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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학생보고 - 훈련보고(2000년~200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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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2001년 1월 8일 ~ 1월 14일 산행장소: 설악산 가리봉능선(원통→주걱봉→가리봉→한계령) 대장:함동호(전기96) 대원:윤영남(정보통신95), 유일삼(공학계열00)
1월 8일 15:20 부실출발, 17:20 동서울 출발, 21:20 원통도착, 24:20 취침 어제 마신 술덕에 11시까지 푹 잤다. 일어나서 부실에 가니 형들이 분주히 짐을 챙기고 있었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못다 챙겼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인혜누나는 간식을 포켓하여 챙겨주었고, 득기형은 이모저모 조언을 해주었다. 영남형과 동호형은 미쳐 들어가지 않는 내 짐을 대신 넣어주었다. 배낭을 다 싸았을땐 2시가 넘어있었다. 잠시 쉬었다가 부실을 정리하고 파일과 오버자켓으로 무장하였다. 마음을 가다듬고, 배낭을 매는 순간의 짜릿함이란 적지않은 무게의 놀라움과 몇 일을 매고 걸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한번에 밀려왔기 때문이었으리라. 낑낑대며 발걸음을 옮겼고, 배웅하는 형・누나와 부실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출발구호와 함께 외친 ‘D-ONE’은 학교를 울렸고 우리는 설악산을 향한 하루를 시작하였다. 군화보다 커다란 비브람에 노란색 파일바지와 파란색 자켓, 머리를 넘기는 배낭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고, 수줍은 나는 고개를 떨구어 버렸다. 서둘러 도착한 터미널에는 우리가 타야했을 버스가 떠나고 없었다. 그래서 영남형과 함께 가기로 하고 대기실 앉아 신문과 TV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한참 잠에 취해 있을 때 형이 깨웠다. `윽! 드디어 왔구나…! 하는 걱정과 함께 몸은 배낭을 꺼내고 있었다. 유난히 깊이 들어간 배낭이 힘을 빠지게 했지만, 기사가 난폭운전을 해서 잠을 못잤다는 형들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저녁에 먹을 고기를 사고 배낭을 맨다. 어찌나 무겁던지 주저 앉고 싶었고, 장갑을 낀 손에는 신문지와 모자가 잡히질 않아 한층더 짜증스럽게 했다. 읍내를 지나 외곽으로 빠져 나왔고, 뻥 뚫린 도로 건너에 보이는 산은 밤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동계를 실감치 못한건지 너무도 초라하고 작아보였다. 우리는 산밑에 자리를 잡고 텐트를 꺼내어 폈다. 바닥에는 크고 작은 자갈이 많아 팩을 박는 것 조차 쉽지 않았다. 텐트를 치고, 짐정리하고, 냇물을 떠다 밥을 하고 고기를 굽고… 하는 일은 많았지만 추운 날씨에 몸이 빨라진건지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은듯 했다. 대장형이 준비한 갈비는 후라이팬에서 잘 익어갔고, 밥또한 질지도 되지도 않아 입맛을 당겼다. 형들과 잡다한 얘기를 하며 밥먹고, 차를 마시고 술을 마시는 동안 하는 것도 없는데 시간은 달려 가고 있었다. 득기형이 집에서 꿰매주신 텐트의 자국에 초칠을 하는 것은 귀찮으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추위에 떨며 오줌을 싸는 것 또한 귀찮으면서도 밖에 나가는 유일한 기회였다. 모든 것이 이렇듯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와 동계산행의 첫 밤을 장식하였다. 자리를 정리하고 침낭속에 들어와 하루를 돌아보는 이 시간까지도 아직 동계에 대한 별 생각은 없다. 단지 건강히 지내다 몸성이 돌아가야겠다는 맘뿐이다...
1월 9일 07:00 기상, 09:30 출발, 13:45 점심, 14:40 출발 16:00 운행종료 21:00 취침 한참 잠에 빠져 있을 때 대장형이 깨웠다. 비몽사몽간에 영남형을 깨우고, 먼저 침낭과 짐정리를 했다. 코펠을 들고 물을 뜨러 갔는데 어제 떠 놓았던 물이 얼어있었다. 종주기간중 가장 좋았던 날씨였다는 것에 비하면 조금은 엽기에 속했다. 아침은 떡만두국이었다. 솔직히 잘 먹지도 않는 거였지만 마땅한게 없어서 정했던 나로서는 식사준비의 시작부터가 난관이었다. 재료를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간은 어때야 하는지 고민이었지만 형들이 도와주어서 그나마 맛을 낼 수 있었고, 코펠 한가득 찼던 떡들을 다먹었다. 차를 마시고부터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짐을 챙기고 배낭을 싸고 오버자켓에 비브람, 스페츠를 신는 것은 왜그리 낯설던지… 가득찬 배낭에 텐트를 넣는 것이야말로 곤혹이었다. 장갑을 끼자니 불편하고, 벗자니 손이시려워 겨우 마쳤다. 그리고 나서 배낭을 매었지만 어제 그렇게 무겁던 것이 익숙해진 것인지 맘이 편해진 것인지 움직임은 불편했어도 무게는 견딜만 했다. 오히려 발에 익숙치 않은 비브람에 영하에서도 땀나는 장갑이 갑갑할 뿐이었다. 처음에는 혼자 흥얼대며 노래도 부르고 경치도 감상하고, 손이 심심해 눈뭉치도 주무르곤 했다. 하지만 집들이 하나둘 등뒤에 숨고, 콘크리트 길이 끌날 때 쯤 노래도 작지 않은 부담이었다. 형들이 독도를 하고 한 능선을 정하여 오르기 시작하였다. 오르는 길은 시작 부터가 고난이었지만 그래도 처음에는 목에 눈이 들어가지 않게 조심도 하고 수없이 털어 내었다. 하지만 1시간도 채 되지않아 목에 눈이 묻어도 고개만 흔들어 댔고, 2시간이 지났을 무렵엔 고개를 흔드는 것 조차 귀찮았다. 뿐만아니라 언제부터인가 무릎에 손이가기 시작했지만 그만큼 요령도 생겼다. 