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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 탈퇴회원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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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의 광기(狂氣) 박용식(국문학과 90학번)
첫 아이를 낳을 때 아내는 부산에 있었고 나는 서울에 있었다. 출산일이 임박한 아내는 처가에 보냈지만 나는 기말고사에 제출할 보고서를 다 쓰지 못해 서울로 다시 와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학생 시절에 결혼을 해 보지 않고서는 경험해 보지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다. 동국대 산악부를 가입하긴 했지만 OB 주소록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사람 역시 하나의 아련한 아픔의 기억을 안고 산다. 잊을만하면 되살아 난다. 산악부에 가입하던 90년 봄에서 다시 시작하자. 선배님들(한번도 선배님이라 불러본 기억이 없다. '○○형'이라고만 했지.)께 인사를 드린다. 박용식입니다. 혹시 이름 대신 경상도 사투리 억수로 쓰는 '뽀식이'라고 기억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원우형과 진섭이형과 경원이에게도 인사를 한다. 원우형! 아직도 검은 뿔테 안경 끼고 다니십니까? 사가르마타 꼭대기에는 발자국 한번 찍어 보셨습니까? 영석이 형이 팍팍 다져 놓고 내려왔습니다. 진섭이형! 제가 휴가 나왔을 때, 산악부실 앞에 있는 담벼락에서 주말 산행가면 쓰던 버너에다 고기 구워 주셨죠? 하늘색 소주병에 술이 비워지면 차가운 얼음색으로 바뀌고 얼굴은 달아 올랐지만 형만은 그렇게 활짝 웃으시지는 않으시더군요. 형의 그 쓸쓸해 보였던 미소에 뜨거운 술 한잔 올리고 싶습니다. 응급실로 전화했더니 영안실로 옮겼다고 하더구나, 경원아! 그때 난 OP 근무로 바뀌어서 부대 담장을 넘어 너에게 갔었는데 기억이 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대원이형 헌상이형은 같이 산에 다니면서 제가 많이 괴롭혀 드렸죠? 서열상 뒤일지 모르지만 1학년 1년 동안 같이 산에서 살붙이고 잤던 형들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 그리고 가끔 신문이나 텔레비전에 등장하시는 영석이형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름을 불러 본 지가 7년 정도 지났지만 아직도 생생한 이름들이 있다. 성침이형, 영석이형, 진성이형, 맹덕이형, 형우형, 태곤이형, 그리고 진욱이형. 2학년 때 동기들이랑 술마시면서 진욱이형은 형이라 부르지 말자고 그랬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는 그냥 '진욱이'라고 했던 적도 있었지만 …… 그리고 에베레스트 C1과 C2 사이의 빙하에서 두들겨 맞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지만, 시간이라는 것이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번 봄에 진욱이형이 운영한다는 등산용품점에 배낭 사러가면 능청스레 막걸리 한 잔 받아달라고 때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막걸리 한 잔 사 주실거죠, 진욱이형! 그 외 한달에 한번씩 산에 가면 뵙던 형님들께도 인사를 드립니다.
난 올 2월에 학위를 받을 예정이다. 진주에 와서 얻은 작은 결실이라면 작은 결실이다. 스무 살, 스물한 살 그리고 군대 갔다 온 이후에도 같이 생활했던, 그래서 너무나 많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선배님들께 고마움을 전해 드리고 싶다. 산악부에서 얻었던 것들은 아직도 소중히 남아 있다. 20대 초반의 열정은 빨리 타올랐다가 시들었지만, 그래서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지금의 내가 있는 데 큰 뒷받침이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불러만 준다면 선배들에게 술 얻어먹었던 술의 1/10이나마 후배들에게 베풀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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