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박영석 14고봉 등반기록 정리 / 윤길중(92)

1. EVEREST(8,848m)     2. 초오유(8,201m)     3. 안나푸르나(8,091m)     4. 다울라기리(8,167m)
5,6. 가셔브롬Ⅰ(8,068m), Ⅱ봉(8,035m)     7. 로체(8,516m)     8. 낭가파르밧(8,125m)
9. 마나슬루(8,163m)     10. 캉첸중가(8,586m)     11. 마칼루(8,463m)     12. 브로드피크(8,047m)
13. 시샤팡마(8,027m)     14. K2(8,611m)



1. EVEREST(8,848m) 애칭-산들의 어머니
등반개요
대의 명칭 : 4326 한국 사가르마타 남서벽 원정대
대 상 지 : 네팔 히말라야의 사가르마타(8,848m,에베레스트)남서벽 루트
기 간 : 1993.03.11 - 1993. 05. 31
목 적 :
1) 대학 단일팀으로서의 세계최고봉 등정
2) 세계 최고봉에 통일 염원 발원문 및 불상 봉안
결 과 :
3명의 대원 남동릉 루트로 등정
정상에 통일 염원 발원문 및 불상 등정
1명의 대원 무산소 정상등정
2명의 대원 등반 중 추락사

운행일정
2.25 선발대출국(김진성대원)
3.11 본대출국/선발대 아이스폴 루트작업 시작
3.16 본대 카라반 시작
3.21 베이스캠프 설치
3.30 남서벽 C1건설(6,100m)
4.06 남서벽 C2건설(6,500m)
4.10 남서벽 C3건설(6,900m)
4.15 남서벽 C4건설(7,600m)
4.19 남서벽 C5건설(8,300m)
4.20 남서벽 1차 등정시도 (박영석 등반대장과 까지셀파)-실패
5.06 남서벽 2차 등정시도 (박영석 등반대장과 까지셀파)-8,500m도달
5.11 남동릉 등반개시
5.16 정상등정(14:20분-박영석, 안진섭, 김태곤) C4로 하산도중 안진섭대원 조난
5.17 남원우, 안진섭대원 조난사/박영석, 김진성, 김태곤 C2로 하산
5.18 故안진섭 대원 시신 베이스로 수송
5.21 베이스철수, 하행카라반 시작
5.22 故안진섭대원 팡보체 사원에서 화장
5.25 카투만두 도착
5.31 서울 귀국
6.01 故 남원우, 안진섭 대원 영결식

운행일지(김태곤)
1993년 5월 16일 01:00 스페인팀, 인도팀 및 미국팀이 정상공격을 시도하였으며, 텐트안에서는 대원들의 목소리와 눈 밟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팀은 01:00 셀파인 까지와 영석이형은 무산소 등반과 루트공작을 하려고 우리보다 일찍 출발을 하였고, 진성형이 운행속도가 느리므로 다른 대원과 운행 속도를 맞추기 위해 02:00에 출발을 하였다. 진섭이형과 나는 03:15에 마지막으로 정상을 향해 사우스콜을 떠났다. 까미는 C4를 지키며 정상공격조를 도와주었다.
전방에는 정상으로 향하는 렌턴불빛들이 줄지어 빛나고 있었다. 진성이형을 1시간정도 올라가서 만났는데 아주 힘들어하고 계셨다. 진성형을 뒤로 하고 남봉으로 올라가는데 진섭이형이 운행속도가 빨라 나와 형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아래에서 올라오는 진성이형은 언제부터인가 안보이기 시작하였다.
남봉 릿지상에 도달하니 04시로 날이 밝아졌으며, 영석이형과 진섭이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상을 향한 행렬은 길게 늘어져 있었으며, 거의 말미에 우리가 등반을 하고 있었다. 이때부터 진성이형의 모습은 볼 수 가 없었으며, 휴식을 취하는 인도-네팔 여성대의 대원1명과 셀파1명을 지나쳤고, 계속해서 정상으로 향하는 행렬을 따랐다.
말로만 듣던 이곳 남봉릿지는 4-50도의 설벽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능선상이라 완만한 사면들이 많았다. 날씨도 쾌청하여 등반하는데는 더울 정도였다. 20보정도 걸음을 옮기고 숨을 고를때 밑으로 펼쳐진 티벳쪽의 산맥들을 볼 수 가 있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영석이형과 진섭이형은 경험이 많으므로 운행속도가 빨랐으나 나는 원정이 처음이므로 속도가 늦어 50미터정도 뒤에 올라가고 있었다.
고정로프 한 줄에 5-6명씩 유마르로 매달려있는 모습은 북한산의 인수봉에서 굴비엮듯 줄줄이 매달려 있는 모습을 연상케 하였다. 고정로프가 많이 손상을 입지 않았나 하는 걱정까지 하였다. 실상 급경사의 고정로프에 도달하니 로프가 바위를 접한 곳은 많이 손상되어 있었다. 뒤에서 매우 느린 속도로 오르는 모습에 형들은 사기를 돋우어 주셨고, 특히 영석이형은 무산소로 오르시는 모습은 가히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그 와중에서도 휴식할 만한 장소를 택하여 나를 기다려 주시어 더욱 힘을 낼 수 있었다. 영석이형 가까이 접근하면 형의 거친 숨소리는 100미터를 뛰고 난 직후의 숨소리처럼 거세게 들려왔다.
새벽에는 산소게이트를 [2]로 맞추어 올랐으나, 고도를 높일수록 한 단계 높여[3]까지 틀어서 산소를 마셨다.
등반 루트상에 많은 산소통을 볼 수 있었는데 먼저 올라간 대원들이 하산 때를 대비하여 산소를 데포해 놓은 것이 많았다. 진섭이형과 나도 배낭에 있는 산소 2통 중 압력이 낮은 산소 1개를 데포시키고 올라갔다.
13:00남봉에 도착하여 영석이형의 도움으로 진섭이형은 까지가 데포시켜놓은 예비용 산소를 교환 하였고, 나의 산소통은 타 원정대가 데포시킨 산소통으로 갈아 끼웠다.
14:00에 힐라리스텝을 오를 때 먼저간 셀파 까지가 하산하여 내려왔으므로 만날 수 있었다. 영석이형은 까지가 정상에 불상을 봉안하고 왔으므로 불상 사진을 위해 까지를 설득하여 다시 정상까지 함께 올라갔다.
드디어 14:00에 정상에 설 수가 있었다.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이제까지 준비했던 모든 일들이 마치 필름을 다시 감는 것처럼 하나, 둘 스쳐 지나갔다. 정상전경은 많은 이들의 자취를 볼 수 있었으며, 깃봉에 꽃혀 있는 빨간색 깃발은 우리를 반겨주었다. 진섭이형은 베이스와 무전교신을 하시는데 제대로 수신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베이스를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으니 말이다. 카투만두를 떠난 지 두달만에 정상을 밟을 수 있었다.    