나뭇가지를 잡고 균형을 잡고가거나, 배낭을 이용해 반동하는 등 말이다. 시계가 없는 탓에 밥때가 되었는지도 모르고 배만 고팠다. 그래도 그냥 참고 간식으로 때우며 걷고 있을 때 대장형이 밥을 먹고 가자고 했다. 그때의 기쁨, 어찌나 좋던지…… 맛나게 점심을 먹고 영남형이 설걷이 법을 선보였다. 설마 했던 방법이어서 조금은 당황스럽고 우스웠다. 하지만 빠르고 간편해서 좋았다. 한시간 남짓 쉬었음에도 배낭을 다시 매었을땐 너무나 가기 싫었다. 하지만 조금 가다보니 그리 못할 일은 아니였다. 출발한지 30분도 채 되지 않아 멈추었다. 길이 엇갈린 건지 뭔지 형들은 계속 독도를 했고, 결국 영남형이 주위를 살피러 가고, 대장형과 나는 배낭위에 앉아 각자의 생각에 잠겼다. 졸음이오고 추워서 일어나 발을 굴렀다. 곧 영남형이 돌아왔고, 형들은 근처에 보이는 헬기장에서 야영을 하기로 결정했다. 우선 배낭으로 눈을 다듬고 발로 밟아 굳혔다. 화장실까지 만들고는 비닐을 깔고 텐트를 쳤다. 추위가 몸을 토닥여 주어서인지 몸이 빨리 움직였다. 짐정리를 하고 저녁을 준비했다. 배는 많이 고팠지만 이상하게 잘 넘어가지 않았다. 자리를 정리하고 대장형이 참이슬을 꺼내들었다. 마시고 싶진 않았지만 분위기상 한 잔 완샷! 그리고 한잔을 받아 있다가 건배와 함께 다시 완샷! 술이 모자라던 터라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했거늘 괘씸죄로 한잔을 더 받아야 했다. 형들이 술을 다 마시지 않았었다는 어설픈 이유로 마신 마지막 잔은 쓰면서도 달콤했다. 얘기는 언제나처럼 끊이질 않았고 화제는 누가 애써 만들지 않았어도 얘기꺼리는 자연히 바뀌고 계속 되었다. 우리가 자야할 시간까지……
1월 10일 05:20 기상, 09:30 출발, 14:10 점심, 15:30 출발, 17:40 운행종료, 22:10 취침
또 늦잠을 자버렸다. 부실에서 가지고온 자명종 시계가 얼어 고장 나있는 것이었다. 솔직히 고장과의 상관관계는 미지수지만 어쨌든 20분이나 늦게 일어났기에 몸은 더욱 바빴다. 날씨가 너무 추워 움직이기도 싫었지만 나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짐정리를 하고 아침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어제 저녁에 몇 가지 재료를 포켓에 두었기에 조금은 빨랐지만, 행동이 느려지는건 날씨나 짐에 대한 두려움이 적지 않은 요인이었으리라. 그래도 밥먹는 시간은 즐거웠다. 간을 못 맞춘다고 형들에게 잔소리를 들었지만 어찌하랴 먹는것에만 익숙해져 있는걸...... 추운 날씨가 준 선물은 설걷이를 안해도 되는 것이었다. 물은 연료와 비례 한다는 영남형의 말이 내 수고를 덜어주었다. 따스한 차한잔을 마지막으로 다시 배낭을 싸야할 시간이 되었다. 몸은 무겁고 짐은 많았다. 셋이서 몸만 안으로 들여 배낭을 싸자니 허리와 고개가 아파서 적지 않게 불편했지만 그래도 밖에서 싸는 것보다야 나았다. 배낭을 반쯤 쌌을때 형들은 배낭을 다 싸고 텐트를 걷으려 했다. 그때서야 배낭을 밖으로 빼고, 비브람을 신으려고 했는데 내피가 얼어있어서 발이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스패츠 지퍼도 얼어 닫히지도 않았다. 그래서 텐트를 정리하고 배낭을 싼 다음에야 신을 잘 신을 수 있었다. 그때쯤 형들은 독도를 하러 산 정상부에 가고, 난 추위에 떨다가 발을 구르며 노래를 불렀다. 노래는 중간에서 끊기곤 했지만 부를 노래는 많았다. 얼마나 불러댔는지는 모르고,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멀리 있는 형들을 살짝 흘려보고 간식을 하나둘 먹으며 몸을 풀고 있을 때 형들이 왔고 출발 준비를 하며 대장형에게 시간에 대한 주위를 받았다. 솔직히 내일도 일찍 일어날 자신은 없지만 상황상 잘 하겠다는 말로 대신했다. 우리는 출발 구호와 함께 문제의 그곳! 군부대가 산을 깎아 지형이 바뀐 그곳으로 갔다. 그리고 다시 올라와야 할지도 모른다는 부담을 안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곳은 너무 가팔라서 글리세링을 했다. 처음으로 해보았던 글리세링은 무척이나 재미있었지만 옷속으로 눈이 들어가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대장형까지 내려오고 우리는 벙커에서 눈을 털고 있을때야 능선 중간이 끊긴 것을 알았다. 곧 우리는 다시 출발하였고 끝없이 산을 올랐다. 파도와 같이 최고봉 아래엔 수없이 많은 작은 봉우리가 있었고, 그곳에 다다를 때마다 쉬어가길 기다린 내가 그 것을 포기할 때쯤에야 쉬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때에 영남형은 군사도로를 발견하였고 그 길이 진행경로랑 맞으면 길을 따라 가자고 했다. 부푼 마음으로 다가간 그 곳은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우리는 가파른 능선대신 넓고 평평한 군사도로를 이용했고 대장형의 지시로 내가 러셀을 했다. 평지를 가는데도 왜그리 힘들던지...... 이제까지 러셀을 한 영남형은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열걸음에 한번, 나중에는 세걸음에 한번 쉬어쉬어 가야했다. 영남형이 빨리 가자고 재촉했지만 맘대로 되질 않았다. 그리고 그 한계에 다다랐을 때쯤 대장형이 점심을 먹고 가자고 했다. 라면에 준비했던 주먹밥을 꺼내어 조리하고 먹을 시간을 기다렸다. 밥이 너무 많아 라면을 꾸겨 넣어야 했지만 그 많은 양을 우리는 다 먹어버렸다. 아마도 점심시간만 한 시간은 족히 되었으리라. 그 좋은 시간도 다 끝나고 우리는 다시 출발했고, 러셀을 계속하던 내 발은 꽁꽁 얼은 듯 했다. 하지만 오르락 내리락 길을 따라 걷고 다시 능선을 타려 할땐 신발속의 눈도 다 녹아 출렁이는 듯 했다. 시간은 흘러 해가 지려하였고 우리는 벙커를 찾아 그곳에서 자기를 바랬지만 행운은 따라주질 않았다. 결국 능선상에서 약간 비껴 자리를 잡고, 텐트를 쳤다. 추워서 빨리 텐트에 들어가려고는 했지만 신이 벗겨지질 않아 곤혹스러웠다. 짐정리를 마치고 저녁을 먹는 시간은 언제나처럼 즐거웠고, 참치찌개를 끓이며 간을 못 맞춘다고 하는 형들의 말들은 싫지 않은 잔소리였다.
