 기본 개념이 무엇보다도 철저하게 지켜져야 한다. 그러지 않는 한 정맥은 이미 산줄기로서의 자격을 상실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정맥체계의 모순은 산줄기의 원칙에 충실하면 명쾌히 극복될 수 있다. 대간 상의 한 지점에서 정맥이 갈라져 나오듯이 정맥의 한 지점에서 또 다른 산줄기가 갈라져 나온다. 그 산줄기에서 또 다른 산줄기가 나오고, 거기서 또 다른 산줄기가 나오고..... 이러한 과정이 무한하다. 그리고 정맥에서 갈라져 나온 산줄기는 정맥이 아니다. 정맥이 대간이 될 수 없듯이. 또한 그것에 대한 명칭은 부여하기 나름이다. 지맥도 좋고 지릉도 좋다. 문제는 위계적인 명칭의 체계를 세우면 그만이다.
필자는 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큰 산줄기는 정맥으로, 정맥에서 갈라져 나온 큰 산줄기는 지맥으로 명명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대간이나 정맥이나 지맥에서 갈라져 나온 산줄기는 간단히 지릉으로 명명할 수 있다. 말하자면 '백두대간 ...지릉', '호남정맥 ...지릉', '금남지맥 ...지릉' 등으로 명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혹은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간단히 '...지릉'이라 쓰기로 약속해도 무방하다.
이와 같이 백두대간 상에서 직접 뻗어나온 산줄기만이 정맥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정맥 기준을 세울 수 있다. 그렇다면 백두대간에서 뻗어나온 '어떠한' 산줄기가 정맥이 될 수 있는가? 그 '어떠한'의 문제는 보다 복잡하다. 먼저 산경표에서 어떻게 정맥을 정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그런데 산경표에는 정맥이 되는 기준에 대한 언급이 불행하게도 전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산경표를 검토하여 귀납적으로 가정해 볼 수 밖에 없는데, 대표적인 하천 즉 큰 강을 가르는 산줄기라는 것 정도이다. 이것은 일단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만큼 산세도 크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석필씨가 주장하듯이 그 강이 하나의 하구를 가지는 즉, 바다에 바로 연결되는 강이라는 것은 사실과 어긋난다. 왜냐하면 필자가 이미 앞서 말한 〈사람과 山〉에 게재한 글에서 지적했듯이 한북정맥은 이러한 논리에 따라서는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한북정맥을 규정하는 임진강과 한강이 독립된 강이 아니기 때문이다. 임진강은 한강의 거의 끝부분에서 한강에 합수되어 바다로 흘러들어 간다. 우리가 북한강 남한강이라 하여 마치 별개의 강인 양 부르듯이 임진강도 명칭상, 관습상에서만 독립된 하천일 뿐이다. 즉, 임진강은 한강의 지천이다. 조석필씨는 산경표의 체계화에 골몰한 나머지 이점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그는 산경표를 지나치게 체계화하려 한 나머지 무리한 억측과 합리화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산경표에 있지도 않은 체계원리를 임의로 만들어 산경표의 체계를 더욱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 결과 조석필씨는 그의 논리에 따라 주맥은 반드시 바다에 이른다고 하였는데 한북정맥은 바다에 이르지 않고 한강과 임진강의 합수점, 다시 말해 한강의 중간에서 끝난다.
또한 산경표의 금남정맥은 금강의 허리에 가 닿는다. 조석필씨는 금남정맥을 오류로서 지적하며(한북정맥의 문제는 미처 간파하지 못했다) 그것을 이우형씨와 박기성씨를 인용하며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지만 어쨌든 산경표의 정맥체계를 '바다에 하구를 대는 강을 가르며, 또한 바닷가에 이르는 산줄기'를 정맥으로 한다는 원리로 설명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산경표를 조석필씨의 잣대로는 잴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위에서 말했듯이 범박하게 '큰 강을 가르는 산줄기가 정맥이다' 정도로 산경표의 주된 체계원리를 파악해 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바다'를 강조하지 않고 한북정맥이 임진강과 한강의 합수점으로 흐르듯이 큰 강의 합수점으로 흐르는 큰 산줄기도 정맥으로 인정할 태세를 가지고 있는 한 또 하나의 정맥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장백정간의 문제도 정맥체계의 관점에서 재조명되어야 한다. 장백정간은 정간으로서 존재해야 할 뚜렷한 이유가 없다. 대간에서 뻗어나간 큰 산줄기일 뿐이다. 즉 하나의 정맥일 뿐이다.
