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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4. 화제의 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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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산제를 통해 맺은 인연 - 박성호
호경필
경건하다고 해야할까, 근엄하다고 해야할까. 그러면서도 세간의 자질구레한 고통쯤은 푸근히 감싸 안아줄 것 같은 인자함이 풍긴다. 팔십평생을 살았다고 해서 누구나 그런 것은 아니다. 한학과 불교의 깊은 곳에서 그 이치를 체득하고 그것을 몸소 실천해 온 그이기에 그같은 기품이 배었을 것이다.
박성호翁, 그가 바로 동국산악회의 산제를 맨처음부터 집전해 온 주인공이다. 산제하면 그가 제일 먼저 떠오를 만큼 상징적인 존재가 돼지 오래다.
『산악회 창립 이후 부터 산제를 지내기 시작했어요. 맨처음 산제를 지낸 곳이 수락산 석림사 앞이었는데, 지금까지 두 번 불참한 것 빼고는 줄곧 제가 집전했어요』 그가 두 번 불참한 이유 또한 결코 자의가 아니다. 산악회 섭외가 너무 늦게 들어와 선약을 깰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산에 대한 사랑이 웬만해서는 지키기 힘든 일이다.
사실 그는 삶의 대들보를 산속에서 세운 셈이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다가 좀더 깊이 있고 폭넓은 학문의 세계를 만나고 싶어 발을 디딘 곳이 경북 예천군 용문면에 있는 「용문사 제1 강원 대교과」. 불교 전문 강원으로 제1대 총장인 권태경선생도 그곳에서 수학했다고 한다. 불교공부를 마치고 대교과를 졸업할 때가 그의 나이 스물 넷. 해방이 되고나서 그는 자신이 수학한 용문사의 주지스님으로 불법도량을 이끌었고, 이후 경북불교 경북교구 교무원에서 원주 겸 경리과장으로 근무했으며 54년부터 동국대학교 농장에서 행정직사원으로 일하며 동대와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동대기숙사와 총무과를 거쳐 1978년까지 역경원 업무부장으로 재직했던 그는 정년퇴임 후 10여년 동안 절을 운영하며 포교활동에 전념하기도 한다. 그는 또한 동국대 정년퇴직자들의 모임인 「동연회」 회장으로 10년간 활동함은 물론 팔십연세에도 불교사회 단체 모임인 「여여회」의 회장을 맡아 불심을 찾는일에 아주 열심이다.
『불교란 자기 마음을 갈고 딱는 것입니다. 즉심즉불. 마음이 곧 부처입니다. 부처를 찾고자 한다면 자신의 마음을 찾고 수양해야 합니다. 부처상이 있는 곳에 부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자리하고 있는 거지요』. 그는 불교와 산행이 일맥상통한다고 말한다. 산행이란 단지 산에 오르는 행위가 아니라 몸을 닦고 마음을 닦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동국산악회가 만들어질 때 교직원자격으로 산악회에 가입했다. 지금은 동국대학교 신입생으로 가입자격을 제한하고 있지만 그때만해도 재학생과 교직원은 물론 졸업생까지도 가입자격을 주었었다. 산악회 결성 당시 그의 회원번호는 80호. 처음에는 매주산행을 했고 좀 지나면서부터는 월평균 1회 산행을 원칙으로 했다. 최영식, 임돈, 전규홍박사 등이 당시 산행의 친구들이다.
오르면 오를수록 느끼게 되는 산에대한 경외감, 그리고 山友들의 안전등반을 기원하는 마음……. 그래서 산제 얘기가 나왔고 회원들가운데 제례절차를 잘 아는 그가 산제 집전을 처음 맡게 되는 것이다. 물론 산신은 불교와 무관하다. 그리고 산신을 모시는 제례 절차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것 또한 아니다. 다만 지극정성의 마음으로 불교 제례절차를 빌어 동국산악회 회원들의 기도를 산신께 올리는 것이다.
한번은 광릉내의 어느산에서 산제를 지낼때다. 회원들의 안전등반을 염원하며 엄숙하게 제문을 읽어가는데 거기에 참석했던 모교수 왈 『아니 무슨놈의 산신이 이렇게 많아?』고 한마디 하는 바람에 모두 폭소를 터뜨린 일도 있단다. 제례절차와 내용을 전부 이해하진 못해도 회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만드는 것은 바로 이때가 아닐까?
『80년이던가, 마나슬루 등반을 하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한편으로는 가슴이 벅차면서도 얼마나 걱정이 되던지 날마다 무사귀환을 염원하며 백일기도를 드린적이 있어요』. 이 얘기를 듣고나니 근교 산이라도 무사히 산행을 마칠 수 있는데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힘이 우리를 보호해 주기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이제 그의 나이 팔십.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산제집전을 할 것이란다. 그러면서도 OB 회원 중 누군가 후임자가 나와서 자신의 자리를 잇기를 기대하고 있다.
항상 남을 위해 기도했기 때문일까. 마지막으로 던지는 박성호翁의 한마디가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마음만큼 넉넉하게 도와주지 못하는 사실이 미안할 뿐입니다. 산은 거짓이 없어요.
동악은 한국산악사에서 지도자적인 역할을 해 왔다고 생각되는데 이는 제 개인적인 판단이면서 또한 사실이기도 해요. 앞으로 동국대학교가 있는 한 영원히 지속되어 한국산악사에 길이 남을 동국산악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진심으로 박翁의 무병장수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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