1月11日 6:00 기상 9:30출발 3:10점심 4:10출발 5:55운행종료 10:50취침 처음으로 제시간에 일어났다. 물론 마지막이기도 했지만...유독 추운 날이었다. 바람이 심한것도 아닌데 기온이 낮아서 인지 텐트안이 서리가 끼어 있었다. 눈을 뜨고 잠을 깼지만 침낭에서 나오는 것은 너무도 어렵고 힘든일이었다. 한번 이를 악물고 나오면 되는 것을 왜그리도 망설이고, 그래야 하는지... 겨우 몸을 추스르고 짐을 정리 하였다. 그중에도 필중형이 빌려준 침낭은 가장 중요하고 잘 챙겨야만 하는 것이었다. 속옷만 입고 들어가도 춥지 않은 필중형의 침낭이 아니었다면 그 추위를 어찌 감당했으랴! 언제나처럼 아침은 떡 만두국이었다. 어제 저녁 귀찮아서 재료를 미리 준비해 두지 않아서 허둥대다가 문뜻 계란을 넣지 않았다는걸 알았다. 몇가지 재료도 안되는 떡국에 계란이 빠지니 그 티가 크게 드러났다. 특히나 영남형의 아쉬워하는 말투는 괜시리 미안하게 했다. 밥을 다먹고, 마지막 평화의 시간, 바로 차르 마시고 짐정리를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화장실이 급해진 것이다. 하던짐 다 팽개치고 비브람 내피를 신는데 왜그리 신기도 어렵고 발이 시려웠던지 반쯤 걸치고 뛰어 나갔다. 눈을 뭉개는데 아무리 밟아도 다져지지 않는 것이다. 결국 그냥 주저 않아 바지를 내려 버렸다. 급한대로 볼일을 마치고 돌아와 짐을 텐트 밖으로 꺼내었다. 배낭은 배낭대로 못싸고 신은 꽁꽁 얼어 신겨질 생각을 안하였다. 아니 내피를 외피에 넣는 것 조차도 어려웠고 발을 넣는데는 대단한 인내를 필요로 했다. 결국 9시 30분이 되어서야 출발할 수 있었고, 대장형은 시간준수부터 신발관리, 배낭도 혼자 꾸릴 수 없었던 오늘 아침에 대해 경고장을 던졌다. 나는 할말이 없었다. 단지 이유없이 톨아져 혼자 소심해져 있었다. 우리는 오도가도 못하는 대서양 한가운데서 표류하는듯한 암담함과 동시에 잃었던 레일을 찾은 기차처럼 희망찬 발길로 하루를 시작하였다. 출발이 늦은 관계로 우리는 서둘러야 했지만 계속되는 오르막길에 이내 힘이 빠져 버렸다. 유난히 가파르고 돌이 많아 더욱 곤혹스러웠다. 게다가 점심도 늦게먹어 오전(?) 아니 점심시간 이전의 운행은 최악아닌 최악의 산행이었다. 날이 저물기 전에 텐트를 치기위해 어지간히 노력하였다. 사면은 깍았지만 눈이 뭉쳐지지않아 한참을 발만 굴렀고, 배낭을 풀때쯤은 해가져 렌턴을 꺼내야 했다. 파카를 껴입었지만 매서운 추위를 감당할수 없었고 언제나처럼 영남형보다 먼저 신을 벗었지만 짐을 정리하고 내할일을 하는 일은 제일 늦었다. 저녁을 먹고 부터는 신을 말리는 일에 몰두 하였다. 각자의 양말이나 장갑을 널어놓고, 수저로 스패츠나 비브람에 붙은 눈을 긁었다. 나는 외피에 붙은 눈을 먼저 털고, 내피를 꺼내어 말리다가 외피의 안쪽을 보았다. 터진 스패츠 사이로 들어온 눈이 얼어 뒷금치에 빙판이 깔려 있었다. 그 얼음을 떼어내는 것은 대단한 인내를 필요로 하였고, 많은 시간투자를 해야했다. 형들은 이미 끝내고 선배님들에게 운행경과나 계획등을 전화해주고 있었는데, 뜻하지 않게 총무님과 통화를 하였다. 오랜시간을 얘기한건 아니었지만 다치지 말고, 잘 할 수 있을것이라는 위로의 말을 잊지 않았고 해주셨다. 나 역시 잘 하겠다고는 했지만 속으로는 폭설이 내려 하산하기 만을 바라고 있었다. 일과를 마치고 잠잘시간이 되었을 때 대장형이 시계를 내게 주었다. 나더러 아침 기상시간을 맡기는 의미였기에 아침잠이 많은 나는 무척이나 부담스러웠다. 나는 어쩔수 없이 시계를 받아 팔에 찼고 원망스런 시계만보다 잠이 들었다.
