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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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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먹고 피는 꽃, 마라톤 - 김규만(경부캠퍼스 OB) <나의 마라톤 이야기>
삶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픔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은 결코 오리라.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지난 것은 모두 그리워만 진다. <푸슈킨>
마라톤을 뛸 때 내 마음을 가장 잘 질책하고 지적해 준 시이다. 그 어려움도 순식간에 지나가고 그 지나간 괴로움조차 그리워진다.
아테네의 장군 밀티아데스는 마라톤 근방에서 전혀 공격을 예상치 못하고 있던 페르시아군을 습격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수많은 페르시아군이 사망을 하고 살아남은 자들은 다시 배를 타고 도망을 쳤다. 그러나 그 페르시아군들이 배를 타고 다시 아테네를 공격하려는 것을 알았다. 전령 페이디피데스에게 페르시아 군대가 아테테를 공격하니 아네테인들에게 준비하라고 명령했다. 그는 이 소식을 알리려 마라톤 벌판을 가로질러 아테네로 향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마라톤 달리기이다. 그는 아테네에 도착하여 소식을 전하고 쓰러져 죽는다. 밀티아데스장군도 전군대를 이끌고 그 길을 따라 전속력으로 행군하였다. 그들이 아테네 항에 도달하였을 때 멀리 수평선에 페르시아함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용맹무쌍한 군대가 기다리리라고 예상을 못하였던 페르시아군은 이들과 싸울 엄두를 못내고 본국 페르시아로 돌아가 버렸다. 아테네는 물론 그리스 전지역이 전쟁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이 때가 기원전 490년이다. 기원전 490년, 전령 페이디피데스의 장렬한 죽음을 기념하기 위해 부활한 것이 바로 마라톤 대회이다.
1896년 그리스에서 제 1회 아테네 올림픽경기가 시작되었을 때, 전령 페이디피데스의 전설은 다시 살아난다. 아테네의 ‘마라톤 다리에서 올림픽 스타디움’까지 40km(24.85마일)달리기를 시작으로 마라톤대회가 처음 열리게 된다. 40km는 오늘 날 42.195km와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42.195km로 결정되었는가? 1924년 파리 대회 이전에는 거리가 약간씩 차이가 있었다. 많은 논란 끝에 파리 올림픽에서 현재 42.195km로 결정이 되었다. 유명한 보스톤마라톤의 공식 풀코스기록은 1927년부터이다. 처음 조직된 1896년 4월 10일의 아테네 올림픽에서 그리스인에게 마라톤은 매우 중요한 경기였다. 그래서 마라톤은 올림픽의 마지막 피날레 경기종목으로 자리잡게 된다. 마라톤은 이 때부터 올림픽 경기의 꽃으로 취급된다. 많은 사람들은 마라톤은 운동의 마지막 선택이라고 한다. 그래서 마라톤에 약물 중독처럼 빠져서 전국 대회마다 헌팅하듯 참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필자는 3회에 걸쳐서 마라톤에 참석했다. 운동도 전혀 안한 상태에서 처녀 출전하여 바로 풀코스를 뛰었다. 이런 다음 나는 걸음도 제대로 못 걸을 지경이었다. 