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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 탈퇴회원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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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저편에서 박 용수(인철 85) <사진 g13(사진원본)> 하루의 삶이 힘들고 짜증이 날 때, 옛일이 그리워지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을 인지상정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해 있는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IMF와 같은 힘든 세월도, 월드컵과 같은 환희도 잠깐 스쳐가는 과정일
뿐인데, 유독 산악부와의 인연 만큼은 떼어 놓을 수 없는 추억이 되어 버렸습니다. 산에 가면 선,후배들과 함께 산행했던 기억이 되살아 나고, 그
때를 회고하면 모두들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지곤 합니다. 필자는 1학년 동계등반을 앞두고 군 입대를 했기 때문에 후배들과의 산행기회는
별로 없었습니다. 많은 형들의 사랑만 듬뿍 받고 후배들에게는 그 사랑의 백분의 일 도 나눠주지 못한 못난 선배가 되어 버렸으니, 한없는 아쉬움만
남아 있습니다. 경필이형, 환기형, 종행이형이 신입생 후배라고 얼마나 이뻐해 주셨는지, 영석이형, 성훈이형, 진성이형, 승규형, 민호형이 또 그러했고,
맹덕이형, 원우형, 태영이형, 채강이형은 후배가 힘들어 할 때, 채찍과 술이라는 당근으로 산악부에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잡아 주셨지요. 머리털나고
처음하는 미팅을 주선해 주었던 호석이형 때문에 퇴계로 한가운데를 오리걸음으로 기합받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산노래를 많이 가르쳐 주었던 재원이형의
노래를 다시 듣고 싶고, 수요일마다 산악부가를 목청껏 큰소리로 부르고 싶습니다. 잊을 수 없는 병풍암 야간등반, 춘계등반에서
고된 암벽훈련의 피로를 야자타임으로 형들에게 하소연했던 기억, 하계등반 전에 예의 전설적인 마장동 여관에서의 전야를 선배들의 무성한 무용담과 함께
시작해서 백두대간의 웅장함을 경험하게 되었고, 하계등반 중 쇠나드리에서의 달콤한 시간과 단목령에서의 흡혈충 소동, 또 원우형의 코피, 찜빠부리다가
민호형의 ‘여기서 살래 아니면 따라 갈래’라는 소리에 왜 왔을까 후회했던 기억들이 글을 쓰는 이 시간에 그때의 추억들로 나를 미소짓게 합니다. 한번은 태영이형과 단둘이서 비가 억수같이 오는 날에 인수봉과 북한산장
릿지를 멋지게 타고 와서는 정말로 이제 내가 이제 동악의 산악부원이고 알피니스트다라고 자부심을 갖던 기억도 되살아 납니다. 해석도 안되는 영어실력이지만 영어원서를보고 매듭법과 워킹법을 공부해 집회시간에 발표했다가 경필이형에게 공부 더 하라는 핀잔을
듣고 술먹고 늦게 집에 간 날, 전공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돌이켜보면 필자도 언제나 기슬링 졸업하고 어택매볼까, 크랙타말고 슈즈
언제 신어볼 수 있을까 수도 없이 생각했었고, 선인봉 박쥐코스에서 처음 슈즈 신었을 때 으쓱해하던 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지금의 후배들에게도 그대로
이겠지요. 1학년 때에는 희양산에 가보는 게 꿈이었고, 그래서 선배들의 기억을
희양산의 그 코스 하나하나에서 느껴보고 싶었는데, 군대 제대하고나서 진섭이, 대원이 등 후배들과 하계 서포트갔던 것이 학창시절의 마지막 산행이
되어 버렸습니다. 1학년 하계등반 후에 동악 뺏지 받던 날, 필자는 얼마나 자랑스러워
하였는가. 아마도 그 뺏지가 그 때는 인생최대의 목표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일주일 내내 산악부실에서 청소하고 라면끓이고 장비점검하는 일로 형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었습니다. 지금도 1명 뿐인 85학번으로서 동악의 소식을 알라치면 그 뺏지의 자랑스러움과 반가움에 가슴이 뻐근해져옵니다. 형, 형, 형 모두 그립기만 합니다. 이 글을 읽는 선배님들과 후배님들 그리고 독자들에게 동악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말하려고 합니다. 그 때문에 나이 40이 다 되어서 옛 학창시절을 그리워하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거창하게 알피니즘과 히말리아즘을 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인생의 한 과정에서 동악과 함께 했던 그 산사람들과의 질기디 질긴 인연은 나의 삶에 계속 투영이 되어 있답니다. 신입부원을 거쳐
정식회원이 되고, 또 OB가 되기까지의 고된 훈련의 과정은 극복의 대상이 다만 산 뿐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고통을 극복하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동악은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쌓은 자일의 정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경험과 지혜를 배우는 훌륭한 선생님이라는 것입니다.
필자에게도 동악에서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지금까지의 인생을 더 비겁하게 도망가는 모습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아직도 훌륭한 선배님들의 모습을
비춰볼 때 한없이 어리석고 못난 인간으로서 산이 주는 겸허함과 포용력과 때로는 엄격함, 그 모든 것을 알기는 너무나도 어렵지만 그러한 산의 모습과
선배님들을 닮아 가려고 합니다. 동악이 없었다면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요? 사회생활에서 상사와 부하간의 또는 동료들간의 우애와 갈등을, 한 가정에서
부모와 자식간의 세대차이를, 부부간에 자존심 싸움을 끈끈한 자일의 정에서 배웠습니다. 그리하여 형들이 그렇게 많이 쏟아 부은 시간과 정열과 술값이
후배들에게 값진 것으로 그 맥을 이어오고 있는 곳이 바로 동악입니다. 형들에게는 한없는 죄인으로, 후배들에게는 얼굴없는 선배로 있는 모습이 부끄럽지만
혹시나 지금 이 순간에도 산악부가 힘들어 그만 두겠다는 후배가 있다면 필자가 당부하고 싶은 것은, 동악이 주는 의미를 다시 고민하여 보고 훌륭한
선배님들의 삶을 살펴보고 나서, 나도 큰바위 얼굴을 닮아가야겠는 마음을 다지라는 것입니다. 먼 옛날에 완당선생이 유배지에서 돌아와 과천에 초당을 짓고 들어 앉아서, 지난날의 세월을 회고하면서 마음의 휴식을 찾았듯이, 우리에게는 어지러운 세파에 찌들어 사는 삶을 돌아보게끔 하는 곳이 바로
동악이요, 그 과지초당이 산악부실입니다. 막걸리 사들고 모교를 찾는 날, 형 그리고 후배들과 함께 자리를 같이 하여 산과 사람과 우정과 사랑을
이야기하고싶습니다. 회사명 : 네비스텍(주)
정보기술연구소 소장 하는 일 : NMS,SMS,TE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주소 :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25-5 동화빌딩 10층 연락처 : 02-785-3030, 019-9757-8533 이멜 : yong@nevistec.co.kr, http://www.nevistec.co.kr 집주소 : 서울시 금천구 독산2동 1048-5 번지 이삭하이츠빌라 101호 집전화 : 02-809-8533 같은 과
후배였고 이쁜 각시와 딸 둘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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