1月 12日 5:50기상 9:00출발 6:00운행종료 11:00취침 밤잠을 설쳤다. 대장형이 시계를 넘겼기 때문에 나로서는 대단한 부담이었다. 몇 번을 잠들다 깼을까?! 시간이 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시간이 역행하는가하면 금새 몇시간이 지나가 있었다. 그래서 침낭속을 뒤지며 폰을 찾아 플립을 열었다. 5:50 또 늦었다! 하고 생각을 했지만 서두르지는 않았다. 그냥 조용히 대장형을 깨워 시계가 고장났다고 말하고 시간이 늦었다고 했다. 우리는 일어나 침낭을 먼저 챙기고 , 옷가지를 옮기며 또다시 하루를 시작했다. 종주가 2日밖에 남지 않았기에 우리는 서둘렀고, 언제나처럼 난 화장실을 찾아 휴지를 들고 뛰어가 눈을 밟아야 했다. 아침을 먹고, 차를 마시고 배낭을 싸는일은 언제나 같았지만 항상 새로운 일을 시작하듯 어렵기는 마찬가지 였다. 얼어버린 옷가지들을 넣거나 수량은 적어졌지만 왠지 부피가 커져버린 배낭싸는 일은 더뎠지만 어제에 비하면 대단히 빨랐다. 우리는 9시에 출발구호를 외치며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였고 난 속으로 중간에서 마을로 내려가기를 고대하였다. 계속되는 발길질에 눈이 파이고 흩어졌지만 겉이 살짝 얼어버린 눈은 다리를 들어올리기 힘들게 하였다. 솔직히 처음에는 딴 생각에 정신이 팔려 느끼지 못하였지만 영남형이 한번 이 이야기를 한뒤로는 계속 신경이 쓰였다. 이런 사소한 일은 처음에는 정신적으로 다가왔다. 어느새 내몸을 힘들게 하였다. 그리고 오늘따라 눈이 많았다. 간간히 발등이 보이는 구간이 있었지만 보통은 무릎을 덮어 발걸음을 할때면 산더미같은 눈이 발등에 솟아 있었다. 내가 지친 것을 아는 듯 영남형은 여기저기 널려있는 봉우리들을 설명해 주었지만 수학여행으로나 와봤던 설악의 봉우리들의 이름을 기억하기란 있기 힘든일이었다. 11시가 조금 지나 휴식을 취했다. 우리는 항상 아침과 점심식사의 중간시간쯤에 쉬었기 때문에 점심시간이 늦어질 것을 예상하고는 간식으로 배를 채우기 시작 했다. 하나의 봉우리를 내려오는데 1시간 가까이 걸리기도 했다. 절벽이 있는가 하면 원숭이가 되어 나무를 타기도 했다. 그리고 그 고난의 하행이 끝나고 주걱봉을 마주하는 곳에서 대장형이 쉬어가자고 했다. 속으론、밥먹는구나!‘하고 좋아했지만 웬걸...다 먹어버린 오늘의 간식대신 내일의 것을 몰래 꺼내야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찌나 서운하고 화가 나던지...신경써서 밥을 많이 준비 했거늘 그밥은 오늘 하루동안 내짐이 되었다가 그대로 몇일째 보지도 못했던 토끼밥이 되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걱봉을 치느냐, 트레바스를 하느냐를 고민해야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장형과 영남형이 정하고 난 표면상의 긍정만을 얘기했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물어 준다는게 어디냐! 어쨌든 우리는 주걱봉을 피해갔지만 피한다고 피한 것이 주걱봉을 오른 결과가 되었고 당연히 그 과정은 암담하고 처절했다. 지친 나로서는 스므살이 되어서도 기는 연습을 해야 했고, 벗겨진 배낭덮게를 다시 씌우기위해 낭떠러지 같은 곳에서 배낭을 풀렀다 매야했고 처음으로 허벅지까지 오는 눈을 헤쳐야했다. 하지만 여느때와는 달리 릿지하는 영남형을 따르지 않고 내가 편한 아니 내 생각에 그나마 안전한 길을 찾아 헤맨날이기도 하다. 우리는 주걱봉 중턱에 야영지를 잡았다. 야영지는 사면에 자리가 좁아 눈을 퍼다 자리를 만들어야 했고 오늘 하루종일 걸어온 길보다 멀다는 가리산이 보였다. 텐트를 치고 신을 벗는 일은 언제나처럼 힘들었고, 하던일은 항상 같았다. 그래도 얘깃거리만은 매번 바뀌었는데 이번에는 만화에 대해 얘기했고, 우리는 저마다의 어릴적을 떠올렸고 , 약간의 세대차와 약간의 동질감을 느낄수 있었다...