2. 초오유(8,201m) 애칭-여신이 거처하는 집
등반개요
대의 명칭 : ‘94 동국대 초오유(8,201m), 시샤팡마(8,012m)원정대
기 간 : 1994. 08. 23 - 1994. 10. 13
목 적 :
중국서장 민속고찰
8,000m급 2개봉 무산소 연속등정
대 원 : 박영석대장, 김헌상(철학과4년), 이장원(정외과2년)
결 과 : 박영석대장 정상 등정

운행일지-김헌상
1994년 9월 27일 드디어 정상공격의 날
C2에서부터는 알파인스타일로 등반에 임했다. 다행히 추석 이후의 날씨가 연이어 매우 좋아서 우리의 등반을 도왔다.
새벽 2시 40분, 영석이형과 셀파 나띠는 정상으로 출발했다. 해를 등지고 있어 11시가 넘은 시각에 햇살을 보는 관계로 영석이형은 무전기로 손발이 얼었음을 호소해왔다. 프랑스팀의 C3에 잠시 머물다가 08:35분에 다시 출발.
드디어 2시 10분에 정상(8,201m)을 밟았다. 나띠는 그날로 줄행랑. ABC까지 빠졌고, 한선배님, 진철, 왕용이형, 셀파 파노루는 C3를 건설하고, 하산하는 영석이형과 합류, 함께 야영에 들어갔다. 나와 태순이형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C1을 고수하기로 했다.
28일, 2차 정상공격조도 순조로운 운행 끝에 마침내 오후 2시 20분에 정상을 밟았다. 그리고 그날로 C2까지 하산했고, 영석이형도 무사히 ABC로 귀환했다.
다음날 ABC에 모인 대원들은 샴페인으로 자축한 후 시샤팡마를 향해 건배를 했다.    

3. 안나푸르나(8,091m) 애칭-풍요의 여신
대의 명칭 : 한국히말라얀클럽 안나푸르나?다울라기리 원정대
기 간 : 1996년 3월 21 -
결 과 : 1996. 5. 4 박영석, 김헌상대원등정
대 원 : 고인경, 성순제, 엄홍길, 박영석, 홍성택, 김헌상

1996년 5월 4일 새벽 두시. 4캠프를 나섰다. 4캠프 위의 긴 설릉은 얼음에 붙었던 눈이 떨어지면서 생긴 판상 눈사태만 빼면 별다른 위험은 없었다. 간간히 생기는 눈사태를 지나 긴 설릉을 올랐다. 12시쯤 개스가 몰려들면서 눈보라가 치기 시작했다. 긴 설릉이 끝나고 정상 바로 아래 4-60도쯤의 설벽이 나왔다. 성공여부를 가름하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대원들은 안자일렌을 하고 이 구간을 무사히 통과했다.
“설벽을 겨우 올라서니 다시 설릉이 이어졌습니다. 짙은 개스와 눈보라를 헤치고 30분쯤 전진하니 정상이더군요. 날씨만 좋다면 1-20분이면 충분한 거리였습니다.”오후 1시 5분, 박영석, 김헌상대원과 겔젠 까지 셀파는 드디어 안나푸르나 정상에 섰다. 그러나 날씨가 계속 악화되고 있어 기쁨을 나눌 시간도 없었다. 10분쯤 정상에 머물며 기념촬영을 마친 대원들은 바로 하산을 시작하였다.    

4. 다울라기리(8,167m)
1)추진배경
이번 등반의 추진배경은 본교 개교 90주년을 기념하고 본 산악회의 창립 40주년을 기념하면서 특히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는 2006년까지 8,000m 이상의 고봉 14봉우리를 완등한다는 목표의 일환으로 세계 3위봉인 네팔 히말라야 캉첸중가(8,598m) 남벽루트를 등반하기로 계획하고 추진 되었으나 산악회 내부의 문제로 원정 대상산을 다울라기리 1봉(8,127m) 북동릉 루트로 변경하게 되었다.
2)등반개요
1. 대의 명칭 : ‘97 동국 다울라기리 1봉 원정대
2. 대상지 : 네팔 히말라야 다울라기리1봉(8,127m)
3. 등반루트 : 다울라기리 1봉 북동릉
4. 기간 : 1997.3.22 - 1997.5. 6
5. 취지 : 동국대학교 개교 90주년 및 동국산악회 창립 40주년 기념
6. 대원 : 이인정(단장 : 전 동국산악회 회장), 오국근(지도교수: 교육대학원 원장), 박영석(원정대장 : 체교83학번), 김대원(대원 : 행정88학번), 김헌상(대원 : 철학89학번), 정광교(대원 : 경주캠퍼스 농생90학번), 한왕용(대원 : 우석대 OB)

운행일지
97.3.20 선발대출국
3.22 본대출발
3.27 본대출국
3.25 이인정회장님, 오국근교수님 도착
현지준비
3.28-31 행정업무, 식량, 장비 구입
3.22-3.28 행정업무, 식량,장비구입
카라반
4.1-26 카투만두-베이스캠프
3.29-4.8 상행카라반
베이스캠프
4.6-9 라마제, 식량, 장비정리
4.9 베이스캠프 도착
등반
4.10-30 고소캠프설치
4.12 1 camp설치(5,900m)
4.18 2 camp설치(6,700m)
정상등반시도
5.4-5.14 1차 - 3차 등정시도
4.26 3 camp설치(7,500m)
4.27 정상등정
철수
5.15-18 고소, 베이스캠프 철수
하행카라반
5.18-24 베이스캠프 - 카투만두
4.29-5.2 하행카라반 귀국
5.28 서울도착
5.6 서울도착