2-4 새로운 산맥체계
이상과 같은 논리적 근거에서 일단 <표2>와 같이 1대간(大幹) 8정맥(正脈) 7지맥 (支脈)의 새로운 산맥체계를 구성할 수 있다.
1대간 - 백두대간
8정맥 - 장백정맥, 관서정맥, 해서정맥, 한북정맥, 금북정맥, 호남정맥, 낙동정맥, 한강정맥,
7지맥 - 압록지맥, 청남지맥, 예성남지맥, 한남지맥, 금남지맥, 영산북지맥, 땅끝지 맥.
몇가지 보충설명을 하자면, 관서정맥을 기존의 명칭에 따라 청북정맥이라고 하지 않은 것은 청남지맥과의 변별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며, 압록지맥, 영산북지맥, 땅끝지맥은 조석필, 박기성씨 등이 누락된 산줄기로서 제기한 것으로서 그 체계와 명칭에는 동의할 수 없으나 산줄기 자체는 추가되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지맥에 포함시켰다. 이 체계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낙동정맥에서도 한 두 개의 지맥이 뻗어 나올 수도 있다고 본다.
이 체계에서는 백두대간이 섬진강과 낙동강을 가르며 직접 남해 바닷가에까지 이르기 때문에 산경표의 낙남정맥은 정맥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 단순히 '백두대간 낙남지릉'이 될 뿐이다.
마지막으로 한강정맥의 문제인데 이 산줄기는 박기성, 조석필씨 등이 누락된 산줄기로 지적하며 각기 '계방지맥', '한강기맥'이라 명명하는 시도를 한 바 있다. 그리고 98년 하계 동국대에서 이 능선을 초등반 하기 위한 계획서에서 '두로지릉'이란 가칭을 쓰기도 하였다. 백두대간 상의 두로봉에서 양수리의 남한강 북한강의 합수점으로 이어지는 이 산줄기는 산세에서나 길이에서나 그 규모가 정맥으로 분류될 수 있을 정도로 크다. 또한 이 산줄기가 가르는 북한강과 남한강은 한강의 지천들이지만 거의 대등하면서도 동시에 거대한 유역을 가진, 임진강이나 섬진강 금강보다도 긴 강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맥으로 보아 무리가 없어 보인다. 앞서 말했듯이 한북정맥을 정맥으로 인정하듯이 논리적으로도 하등의 모순이 없다.
3. 맺음말
산경표나 필자가 새롭게 제시한 산맥체계는 모두 지도를 바탕으로 한 이차적인 산물일 뿐이다. 거기에는 그만큼 정교한 논리와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필자는 앞서 말한 '한강정맥이라 제안한다'라는 글에서 대동여지도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대동여지도에는 우리나라의 산줄기와 강줄기가 정확하고도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거기에는 어떤 인위적인 구획이나 재단도 없다. 논리와 합리화도 없다. 오직 산줄기를 충실히 재현하고 파악하려는 순수한 정열만이 있다. 그러한 순수한 정열 속에는 겸허함이 숨겨져 있다. 필자가 요구하고 다짐하는 것은 그러한 순수한 정열과 겸허함이다. 인위적인 체계를 세우기 위해서는 그러한 순수한 정열과 겸허함을 잃지 않으려는 자기검열이 필요하다. 대동여지도로 돌아가자는 것은 바로 그러한 자세를 잃지 말자는 것이다. 그러한 바탕 위에서만 산악인의 미지에 대한 도전과 탐구가 빛을 발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업주의에 편승한 백두대간 열풍의 허실을 바로 보기 위해서라도 김정호가 그랬듯이 하중과 공포와 피로에 시달리며 온몸으로 산줄기들을 개척해 나가는 산악인들의 순수한 정신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산경표가 발견되기 전에 국토의 중추를 연결하고 답사하려 시도했던 산악인들의 값진 노력들이 어둠으로부터 건져져 조명을 받고 재평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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