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동악40년사

I. 동악 40년 약사
1958년 ~ 1970년

이영균

산악부 창립 40주년을 맞이하여 그동안의 많은 기록을 회고하는 의미에서 년도별로 간략하게 정리해 보려한다.

산악부의 태동
당시 라테르네 크럽의 최영식은 교직원이셨던 임돈 선생의 도움을 받아 교내의 개인적인 등반활동이 왕성한 사람들과 산악부에 관심있는 이들을 모아 동국대학교 산악부를 만들어 낸다.
교무과 사무실에 낮모를 사나이가 찾아왔다. 학생이라기에는 대머리가 지고 나이가 들어 보이는 사나이인데 얘기를 들어본즉 『설악산에 가느라고 학기말시험을 못봤는데 대책이 없느냐?』는 것이다. 추가시험이나 재시험제도가 없었던 당시라 말도 되지 않는얘기였다. - 중략 -
軍에서 늦게 제대한 만학도로서 경제과 3학년 재학중 한국산악회 회원이며 『슈타인만 클럽』의 일원으로 그당시 우리나라 최초 동기 설악산 등반을 하였다는 그 - 최영식.
교내에 몇몇 베테란이 단합했고 그때 당시 한국산악회 회장으로 계시던 홍종인 선생의 권유와 나또한 등산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터라 산악부 창립을 서두르기로 한다. - 중략 -
창설 당시의 부원들은 모두 학생으로서는 온순했으나 개중에는 말썽꾸러기가 없는것이 아니어서 매사에 몹시도 신경이 씌어졌었다.
- 이상은 동국산악 창간호 東大山岳部 창설 전후에 얽힌 얘기들(임돈) 중에서 -

최영식, 임돈, 권영시, 김종섭, 김영근, 정진영으로 구성된 산악부가 창설되자마자 곧 한국산악회 주최 등행대회에 처음 출전하여 3위로 입상하고 모범상을 타게되어 사기가 충전했으며 곧이어 설악산 하계등반을 준비했으나 당시의 사정으로 어려운 문제가 너무도 많았으나 부총장 전규홍 박사의 도움 으로 등반대를 꾸려 전규홍 박사와 한국에와 있던 스위스人 막스氏가 참석하여 이채로운 첫 등반이 되었다.
이때 설악산에서 만난 한국 응용동물학회 팀을 만났을때 그 대원으로 참여했던 동국대의 임창우를 만났으며 그는 후일 산악부장이 되었고 개별팀으로는 유창서와 지금은 고인이 된 김진수를 마난게 되어 그들 역시 후일 산악부원이 된다.

1959년의 활동
평소 개별적으로 열심히 산행을 해오던 사람들이 모여 동국대 산악부의 이름을 갖게되자 소속감을 가지고 처음에는 등행대회 등 시합에 나가 우승하는것에 명예를 걸었으나 차츰 더욱 적극적인 산악활동을 하며 이듬해 1959년 1월 적설기 설악산 등반을 준비하게 된다.
기 간 : 1959년 1월 4일 ~ 1월 15일
코 스 : 설악산 - 천불동계곡 - 소청 - 대청봉 - 소청 - 봉정암 - 백담사
대 장 : 최영식 (경제 4) 대 원 : 김종섭 (정외 1), 유창서 (정외 1), 김경호 (성북고 교사)

당시 천불동계곡을 겨울에 돌파한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었으며 백담사까지 등반을 끝낸팀이 우리밖에 없었으므로 초등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등반을 하기 위해 서울근교에서의 암벽훈련이 더욱 활발해 졌다.
1961년 1월 적설기 한라산 등반을 정진영(경제과 4년) 대장을 중심으로 김영근, 김민수 등으로 구성되어 극지법을 도입하여 제주 - 관음사 - 탐라계곡 - 개미등 - 정상 - 남성대 - 서귀포의 코스를 완등하였다.
당시의 기상은 최악으로 지속돼 서울법대 산악부의 이경제 군의 조난사를 기록하게 된다.

1963년의 활동
1963년 창립후 해가 거듭되면서 부원들도 늘어나고 활발한 활동과 쳬계가 잡혀가며 추계설악산 등반중 울산암 코스개척을 하게 된다.

기 간 : 1963년 10월 28일 ~ 11월 3일
코 스 : 울산암 코스개척 및 천불동 - 대청봉 - 봉정암 - 영실 - 백담골 - 대승령 - 장수대 코스 등반
대 장 : 임신철 (임학과 3년)
대 원 : 이중웅 (임학과 4년), 이구용 (영문과 2년), 김규진 (사학과 1년), 이규복 (농경과 1년)

이때 설악산 종주 코스를 보면 당시로서 획기적인 종주등반임을 알 수 있다.