운행일지(김헌상)
4월 27일 새벽 0시 30분에 기상하여 날씨부터 살폈다. 구름이 엷게 끼었으나 바람은 없다. 모두들 좋은 날씨의 징조라 위로하면서 2시 반에 3캠프를 나섰다. 동트기도 전인데 랜턴 불빛 4개가 옹기종기 모여 조금씩 고도를 높여가고 있었다. 암릉구간을 이리저리 오르다보니 어느덧 동이 텄고 멀리서 보면 스노우 밴드로 보이는 구간까지 올라섰다.
대장님과 사다인 까지는 암릉이냐 설벽이냐를 놓고 의논하는 듯싶었다. 머릿속엔 작년에 이곳까지 왔다가 아쉽게 후퇴한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작년보다는 지금이 상황이 좋다는 것이다.
우리는 눈사태의 위험 때문에 최소한 100m이상의 거리를 유지하며 올랐다. 한발자국씩 내디딜 때마다 눈구덩이에서 들리는 굉음은 설벽 저 끝까지 전달되는 듯했다. 눈사태를 당해본 경험이 있는 대원들로서는 긴장감의 연속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눈사태의 위험은 제쳐두고서라도 러셀의 고된 작업 또한 굉장한 것이었다. 모두 허리까지 빠지는 상황이 계속되다보니 전진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거대하고 가파른 설벽을 활모양으로 가로질러 설벽을 통과한 후 우측 능선의 마지막으로 보이는 봉우리 아래의 꿀르와르를 기어올랐다. 다행이 청빙이 아니라 안자일렌이나 고정로프 없이 올라설 수 있었다. 왜 항상 마지막 구간은 이렇게 힘든 것일까? 8,000m가 넘어서 그런지 아니면 마지막이라는 심리적 위압감 때문일까?
내 머리위론 까지와 한왕룡대원이 거의 끝까지 올랐고, 대장님이 거리를 두고 올라오셨다. 이제 몇 미터 안 남았다는 생각도 잠시 뿐 봉우리 너머로 더 높아 보이는 봉우리가 이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큰 산은 큰 산이구나.’생각하니 입에서 절로 불평이 튀어 나왔다. 대장님이 올라오시더니 까지와 자일을 묶고 능선을 넘어섰다. 한왕룡대원과 나도 말없이 따라갔다. 2시간을 그렇게 눈보라 속에서 몇 개의 능선을 넘었을까? 오후 2시 30분.... 드디어 우리는 등정소식을 베이스캠프에 알릴 수 있었다. 역시 정상은 바람이 거셌다.
이렇다할 감정의 소용돌이나 그 흔한 사치스런 눈물 한 방울 나지 않고 그저 담담하고 차분해질 뿐이다. 왜 그럴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 자신의 심리상태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밑에서 수없이 외워왔던 동작들을 어떻게 하면 실수 없이하느냐로 내 머릿속은 가득 차 있을 뿐이다. 그리고 안전한 하산에 대한 걱정이 서서히 고개를 처들뿐이다. 흔히들 말하는 대로 인간의 감정이란 역시 간사하고 변덕스러운 것 같다.
‘94년 첫 번째 원정에서 시샤팡마를 올랐을 당시는 ’내가 정말로 이 일을 해냈구나!‘라는 감격과 흥분 속에 히말라야의 꼭대기에 서 있는 자신이 정말로 믿기지 않아 혓바닥을 깨물어 보던 기억이 떠오른다.    

5,6. 가셔브롬Ⅰ(8,068m), Ⅱ봉(8,035m)
원정개요
1.대의 명칭 : 한국대학산악연맹 가셔브롬Ⅰ,Ⅱ원정대
2.목표한산 : 가셔브롬Ⅰ봉(8,068m), 가셔브롬 Ⅱ봉(8,035m)
3.등반대원 : 이인정(단장), 이상돈(원정대장, 홍익대‘76), 박기성(원정부대장,서울문리대‘78), 박영석(등반대장 : 동국대’83), 서기석(행정,명지대‘84), 이치상(수송:경희대’84), 한왕룡(식량,우석대‘85), 박경이(회계,서울교대’85), 허태한(학술,서울미대‘85), 오은선(촬영, 수원대’85), 유석재(식량,성균관대‘89), 양동일(식량,아주대’89), 홍창희(장비,외국어대‘90), 홍성룡(통신,홍익대’91), 김태형(학술,고려대‘91), 박민아(의료,성신여대’93), 김인경(행정,덕성여대‘93), 유철목(수송,경기대’93), 임인철(장비,서울문리대‘94), 배현기(식량,서울공대’95), 박동욱(지원,서울치대‘67), 김종호(지원,고려대’73), 정영목(지원,동국대‘73)
4. 등반기간 : 1997. 6. 4 - 1997. 8. 4
5. 등반목적 : 합동 등반을 통한 연맹 결속 강화, 소속 대학산악부간의 경험 교류, 한국 최초의 8,000m급 산 신루트 개척

운행일정
6/11 본대출국, 지원조5명포함 19명 출국
6/16 관광성 브리핑/스카르두로 이동버스이동
6/18 상행카라반, 스카르두-베이스캠프
6/26 베이스캠프 도착
7/1 등반시작, C1설치
7/2 C2설치
7/8 C3설치
7/9 3명 정상 등정
7/10 2차 정상공격, 기상악화로 실패
7/15 C4설치
7/16 1차 정상공격, 기상악화로 1명 정상등정
7/17 2차 정상공격, 6명 정상등정
7/21 하항카라반, 베이스캠프-스카르두