1月 13日 7:40기상 10:00출발 9:00운행종료 1:30취침 눈을떠 시계를 보았다. 5시가 조금 안된시간, 다시눈을 뜨니 6시가 조금 지난시간 늦은 것은 알았지만 몸은 여전히 누워 있었다. 결국 8시가 다 되어서야 그리고 영남형이 깨우고 나서야 눈을떴고, 그러면서도 몸은 아직 침낭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예비일을 앞둔 가장 중요한 날! 산에서 일어나는 마지막날 늦게 일어나서 우리는 더욱 서둘렀고 산에서의 마지막날이 되기를 기원하며 각자의 일에 힘을 쏟았다. 언제나처럼 제일먼저 텐트밖으로 나간 영남형이 말하기를 텐트가 밀렸다는 것이다. 다행이 대장형이 나무에 끈으로 묶어놨기에 그나마 덜 밀렸다고 한다. 어쨌든, 오늘의 하루가 힘겹고, 빨리 가야한다는 적지않은 부담을 배낭에 겹쳐이고 하루를 시작했다. 나는 언제나처럼 빨리 하산할수 있는 경우들을 생각하며 그런일들이 일어나기를 바랬다. 눈이 필요이상으로 내려 입산금지령이 내린다든지, 낙오한 등산객을 만나 데리고 내려간다는 등 스스로도 우스운 생각을 하면서도 아직 혼자 도망가는 등의 생각은 하지 않았다. 10:00쯤 출발한 우리는 가리봉을 찾아 끝없는 발걸음질을 했다. 동호형이 선두로 나섰고 난 언제나처럼 그뒤를 따랐다. 영남형은 볼일을 보느라 얼마나 뒤쳐졌는지 모른다. 한 20~30분쯤 걸었을까?! 아니 가파른 오르막에 바닥이 바위와 나무를 잡고 층층히 쌓아있는듯한 나무를 밟고 기었다고 해야겠다. 먼저가던 대장형이 대기 하라고 했다. 난 복창을 하고 뒤로돌아 간식을 먹으며 멀리 보이는 산을 감상했고, 내가 기다린 대장형의 다음말에 이내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도 힘들게 올라온 길은 후진해야했고 마침 뒤에오던 영남형과 마주쳤다. 우리는 돌아돌아 안전하고 빠른길을 찾았다. 그러나 웬걸 거리는 5m인데 가는방법은 500m를 걷는 듯 어려운곳을 넘어야 했다. 그곳은 벼락 사면인데 볼트에 바를 묶어놔 그것을 잡고 대각선 방향으로 오르게 되어 있었다. 형은 안전하게 내 배낭에 있는 자일을 사용하기로 했고, 영남형, 나, 대장형순으로 건너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 내가 오른뒤 배낭을 자일에 묶어 끌어 올리기로 한 그방법이 문제 였다. 미리 지지된 안전바에 걸리고, 무게에 치이고 하다보니 배낭 하나를 옮기기 조차 어려웠고 결국 1분거리를 40분도 넘게 소요해야했다. 그리고도 2~3번 계속되는 난관을 건너야 했으므로 많은 시간을 소비해 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아니 형들은 야간주행을 해서라도 종주를 오늘 끝내자고 했고, 나로서는 더할나위 없었다. 계속되는 산행 그러나 보이되 오르기 힘든 가리산, 결국 3:40분에야 정상에 설수 있었고, 우리는 사진을 찍었다. 조화되지 않는 옷과 어설픈 웃음, 어색한 포즈는 훗날 웃음의 기회를 주리라...역시나 날씨는 춥고 바람은 심했다. 하지만 영남형은 여기저기 봉우리의 이름을 가르쳐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1,519m의 최고봉에서는 모든 것이 내려다 보였고, 착시인지 실제 인지 모든 것이 작아 보였다. 내가 이런 사소한 상념에 빠져있을때도 형들은 나머지 일정에 열을 올렸고 오늘 꼭 한계령까지 내려간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리막은 생각처럼 쉬웠고 아는만큼 위험했다. 한가지가 더 있다면 내리막 다음은 오르막이라는 진리도 있었기에 하산은 그리 빠른 시일내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오로지 눈과 나무, 간간히 나타나는 돌맹이 뿐이었다. 우리는 보물찾기를 하듯 표식기를 찾으며 한걸음씩 내딛었다. 그러기를 몇시간, 한두번은 후진도 하고 한두번은 넘어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해가 질 무렵 휴식을 취하며 렌턴을 준비하였고, 곧 야간산행이 시작되었다. 점심따위는 진작 포기 했지만 다 먹어버린 간식은 입을 심심케하여 그리고 그 즈음 난 한계에 이르고 있었다. 다리는 어찌 움직이는지 몰랐다. 팔은 나무한가닥 잡기 조차 싫어했고 노래는 끊긴지 오래다. 그래도 난 걸을 수밖에 없었다. 일과가 늦은것도 내탓이오. 하루가 급한것도 나요. 힘이 벅찬것도 나였기 때문이다. 간간히 들려오는 영남형의 위로 한마디가 더 좋았는지 모르겠다. 8시 생각이란건 사치였다. 앉는 것은 일어설때의 부담이었고, 후진을 외치는 영남형의 말은 비수가 되어 꽂히었다. 거의 만취된 취객이나 뼈없는 연체동물이었다. 몸은 흐느적거리며 팔은 땅을 짚었고, 내키는 1.3m짜리 난장이가 되었다. 어찌나 힘들던지. 아마 이때부터 였을 것이다. 죽기 만큼 싫었던 산에서의 야영을 바랬던것은...이바램은 한시간 허공을 맴돌다 다가왔고, 우리는 9시가 넘어서야 야영지를 잡고 텐트르 쳤다.
