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 이야기

사랑의 8000m를 오른 東岳人 - 현교명 -
전완근 (목사, 어쎈트 산악회, 광운대OB)

본인이 교목(校牧)으로 근무하던 파주중학교는 서울에서 불과 1시간 거리에 있는 지역인데도 불구하고 그곳은 문화적, 환경적으로 매우 낙후되어 있고, 학생들 중에는 결손가정 아이들이 참으로 많은 곳이다. 물론 지금 근무하고 있는 안양지역의 학교에서도 그와 같은 아이들이 많다. 아마 우리가 돌봐줄 수 있는 이웃이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지역과 상황을 떠나 항상 우리 주변에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 하면 이들을 도와줄 수 있을까 고민하며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본인의 한계를 느끼곤 한다. 그리고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에게 호소하며, 주변 사람들을 떠올린다. 적든 많든 간에 후원금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물색하기 위해서이다.

현교명 권사(감리교회의 평신도 봉사 직분)와 본인이 깊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당시 어린 나이에 부모의 이혼과 아버지가 계셔도 전혀 돌보지 않는 상태에서 어린 두 동생을 데리고 혼자 생활을 꾸려 가는 서현승 양(90년도 당시 파주중학교 1학년)의 애기를 담임교사로부터 듣고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을 찾고자 고민할 때다. 물질적인 어려움 때문에 힘들어하는 어린 학생에게 "가난한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다만 조금 불편할 뿐이다" 라며 말로만 위로하는 상담은 그 사람의 실제 생활에 대한 어려움을 고려하지 않는 공허한 굉과리의 울림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김춘택 집사에게 연락을 하게 됐다. 현권사의 부인되는 김춘택 집사는 필자와 광운대 산악부 동기생으로 미국에 이민 가서 살고 있었는데, 어느 해 김집사가 모교를 방문했다가 산악부실에 들러 본인이 목사로서 학원선교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후부터 자주 연락을 주고받던 터였다. 예전의 산쟁이들이 각각 목사와 집사(교회 봉사 직분)가 되어 신앙생활에 열심히 주력하고 있음에 서로 신기(?)해하며, 남편인 현권사 또한 신실한 기독교 신앙인으로서 동국대 산악부 출신임을 그때 알게 되었다. 김집사에게 전화를 걸어 서현승양의 사정을 얘기하고 한 달에 얼마씩 후원해줄 것을 요청했고 김집사는 그 일을 흔쾌히 승낙했다. 그후부터 매월 일정액을 송금 해 주었는데, 그 시기가 현승이의 중학교 1학년 2학기 무렵이었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현교명 권사와 신앙적으로 가깝게 지내게 되었고, 현승이가 중학교 3학년이던 92년도 여름에 첫 상면을 하였다. 모국방문을 할 기회가 있었던 현권사 내외가 현승이를 만나러 직접 파주를 방문했던 것이다. 우리들은 오산리에 있는 순복음 기도원에서 만나 저녁을 함께 먹으며 그간의 애기와 신앙적인 애기들을 많이 나누었다. 그때 현권사가 현승이를 딸 삼겠노라고 하더니, 지금까지 아버지 노릇을 하고 있다. 며칠 전 현승이에게 전화를 해서 현권사 내외의 안부를 물었더니, "미국에 계시는 어머니, 아버지 잘 계신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 아이도 지금껏 현권사 내외를 부모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현승이는 어려운 형편이지만 착하고 정직하며 성실하게 노력한 것이 모든 사람의 귀감이 될만하여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모범학생으로 대통령 표창까지 받은 좋은 인성의 소유자이다. 아마도 안정된 가정의 양부모 집안에서 성장했더라면 지금쯤 대학 4학년이 되었을 것이다. 현승이는 졸업후의 진로 때문에 고민도 많았으나 일찍 자립하기 위하여 실업고를 선택한 만큼 대학 진학보다는 취업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졸업과 동시에 종근당 제약 실험실에 들어가 98년도까지 근무하다가 작년 12월 달에 한국그락소로 근무처를 옮겼다.

그 무렵 잘은 모르지만 현권사님의 사정이 여의치 않아 그 동안 살던 집을 팔고 이사해야 할 정도로 곤란한 일이 생겼다. 그후 본인도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고 이사를 가는 바람에 현권사 내외와 현승이의 소식을 자주 들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재작년과 작년에 연이은 파주 지역의 홍수 피해가 보도되자 현권사는 현승이에 대해 많은 염려를 하게 되었고, 작년의 IMF가 터지자 더욱 걱정하며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격려와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올 봄에 현권사는 현승이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진학을 하도록 권유하였고, 실제로 현승이가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생활비와 학비를 송금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현승이는 지금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4년만에 마음속 깊이 염원하고 있던 대학 진학을 위해 수능 공부에 전념하고 있다.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행위를 남에게 알리고자 애쓰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숨기고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아 조용히 있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 현교명 권사 내외 또한 이러한 사실이 활자화되어 알려지는 것을 별로 달갑지 않게 여기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그와 같은 사실을 밝히게 된 것은, 타인을 위해서 선한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삭막해져 가는 오늘날 이 땅의 삶에 어둠 속의 빛과 같은 신선한 행위로 우리 모두의 귀감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행위가 일회성의 자선행위로 그쳤다면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일일 수 있지만,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인연을 맺은 한 여학생이 24살의 청년으로 성장한 지난 10여년 동안 지속적인 관심과 변함없는 사랑을 기울여온 헌신적인 삶의 자세는 우리 모두에게 감동과 교훈을 주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물론 그의 그와 같은 행위의 근원은 그가 믿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의한 사랑의 소산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모든 크리스천이 현권사 처럼 하는 것은 아니다. 현교명 권사 내외가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데 주저하지 않은 것은 기독교 신앙인으로서 철저하게 실천적인 크리스천이 되기로 작정한 신앙의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라 사료된다. 그것은 그를 만날 때마다 본인이 그에게서 받는 강한 느낌이다. 그런 행위야말로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시고 모든 인간에게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인간 본연의 아름다운 모습인 것이다. 작은 촛불하나가 어둠을 밝히고 그것이 깊은 밤의 두려움과 위험을 제거하듯이, 우리 주변에는 어려운 이웃과 함께 삶을 나누며 이 땅을 살맛 나는 공동체로 만들어 나가는 현권사와 같은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동국 산악인들 중에는 8000m 급 14봉우리를 모조리 오르려는 영웅적인 인물을 비롯해서 한국 산악계에 걸출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하고 있다. 그런 동악인들 틈에서 현교명 권사는 인생을 아름답게 수놓는 사랑의 8000m를 오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동국 산악인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언제나 동악인들을 열열하게 사랑하는 믿음의 산악인이다. 그런 인물들을 만들어 가는 동국산악회 여러분들에게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산악인의 의리와 열정을 실제적인 삶 속에서 기독교 신앙으로 아름답게 승화시키고 있는 영원한 동악인(東岳人) 현교명 권사 내외분께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현권사님 내외분의 미담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지면을 할애해 주신 이영균 회장님을 비롯한 모든 동악인들의 행복과 동국 산악회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하나님의 충만한 은총이 늘 함께 하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바입니다. 샬롬!

♠ 샬롬 ⇒ "평화가 여러분에게 임하소서'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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