가셔브롬Ⅰ봉(8,068m) 운행일지
1997년 7월 9일
“야, 한왕룡. 자는 척 그만하고 일어나서 차나 끓여” “아따 형은? 잠을 안자고 등반을 어떻게 헌단 말이요.” 0시 30분. 박영석, 한왕룡, 유석재대원이 머물고 있는 가셔브롬1봉 제3캠프다. 그 시간에 일어났어도 물 만들어 수통에 담고, 등산화 다시 신고, 안전벨트, 아이젠 차고, 픽켈들고 나서니 3시 20분이다. 손에는 실크장갑과 우모장갑, 발에는 모양말 두켤레를 신었건만 한기를 이길 수가 없다.
베이스캠프에서 대장의 무전이 온다. “모두들 잘 잤냐? 준비는 다 됐고? 그럼 무리하지 말고 조심해서 다녀와라.” 하늘은 검고 별빛은 맑다. 모든 별들이 일등성이다. 여기저기의 텐트에서 군상들이 부시럭거리고 있다. 1시간쯤 가니 날이 희붐하게 밝아온다.
맞추어 완만한 설원이 끝나고 경사가 가팔라지면서 바위이랑, 눈 고랑이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 눈 고랑을 택했다. 그저께의 군마팀과 앞서간 기무라의 발자국을 따라가지만 푸석눈이라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손발 시림은 이제 가셨다. 한왕룡대원이 갑자기 내려가야겠다고 한다. 욕지기가 나고 두통이 심해 도저히 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박대원은 해뜰 때까지만 가보자고 달래 등반을 계속한다. 뜸뜸이 군마팀이 깔아놓은 고정로프가 있다. 이런 설질인데도 스노우 바를 잘도 박았다. 과연, 일본 최정예라는 형용사가 부끄럽지 않은 팀이다. 우리로 치면, 경남 산악연맹팀쯤 된다.
150m를 두시간쯤 걸려 오른 뒤 오른쪽으로 200m가량 트래버스를 했다. 다시 급경사에 발판이 힘없는 눈이다. 서른보쯤 걸으면 숨이 차 도저히 더 갈 수가 없다. 피켈을 푹 박고 눈 속에 고개를 쳐박고 헐떡거린다. 모르긴 해도 꼭 덤불 속에 고개를 쳐박고있는 꿩새끼 행색이리라. 그렇게 삼사분 쉬다가 고개를 들면 아래쪽의 여나므 꿩새끼들도 영락없이 고개를 든다.
바위지대가 나타나면서 얇게 깔린 눈이 단단하게 굳어 올라가기가 좋은 듯하더니 다시 푸석 눈이다. 한 파수에 스무 걸음으로 줄었던 리듬이 이제는 다시 열 걸음이다. 한 대원과 박대원이 앞에 가고 유대원은 두시간 거리, 300m쯤 뒤쳐졌다. 간밤에 잠을 못잔 터라 쉬기만 하면 졸음이 쏟아진다. 수염이 덥수룩한 50대 일본인이 어느 샌가 박대원, 한대원을 따라왔다. 그는 네팔 셀파 둘을 대동하고 산소마스크를 썼다. 산소의 위력이 실감이 난다.
이제부터는 경사가 더욱 가팔라 육칠심도쯤 되어 보인다. 고정로프도 없다. 정상직하의 400m벽이 바로 이것인 듯하다. 셀파들이 앞장서가며 50m쯤 고정로프를 깐다. 비몽사몽. 어떻게 올랐는지 알 수 없는 행보였다. 쉴 자리도, 물 마실 겨를도 없었다. 문득, 박대원의 눈에 한대원이 바위에 올라 앉아 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 너머로는 평평한 설원뿐 눈앞을 가로막는 것은 없다. 거의 다 온 모양이었다. 정상은 바위를 왼쪽으로 돌아 15분을 더 간 곳에 있었다. 왼쪽이 커니스를 이룬 설릉의 끝에 있는 사오평쯤 된 눈 마당이다. 먼저간 한대원이 파노라마 사진을 찍고 있다.
“야, 기도 찍어야지. 깃발 꺼내, 빨리” 풀썩 주저앉아 둘러보는 박대원의 파노라마에는 K2, 브로드피크, 가셔브롬2,3,4,5, 마셔브롬, 초골리사 등 발토로의 모든 명봉들이 들어와 있다.(11:30).
그저 빨리 내려가고 싶은 생각에 서둘다보니 베이스캠프에 무전치는 것을 까먹었다. “여기는 저 엉 쿨룩쿨룩... 사앙, 여기는 쿨룩쿨룩.... , 베이스캠프... 쿨룩쿨룩... 대장님 ... 나오시오.” 93년 초모랑마(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으로 기관지를 상해 고소에만 오면 기침하느라 정신이 없는 박대원은 말이 생각보다 쉽게 안나온다. “30분 전에 쿨룩쿨룩... 왕룡이 하고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몸상태는 좋은가? 그리고 석재는 어디쯤 오고 있는가?” “예, 두시간쯤 후에 쿨룩쿨룩... 도착할 것 같습니다.” “알았다. 사진 잘 찍고 조심해서 하산하기 바란다.” 그쯤해서 운행 중이던 모든 대원들은 무전기 앞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잠시 교신이 중단된 틈을 타 일제히 “축하합니다. 영석이형!” 하고 외친다. 등정의 기쁨이 전대원의 가슴에, 온 가셔브롬에 흘러 넘친다.
1시간 30분 전에 정상에 섰던 기무라는 벌써 내려가고 있다. 30분 빨리 올랐던 50대 일본인과 셀파들도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다. 거의 같이 등정했던 괴상한 체코인(유명 골프슈트 마크를 단 옷을 입고 배낭도 없이 오른 그는 가슴에 보온병을 품고 한 손에는 피켈을, 한 손에는 잘 닦은 골프 클럽을 들고 있었다.)은 먼 산만 보고 있다. 골프공을 꺼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가셔브롬Ⅱ봉 정상에 홀인원 할 의도는 아닌 듯하다.