1月 14日 6:00기상 4:00서울행버스 8:00서울도착 8:30부실도착 언제나 고대하던 산에서의 마지막 아침, 추위에서의 해방이요 침낭에서 나오기가 싫어 짜증내던 시간의 끝이요. 사람을 보게되는 날이라는 면에서 모두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침낭에서 나오기 싫었던건 어쩔수 없는 사람이요. 차로 아침을 대신하는 것이 좋으면서도 밥이 아쉬운 것도 사람이었다. 차를 마시는 것은 언제나처럼 편하면서도 이내 밀려올 시간을 걱정케 하였다. 물론 그시간은 하루를 계획하기에도 짧고, 항상 빠르게 지나갔다. 나태해진 것인지 배낭 싸는 속도가 더디게 느껴졌다. 아니 마음은 이미 한계령에 있는데 몸은 산속에 있기에 맘이 조렸지만 그래도 밥은 안먹은 만치 빨리 도착하리라는 우수운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하루를 시작하였다. 기대가 큰만큼 실망도 크다고 하였던가? 영남형의 말을 믿고 속으로 1시간을 계산하며 걷다보니 자꾸 힘이 빠졌다. 내가 어리석었던 것일까?! 영남형의 말만 믿고, 그시간을 셈한 것이 잘못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암담과 짜증이 밀려왔다. 게다가 간식맛에 버티는 재미도 없었다. 한가지 두가지씩 더 사주려고 하시던 정훈형과 형수님이나 인혜누나, 동호형 할것없이 등에진 배낭 같은 정선을 꾹꾹 눌러 손바닥만한 봉지에 가득채워 먹었는데 엊그제, 어제 이틀동안 한봉지씩을 더먹다보니 오늘의 것이 없었다. 아니 오늘의 것은 원래 계산하지도 않은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아쉬운건 내 입뿐이었다. 얼마나 걸었는지 모른다. 조금씩 우리의 길을 찾았고, 중간중간 고난의 길을 지나 이내 한계령으로 이어지는 국도에 도착했다. 한계령 밑 1.5km지점 우리는 노래를 부르며 한계령 정상에 올랐고, 속초시내로 내려갈 방도를 찾으며 열을 올렸다. 결국 우리는 트럭을 히치하여 산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추위에 떨어야했다. 하지만 한계령 휴게소에서 동물원 원숭이가 된듯한 느낌이나 거울속의 내모습에 처참함을 느끼지 않아서 그래도 좋았다. 그리고 오색약수에 도착하여 내릴때가 되어서는 바로 속초행 버스를 타는 행운도 따라주었다. 속초에 도착해서 필중형을 기다리면서도 몸은 여전히 떨고 있었다. 두꺼운 장갑에 목토시를 그대로 끼고 발만 구르고 있었다. 그리고 필중형이 올때는 혹시나 했던 미란누나와 함께였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반겨주었다. 둘은 한참전에 도착해서 여기저기 구경도 하고 왔다고 했다. 우리는 곧 점심을 먹으러 시내(?)로 갔고, 그러면서도 이것저것 얘기를 하느라 바빴다. 우리가 도착한곳은 시장 구석진 곳의 순대국집, 동호형이 몇 년째 종주를 마치고 들린다며 안내한 그곳에서는 눈이 너무 많았다는 불평이나, 수고했다는 격려, 남은 동계에 합류하는 미란누나를 겁주려는 말들이 끊이지 않았고, 무엇이 가장 기억이 남느냐는 형들의 질문엔 아침에 일어나기가 가장 싫었다고 했다. 그리고 언제 말했는지는 모르지만 이틀동안 간식을 몰래먹은 얘기도 서슴없이 털어놓았고 화장실에 다녀와서는 냄새나는 푸세식화장실도 좋다며 웃어버리기도 했다. 입냄새나도 좋을 순대와 형들이 따라주는 소주, 그리고 그릇 가득한 순대국은 여느때 먹는 것보다 좋았고 맛있었다. 그 좋은 시간도 다 가고 우리는 밖으로 나와 영남형과 필중형, 미란누나는 강모형이 도착할 버스터미널로 향했고 난 대장형과 속초의료원으로 갔다. 비브람 내피를 말린다고 침낭에 넣고 잔다는 것이 발을 얼게 하였고, 그것도 잘 관리하지 못해서 동상에 걸렸다. 결국 동상 2도 판정을 받기는 했지만 그것이 일주일동안의 원시인 생활을 후회케 할 수는 없었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몇분을 기다려야 강모형을 만났다. 난 언제나처럼 웃음으로 반겼고 강모형은 멍청하게 동상이나 걸린다고 한 대 때릴 기색을 하며 껴안아 주었다. 같이 서울로 가기로한 영남형을 남게 하고는 나에게도 은근히 남으라는 눈치를 보였다. 지금이라면 웃으며 좋다고 하겠지만 그때는 왜그리 싫었는지...결국난 필중형이 사준 쵸코파이 한상자와 음료수를 들고 차에 올랐다. 그리고 득기형이 기다리는 서울로 향했다. 우리는 고속버스 터미널 지하철에서 만났다. 득기형은 인혜누나와 함께왔다. 역시 내발을 걱정해 주느라 형, 누나에게 인사도 제대로 못했다. 난 그동안의 일들을 일일이 설명하였고 인혜누나는 간간히 맞장구를 쳐주었다. 지하철에서도 학교를 올라가는 길에서도 난 동물원의 원숭이였다. 하지만 일주일전 출발할때와는 달리 자신감에 차있었다. 부실앞에서 호정이를 만났다. 내 몰골을 보며 놀려대는데도 왜그리 반갑던지...인사를 나누고 부실 앞에서 득기형의 선창과 함께 ‘D1‘을 외침으로써 나의 동계산행 아니 동대 산악부의 2001年 동계종주를 마쳤다. 물론 형들은 아직 밖에서 남은 동계를 지내고 있고 나만 사정상 돌아 왔지만 어쨌든 종주는 모두 무사히 마쳤다. 모두들 나름대로 그 의미가 있겠지마 나에게는 첫 장기산행이고 1학년으로써의 마지막 산행이기에 더욱 뜻 깊은 산행이었다. 물론 기상시간이나 텐트생활을 잘한건 아니지만 그래도 식단계획이나 20년만에 오는 폭설의 악조건 속에서 무사히 종주를 마쳤다는 점에서는 그 어느때보다 좋았던 산행이라 생각한다.?> 처음으로
산행 보고서
산행일 : 2001년 8월 8일 ~ 8월 21일(13박 14일) 대상지 : 설악산 하계 등반 대 장 : 함동호 대 원 : 최진규, 안호찬, 김요선, 양시열, 박강모, 윤필중, 방득기, 제출자 : 최진규(사회과학부01)
