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동악40년사

I. 동악 40년 약사
1981년 ~ 1987년

윤태영

80년대 등반활동은 동국산악회 뿐만이 아닌 전반적인 국내 산악활동이 70년대 와는 사뭇 다른 형태의 모습이 잠재되어 있던 시기로 느껴진다.

70년대의 전통적인 토양에서 자란 세대와 80년대의 교복과두발 자율화로 70년대의 획일적인 사고에서 좀더 자율적이고 개성이 중시되는 환경에서 자란세대와 사고적인 충돌을 자주 느낄 수 있던 시기로 70년대와 80년 후반에서 90년도를 연결하는 완충적인 성격을 나타내는 시기로 70년대의 선배들의 착실한 산악활동을 바탕으로 80년대는 내부역량을 해외로 전환하는 시기이다.

80년도 마나슬루 등정이후 등반활동의 두드러진 특징은 이전의 전통성을 유지하려는 노력(81~85년의 계속적인 희양산등반과 81년 하계 태백산맥 종주등반등 히말라야 등반 Style의 종주위주 등반)을 의식적, 전통적으로 시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새로운 형식 (동,하계등반시 종주위주의 등반에서 종주, 골,릿지, 벽 등반등 등반영역을 다양화하기 시작하였고 국내등반 위주에서 해외 원정 등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의 등반을 의욕적으로 시도하는 시기이다.

장비면에서도 많은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하여 암벽장비에서는 기존의 너트류에서 설치, 회수가 용이한 프랜드로 전면 교체 되었으며 암벽화 사용과 하강기 사용은 2학년 부터 사용하도록 하여 1학년 동안은 S자 하강을 하였다.

빙벽장비에서는 84년 까지 주로 쓰여지던 바투훅(WARTHOG)에서 ICE SCREW, 스나그로 교체 되어지고 아이스햄머는 84년 당시 까지도 모래내금강에서 만든 M. K 아이스햄머를 사용 하기도 했으나 이후 ‘허밍버드’라는 아이스햄머가 주로 사용되어인기가 있었다.

배낭은 85년 까지는 장기등반시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기슬링을 사용했으며 86년 부터는 등반성과 시대적 흐름에 따라 어택으로 교체되었다.

1981년에서 1987년에 있어서 주요등반은 81, 82, 85년의 제 17차~제 19차 희양산 등반과 81년 하계 태백산맥 종주등반 그리고 85년 일본 북알프스 동계 원정등반과 86년 소백산맥 종주등반을 꼽을 수 있겠다.
81년 희양산 등반은 64년 제1차 암장 개척등반 부터 85년 제19차 훈련등반 까지 실시 되었으며 동악의 전통성이 이어지는 등반으로 82년 제18차 등반이후 봉암사의 입산금지 조치(봉암사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수도승들을 위한 절로서 수도승들이 수도에 전념할 수 있도록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 하였다.)로 중단 되었다가 3년후인 85년 9월 등반을 다시 시도하는 노력을 보였다.

81년 하계 태백산맥 종주등반 (7/16~8/10, 21일간)

대 장 : 김환기(공경3)
대 원 : 호경필(정외3), 김헌태(공경2), 신재원(농생2), 이병찬(통계2), 류태섭(경산1), 이한직(이학1), 임종철(화공1), 허종행(건설1), 한평석(정외1))
79년 하계 소백산맥 종주등반에 이어 백두대간의 남은 구간을 등반 함으로써 백두대간을 완주하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85년 일본 북알프스 등반 (1/15~1/31, 17일간)

원정대장 : 양명수(수교 72학번)
등반대장 : 이동훈(경제72)
부 대 장 : 김환기(공경79)
대 원 : 박영석(체교2), 박성훈(무역2), 이승규(행정2), 남원우(경행1), 임채강(경영1)
적설기에 일본 북알프스를 종주한 등반으로 당시 대학산악부에서 일본 북알프스로 많은 등반을 갔었으나 대부분이 적설기가 아닌 시즌의 등반이었다.
85년 일본 북알프스 등반은 70년대의 전통적이고 활발한 국내등반 활동에서 80년 마나슬루등반 이후 처음으로 시도되는 해외원정 으로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벗어나려는 80년 학번 세대와 기존 70년 학번 세대와의 등반으로 향후 활발히 진행될 해외원정의 교두보적인 등반으로 평가할 수 있다.

85년 제19차 희양산 훈련등반

대 장 : 김진성
대 원 :이민호(경제3), 윤태영(산공2), 라맹덕(산공2), 임채강(경영2), 남원우(경행2), OB:김경석(통계 76학번)
82년 이후 중단된 등반을 계속하기 위해 봉암사측에 훈련을 위한 협조공문을 보내는등 등반을 위한 많은 노력을 하였으나 봉암사측 의 확고한 입산금지 표명으로 결국은 몰래 입산하여 B.C CAMP를 암장에서 멀리 외진곳에 설치하고 등반중 큰소리를 가급적 자제하며 조용한 등반을 하게 되었으며 85년 제19차 등반을 마지막으로 희양산 훈련등반은 그 명맥이 끊어지게 된다.

86년 제2차 소백산맥 훈련등반 (7/16~8/22, 32일간)

대 장 : 남원우(경행3)
대 원 : 박성훈(무역3), 라맹덕(산공3), 김덕환(체교1), 정성훈(화공1))
이전의 전통성을 의식하고 유지하려는 과도기적 학번(83, 84학번)과 교복, 두발 자율화 학번(86학번)과의 등반이다.
이 등반은 산악부의 등반이 끊기지 않고 이어지게 하려는 노력과 실질적인 활동 학번 공백에 따른 자구책으로 종주등반을 선택하게 되었으며 백두대간의 한줄기를 완주 한다는 명분으로 시도된 등반으로 보인다.
87년 이후 등반활동은 교복,두발 자율화 세대의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으로 힘들고 어려운 산악써클은 외면되어 부원수가 급속히 감소하기 시작하며 88년 부터는 군제대를한 83학번(총 5명)과 84학번(총 4명)들의 복학으로 활발하고, 의욕적인 등반 활동이 추진되고 시작되었으며 국가의 경제적 성장과 함께 여행 자율화 조치로 활발한 해외원정 러쉬가 이루어 지기 시작한다.

* 참 조 : 연도별(81년~90년) 동계등반시 1학년 인원 및 해외원정 건수

년 도 인원수(명) 해외원정 건수
81년 4 0
82년 0 0
83년 6 0
84년 7 0
85년 0 1
86년 1 0
87년 2 0
88년 3 1
89년 2 2
90년 3 1

※ 해외원정내용
85년 1월 일본 북알프스 동계원정
88년 7월 알프스 3대 북벽원정
89년 4월 히말라야 랑시샤리 원정
12월 히말라야 랑탕리 원정
90년 7월 소련 코미니즘 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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