가셔브롬 Ⅱ봉(8,035m) 운행일지(박기성)
1997년 7월 17일 제4캠프의 박부대장은 잠이 오지 않는다. 네사람이 완전군장(?)을 한 채 침낭 둘만 덮고 누워서가 아니다. 두 캠프 구간을 하루에 올라서인지 숨이 가빠 누워있지를 못하는 것이다. 한 호흡할 시간에 두 번, 가쁜 호흡을 해야 하는데 누워있으면 정상호흡이 되는 까닭이다. 입안이 소태처럼 쓰다.
“인철아, 일어나라.” 1시, 옆텐트 박영석 등반대장의 깨우는 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호박죽 하나로 아침을, 아니 종일 음식이 될 지도 모를 것을 때우고 캠프를 뒤로 한다. 박영석, 오은선, 박경이, 홍성룡, 임인철, 배현기대원과 함께출발했다. 항상 그렇듯 맨 꼴찌, 그 자체로 자유로움이며, 깍두기의 홀가분함이다.
20m쯤 쳐져 20도쯤의 비탈을 여덟숨에 한 걸음씩 간다. 어제 꼴 너머까지 갔다온 배현기 대원 말처럼, 아차하면 1,500m 저 아래 바닥, 고정로프가 필요한 구간 같은데도 하나가 없다. 처음 이 길을 간 막강 군마팀이 “필요없음”이라 판단한 이후 그들을 따라온 다른 팀들은 깔 의사도 능력도 없는 까닭이다.
꼴로 치고 오르는 좀 가파른 고정로프가 있는 곳에 이르자 앞 대원들과의 사이가 40m쯤으로 벌어진다. 맞추어, 머리는 어질어질, 눈알은 씸벅씸벅, 심장은 왈캉발캉, 허파는 조물락조물락.... 세상이 돈다. 대원들은 하나, 둘 꼴 너머로 사라지고 야전사령관은 꼴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어제 “형은 제3캠프에 그냥 있으시죠”한 바 있던 그, 기성이형은 역시 안되겠다고 판단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꼴까지만 가보자. 아무리 죽겠더라도 저 너머 신천지는 보고 죽어야하지 원이 없지 않겠나? ‘꼴까지만’하고 마음 먹었는데 올라가 보니 생각이 달라진다. 시간은 아직 7시 밖에 안됐고 대원들은 바로 앞, 완사면지나 고정로프에 붙어있으며 거기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우리만의 특식, 우황청심환과 인삼절편을 먹고나니 힘이 솟는 듯해서다. 배낭을 벗어놓고 무전기를 우모복에 넣은 다음 일어선다.
한국산악회장을 지냈던 이은상시인의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고지가 저긴데, 예서 말수는 없다.” 두 번째 고정로프의 끝자락쯤에서 보니 위에서 누가 내려온다. 홍성룡대원이다. 왜 올라가다 말고 내려오느냐고 묻는데 대답이 없다. 눈이 풀린 상태 같다. 하강기를 갈아 끼워야할 참인데도 어쩔 줄을 모른 채 “형 꼴이 어딨어요?” “꼴이 어딨어요?”만 반복한다. 이걸 데리고 내려가야 하나 마나. 데리고 내려간다면, 보조자일은 어딨고. 박부대장은 잠시 망설인다. 아래를 보니 다행스럽게도 김태형대원이 꼴에 와있다. 하강기를 갈아 끼워주고 내려 보내는데 자꾸 앞손을 놓으려고 한다. “앞줄 놓지 말고, 천천히.” 다섯번은 외친 것 같다. 다행히 그는 둘째마디를 무사히 내려갔다. 저 아랫마디는 완사면으로 이어지다 꼴에서 그치니 추락해도 다치지 않을 것이다.
다른 대원들은 벌써 하늘금을 이룬 설릉으로 올라섰다. 그런데 웬일인지 한참동안 움직이지 않는다. “아하, 정상에 거의 다 간 모양이구나! 그래 등정 비디오를 연출촬영을 위해 모여 있겠지. 그나저나 저 하늘에 어떻게 올라선담.”한숨 돌리고 난 박부대장은 이제 제 처지가 한심스럽다. 세마딘가 네마딘가를 주마를 부여잡고, 거의 완전히 기어오르다시피 한다. 그렇게 올라선 하늘은, 아 그것은, 하얗다 못해 시퍼런 25m쯤의 작두날. 그리고 그 끝, 거기에 눈 덮인 겨울들판의 거름 북더기만한 절정이 있다. 어제처럼 바람이 분다면 날아가고도 남을 날끝을 행여 떨어질세라 부여잡고 엉금엉금 긴다. 저쪽에서는 대원들이 돌아오고 있다. 잘 가라 눈짓하며 솜뭉치 같은 몸을 굴려 거름북더기 너머의 옴팍지로 던져 넣는다.
10시 35분이다. 어떤 환호도, 갈채도 없었다. 다만 심장과 허파와 가로막이 터질 듯할 뿐이다. 프랭크 스마이드 처럼 “위대한 산을 보면 나는 그것이 신의 절묘한 피조물임을 느끼며 그 끝에 올랐을 때는 우주의 힘이 나로 들어와 하나됨”이 깨달아지는 것도 아니고, 부처님의 가르침처럼 용맹정진 끝에 하나하나 꺼풀이 벗겨지다 마침내 “생사도 애증도 미련도 모두 부질없는 것이니라”는 대오각성에 이르른 바도 없다. 18년전에 죽은 산 친구 상용이여! 나는 그동안 헛 산 공부를 하였는가! 인연 못 닿아 헤어진 그대여! 나는 영원히 그대와의 이 질곡을 벗어나지 못하려는가.
“형, 사진 한 장 찍으시죠?” 혼자 남아있던 막내 배현기대원이 카메라를 들고 다가온다. “그래, 그래도 가장 확실한 것은 사진이겠지. 저기 낭가파르밧하고, K2, 이쪽 가셔브롬Ⅰ봉, 초골리사를 배경으로 한번 잘 찍어봐라” 넉장을 찍고는 다시 한번 사방을 둘러본다. 여름을 맞은 주변 산 물결들은 진창처럼 칠떡이고 있다.    

7. 로체(8,516m)
대의명칭 : ' 2001 동국대 로체 & K2 원정대
대 상 지 : 네팔 쿰부 히말라야 로체 (8,516 M), 파키스탄 카라코람 K2봉 (8,611 M)
등반루트 : 로체 - 서벽, K2 - 남동릉 (아부리찌릉)
기 간 : 2001년 3월 20일 - 2001년 8월15일
목 적 : 세계 최초 1년간 6개봉 등정(8000m급 최단기간 최다등정)에 이어 자이언트봉 14좌, 7대륙 최고봉, 3극점 완등의 그랜드슬램 달성 목표
대원명단 : 박영석: 등반대장, 강성규 : 수송,촬영, 오희준 : 식량, 김은광 : 장비 김형우 : 행정, 송귀화 : 식량
결 과 : 2001년 4월 29일 박영석대장, 오희준대원 등정

등반일정
출 국
2001. 3.20 선발대출국
2001. 3.25 본 대 출국
현 지 준 비
2001. 3.30 카투만두 상행 캐라반
2001. 3.31 카투만두 출발 2001. 4.03 남체 출발 2001. 4.06 로부제 출발 베이스 캠프
2001. 4.08 베이스캠프 설치(5,400m)
등 반
2001. 4.22 고소캠프 설치 (C1 - C4 )
정상 공격
2001. 4.23 1차 등정시도
정상 공격
2001. 5.01 2~3차 등정시도
고소캠프 철수
2001. 5.04 고소캠프 철수
베이스 캠프 철수
2001. 5.06 베이스 캠프 철수
하행 캐라반
2001. 5.12 카트만두 도착
귀 국 2001. 5. 15 서울 도착    

8. 낭가파르밧(8,125m) 애칭-산중의 왕
대의 명칭 : 한국산악회 낭가파르밧 원정대
기 간 :
대 원 : 박영석, 강성규, 정용권
결 과 : 1998. 7.21 박영석대원, 강성규대원등정

