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 회원가족의 글

무지개, 바위산 그리고 산길 / 최창수(`01 최진규의 아버지)


여름날, 소나기가 한차례 대지를 훑고 지나가면 바위산에 무지개가 걸릴 때가 있습니다. 무지개를 잡으러 갑니다. 물에 잠긴 징검다리 위에서 동동거리다가 어두움이 무서워 발길을 돌립니다. 어떤 때는 석양이 바위산을 황홀하게 물들입니다. 붉은 노을 덩어리를 잡으러 바위산을 오르다가 어두움에 쫓겨 내려옵니다.

나에게도 어여쁜 누이가 있습니다. 철길 옆 냇가에서 맑은 웃음을 짓는 누이입니다. 어머니의 애끓는 울음에 잠이 깨어보니, 채독에 걸려 시름시름 앓던 내 누이가 가마니에 싸여 문지방을 넘고 있습니다. 어릴 적 어여쁜 내 누이는 그렇게 재너머 산길로 갑니다. 산길에 그렇게 눕습니다. 어린 혼이 엄마 찾아 오는 길에 말참견하다 날이 새도록 한다고 하면서, 산길 자락에 그렇게 눕혀 놓았답니다.

나와 무지개, 바위산 그리고 산길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이 두가지 유년기의 기억은 하나의 꿈과 하나의 아픔으로 내 피안의 세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지독한 아픔은 인생을 아름답게 보게 하는 마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산으로 난 꼬부랑길을 보면, 그 산 속에 떡 팔러 나간 꼬부랑 할머니를 기다리는 남매가 있을 것 같고, 담배 피는 호랑이도 만날 수 있을 것 같고, 산길가에 누워 있는 내 어릴 적 누이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 꼬부랑 산길을 걷고 싶습니다. 쉰을 넘긴 이 나이에도 산길을 보면 어릴 적 어여쁜 내 누이를 만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힙니다. 산으로 드는 길은 나를 유장하고도 그윽한 피안의 세계로 인도하는 입구가 되었습니다.

열 일곱 살 경, 나는 산과 또다른 인연을 맺습니다. 우연히 정릉에서 시작하여 우이동으로 내려오는 길이었습니다. 여름날 우이산장에서 내려다 본 골짜기는, 수많은 사람들과 나무와 돌, 풀뿌리들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한 폭의 완벽한 풍경화였습니다. 산 속이 이렇게 넓고 많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어울릴 수 있다니,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그 날부터 나는 산에 빠졌습니다. 산길에 있는 돌의 위치와 나무의 모양새까지도 알 정도로 삼각산, 도봉산, 불암산, 수락산에서 살았습니다. 그 곳은 청년 시절의 내 놀이터였습니다. 그러던 중 정말 우연한 기회에, 지금은 신내동으로 변해버린, 내 유년 시절을 보냈던 구리읍 신내리를 가게 되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내 눈 가득히 들어와 박히는 바위가 있었습니다. 불암산 바위였습니다. 불현 듯 망각 저 편에 있던 무지개와 바위산이 나를 유년 시절 다섯살박이로 되돌려 놓았습니다.

바위산에 오르고 싶었던 다섯살박이의 꿈이 이루어진 것은 진규가 중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진규에게는 기개를 줄 요량(?)으로, 나로서는 유년의 꿈을 이루고 싶은 욕망에 인수봉 등반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평촌공고의 전완근 선생님, 파주중학교의 신종균 선생님과 함께 인수봉 고독의 길을 올랐습니다. 삶의 희로애락이 질펀한 생애를 살아오면서도 끝내 놓지 않았던 바위산 오름짓에 대한 열망이 현실로 다가온 것입니다.

붉은 악마가 ‘꿈은 이루어진다’고 말했지요. 내 유년기의 꿈, 무지개가 걸린 바위산을 아들과 함께 올랐고, 이제 내 숨을 이어받은 아들이 지구촌의 산과 들을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동국대 산악부와 산을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꿈은 개인의 욕망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욕망은 자아실현의 첫 단계입니다. 우선 자신을 위한 꿈을 품으십시오. 그리고 이웃과 지역과 세계를 향한 꿈을 키워가기를 바랍니다. 모름지기 겸손한 마음으로 산을 품어내는 여러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나는 오늘도 산을 오르는 아들에게 꿈을 권합니다. 그리고 나도 작은 꿈을 품어냅니다. 세계를 품을 수 있는 넓은 마음과 그 세계를 날 수 있는 생활인으로 우뚝 서 주기를 바라면서, 아들을 바라봅니다.

2002년 7월 22일, 오늘로 32일째 유럽 여행 중인 아들을 생각하면서 이 글을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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