진정 무식이 용기였다는 것을 실천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어기적거리면서 ‘뚱뚱한 오리’처럼 걸었다. 천하에 이런 ‘단순, 무식, 과격’이 있을 수 있을까? 나는 平散 홍종선과 2000년 12월 31일 오전 10시에 여의도 시민공원을 힘차게 출발하였다. 진정한 의미의 20세기를 보내는 날이었다. 우리의 반평생을 의지해 왔던 20세기를 보내는 기념으로 마라톤을 뛰기로 한 것이다. 20세기는 가고 있다. 종반을 향해 치닿는 세기말을 위한 성대한 세레모니로 우리는 마라톤을 선택했다. 그래서 온 몸을 다 바쳐서 퍼포먼스를 한 셈이다. 우리는 여유있는 듯 웃고 있어지만 가슴에는 세기말을 보낸다는 비장감이 넘쳤다. 우리는 허탈한 가슴에 자객처럼 칼을 한 자루 씩 품고 있었다. 긴 타이즈와 실크티 그 위에 오리털 조끼를 입고 머리에 벙거지(바라크라바)를 썼다. 팬티가 부담스러워 그냥 타이즈만 입었다. 이 타이즈는 MTB를 탈 때 입던 것이고 사타구니 부근이 패드가 덧대어져 있어서 노팬티를 한 것이었다. 이 풍속사범(?)은 나중에 혹독한 대가를 치뤘다. 선수들은 한강을 거슬러서 자전거 도로를 뛰었다. 시간의 흐름은 괴로움과 반비례한다. 지독하게 시간이 더디 가던 순간이었다. 처음 20km는 그런대로 잘 갈 수 있었다. 속도를 내서 뛰면 몸에 열이 나서 괜찮을까 했지만 계속 춥고 바람은 칼날 같다. 아마 한강 다리를 열 개도 넘게 지난 다음 광진교를 지나 위쪽에 반환점이 있다. 나는 지금 미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SMILES 나는 나 자신을 원망하고 있었다. ‘바보’라고 ‘머저리’라고 그렇게 연습 한번 안 하고 뛸 수 있는 단순무식이 어디있냐며 얼굴을 찡그리면서 나는 뛰었다. 그러나 이런 원망은 나를 점점 더 힘들고 피곤하게 할 뿐 도움이 전혀 안되었다. 제발 어렵고 힘들 때 남들과 똑같은 인상을 쓰고 신경질을 부리는 것이 얼마나 지루하고 유치한가? 너는 이런 반성이 없는가? 그렇다면 얼굴에 SMILES를 그리자. S-MILE-S(복수형)은 영어단어 중에 가장 긴 단어라고 한다. S와 S 사이가 자그마치 마일(MILE)의 거리란 말이다. 1 mile은 1,609m 이다. 이렇게 긴 단어를 본 적이 있는가? 마라톤에서 한 번의 웃음이 마일을 달려가게 한다. 여러 번 웃으면 그만큼 쉽게 달릴 수 있다는 말이다. 웃음은 달리는 묘약이라는 말이다. 다소의 과장은 있지만 다른 기회에 필자가 쓴 ‘웃음에 대한 보고서’를 보면 조금은 이해가 될 것이다. 나의 WILD한 인상을 MILD한 표정으로 바꾸려 노력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WILD와 MILD의 차이는 인상을 바꾸는 것 정도의 차이이고 영어의 W를 뒤집어 M으로 바꾸는 것만큼 쉽다. 경험상 힘들 때 인상을 찌프리면 더 힘들어진다. 속은 썩어도 미소를 지으면서 뛰어라. 이런 말을 나에게 전하면서 뛰었다. 매서운 강바람을 맞으며 추위와 배고픔과 피로를 벗삼아 뛰었다. 죽을 맛이었다. 음료수대에는 컵에 물이 얼어붙어 얼음이 씹혔다. 그래도 얼음 섞인 찬물을 마셔야 했다. 반환점이 가까워지니 찬 바나나와 쵸코파이와 사탕이 음료수대에 놓여 있었다. 아침식사를 거른 나는 이것을 식사대용으로 먹었다. 맛이 있어서 먹은 것은 아니고 돌아갈 길이 없어서 그것을 먹어야 했다. 88도로에 올라가 택시를 타고 가고 싶었다. 그러나 알다시피 88도로에서 세워주는 택시는 없다. 그렇다고 한강 물에 뛰어들 수도 없는 일이다. 뛰어드는 순간 5분 이내에 동사할 것이다. 선택의 길은 없다. 백척간두 진일보는 아니지만 오직 일로매진(一路邁進) 밖에 없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뛰는 수 밖에 없을 뿐. 기왕 버린 몸, 웃으면서 달린다. 그래서 기어서라도 결승점에는 들어갈 것이다.
