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글은 동국산악 2호(1971년발행)에 실린 - 1959년 1월, 적설기 천불동계곡을 등반했을 당시의 - 故 김종섭회원의 산행기록입니다. 다시한번 글을 읽어 보시면서 故 김종섭 회원의 젊음과 산에대한 열정을 새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1959년 1월-
1959년 초까지만 하더라도 설악산은 사람들 사이에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으며, 따라서 등산코스 조차 뚜렷한 기본코스 이외에는 거의 확정지을 수 없는 상태였다.
이해에 동대산악부로서는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해보지못한 등반계획을 기획했으니, 그것은 외설악의
신흥사-천불동-대청봉에 이르는 험난한 빙벽코스에 대한 도전계획이었다.
이 계획은 적설기 설악산의 천불동계곡을 돌파한다는 획기적인 등반계획에 중점을 두어, 이에 소요되는 장구와 식량, 설질, 기후 등 제반여건을 테스트한다는 데에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따라서 이 등반에 참가하는 대원을 부원 가운데에서 엄선한 끝에 최종 선발된 대원은 다음의 4명이었다.
대장 : 최영식(경제 4)
대원 : 김종섭(정외 1), 유 창서(정외 1), 김경호(성북고 교사)
<준비>
1950년대만 하더라도 산악장구는 미군부대에서 유출되는 군수품에 거의 의존을 할 때다.
우리도 예외없이 부족한 장구는 성시를 이루고 있는 동대문 시장내 산악장구 노점상들을 상대로 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필요한 장비가 만족하게 있을리 없었다. 할수없이 현지 구입할 수 없는 것은 손수 만들기로 하고 설피와 아이젠, 아이스하켄 등 특수장비는 직접 만들었다. 아이젠, 아이스하켄 등은 그래도 서울에서 이름이 나있다는 청량리 모 대장간에서 좋은 쇠로 주문하여 만들었으나 이렇게 원시적인 제조방법으로 만든 것이 강도나 안전도를 누가 보장하겠는가?
그러나 큰일을 앞에 둔 우리로서는 이러한 일들이 모두가 즐거웠고 성의껏 모든 준비에 만전을 기하려고 하였다.
출발일자가 다가왔다.
<출발>
속초행 버스가 새벽 4시부터 1시간 간격으로 출발한다. 일행은 첫차를 타기로 하고 숭인동 제일여관에서 전날밤을 산이야기로 지새웠다.
1월4일 : 새벽 속초행 버스를 3시 30분에 오르면서 등반첫길이 시작되었다. 새벽 영하 19도
-일기예보에서는 30년만에 닥친 강추위란다. 그래도 별로 추운 줄 모르면서 오후 5시경 속초에 도착하였다. 곧 최영식대장은 속초 주둔 방첩대에 차량지원 요청을 하러갔다. 뜻대로 잘 되지않아 밤 9시쯤에 GMC 트럭 1대를 지원받았다. 10시 정각 속초를 출발하였다.
신흥사 가는 길이 왜 이렇게도 멀고 지루하고 추운지, 너무도 추워서 대원들은 처음부터 준비한 가마니 속으로 들어갔다. 동기등반을 가마니속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다. 최영식대장과 김경호 대원은 다행히 운전석에 앉아서 갔으니 이렇게 비참한 꼴로 신흥사에 도착한 사실은 몰랐을 것이다. 대강 짐을 정리하고 나니 전날 피로도 겹쳐 일찍 취침으로 들어갔다.
밤의 설악동 기온은 영하 29도.
<설악동>
1월 5일 : 장구점검. 기온, 적설량 등을 재점검하면서 하루를 정비에 보냈다.
출발전 계획으로는 5명이 출발키로 하였으나 정규칠대원이 개인사정으로 출발못하였다. 그래서 정규칠대원이 등반 중 먹을 중식을 준비하여 주었으므로 메뉴는 푸짐했다.
[식량조정= 조식 : 튀김쌀 1봉, 밀크 1잔, 중식 : 약과 4개, 커피 1잔, 석식 : 소고기국]
1월 6일 : 한짐 가득히(약 30kg) 짊어지고 신흥사를 출발하니 11시쯤 되었다. 평균 적설량 1m 이상, 날씨는 매섭게 추웠다.
첫날이라 몸들이 풀어지지 않아서 참으로 고행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귀면암 못 미쳐서 큰곰을 만났다. 약 2시간 정도 대치하는 바람에 예상치 않던 사고로 첫날부터 예정대로 운행을 못하였다. 낮에 곰하고 대치한 일도 있고해서 대원들은 교대로 불침번을 섰다.
<양폭 빙벽>
1월 7일 : 아침기상을 하니, 모두들 몸 컨디션이 좋지가 않다. 최영식 대장은 새벽에 위경련을 일으켜 비상약으로 치료는 하였으나 이로 인하여 정오나 되어서 출발하였다. 양폭밑에 도착하여 <스노우 블록>을 쌓고 비박을 하였다.
