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 테마수필

앵카! 앵카! 짧은 순간, 긴 여운

 

이번 테마수필의 주제는 ‘바위산행의 추억’입니다.

 

앵카! 외마디 비명으로 시작되고 끝나는 아찔한 낙하,

그 짧은 몇 초의 시간 동안

지금까지 살아온 짧지 않은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가기도 했지요.

지금도 인수봉이나 선인봉을 바라보면 그 순간의 기억에

등줄기가 서늘해지기도 합니다.

때론 가스등 켜진 텐트 속 안주거리가 되기도 하고

바위에 매달려 벌벌 떠는 후배에게 들려주는 무용담이 되기도 합니다.

그것도 부족해 내 몸에 훈장을 남기기도 했지만

바위를 향한 열정에 긴 여운을 남겨주는 소중한 순간이었습니다.

 

 

구곡의 추억 – 이한직(81)

 

문득 과거를 기억하려하니 언제였는가 하는 생각만이 앞서게 된다.

분명 그 찰라의 뚜렸한 생각과 장면은 연출이 되는데 십수년이 지난 지금 그날의 기억은 아련한 느낌으로 다가선다.

군대를 제대하고 다가선 첫 겨울의(아마도 87년 1월경) 설레임

빙벽에 대한 하얀 마음으로 늘 한구석에서 활화산처럼 자리하고 있을때쯤 성침이형과 종행이(종행이의 젊은 모습이 이제는 자꾸만 멀어져 가는 듯한 현실 앞에서 미안함을 주체 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춘천발 기차를 타고 강촌의 구곡빙벽으로 달리고 있었다.

 

 설레임과 긴장속에 도착한 주말의 빙장에는 이미 젊은 함성이 계곡을 흔들고 있었다.

우리는 배낭을 풀어 장비를 착용하며 앞 팀의 등반을 보기 위하여 고개를 연신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며 순서를 기다린다.

지난겨울에도 선등을 해본 경험이 있는 내가 먼저 올라가기로 한다. 종행이가 빌레이를 보는 동안 성침이형은 우리들의 모습을 약간의 긴장과 함께 조금은 나른한 자세로 즐기고 있으리라.

“출발”이라는 구호와 함께 두팔과 다리는 힘차게 얼음조각들을 만들어낸다.

좌측 중단 고드름지대에 다다렀을 때 ‘이게 아닌 것 같은데’ 하는 느낌이 점점 밀려드는 것이 아닌가!

길에서 관찰을 하기에는 약간의 얼음이 갈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보니 그 높이가 족히 1m 가 넘게 붕괴 되어 있었다.

두팔을 벌려 힘껏 머리위를 찍고 두다리를 무언가에 걸치기 위하여 허공을 이리저리 저어보며 안간힘을 다하는데 짧은 다리라 그래서인지 이것이 마냥 그 모양새다. 얼마나 그 동작을 되풀이 했을까!

점점 팔에 힘은 빠져들고 내려가자니 지금까지 올라온 것이 아깝고 ‘내려가 말아’ 수없이 갈등하며 고개를 떨궈 빌레이를 보고있는 종행이의 모습을 보는 순간 ‘아’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것은 친구의 모습에서 몹시 불안한 상황이라는 것을 느끼며 말은 하지 않지만 마음속으로 ‘제발(떨어지지말고 힘을내)’ 이라는 그 무언의 눈빛을 보았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우여곡절끝에 두다리의 코는 얼음에 걸쳐지고 이제는 됐구나 싶어 두다리를 쭉펴고 일어서 오른쪽 찍고 왼쪽을 찍으려는데 또 다시 아찔한다.

왼쪽팔에 힘이 완전히 소모된것이다. 아무리 찍어도 얼음은 픽켈의 날카로움을 거부하고, 한 스텝만 더 오르면 중간 테라스에 오를 수 있는데…….

나도 모르게 다시 한번 아래로 고개를 떨구어 그 놈의 모습을 보니 아직도 아까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고있는 것이 아닌가!

‘더 이상은 안돼’를 마음 속으로 외치며 마지막 절규듯 휘둘러 찍은 픽켈의 경쾌한 소리는 나를 드디어 테라스에 오르게하고 확보물을 설치하고 나서도 한참을 휴식하고 나서야 후등자에게 ‘완료’를 외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의 느낌들은 서울행 기차안에서 한잔의 소주와 함께 안주거리를 만들고 또 그렇게 아무일도 없었던 것 처럼 내일을 약속한다.

그 약속은 세월이 흘러 친구는 우리켵에 없고 덧없는 시간의 흐름속에서 2003년 신년산행을 다시 이곳에서 하게 되었으니 너무나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에서 젊은날의 친구모습을 아직도 간직할 수 잇었다는게 그또한 행복이라면 어떨런지하는 마음이다.

 

2003.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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