고백성사의 길 (고통을 통한 회개) 사람은 고통을 통해서 회개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순간 무지 많은 자기반성의 기회를 가졌다. 마라톤의 가치를 이 때 나 자신의 성찰에 맞추었다. 나의 이 유치한 고백을 사람들은 비웃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의 이 처음의 경험이 그래도 순진하고 때가 묻지 않았으므로 자랑스럽지는 않지만 나는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못해서 내 사랑하는 딸 가인이와 그 동생 오공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어머니에게 자식 노릇 못한 것, 동생노릇, 형노릇 못한 나 자신을 贖罪해 달라고 빌었다. 나태한 나, 게으른 나, 품위 없는 나, 참을성 없는 나, 유치한 나를 부르며 부족한 나를 질책하며 원망했다. 이런 처절한 자기 부정을 통해서 진리에 가까워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때 마라톤을 열 번만 완주하면 내가 곧 聖者가 될 것 같다는 생각까지 했다. 다섯시간은 매우 지루한 시간이다. 이 시간 자신을 바라보고 성찰하는 기회로 삼는다면 이것은 진정 고백성사의 길이고, 회개, 화합, 통일로 이르는 길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마음으로 통일로를 달려서 비무장지대를 지나 1번 국도를 타고 평양 신의주까지 달리고 나아가 압록강 철교를 건너서 만주벌판 간도의 일송정이 있는 용정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용정의 샘물에서 목을 축이고 우리의 아팠던 과거의 생채기를 어루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라톤을 하면서 만주벌판 북간도 대륙을 향해 달리는 내 마음은 불탔다. 나는 과대망상에 젖어서 한껏 우쭐해하며 달리기도 했다. 현실의 가혹한 쓰라린 아픔을 나는 이런 과대망상과 속죄의식으로 Trans를 하고 있었다. 사실은 따뜻한 온돌에 누워 이리딩굴 저리딩굴하는 꿈을 꾸었다. 맛있는 차돌배기와 등심을 구워먹는 생각도 조금은 했다.
권총 한 자루와 수류탄 2개, 풍기문란 30km지점부터는 다리가 올라가지 않는 것을 경험했다. 긴 타이즈를 입었지만 아래 사타구니 부근이 얼어붙고 있었다. 이 즈음에 ‘남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화두가 떠올랐다. 남자는 권총 한 자루와 수류탄 2개를 지니고 산다. 우와? 놀랍다! 그렇게 큰 사람이 어디 있는가? 이 말은 은유법이지만 과장법이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좀 양심적이다. 다른 남자들은 박격포 1문과 투포환 2개로 표현한다. 여성 여러분! 남자들의 과장을 용서하시라. 너무 급해서 되는 대로 허풍을 좀 쳤답니다. 이 권총과 수류탄은 동파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차가운 것은 참을 수 있는데 통증이 느껴지는 것은 참기 힘들었다. 나는 이 때 사람들이 보건 말건 그것을 부여잡고 주무르는 풍기문란 행위(?)를 자행했다. 나의 품위와 도덕성도 이 추위 앞에 어쩔 수 없었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 남자여! 그때 체감온도가 영하 15℃가량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풍기문란 덕분인지 모르지만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난 무기는 다행히 동파되지는 않았다. 그 이후에도 큰 장애 없이 평소의 임무에 충실하고 있다. 이제는 어떤 일이 있어도 팬티는 제대로 입고 다녀야겠다는 “품위선언”을 이 때 했다. 그러나 풍기문란도 참 어려운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그 글자를 한자로 써 보라. 상당히 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風紀紊亂이다.