1964년의 활동
이해에는 획기적인 2가지 역사가 전개되던 해였다.하나는 처음으로 실시되는 일본원정 등반이고 하나는 희양산 암장 발견이다. 경북 개경군 가은면 소재 희양산 암장을 발견하여 암벽등반훈련장으로 적극활용하며 10여년간을 매년 코스개척등 훈련의 도장으로 사용하다 입산금지되어 버린것이 몹시도 안타깝다.

1962년 1월의 동계등반을 준비하기위해 일본 호일산장의 장비를 구입하려다 산악부원 유지영 (철학과 3년)의 부친이 일본에 체류중인 것을 알게 되어 好日山莊 福岡지점 주인을 소개받아 그의 초청 으로 1963년 등반하는 것으로 계획했으나 총장의 급서거로 1년을 연기하여 1964년 5월 2일 장도에 오른다.

기 간 : 164년 5월 2일 ~ 5월 27일
코 스 : 日本北알프스
단 장 : 민완식 (체육교수)
대 장 : 최영식 (OB)
대 원 : 이중웅 (OB),임신철 (임학과 4년),유지영 (철학과 4년),이규복 (농경과 2년)

당시만해도 日本을 간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때인지라 부신까지 가는 도중에는 경북 학생산악연맹의 장도를 축하하는 사과 한상자등의 선물까지 받아가며 환송을 받고 부산에서도 부산산악회, 대륙산악회, 한국산악회, 경남지회장이신 신업제씨등에게 후한 환송접대를 받으며 장도에 올랐다.
일본에 도착해서도 N.H.K. 라디오, TV 방송국 등의 취재를 받으며 福岡시청을 방문하여 부시장을 만나고 영사관에서 거류민단의 대대적인 환영행사까지 받았다.
일본산악회 측에서도 구주 산악회 예하의 각 산악단체 대표들이 출석한 환영파티에 참석 하였는데 이들도 외국 등반대를 처음 맞는 일이라며 최대의 편의를 제공해 주겠다며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었다.
처음 국내보다 스케일이 큰 산에서 등반을 함으로서 새로운것을 많이 배우고 느끼고 돌아왔고 日本원정에 참석치 못한 부원들은 박번웅 대장을 비롯한 15명이 속리산 등반을 하였다.

춘계 속리산
기 간 : 1964년 5월 15일 ~ 5월 18일
코 스 : 대전 - 속리 - 법주사 - 복천암 - 문장대 - 입석대 - 비로봉 - 천황봉 - 복천암 - 법주사 - 보은- 대전 - 서울
대 장 : 박번웅 (임 3)
대 원 : 이구용 (영 3),백태영 (임 3),손수남 (임 3),박경택 9임 3),고수명 (임 2),정광조 (임 2), 김형록 (임 2),김규진 (사 2),강성윤 (행 2),김형진 (상 1),이영구 (법 1),백경운 (경 1),이성만 (상 1) ,김재경 (법 1)

또한 65년 1월에는 한국특수체육회가 학생산악활동의 일환으로 대만 옥산등반을 추진하여 본 산악부에서 당시 이구용(영문과 3년)을 파견 하였다.

기 간 : 1965년 1월 11일 ~ 1월 28일
대 상 : 대만玉山
대 장 : 박철암 (경희대 교수)
지 도 : 김희찬 (특수체육 이사)
대 원 : 원정희 (경희대 4년),이구용 (동국대 3년),한균달 (중앙대 3년),전연규 (고려대 3년), 손용일 (성균관대 3년)

1967년의 1월 활동
개교 60주년과 산악부 창립 10주년을 맞이하는 기념사업으로 일본 북알프스 2차 등반을 과감하게 계획하였다.

기 간 : 1967년 1월 7일 ~ 2월 19일
코 스 : 일본 북알프스
대 장 : 정 종 (철학과 교수)
부대장 : 반태중 (체육과 주임)
리 더 : 강성윤 (행정학과 4년)
대 원 : 윤용규 (응생과 4년),최 인 (상학과 3년),이성만 (상학과 3년),오인환 (행정과 2년), 오영복 (임학과 2년)

당시의 기록 (동국산악 제2호)를 보면 그때의 일본원정이 얼마나 큰 등반이었는지 알 수 있다.
이와같이 2차에 걸쳐 일본 원정을 통하여 얻어진것은 컸다.
우선 기획과 등반계획, 장비, 식량, 운행방법 등 모든것을 경험한것은 우리 동국대 산악부 발전에 큰 보탬이 되었다.

