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Ⅳ. 매점 아줌마
김환민

1947년 11월 27일 출생. 78년 2월 25일 결혼. 슬하에 1남 1녀. 69년과 78년 사이 산악활동(설령산악회). 81년과 96년 사이 문방구(동국대학교 구내) 경영. 현재 가사활동 전념. 문방구 아줌마로 통하는 그의 신상명세이다. 92년 산악부를 처음 들어와 모든것이 낯설고, 선배들의 서슬(?)에 고난을 겪던 암흑기에 어둠의 저 반대편에서 아줌마는 항상 웃는 낯으로 어떤 고민이라도 들어주시던 카운셀러였다. 산악부선배도 아니었건만 선배이상으로 우리 재학생들을 아껴 주었던 분. 그분과의 인연은 이렇게 연결되어 있었다.

아줌마가 산악부와 인연을 맺은 것은 81년 이모님이 하시던 문방구를 맡게 되면서 부터이다. 산악회 활동을 그만 두시긴 하였지만 산에 대한 열정만큼은 어쩌지 못했던 아줌마는 그 열정을 고스란히 산악부원들한테 쏟으셨다. 술로 점철되었던 1·2학년때의 산악부 상황. 그 모든것을 가능케 하는데는 아줌마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집회가 끝나면 당연스레 갖게되는 술자리. 아무리 선배라지만 용돈을 타쓰는 학생입장에서 매번 그 술값을 마련해 내는것을 보고, 선배들의 주머니는 그야말로 화수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아줌마께 자금지원 요청을 하기에 이르렀고, 그렇게 만들어진 술자리를 통해 우리는 선배들과의 끈끈함을 더욱

더 유지케 되었던것이다. (원금상환은 물론 반드시 했다)

장기산행을 갈때면 어김없이 등반비에 보태쓰라며 산악부장의 손에 일금을 보태주시던 기억도 난다. 항상 어머님과 같은 보살핌으로 우리의 안전한 등반을 염려해 주시던 분.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그를 「대모」라 부르기 시작했다.

아줌마는 허종행(81학번), 남원우(84학번), 안진섭(87학번), 박경원(93학번) 대원들의 죽음을 특히나 애석해 하셨다. 허종행대원이 1988년 알프스등반 출국 전날에 아줌마집으로 출국인사를 대신했을때의 통화내용이다. 『이제 산에 그만가고 공부해야지』,『이번 등반갔다와서 먹고 살 궁리해야죠』이말을 남기고 아줌마의 기억속에 남겨졌던 것이다.

임채강(84학번), 라맹덕(84학번) 회원은 한때 문방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한다. 특히 임채강회원은 웃기는 얘기 잘하고 말이 많다고해서 아줌마는 「입채강」이라 부르셨다한다.

동대산악부에 대해 느끼시는 점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시간이 갈수록 알아서 하는 분위기에서 점차로 명맥을 잇기위해 변해가는 모습들이 안타깝다는 말씀을 하신다. 우리 재학생들의 입장에서 크게 반성할 대목이 아닐수 없다.

96년 개인적인 사정으로 문방구를 그만 두시고 지금은 가사일만 하신다. 요즘들어 겪게 되시는 가장 큰 고민중에 하나가 자식들 도시락반찬 만드는 일이라는 말씀도 하셨다. 한번은 친구의 유혹에 아침일찍 설악산 권금성에 갔다고 한다.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고 산악회 시절부터 잘 알고 지내던 유창서 선배의 산장에서 묵고 다음날 가라는 권유에 흔들림도 잠시, 자식들 도시락 걱정에 그날로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오셨다고 한다. 그러한 맹목적인 사랑을 가족아닌 다른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는 것은 우리뿐아니라 아줌마 본인에게도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산악부생활을 같이 하시지 않으시면서도 오히려 산악부에서 일어나는 어려움을 더 잘알고 계실때가 많다. 누가 언제가서 그렇게 잘도 보고하는지 처음에는 그것이 이상하게 생각이 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이유를 차츰 알게 되었다. 어느새 내자신도 그토록 궁금했던 정보 제공자가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줌마는 그렇게 편하고 자연스러운 존재로 우리들 곁에 있는듯 없는듯 하신 분이였다.

한번은 이런일도 있다. 새학기가 시작이되고 해서 공책을 구입하러 갔더니 아줌마께서 놀라와 하시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 숱하게 문방구를 드나들었으면서도 정작 다른 학생들이 찾아오는 평범한 이유를 갖고 갔던 기억이 없었구나 하는 생각에 순간 당황하기도 했다. 결국 그 공책들은 1년을 넘게 강의실을 드나들어야 했다.

요즘은 성당에 나가신단다. 한번은 성당에서 크리스마스 공연때문에 부득이 DJ. DOC의 노래에 맞춰 안무를 하게 되었는데 한달간의 맹연습 끝에 공연을 성황리에 마치고 많은 박수를 받았다고한다. 그 짧은 순간에도 모든 사람들이 아줌마의 각고의 노력을 읽어낼 수 있었던것 같다. 그때 아줌마의 모습을 보지 못한것이 아쉽다.

항상 그렇게 젊음을 소중히 아낄 줄 알고 또 그 소중함을 일깨워 주시려 애쓰시는 모습은 순간순간 아무런 감동없이 살고있는 나의 생활을 돌이켜 보게된다.

지금도 가끔 볼일이 있을때면 문방구를 찾곤한다.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고 더이상 있어야할 이유를 찾지 못한 채 돌아서서 나온다. 등뒤로 들려오는 젊은 아가씨의 상냥한 인사가 귓전을 때리지만 그 이상의 따뜻함은 배어있지 않다. 부실에 있는 앨범에 조차 아줌마의 추억은 남아있지 않지만 아줌마가 주셨던 따뜻한 사랑은 우리모두에게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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