품위 찾다 얼어죽을 뻔 경험이 많은 노장 선수들의 농담이 기억났다. 그들은 날씨가 추울 때는 팬티 안에 여성용 패드를 붙이고 뛴다고 한다. 나는 그 때 그 말을 들으면서 “낫살이나 먹은 사람들이 유치하게 스리 스리!”하면서 그들을 비웃었다. 그리고 그 날 많은 선수들이 쓰레기 봉지를 뒤집어쓰고 뛰었다. 마라톤 풀코스를 달린다는 작자들이 세상에 쓰레기 봉지를 품위 없이 뒤집어 쓸 수 있는지! 그래 이까짓 추위에 마라톤을 한다는 작자들이 그런 걸 뒤집어 쓸 수 있는가? 당장 돌아가거라. 쯧 쯧 쯧! 그러나 이 물건도 나중에 들으니 추운 날씨에 저체온을 예방해주는 보온 장비였다. 품위를 고집한 나는 무지하게 추위에 떨었다. 품위가 두 번에 걸쳐 나오는데 앞의 품위는 무모함이었고 두 번째 품위는 실사구시(實事求是)를 망각한 처사였다. 나는 그래서 그 일 이후에 전래의 속담을 나 나름대로 고쳤다.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양반이고 곁불을 째는 한이 있더라도 수신(守身)이 먼저다’. 품위 찾다가 우리는 얼어죽을 뻔했다. 쯧 쯧 쯧! 맨 날 TV에서 황영조나 이봉주처럼 늠름하게 뛰는 것만 보아서 생긴 무지였다.
유체이탈 이렇게 자기반성을 많이 하고 뛰었지만 제 정신이 없이 무념무상으로 내 고통을 바라보며 뛰는 순간도 많았다. 고통이 심하면 나 자신의 고통을 내 몸밖에서 바라보는 그런 착각이 드는 때가 있다. 이것을 “유체이탈”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2시간에 뛰는 거리를 다섯 시간 넘겨 뛴 주제에 별 망상도 많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해본다. 제정신이었고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면 뛸 수 있었을까? 다행히 제정신이 아닌 덕분에 귀소본능처럼 출발지점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 점은 분별력이 없는 자신에게 너무나 고마웠다.
우리는 체면도 자존심도 없는 뻔뻔스러운 나는 그 때 뛰면서 나 자신의 나약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명색이 원정등반, MTB로 해발 3천 5천m 지역을 주파하고, 윈드서핑 등으로 단련된 몸이라 자신이 있었는데 이건 장난이 아니었다. 단군이래 나의 사전에 이렇게 힘든 운동은 없었다. 나 자신을 죽이는 고통에 빠져서 정말 ‘죽어라 죽어라’하며 달려야했다. 백발을 날리는 할아버지, 할머니마라토너들이 ‘휙휙’ 앞을 추월해 갈 때는 은빛 비행물체가 지나가는 것 같았다. 이거 인간의 자존심이 아니었다. 김석원과 김현모 제군들에게 진정 미안해서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대충 3시간 정도면 가능할 걸로 믿었는데 4시간이 지나도 나타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체면도 자존심도 없는 뻔뻔스러운 인간이었다. 그들에게 이 지면을 통해서 용서를 구한다. 그들은 이렇게 초라하고 비참한 인간들을 열렬히 환대해 주었다. 이 빚을 어떻게 갚을꼬! 내가 갚을 방법은 단 하나 그들을 회유해서 마라톤에 입문을 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우리의 무모함을 직접 체험시키는 방법 밖에 없다. 그 순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회개할 기회를 줄 것으로 믿는다. 열과 성을 다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과 역지사지(易地思之)할 것을 제안한다.
무모한 이야기 하나 더. 고백할 것은 깨끗이 고백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우리는 그 날 아침 MTB 자전거를 가지고 대회장에 왔다. 마라톤이 끝나면 ‘그림 같이 ’MTB를 타고 불광동 우리의 본거지로 돌아갈 생각을 했다. 정말 그림 같은 생각이었다. 아니 꿈보다 해몽이 더 좋은 거지 뭐! 그러나 현실은 不當不當, 千不當萬不當! 이렇게 ‘당당’거리는 우리를 누가 제정신이라고 하겠는가? 누가 이승에서 이런 만용을 용서할꼬? 이렇게 촐랑대고, 품위 없고, 가벼운 중생들을 잡아가는 귀신은 도대체 뭐 할까? 할 말이 없다!