1968년의 활동
이해에는 東岳의 큰 변화가 있었던 해이다.
산악부 창립 10년이 지나면서 동국산악회가 탄생된 것이다.
68년 9월 30일 동국산악회가 창립되면서 OB회로서의 조직과 회원들간의 구속력, 학교측과 연결된 큰 행사주관 등 동국산악회의 개화기로 들어서게 되었다.
봄에는 전통적으로 이어지는 춘계 희양산등반후 여름등반을 지리산과 홍도 암벽등반을 마치고 연이어 한라산 등반을 일본 立敎大산악부와 합동으로했다.

기 간 : 1968년 7월 27일 ~ 8월 3일
코 스 : 제주 - 관음사 - 용진각 - 정상 - 남성대 - 서귀포
대 장 : 오인환 (행정과 4년)
대 원 : 오영복 (임학과 3년),강윤중 (법학과 2년),이평재 (경영 2년),조성상 (연공 2년), 백채훈 (임학 2년),석관수 (연공 2년),조용재 (정외 1년),이영균 (수공 1년)

立敎大 산악부는 일본 정통대학산악부로서 1938년 일본 대학산악부 최초로 히말라야 등반을 했으며 OB들이 소련 우랄산맥을 등반하는 등 우리로서는 부러운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들과의 등반후 우리는 개혁에 가까운 등반활동이 전개되었다고 본다.
첫째, 선후배간의 질서가 더욱 투명하여졌고
둘째, 키슬링형 륙색이 본격적으로 전수되었으며
셋째, 등반시 행동식에 관한 도입 등이다.

1968년 추계등반
설악산 12선녀탕골로 계획했던 가을등반은 기상악화로 인한 카톨릭의대 산악부 조난사고로 우리는 긴급 구조대로 편성하여 등반을 대신했다.
설악산 조난사고 중 엄청난 사고로 기록된 현장에서 14명 전대원은 헌신을 다해 조난구조 활동을 하여 모범적인 행동으로 칭찬을 받았었다.

1969년 1월 4일 한라산
기 간 : 1969년 1월 4일 ~ 1월 18일
코 스 : 제주 - 관음사 - 용진각 - 정상 - 서귀포
대 장 : 오영복(임학과 3년)
대 원 : 전치수 (식공 2),이평재 (경영 2),백채완 (응생 2),신홍식 (사 3), 석관수 (연료 2), 이영균 (수공 1),김연수 (상 2),황노현 (화 2),이덕찬 (상 3),김충배 (OB),한덕정 (OB), 이인정 (경영 3)

오영복 회원이 일본원정시 가져온 피켈제작에 관한 자료와 견본을 가지고 1년간 노력끝에 우리는 전대원이 모래내 대장간에서 제작한 픽켈을 휴대할 수 있었다.
이후 국산 픽켈과 아이젠 제작 발전의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제주항에 마중나온 제주 산악회회원 들은 풍족한 우리의 동계 장비를 보고 몹시 부러워 했었다.
이때 한라산은 풍부한 적설로 매우 강도높은 훈련을 실시했으며 서울文理大팀을 만나 용진각에서 함께 지내며 우의를 다지기도 했다.
69년 가을 이때도 대원이 많아 두팀으로 나뉘어 등반을 하고 신흥사에서 합류하여 울산암 코스 개척을 했으며 70년 1월 동계등반을 위해 장비, 식량 연구와 강도높은 훈련을 계속했다.
69년 12월 일본 개인산악회와 토왕성 우벽을 등반한 이덕찬, 오영복 회원은 토왕성 빙벽등반을 겸한 20일간의 설악산 종주등반의 야심한 장기 계획을 수립하였다.

1970년의 활동
1970년대를 맞이하면서 우리 동국산악회도 양적, 질적으로 엄청나리만큼 많은 변화가 온 시대였다.
장기 등반때마다 늘어나는 대원, 한학기가 지나면서 절반이상 줄어드는 대원, 이것은 강도높은 훈련과 비례하는 현상이라 하겠다.

기 간 : 1970년 1월 10일 ~ 1월 30일
코 스 : 토왕성 빙폭 등반,양폭 100m폭 훈련 - 대청 - 서북주능 - 귀때기청봉 - 대청 화채봉 - 신흥사
대 장 : 전치수 (3)
대 원 : 오영복 (4),신홍식 (3), 황노현 (3),이덕찬 (3),이영균 (2),김희욱 (1),이경우 (1),박웅열 (1)

토왕성 빙폭은 15m짜리 사다리등 불필요한 장비와 절대적인 장비의 부족과 기술의 부족으로 7일간의 하단 중단 정도 진출로 만족해야 했으나 당시 토왕성 도전은 괄목할 만한 것이 었으며 6년후 우리의 힘으로 국내 최초의 등정에 성공하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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