1998년 7월 21일. 마침내 결장의 날이다. 이탈리아 팀의 등정시간을 참고해 정상까지 약10시간을 예상한 한국팀은 4시 30분에 4캠프를 출발했다. 한국팀 외에도 영국1명, 오스트리아1명도 정상으로 출발했다. 눈이 많고 경사도 심해 러셀이 힘드니 서로들 눈치를 본다. 팀별로 200미터씩 나눠 러셀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당초 예정한 2시간 30분경에 정상에 오르기가 힘들어졌다. 이탈리아팀이 하산 루트인 직선코스로 치고 올랐는데 경사가 심한데다가 분설이어서 오히려 시간을 잡아먹은 것이다.
시간은 4시, 8천미터대에 막 진입했는데 오른쪽으로는 암벽지대고 위로는 고개 하나가 버티고 있어 기운을 빼놓는다. 다들 마음속으로 내려갈까 말까를 고민하는 눈치다. 비박장비도 가져오지 않았고 랜턴도 한국 두팀이 합쳐도 2개뿐이다. 그러나 박영석대장과 한대장은 이제 내려가면 더 이상 기회가 없으니 비박을 결심하고 오르기로 결정하고 나서니 외국팀들도 한국팀을 따른다. 바위지대가 끝나면 곧 정상일 줄 알았는데 2시간이 넘게 걸린다.. 마침내 6시 15분에 박영석대장을 선두로 나관주대원, 한왕룡대장이 오르고, 강성규대원이 6시 55분에 마지막으로 올랐다. 그러나 강대원은 사진 찍을 겨를도 없이 곧바로 하산이다.
“빨리빨리 하산하라! 빨리 하산하라!”베이스캠프의 정용권대원은 망원경으로 지켜보며 하산 루트를 무전기로 알려주느라 대원들 못지않게 바짝 긴장해 있었다. 그러나 2개의 랜턴에 의지해 느리게 하산하던 한국팀은 9시 무렵 약 7,800m 지점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비박을 각오하긴 했지만 그래도 4캠프까진 그리 멀지 않은 만큼 어찌됐든 그곳까진 내려갈 작정이었다. 각자 랜턴을 지니고 있던 오스트리아와 영국팀은 이미 초고속으로 하산해버린 뒤다.
헤매길 1시간 30분 가량. 이번엔 나관주대원이 길을 찾겠다고 내려갔는데 랜턴 불빛이 갑자기 사라지더니 감감 무소식이다.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나머지 대원들은 필시 무슨 일이 일어났구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행히 10분만에 불빛이 나타났다. 길을 찾은 것이다. 나대원, 박대장, 로지, 한대장 순으로 내려간다. 그런데 강성규대원이 오지 않는다.
랜턴도 부족한데다 조금만 있으면 날도 밝을 테니 그게 안전할 것 같아 비박을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한대장은 로지에게 내려가라하고 “너무힘들다. 강대원이 약간 몸이 안좋아 비박을 해야 겠다”며 베이스캠프와 교신한 후 강대원과 비박 태세에 들어갔다.
한편 앞서 내려간 한국팀 세사람이 4캠프에 도착한 시간은 22일 새벽 1시. 뒤이어 로지가 혼자 내려왔다. 박대장은 한대장과 강대원이 내려오지 않은 것을 뒤에야 알고 순간 두 후배를 잃었던 ‘93년 동국대 에베레스트 남서벽 원정이 떠올라 별의별 상상이 다 들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날이 밝은 6시 45분 한왕룡대장과 강성규대원이 무사히 4캠프에 도착했다. 비박과 죽음도 감행해야했던 낭가의 등반이 끝나가는 순간이었다. 베테랑 산악인들에게도 낭가는 역시 낭가였다.    

9. 마나슬루(8,163m) 애칭-한의 산
대의 명칭 : ‘98 동국대학교 마칼루 & 마나슬루 원정대
기 간 : 1998년 8월 27일 - 1998년 12월 1일 (97일)
대 원 : 이인정(단장), 박영석(원정대장), 심상일, 김형우, 유진욱, 박강모, 윤영남, 정용권기자
결 과 : 1998. 12. 6 박영석대장 마나슬루 등정

운행일정
출 국
1998. 8.27 선발대출국 9.01 본대 출국
현지준비
9.02 카투만두
9.06 카투만두 출발
9.06 툼링타르 도착
9.06 타시가웅 도착
9.10 베이스 캠프
B.C
9.14 베이스캠프 설치
등반
9.16 고소캠프 설치
10.12 마칼루 1차,2차 정상등정시도(8,463m)
BC 캠프 철수
10.15 마칼루 B.C 캠프 철수
10.16 마나슬루로 이동
등반
10.24 고소캠프 설치
11.13 마나슬루 1차,2차 정상등정시도(8,156m)
BC 캠프 철수
11.18 마나슬루 B.C 캠프 철수
귀국
12.01 서울 도착    

10. 캉첸중가(8,586m) 애칭-눈의 보고
대의 명칭 : ‘99동국대학교 캉첸중가 원정대
원정 기간 : 1999. 3. 19 - 1999. 5. 26
원정 대원 : 박영석(등반대장), 구경모(대원,식량), 강성규(대원,장비), 김형우(대원, 행정), 윤필중(대원,장비), 박강모(대원, 식량), 정기현(SBS카메라맨)

운행일정
3/19 선발대 출국, 서울 - 방콕
3/27 본대 출국
3/29 상행카라반
4/15 베이스캠프 설치(5,600m)
4/19 C1설치
4/20 C2설치
4/30 C3설치(7,200m)
5/12 2차 정상공격, 박영석, 셀파2명 등정(박영석대장 8,100m에서 비박)
5/14 베이스캠프 도착
5/22 하행카라반
5/26 서울도착    

11. 마칼루(8,463m) 애칭-검은 귀신
대의 명칭 : 2000 동국 마칼루 & 시샤팡마 원정대
대 상 지 : 네팔 히말라야 마칼루(8,463m) & 시샤팡마(8,027m)
기 간 : 2000. 3. 20 - 2000. 5. 30
목 적 : 세계 최초로 1년내 6개봉 등정에 이어 아시아 최초 8,000m) 14봉 완등을 목표 로 11, 12개째 봉 등정, 히말라야 거벽등반, 고소등반을 통한 고소적응 연구
원정대원 : 박영석(원정대장), 강성규(장비,통신,촬영), 김형우(행정,회계), 이현조(식량), 정영목(기록), 윤인혁(장비), 김연수(지원)

운행일정
3/10 선발대 출국
3/20 본대 출국
3/25 - 4/4 상행카라반
4/6 베이스캠프 설치
4/12 CAMP 1 설치 (6,500m)
4/19 CAMP 2 설치 (7,400m)
5/3 CAMP 3 설치 (7,800m)
5/15 정상공격, 오후 2시 마칼루 정상 등정
5/17 - 18 베이스캠프 철수, 헬기로 카트만두 도착
등반일지
5월 15일(정상 등정하는 날) 기나긴 베이스생활을 끝낼 날이 왔다. 드디어 아이스폴 지대와 설원을 돌파하고 프랜치 꿀루와르 지대를 지나게 되었다. 이현조 대원이 처음에 쳐지더니 지금은 따라잡아 박대장과 같이 있었다. 박대장이 전망하길 앞으로 4시간 정도는 걸릴 것이라고 한다. 오전 8시 20분. 항상 뒤에 졸졸 따라오던 이태리팀이 이 구간을 뚫기로 하고 먼저 올라가고 우리팀은 뒤따라 올라가 오전 9시 20분 도착했다.
꿀루와르 정상에 올라가 드디어 정상능선에 섰으나 앞에 전위봉이 우리의 앞길을 막고 있다. 전위봉을 옆으로 돌아 갈 것인지 아니면 위로 넘어갈 것인지 판단이 어려워 잠시 고민하다 위로 넘어 가기로 결정하고 힘겹게 넘어서니, 정상이 저만치 보인다. 드디어 천신만고 끝에 삼세번만에 마칼루 정상에 선 것이었다.    