05:30 기상. 모두들 전날 만취한 상태였기 때문에 30분 이상 깨워야 일어났다. 남교리로 가는 버스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부실 밖에서 힘차게 ‘D-one'을 외치고 출발했다. 하계라는 장기 산행에 어깨가 무겁다. 하지만 끝까지 남아서 배웅해주시는 선배님들 때문에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버스 시간은 07:30분이다. 아직 모두 정신이 없다. 남교리까지 가는 버스 안에서 마치 하계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사람들처럼 아무 말 없이 잠만 잤다. 3시간 정도 달려서야 남교리에 도착했다. 예정보다 일찍 도착해서 점심을 먹고 출발할 수 있었다. 필중이 형이 종주 동안 우리가 가야할 코스를 대충 가리켜주셨다. 어마어마한 산들을 넘고 또 넘어야 했다. ‘과연 저 산들을 다 넘을 수 있을지... 뭐, 가다보면 언젠간 거기에 가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출발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복숭아탕. 계곡길을 따라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발걸음도 가볍다. 3시간 조금 넘게 운행을 해서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 대장인 동호 형이 “오늘처럼 이렇게 물 많은 곳에서 쉴 수 있을 때가 앞으로 종주 기간 동안은 없으니까 물 많이 먹어두고 빨리 벗고 물에 들어가자.” 라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우린 그때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던 것이다. 아무튼 그때는 계곡에서 논다는 즐거움에 다른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날 저녁 오랜만에 짬장 호찬이가 조리 실력을 발휘했다. 산에 와서 먹어보는 전무후무한 맛일 것이다. 야영 준비를 끝마치고 비상식으로 가져온 씨레이션을 먹으며 산노래를 배웠다. 첫날 산행은 이렇게 즐거웠다.
2001년 8월 9일
04:30 기상. 텐트 밖은 아직 어둡고 쌀쌀하다. 움직이기가 싫을 정도다. 첫날이라서 그런지 식사준비와 짐정리가 모두 서툴렀다. 3시간 가까이 지나서야 운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다행히 첫날이라서 동호 형이 충고만 하신다. 오늘의 목적지는 대승령을 지나 귀떼기청을 치고 한계 갈림길까지 가는 것이다. 대승령까지는 계속 오르막길이다. 옆으로 보이는 12선녀탕에서 수영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저기까지만 가면 정상이겠지’ 하는 마음으로 여러번 속은 끝에 대승령에 도착, 간단히 라면으로 점심을 먹었다. 지금에 와서 뼈저리게 뉘우치는 일 중의 하나는 대승령 못미치는 지점에서 우리가 수통 2병을 먹었던 것이다. 우리가 걷는 속도를 보더니 동호 형이 갑자기 물을 통제하신다. 그때까지도 우리는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다. ‘뭐, 가다보면 귀떼기청이 나올테고, 한계 갈림길에 가면 물이 있겠지.’ 하지만 귀떼기청을 오르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가혹한 물 통제 속에 간신히 너덜지대로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혹시 귀떼기청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역시 아니었다. ‘이런 귀떼기청이 도대체 어디야...’ 걸어도 걸어도 능선은 끝이 없고 날이 어두워지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온몸에서 물을 원하고 있다. “동호 형, 물 마시고 가요...” 하지만 동호 형은 단호한 한 마디, “안돼!” 정말 고통스러운 산행은 계속되고 있었다. 결국은 귀떼기청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그날 저녁 모두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물 한모금에 대한 간절한 마음. 남아있는 물을 가지고서 밥을 짓고 국까지 끓이기에는 역부족이다. 밑반찬에 꾸역 꾸역 억지로 밥을 먹었다. 물 한모금만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그러나 동호 형 배낭에서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동호 형이 씨익 웃으면서 꺼낸 황도 통조림. 그때의 맛을 지금은 느낄 수 없다. 황도를 먹고 과즙을 마시는 모습을 모두 다 주시하고 있다. 혹시 누가 오버해서 더 먹지 않을까... 남아있는 과즙을 마시려는 노력이 지금 생각해보면 처절하기까지 하다. 다음엔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분명히 동호 형 책상 서랍에서 본 포도주가 지금 내 눈앞에서 병뚜껑이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생각 같으면 한번에 원샷을 때리고 싶지만 마신 다음이 아쉬울까봐 쉽게 목구멍에서 넘어가지는 않는다. 그날의 갈증은 뜻밖에 여유롭게 해결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남아있는 물이 없는 내일 등반이 걱정된다.
