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산이 좋아서
이성환


동악지에 원고를 써달라고 인혜에게 청탁을 받았다. 어려운 부탁이었다. 사실 알고 있었다. 술자리나 산에서 밑도 끝도 없는 산과 산악부에 대한 이야기들. 밤새 들어도 언제나 다른 주제에 다른 이야기들.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도 막상 동악지를 내려면 그 많은 재담꾼들이 글솜씨를 이유로 글쓰기를 어려워 한다는 것을. 그래서 편집위원들을 애먹인다는 것을. 나는 재담꾼에 끼지도 못할 뿐더러 글솜씨는 더더욱 없다. 그래도 동악을 사랑하는 선배님들과 후배들을 위해 용기있게 펜을 들었다.

어릴 때부터 산이 좋았다. 아버지께서 등산을 좋아하셔서 산에 자주 따라 나섰다. 맑은 공기와 물, 멋있는 경치들... 그래서 대학가면 산악부에 들어갈려고 했다.

92년 4월. 산악회 입회원서 지원 동기란에 '산이 좋아서'라고 쓰면서부터 나의 산악부 생활이 시작되었다. 첫산행은 지금 생각해도 좋았다. 4.19 등반대회 준비를 위해 코스 사전 답사를 가는 것이었다. 집에서 김밥을 두둑히 싸와 정상에서 형들과 나눠먹고 내려왔다. 오래간만에 산에 와서 즐거워하며 김밥을 먹는 내 모습과 그 모습을 보며 미소짓는 형들의 모습. 그것이 내가 추구하고 바랬던 산악부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후로 그렇게 밝게 웃으며 산에 간 적이 없으니까. 무거운 배낭을 메고 산에 오르고, 자일에 매여 바위를 오르고, 잘못한다며 형들에게 혼나기도 하고. 그것은 산에 가는 것이 아니라 인내를 배우는 것이었다.

1학년 춘계 집중 ROCK CLIMBING때 같이 갔던 동기들이 7명이었는데 그 산행 이후로 3명이 나갔다. 나는 내 동기들보다 WALKING도 잘하고 바위도 잘타서 육체적으로 고생을 덜했던 것 같다. 산에 오를 때 힘들때면 동기들이 찐빠를 부려 나의 페이스를 조절해 주었다. 동기들이 내 욕을 대신 들어줘 고맙기도 하고 때론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나도 퍼진 적이 두번 있었다. 92년 1학년 동계산행과 94년 3학년 하계 지리산 종주 때이다.

1학년 동계때 설악산 죽음의 계곡에서 Backstep을 오전 내내 형들이 시켰다. '자세 안나온다' 며 머리박고 있을 때가 쉬는 시간이었다. 그 때 하늘빛이 노랗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2학년이었던 경순이형의 '점심 다 됐다' 는 말은 천당에서 천사가 부르는 소리였다. 입술을 부르르 떨면서 먹은 라면은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이었다.

94년 하계 지리산 종주 때는 R.O.T.C하계 입영 훈련을 앞두고 산엘 갔다. 그 때 1학년 필중이와 강모의 짐이 무거워 보여 식량을 덜어 내 배낭에 넣었는데 그게 화근이었는지 무척 힘이 들었다. 산을 너무 얕잡아 본 것이었다. 아짓도 어깨, 등, 손, 무릎에는 훈장이 있다. 거의 반은 1학년 하계 때에 난 상처들이다. 5,6일동안 대관령에서 한계령까지 비를 내내 맞으며 걸었다. 한계령에서 성침이형과 경필이형이 Support를 들어와 온 몸의 상처에 거즈와 반창고를 꼼꼼이 발라주셨다. 거의 내 발가락은 반창고 투성이었다. 그때 형들의 따뜻한 손길은 잊을 수가 없다. 다음날 한계령에서 대청봉을 오르는데 아침부터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깨작깨작 대는 나를 보고 태곤이형이 '가!' 라고 했다. 한걸음 옮길 때마다 통증이 느껴졌으나 형들이 내 발가락이 어떤지 알아주지 않아 오기가 생겼다. 화가 나 발가락이 부서지나 산이 부서지나 내기를 하며 이를 악물며 팍팍 걷기 시작했다. 발의 통증은 걷는 숫자에 반비례해 아주 서서히 조금씩 줄어들었다. 아픔을 참으며 고통을 즐기며 걸었다. 산행 후 집에 와서 보니 발톱이 5개가 빠져있었다.

학창시절 산에 간다는 것은 거의 의무감이었다. 1학년 때는 산악부원이라는 소속감 때문에, 2학년 이후 부터는 형들에게 배운 것을 후배에게 가르친다는 마음으로. 한때는 공부를 한답시고 산악부를 그만둘려고 할 때도 있었다. 그 때 빌려준 형들과 동기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산이 좋아서 산악부에 들어갔는데 산이 싫어졌다. 그러나 산과 선배님들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다. 극기, 인내, 인생, 사랑, 고마움, 우정, 죽음, 철학, 이별, 겸손, 두려움.... 힘들고 어려울때는 산악부때의 일들을 생각한다. 그러면 그것들은 삶의 원동력이 되어 나에게로 되돌아 온다.

지금 살고 있는 곳 뒤에 관악산이 있다. 공부가 안될 때 가끔 같이 공부하는 선배들과 친구들과 오른다. 산에 오르면 기운이 생긴다. 어릴 때처럼 즐겁고 재밌지는 않지만 잔잔한 미소가 퍼진다. 아직도 나에게 산사나이의 피가 흐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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