게으름에 대한 변명 마라톤은 체력면에서 일시적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꾸준한 연습과 인내심, 자제력이란 이력서를 쓸 수 있어야 가능한 운동이라는 사실을 피부로 실감했다. 세월이 가고 이를 ‘통한(痛恨)의 념(念)’으로 반성한 한 사람은 날로 실력이 더해서 이제 4시간에 뛰는 마라토너가 되었다. 그는 체중이 10kg이상 감량이 되어 새로운 전성기를 맛보고 있다. 그를 축복한다. 그의 이름이 앞에서 언급한 平散홍종선이다. 그리고 Another man은 여전히 게으름에 빠져서 이런 잡문이나 쓰고 있다. 그러나 늦게 일어나는 새도 할 말은 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다’는 속담에 젖어 늦게 일어나는 새를 너무 무시하지나 말일이다. 늦잠 자는 새도 있는 게 현실이다. 모두다 일찍 일어나 벌레를 다 싹쓸이하는 것도 문제다. 잠꾸러기가 있어서 일찍 일어나는 자가 빛나기도 한다. 나는 게으르게 사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득바득 이를 갈면서 바지런을 떨 일은 없고 여유를 찾고 싶다. 그 바지런 때문에 수박 겉핥기를 했던 일들에 대해 음미하는 여유도 즐기려 한다. 게으르게 사는 삶에서 진지하고 깊은 성찰이 나온다. 기지개를 켜고 천천히 달려보려 한다. ‘잘 될까?’ ‘안 되면 말지 뭐!’ 이렇게 생각하지만 일단 시작하면 광분하는 것이 문제다.
순국선열보다 위대한 마라톤 선배들 마라톤은 땀의 결과이고 고통을 먹고 피어나는 꽃이다. 마지막 결승점에서는 누구나 꽃이 된다. 오랜 장마 뒤의 햇볕, 오랜 고통 뒤의 자유, 오랜 기다림 뒤에 만남,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어울리는 말은 ‘마라톤을 뛰고 난 뒤 사람들은 모두 꽃이 된다’는 표현이 가장 어울리는 말인 것 같다. 나의 구겨진 자존심을 딛고 나는 나의 오만함에 대한 많은 반성과 함께 겸허함을 배웠다. 이 순간 마라톤 선배들이 순국선열들 보다 위대하고 커 보였다. 동아마라톤을 뛸 때 아침은 설사교향곡이 울러 퍼졌다. 이 때는 하프 21km만 뛰어서 크게 문제는 안되었다. 나는 지금 목표라면 풀 코스를 4시간대 벽을 깨는 정도에서 만족하려 한다. 더 이상 욕심을 부릴 생각은 없다. 나는 프로가 아니라 취미로 즐길 뿐이다. 우리 같은 아마추어는 선수급의 기록은 크게 관심이 없다. 그들의 화려한 기록 이면에 혹독한 훈련과 자기와의 싸움이 있었을 것이다. 편하게 살아온 내가 그들의 기록을 기웃거린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4시간대를 넘기는 힘들 것이다. 고시공부하듯 매달리면 3시간 30분이고! 그러나 나는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다. 벗들이여 혹 착각하지 말라. 2시간 7분대의 기록을 가진 이봉주의 기록에 비교하여 3시간 30분을 우습게 보지 마라. 3시간 30분이란 기록은 평범한 소시민에게 범접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난관이다. 생각과 현실은 엄청 다르고 차이가 난다. 당분간 나와의 싸움을 계속해 볼 작정이다. 이것이 극복되어야 기록과의 싸움을 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후 통신> 마라톤은 충무로의 이영균 형도 하신다. 나는 종섭이형이 같이 하기를 바랬다. 요한바오르나 알리보다는 형이 훨씬 더 나았기 때문이다. 희망을 가졌지만 그러나 형은 가고 없다. 망연자실. 신의 뜻을 지극히 애통해 하노라! 죄스러울 뿐이다. 나의 유치한 마라톤 이야기가 부끄러울 뿐이다. 나의 고해성사로 끝내야 할 것 같다. 활자에서 자유로워지는 이 순간부터 마음껏 울어도 될 것 같다. 어허라 상사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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