1월 8일 : 처음으로 빙벽을 이룬 양폭을 커팅하면서 올랐다. 모두가 무거운 짐에 힘든 작업이었다. 양폭서부터 적설량은 2m이상이며 계곡은 완전히 눈으로 메꾸어져 있었다. 때문에 럿셀에 무척 힘이 들었으며 운행은 말할 수 없이 느렸다.
<죽음의 계곡>입구에 이르니 적설은 점점 더 많았다. <죽음의 계곡>입구에 산등성을 횡으로 깍아내리고 2개의 텐트를 연결시켰을 무렵 갑작스럽게 휘몰아치는 운풍으로 텐트가 약 50m 날랐다. 그래도 운풍이 계속 멎지않아 할 수 없이 <스노우 홀>을 만들고 비박을 하였다.
<죽음의 계곡>
1월 9일 : 기온이 상승하고 날씨는 무척 찌뿌둥하다. 출발하려는데 함박눈이 쏟아지며 3~4m 전방이 보이지 않는다. 운행을 포기하고 눈 멎을 때를 기다리니 좀처럼 그칠 줄 모른다. 오후 2시쯤 되니 좀 수그러지며 기온이 내려가기 시작한다. 눈을 맞으며 대청봉을 향하여 운행이 시작되었다. 차돌 같은 최영식대장도 럿셀로 힘이 지치는 것 같다. 이날은 천불동계곡 상단에서 비박을 하기로 하였다. 유창서대원이 설맹에 걸렸다. 영식형이 간단한 투약을 하고서 아이스드로프스를 먹으라고 주었다.
<대청봉>
1월 10일 : 정상에 오른다는 기쁨과 기대속에 일찍부터 서둘렀다. 날씨는 아직도 찌뿌둥하여 잔설이 내리고 있다. 기온은 상승하였고 전날밤에 내린 많은 눈으로 럿셀이 무척 힘들었다. 지척에 둔 정상이었지만 지그재그로 오르려니 많은 시간을 보냈다.
오후 3시 20분 드디어 정상에 도착. 간단한 기념촬영을 마치고 곧 봉정암을 향하여 하산을 시작했다. 여기에서 예상치 못한 고전이 시작되었다. 쉽게 하산하리라는 예상을 완전히 뒤엎을 일이 생겼다. 그것이 바로 내외 설악의 온도차다. 지금까지 올랐던 외설악의 설질은 비교적 굳은 편이었으나 내설악의 설질은 건설 그대로다.
부원 하나가 눈에 빠져들어가면 머리에 쓴 모자만 보일 정도다. 이렇게 해서 끌어올리기를 여러번 하고나니 젖먹던 기운까지 다소진된 것 같다. 밤이 늦어 미끄러지고 구르고해서 겨우 봉정암에 도착하니 밤 10시쯤 되었다. 모두가 지칠대로 지쳤다. 더구나 식량개선을 한다고 하루에 한끼 밥만 먹다보니... 너무도 힘에 겨운 일이었다. 역시 질보다도 양으로 위를 채우는 습관은 어쩔 수 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봉정암에서 평생을 두고 부처님께 속죄할 일을 저질렀다. 눈에 몇시간 딩굴고 보니 체온에 의하여 옷이 축축히 젖어들기 시작했다. 너무도 지치고 보니 누구하나 나무를 해다 선뜻 불을 피울 생각을 않는다. 또 봉정암주위는 원체 눈이 많이 쌓여서 굴 밖을 나오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생나무를 잘라 불을 피우자니 힘든 일이었다. 그래 우선 살아야 되겠다는 한가지 생각으로 대장에게 제의를 하였다.
엉성히 서까래만 남은 절기둥을 부수자고. 영식형은 고심 끝에 승낙을 하였다. 단신 도끼를 차고 눈을 헤쳐서 거의 1시간만에 절 지붕에 도착했다. 서까래 2개를 뜯었다. 도끼질을 하는데 마음이 언짢았다.
깊은 밤에 도끼질을 할 적마다 울리는 3단계 산 울림은 정말 유령이라도 나와서 뒷덜미를 잡을 것만 같았다. 혹 죄를 받도 이 자리에서 지옥행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그런데 그것이 나중에 알고보니 우리나라에 단 하나밖에 안남아 있다는 인도식절의 남은 흔적이라니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좌우간 서까래 덕으로 따끈한 밥을 먹을 수 있었으며 또한 따뜻하게 밤을 보낼 수가 있었다. 다 모두가 부처님의 자비로운 은혜로 이날은, 주위가 너무 산만하고 부처님께 죄도 짓고해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불침번을 내가 맡아야 했다. 이날 봉정암 굴속에 제일 먼저 도착한 최영식 대장은 굴속에서 큰 짐승으로 보이는 발자국과 똥을 발견하고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그 똥은 짐승의 체온이 그대로 남아있을 정도였다.