12. 브로드피크(8,047m)
대의 명칭 : 2000 동국대 브로드피크 & K2 원정대
대 상 지 : 파키스탄 브로드피크(8,047m), 카라코람 K2 (8,611m)
기 간 : 2000. 6. 17 - 2000. 8. 30
목 적 : 동국대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세계 최초 1년간 6개봉 등정
(8,000m급 최단기간 최다등정)에 이어 자이언트봉 14좌 완등을 목표 원정대원 : 박영석(원정대장), 강성규(장비,통신,촬영), 김형우(행정,회계), 오희준(장비), 정영목(기록), 이현조(식량), 신언훈(촬영)

등반일정
6/20 선발대 출국
6/21 이슬라마바드 출발
6/23 스카루드 출발
6/24 아스콜리 출발
6/27 본대 출국
7/1 베이스캠프 설치
7/2 - 7/22 고소캠프 설치 (C1-C3)
7/23 - 7/25 등정 시도
7/30 브로드피크(8,047m) 정상등정
등반일지 (정상등정 하는 날)
7월 29일(토)
날씨는 바람 한 점 없이 깨끗하다. 박 대장은 오전 7:00시경 C3로 전 대원들이 출발할 것임을 알려왔다. 오후1:30, 박대장을 비롯한 선두 대원들 우리의 C3에 도착. 잠깐의 휴식과 간단한 요기를 하고 박대장을 포함한 우리의 전 대원 5명은 오늘 밤 자정, 12:00에 C3를 출발하여 정상으로 향한다.
7월 30일(일)
새벽 2:30, 박대장의 교신. C3에서 설사면을 통과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 밑의 꿀루와르 하단부에 도착. 꿀루와르를 올라쳐 능선에 붙어야 한다. 베이스에서 보아도 하늘엔 달빛은 없어도 별이 총총, 지극히 고요하고 아름다운 밤이다.
오전 10:20, 박대장의 “여기는 정상, 여기는 정상” 드디어 또 해냈다! C3를 떠난뒤 10시간 20분 만에 정상을 딛고 섰다. 캠프3를 출발한 박영석대장, 강성규대원, 김형우대원, 이현조대원, 오희준대원과 고소포터 후센 등 총 6명이 브로드피크 정상에 우뚝 섰다.
박대장에게는 14좌중 12번째의 영광이요,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저력과 용기를 다시 한 번 과시한 셈이고, 김형우대원은 10여회의 도전 끝에 드디어 정상에 선 것이고, 강성규 대원은 고소에서의 촬영을 무릅쓰고 또 하나의 8,000m급 거봉을 등정, 역시 강가이버의 살아있음을 증명한 셈이다.    

13. 시샤팡마(8,027m) 애칭-일기변화가 극심한 산
대의 명칭 : 2000동국대 시샤팡마 원정대
대상지 : 네팔 히말라야 시샤팡마(8,027m)
기간 : 2000. 6. 17 - 2000. 10. 13
목적 : 14좌 완등을 목표로 13개째봉 등정, 히말라야 거벽 등반
원정대원 : 박영석(등반대장), 강성규(대원), 이현조(대원), 오희준(대원)

등반일지
10월 2일, 추위와 싸우면서 졸다 깨다를 수십번 반복하다 새벽 4시경 일어나 버너에 불을 붙이고 어제 만들었던 물을 다시 데워 수통에 넣고 차 한 잔으로 아침을 대신하면서 사용하지 않았던 양말을 갈아 신고 신발을 신었다. 안전벨트와 아이젠을 착용하여 하늘을 본다. 별이 많이 보인다.
새벽 5시에 설동을 나와 정상을 향해 한발 한발 전진한다. 벌써 제대로 먹질 못하며 운행한지도 벌써 3일째다. 오늘은 정상이 가까이 보인다. 꼴 끝나는 마지막 지점에는 우측으로 휘어지면서 하얀 설원이 나타났다. 설능이 다시 좌측으로 휘어지면서 정상으로 향하는 칼날 같은 설능이 나타난다.
설릉에 올라서면 앞에 중앙봉이 보이고 정상이 앞에 있다는 걸 느낄 즈음 갑자기 발밑에서 ‘쿠르릉’하면서 진동이 느껴진다. 등반 중이었던 대원들이 모두 엎드려있다. 다름 아닌 정상 바로 직전에서 판상 눈사태가 일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천만다행이었던 것은 칼날 같은 능선 바로 2-3미터 밑 부분부터 금이 가면서 눈 덩어리들이 떨어져 나가 대원들 모두 무사하였다. 약 오후 1시경이었다. 눈사태는 북동쪽을 쓸어내렸다. 위험한 칼날 능선을 지나치니 바로 앞에 정상이 서 있는 게 아닌가! 박영석대장은 이곳을 오기위하여 5번째인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오르고 싶어 했던 정상을 10월 2일 오후 1시 30분에 밟았다. 시샤팡마 여신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렇게 정상을 밟을 수 있게 허락해 주셔서....
대원들 모두 서로 부둥켜안으며 서로 격려한다. 베이스에서는 환호성을 지른다. 기념촬영을 하고 개스가 끼기 전에 하산하기 바란다는 무전연락이 왔다. 정상에서 약 1시간을 보내고 눈사태가 일어났던 지점에서 대원들의 발걸음이 너무나 조심스럽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이다. 설릉을 벗어나면서 지겨운 하산길이 시작되었다. 오후 들어가면서 피로에 지친 모습들이 대원들 얼굴 얼굴마다 역력히 나타나기 시작한다. 힘들게 왔던 길을 고정로프도 없이 서로의 몸에 줄을 묶고 의지하며 첫 번째 비박지(캠프2)에 도착하고 각 대원들은 안전하게 베이스캠프까지 하산하였다.
이번 시샤팡마 등정루트는 모두 45-60도의 설사면과 청빙지대로 이루어져 텐트를 설치할 곳도 없는 난코스였다. 이곳을 원정대는 지난달 30일부터 이틀간 해발 7,200-7,700m지점에서 비박(텐트대신 눈구덩이를 파고 노숙)을 하는 난관을 이겨내고 정상을 밟았다. 뿐만 아니라 이번 등반은 한국 등반대로서는 9년 만에 시샤팡마 주봉을 오른 것이라 그 의미가 더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4. K2(8,611m)
대의명칭 : Park's Grand Slam K2 Expedition
대 상 지 : 파키스탄 카라코람 발토로산군 K2(8,611m)
기 간 : 2001. 6. 1 - 2001. 8. 4
결 과 : 세계최초 1년간 6개봉 등정(8,000m급 최단기간 최다등정)에 이어 자이언트봉 14봉, 7대륙 최고봉, 3극점 완등의 그랜드슬램 달성목표중의 하나인 14봉좌 완등달성
원정대원 : 대장 : 구자준(럭키생명 사장), 등반대장 : 박영석(동국대 83), 행정/회계 : 김형우(동국대 87), 통신 : 강성규 (제주대 86), 기록 : 오은선(수원대85), 김광진 (동국대 70), 장비 : 박영도(산비둘기산악회), 이주원(외대95), 포장 : 유철목(경기대93), 수송 : 오희준(제주대89) 의료 : 남기탁(부산약사회), 식량 : 윤인혁(경희대94), 김민관(동국대98), 촬영 : 한성수(SBS)

