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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4. 화제의 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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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동악 뺏지 디자인 - 최선웅
호경필
산악회원들을 한순간에 초강력 자력으로 시선을 집중 시킬 수 있는 상징이 있다. 세파에 지친 가슴에도 단 한순간에 청년기의 붉은 정열을 다시 지펴주는 사진 상징물, 그것은 다름아닌 산악회 뺏지일 것이다. 굳이 가슴에 달지 않더라도 그 뺏지를 보면서 만나게 되는 숨소리와 땀냄새, 그리고 산속의 고요.
우리를 우리이게 하고 하나로 만들어 주는 이 뺏지를 디자인한 사람을 아는 이는 실제 별로 없다. 정작 이 뺏지의 디자인은 동악을 거치지 않은 최선웅(현재 한국산악회 총무이사)씨의 손에서 탄생되었다.
모든 만남은 필연에 의한 것. 그의 유별난 산사랑이 동국산악회의 뺏지를 고안하는 인연에 이르게 했는지도 모른다. 1944년 만주에서 태어난 그는 해방 후 가족을 따라 남하, 종로구 누상동에 정착했다. 한낱 골목의 조무래기들이나 휘어잡던 그가 산을 정식으로 만난 건 중앙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학교산악부가 따로 있었지만 마음에 맞는 친구 12명과 「인왕산악회」를 창설했다.
당시에는 회장도 따로 없었고 요즘처럼 규모를 갖춘 그런 산악회는 아니었지만, 그 나이 또래의 순수함 만큼이나 순수하게 산이 좋아 결성된 모임이었다.
본격적으로 등산을 하면서 1969년 1월 한국산악회에 입회한 최선웅씨는 그해 5월 한국 최초의 등산잡지인 월간 《등산》을 창간하기도 한다. 그것은 우리나라 산악문화의 싹이 발아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후 그는 북한산 숨은벽 개척등반에 혼신의 힘을 쏟았고 1971년에는 격월간으로 발행되는 《산악인》을 창간, 초대 편집장으로 활동하면서 우리나라 산악문화의 발전을 위하여 선두자리의 고달픔을 마다하지 않았다.
등산을 하는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돌하나도 간과하지 않는 정확한 지도의 존재다. 그러나 당시 우리나라의 지도제작은 얼마나 일천했던가? 허술한 지도를 들고 수차례 산길을 헤멨던 그는 1987년 (주)코리아 오토매핑을 설립하면서 당장 정확한 최고의 지도 만들기에 들어갔다. 자고나면 생기는 새로운 길, 골짜기, 자신이 밟은 땅과 건너온 강을 지도로 옮기는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될 그의 평생의 업이 되었다.
종로구 누상동에는 또다른 예비 산사나이가 살고 있었다. 아직 바위 냄새도 모르던 시절 이인정씨는 최선웅씨와 동네 골목을 누비던 막역지우였다. 거뭇거뭇 턱수염이 돋을 무렵 산으로 향한 열정은 두사람을 하나로 묶어주기에 충분했고, 이인정씨가 동국대학교에 입학 했을때 가장 힘찬 박수를 보내준 사람이 최선웅씨였다.
동국대학교에는 그 이름도 유명한(?) 동대산악부가 있지 않았던가? 여기서 그는 동국산악회의 오영복씨를 만나게 되고, 의기투합해서 월간 《등산》창간작업도 함께 하게된다. 이인정씨는 취재, 사진을 맡아 이때부터 산악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
최재구씨가 동국산악회 회장으로 있던 시절, 이인정씨가 그에게 산악회 뺏지 좀 디자인해 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고등학교 졸업 후 줄곧 출판사에서 일해왔던 그는 원래 타고난 미술감각을 바탕으로 민중서관 미술부 등지에서 근무하며 디자인쪽에도 나름대로 인정을 받아왔던 터였다. 무척 고민스러웠다. 차라리 사무적으로 보수만 받고 하는일이라면 마음이 가벼웠을텐데, 친구에 대한 우정에다 동국산악회에 대한 애정까지 실리니 일에 부담이 갈 수 밖에 없었다. 고심고심한 끝에 최선웅씨는 청색바탕에 삼각형을 그려 넣어 뺏지 도안을 완성시켰다.
불교대학이라는 동국대의 특징을 살려 불탑과 산을 상징하는 삼각형을 집어넣고, 이상적이고 이지적이며 진취적인 산악인을 의미하는 청색을 바탕으로 깔았다. 다행히 모두들 만족스러워 했다. 뺏지 고안이 채택된 다음 최재구회장은 그의 노고를 기려 감사패를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동국산악회원들이 자신이 고안한 뺏지를 달고 다니는것 만큼 큰 즐거움은 없었다.
그러나 산에 오르는 것을 그는 하나의 문화로 본다. 국내 산악문화의 질적인 발전을 위해서 이제 동국산악회가 학구적이고 아카데믹한 본연의 산악운동을 전개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앞으로 그가 계획하고 있는 작업들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근래들어 젊은 사람들의 어렵고 힘든일을 기피하는 세태 때문인지 알피니즘 또한 기억속에서 멀어지는것 같다. 바로 이런때에 새로운 시대에 대비한 알피니즘을 정립해야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한국산악회 총무이사로 있지만 대한산악연맹과 한국대학산악연맹 등이 모두 힘을 합쳐 산악계의 당면과제들을 협의 연구해 나가야 된다고 힘주어 말한다. 물론 각단체마다 맡은 역할이나 추진하는 사업내용이 다르지만 한국 산악문화의 미래를 위하여나름대로 갖고있는 저력을 한데 결집해야한다.
여기서 그는 동국산악회의 활동을 주목한다. 산악회 뺏지를 디자인했다는 인연에서만이 아니라, 21세기의 알피니즘을 재정립할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히 내재되어 있는 단체라는 믿음이 강하기 때문이다.
고된 걸음과 성실한 땀의 결과로 《전국유명 등산지도 200 산》 (성지문화사)을 펴낸바 있는 최선웅씨는 별로 큰돈이 되지는 않지만 계속 좋은 지도 제작에만 전념할 생각이다. 산에 대한, 산악인에 대한 남다른 사랑으로 묵묵히 걸어가는 그의 모습에서 참된 알피니스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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