<봉정암>
1월 11일 : 기온이 많이 높아졌다. 우리는 은근히 백담골로부터 등반을 시작한 H클럽과 만나기를 바랬다. 왜냐하면 그네들이 럿셀을 한 자국을 따라 하산하면 그만큼 하산이 순탄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다. 계획서상에는 그네들이 통과하였어야 할 시일이 훨씬 지났기 때문이다.
유창서 대원은 설맹에다 코피를 자주 쏟는다. 봉정능에선 그리세링 하면서 하산하다 김경호 대원이 나뭇가지에서 가볍게 콧등을 찔리는 등 재미있는 일들이 일어나 지친 줄 모르고 유쾌하게 웃으며 하산하였다. 그러나 식량개선으로 밥을 제대로 먹지를 못하니 체력도 한계점에 이른 것 같다.
기온이 높고 설질이 나쁘니 지친 대원들로서는 한 발 자국이 힘들었다. 최영식 대장은 전원 모두 장구를 다 버리고 장구 하나만 가지고 하산하자고 한다. 우리는 좀 마음이 무겁고 어두웠다. 그러나 버티고 우겨댔다. 그러면서 어둡기전까지만 운행을 계속키로 했다.
저녁늦게 컴컴해서 H클럽의 럿셀자국을 만났다. 그네들은 오세암 출발과 동시 빽코스를 한 것 같다. 12시가 넘어서야 오세암에 도착했다. 한끼 남은 쌀은 내일 아침에 먹기로 하고 오세암에서 주는 인절미 두조각을 물에 끓여 미음같이 해서 먹고, 며칠만에 사굴집이지만 궁전속같이 푹 잠에 들어갔다.
<백담사>
1월 12일 : 일찍일어나 모닥불을 피우며 젖은 장구를 말리고 늦은 아침 식사를 했다. 다시 장비점검을 하고 가벼운 기분으로 백담사를 향해 출발했다. 최영식 대장은 영실암 근처에서 걸음을 재촉하다 그만 넘어져서 이상한 나무에 이마를 찔렸으나 피 한방울이 나지 않았다. 이로인하여 최영식대장의 별명이 <피 한방울 없는 몰인정한 사나이>가 되었다.
오후 4시경 백담사에 도착했다. 모든 스님들이 무척 반겨주었다. 여기에서 미안한 일은 오랜만에 얼어붙은 몸을 따뜻한 온돌방에서 푼다고 너무도 많은 장작을 때어 온돌과열로 방바닥에 물을 붓고 방문을 열고해서 모두가 감기는 물론, 잠도 제대로 못자고 새로 한 장판을 못쓰게 버려 놓았던 일이며, 이날 저녁 먹었던 저녁식사는 실로 놀랄만큼 양이 많았다. 그래도 모자란 듯하여 백담사부엌에 들어가 누른밥을 더 달라고 하여 스님들을 놀라게 한 것이었다.
1월 13일 : 스님들의 전송을 받으며 외가평으로 나와 속초로 왔다. 속초에서 해운업을 하시는 동대 선배께서 장한일을 하였다고 하며 성찬을 베풀며 환대를 아끼지 않았다. 일행은 설악산 횡단을 같이한 영국제 고급술을 선배께 선사하였다.
1월 14일 : 학교에 등반 무사히 끝났음을 전보로 알리고 하루를 속초에서 푹 쉬었다.
<귀 환>
1월 15일 : 서울에 도착하니 오후 5시경 이었다 .임돈선생을 위시해서 많은 분들이 일행의 귀환을 반겼다. 시발택시를 타고 서래관으로 직행하였다. 일행중 2명은 서울 출발부터 도착까지 세수 한번 하지 않았다.
특히 유창서대원의 얼굴털은 과히 아는 사람에게는 짐작이 가는것이지만 모르는 분들은 대원중 제일 연장자가 유대원으로 알았을 지경이니 몰골이 흉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
<후 기>
당시 적설기 등반을 3팀이 각각 하였으나, 다른팀은 중도에서 기권하고 귀경하였으므로 남은 동대팀에 대해서 많은 분들의 심려를 드렸다. 동대팀도 예정일자보다 3일 늦게 서울에 도착한 것이다.
지금도 그 당시 주어진 장구로서 잘 보관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다름이 아니라 어물시장에 가면 생선장수들이 신는 미군<코리언 부스>. 나는 지금도 이 신을 보면 옛날 동계 등반을 생각하면서 신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
1월 6일 우리일행과 대치 하였던 곰은 설악산 횡단 후 속초에 와서 포수에게 곰을 만났었다고 이야기를 하니 정확한 위치를 알고서 곧 추격하여 잡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