등반일정
6/1 서울-방콕-이슬라마바드
6/15 스카루드 행정처리 및 식량구입
6/24 베이스캠프설치(5,200m)
6/25 라마제
6/26 ABC(5,500m)설치
6/28 C1 (6,000m)설치
7/1 C2 (6,600m)설치
7/10 C3 (7,200m)설치
7/21 C4 (8,040m)설치
7/22 정상등정(8,611m)
7/27 베이스캠프 철수
8/4 스카루드-이슬라마바드-서울
등반일지
2001년 7월 22일 드디어 대망의 날은 밝았다. 마지막 캠프에서 박대장, 강성규, 오희준, 박영도대원 그리고 셀파 2명이 새벽 1시 15분 헤드랜턴으로 어둠을 밝히며 정상으로 의 길을 헤쳐 나갔다. 정상으로의 길은 만만치가 않았다. 날씨는 좋았지만 밑에서부터 고생을 하고 걱정을 했던 눈이 이곳에서도 우리들의 발목을 붙잡는다.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깊게 쌓여 있었다. 예상 소요시간을 7-8시간을 잡고 있었는데 그 시간 동안에는 반도 올라가지 못하였다.
박영도 대원은 어느새 뒤로 저만큼 뒤쳐져있고 강성규 대원도 조금씩 사이가 벌어진다. 최난코스인 버틀넥(Bottleneck)을 넘어서니 정상은 저만치 보인다. 하지만 눈은 더 깊게 덮혀 있고 러쎌은 힘들어 얼마의 시간을 더 걸어야 정상에 도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베이스와의 교신에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는 것이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버틀넥을 올라간 후부터는 뒤따라오던 스페인팀 2명과 이태리의 한스, 프랑스의 라파엘이 조금씩 번갈아가며 러쎌을 하였다.
계속 우리 뒤를 따라왔는데 이제는 너희들도 러쎌을 하라고 했더니 마지못해 앞장을 선다. 너무 깊어 무릎으로 먼저 눌러놓고 발을 뗄 정도여서 어지간히 시간이 걸리는 것이 아니었다. 한발짝 한발짝 디디며 정상으로 올라가니 드디어 K2여신도 우리에게 마음을 열어 정상 등정을 허락하였다. 2001년 7월 22일 오후 2시 40분 드디어 마의 산 K2정상에 박영석, 강성규, 오희준 대원이 섰다. 정상, 캠프4, 캠프3, 베이스 할 것없이 기쁨에 들떠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서로의 눈에서 흐르는 기쁨의 눈물을 보며 또 한번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기쁨도 잠시 너무 뒤로 쳐져 캠프4로 하산을 했을 줄 알았던 박영도대원이 어느새 버틀넥을 넘어 정상으로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정상 근처이긴 하지만 지금시간에 정상을 갔다가 하산을 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 그 자리에서 바로 같이 하산을 하였다.
픽스로프가 끝나고 완만한 경사의 설벽이 마지막 캠프까지 연결된 구간에서 중간에 내려가던 박영도대원이 다리를 잘 못 딛는 바람에 슬립을 당하여 오른쪽 절벽으로 떨어져버렸다.
뒤에서 따라오던 세랍장부가 목격을 했지만, 어떻게 손을 쓸 시간없이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떨어진 방향으로 접근을 하여 구조를 해보려고 했으나 워낙 경사가 급한 절벽이라 더 이상의 접근은 불가능하였고 벌써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캠프4에 내려와서 이 사실을 알리자, 일순간 K2는 정적이 감돌았다. 어느 누구도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정상등정의 기쁨은 한순간에 무너지고, 기쁨의 눈물을 훌리던 눈에서는 이제는 동료를 잃은 슬픔에 다시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박대장이 정상에서 그 동안 등반을 같이하다 유명을 달리한 악우들의 넋을 소주 한잔 기울이면서 달래주었건만, 이번에도 기어이 박영도 대원을 데리고 가버린 것이다. 모든 대원들의 슬픔을 어찌 글로 표현을 할 수 있으랴!. 하지만 일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미 눈보라가 날릴 정도로 날씨가 나빠지기 시작하여 2조의 등정은 포기하고 하산을 하는데 오은선 대원이 도중에 발을 헛디뎌 약 50여미터 굴러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다행이도 벼랑 끝에서 제동이 되어 다친 데 없이 일어설 수가 있었다. 조금만 더 굴렀으면 바로 벼랑으로 추락할 뻔한 사고였다.
거기에다가 캠프3에 있던 이주원 대원이 김민관대원이 걸렸던 하체 무기력증에 똑같이 걸려 텐트안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누워 있었다. 모두들 기진맥진한 상태였는데 이대원을 구조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날씨는 더욱 나빠지고 있어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탈출해야 했기에 지친 몸임에도 불구하고 이대원을 부축하여 캠프2로 하산을 하였다.
캠프3-2구간은 바위 릿지구간이라 걷지 못하는 대원을 데리고 하산을 하는 것은 몇배의 힘이 들었다. 캠프2에 도착을 하여 휴식을 취하며 늦게라도 밑으로 하산을 하느냐 마느냐에 고심을 하다 더 이상의 사고는 막아야 하겠기에 캠프2에 머물기로 하였다. 그러나 나빠지는 날씨에 캠프2에 머무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밤새 눈보라에 잠도 못자고, 내일도 계속 날씨가 나빠지면 내려가는 것도 쉽지가 않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날씨가 더 이상 악화가 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눈보라가 심하게 내리쳤다. 날씨가 호전될 것 같지가 않아 눈보라를 무릅쓰고 하산을 시작하여 캠프1을 거쳐 ABC에 도착을 하여 베이스캠프에서 올라온 하이포터들과 같이 부축을 하며 베이스로 하산을 하였다. 어둠이 뉘였뉘였 할 때서야 다들 초죽음이 되어 베이스에 도착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다들 눈시울을 적시며 포옹을 할뿐......

이로써 우리 원정대는 ‘93년 에베레스트 등정을 시작하여 K2를 끝으로 박대장의 8,000m 14좌 완등이라는 대업적을 이루어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숱한 고난과 역경이 있었고, 8명의 악우가 사고를 당하는 아픔이 있었다.
우리들은 이 8명의 악우들의 넋을 위로하고 이들의 삶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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