2001년 8월 10일
05:00 기상. 일어나기는 했지만 모두들 힘이 없다. 아침은 간단히 씨레이션을 먹었다. 어제 복숭아탕에서 먹은 씨레이션과는 또 다른 맛이다. 물이 부족하니 제대로 떠먹지도 못했다. 먹지 않으면 그날 운행이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목구멍에서 받질 않는다. 세상에 하루 사이에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 있을까... 역시 귀떼기청까지 가는 길은 종주 전체를 놓고 볼 때, 가장 힘들었다. 육체적으로 힘들기도 했지만 정신적인 고통도 만만치 않다. 동호 형과 필중이 형은 철인처럼 저 멀리 가는데, 어디서 그런 힘이 솟는지... 아침에 풀잎에 내린 이슬을 혀로 핥으며 귀떼기청에 겨우 도착했다. 하나의 높은 봉우리를 올랐다는 기쁨대신 빨리 한계 갈림길까지 가서 물을 마시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한계 갈림길가지 가는 길에 너덜지대에서 웅덩이에 고여있는 물을 발견, 모두들 마시려고 했다. 안에 거머리가 떠다니든지, 우선 목부터 축이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동호 형의 단호한 한 마디, “안돼!” 속이 쓰리다. 저렇게 많은 물을 그냥 지나쳐 가다니,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지만... 정말 겨우 겨우 한계 갈림길에 도착했다. 거기서 비닐 봉지에 담긴 어떤 산사나이의 정성스러운 물을 발견. 그 자리에서 각자 날진 한병을 원샷했다. 이제 조금 살 것 같다. 하지만 살 것 같은 생각도 잠시 휘발유가 묻은 짐을 말리려던 요선이의 배낭과 일부 짐에 불이 옮겨 붙었다. 바로 옆에서 버너에 라면을 끓이고 있었는데, 잠시 긴장이 풀어진 탓이다. 다행히 불로인해 큰 피해를 입지 않고 진압되었다. 아쉽게도 요선이의 새로 산 하니스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다시 긴장을 하고 그때부터 우리가 결심한 한가지. 무조건 물 있는 곳까지 운행을 한다. 전날 운행을 못마쳐서 오늘 운행이 가중되기는 했지만 반드시 오늘은 ‘물이 있는’ 희운각까지 간다는 일념으로 운행을 했다. 그 생각에 힘을 얻었는지 모두들 걸음에 힘이 있다. 역시 ‘청’이 붙은 봉우리는 정말 오르기 힘들다. 귀떼기청을 시작해서 끝청, 중청, 대청. 그런데 봉우리에는 물이 있을 리가 없기 때문에 걸음을 거기서 멈출 수는 없다. 대청에서 중청대피소가 구름에 가리는 순간을 이용. 제한된 등산로를 따라 희운각으로 떨어졌다. 정말 짜릿한 순간이었다. 역시 희운각엔 물이 많았다. 그날 다리 밑에서 물을 맘껏 마신 기억을 잊을 수 가 없다. 하지만 우리가 희운각을 기억하는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하계 등반 내내 유행어가 된 호찬이의 “한번만 먹어줘!” 된장찌개에 물을 섞은 느끼한 그 맛. 만약 동기애(?)가 아니었다면 그 한 숟가락을 먹을 수 없었을 것이다.
2001년 8월 11일
04:30 기상. 모두 원기를 회복한 상태. 몸이 쑤시긴 하지만 옆이 계곡이라서 기쁘다. 물로 고생을 해봤기 때문에 운행을 시작하기 전에 물을 많이 먹어 두었다. 오늘의 운행은 공룡능선을 타고 마등령에 이어 저항령까지 가는 것이다. 공룡능선은 길이 험하기도 했지만 바위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 재밌었다. 가파른 경사를 오르락내리락, 또 낙석의 위험을 생각하면서 조심스럽게 운행을 했다. 마등령까지는 즐겁게 운행을 했다. 마등령에서 물을 찾으러 나침반을 가지고 무작정 내려갔다. 동호 형은 5분 거리라고 했는데, 막상 가보니 뛰어서 5분 거리였다. 귀떼기청을 고생하며 오른 기억을 상기하며 물을 많이 먹었다. 하지만 그 만족감도 잠시 마등령까지 다시 오르는 길은 험했다. 마신 물을 땀으로 다 쏟아냈다. 마등령에서 라면을 먹고 이젠 저항령으로 출발했다. 마등령에서 미시령까지 7.3 Km. 그 정도야 가뿐하게 끝낼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너덜지대 아픈 기억이 되살아난다. 저항령까지 가는 길은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등산로라서 그런지 길이 험하다. 신경을 쓰지 않으면 풀이 몸에 감기고 배낭 헤드가 나뭇가지에 걸려 걷기조차 힘들다. 이젠 조금 종주에 익숙해지나 했더니... 내리막길은 또 구르는 돌이 많아서 긴장을 풀 수가 없다. 북주릉에는 왜 이리 너덜지대가 많은지 가도 가도 돌 뿐이고 넘어도 넘어도 산봉우리가 보인다. 설마 오늘 저항령까지 못 가는 건 아니겠지... 다시 걱정이 된다. 산 전체가 안개에 가려 독도가 쉽지 않아 현재의 위치도 가늠하기 힘들다. 12시간 이상 운행을 한 끝에 드디어 저항령에 도착했다. 대청봉에 올랐다는 즐거움보다 훨씬 더 기뻤다. 야영을 할 장소도 최상이다. 저 멀리 보이는 속초 시내, 그리고 더 멀리 바다의 오징어잡이 배들. 오랜만에 아늑한 분위기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2001년 8월 12일
05:00 기상. 오랜만에 동기들 간에 손발이 척척 맞았다. 예정된 운행 시간인 7시에 출발할 수 있었다. 오늘은 황철봉을 치고 미시령을 지나 신선봉 근처까지가는 것이다. 날씨가 흐려서 비가 올 것만 같다. 황철봉은 거대한 너덜지대라고 한다. 귀떼기청의 몇 배이상 된다고 하던데... 하지만 우리의 일념은 ‘무조건 물 있는 곳까지 간다’이기 때문에 황철봉이 높든지 낮든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몇 시간을 힘들게 올라서 정상으로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설마 여기가 황철봉은 아니겠지 했는데 가도 가도 높은 봉우리는 없고 능선길이다. 우리가 아까 지나친 봉우리가 황철봉이었던 것이다. 기대했던 봉우리를 그냥 지나쳐버린 것이 허탈했다. 미시령까지 가는 길에 처음으로 다른 대학 산악부들을 만났다. 우리는 산행 5일째라서 꼴이 말이 아닌데 다른 산악부들은 첫날이라서 그런지 차림새가 말끔하다. 이대 산악부가 건네준 사과 2개는 물 한병을 다 마신 것보다 갈증이 더 빠르게 해소되었다. 우리도 다음 산행엔 무겁더라고 준비를 해 가야겠다. 미시령으로 가는 도중에 초소에 경비가 없다는 정보를 인하대 산악부를 통해 접수, 마음 놓고 미시령 휴게소로 내려갈 수 있었다. 미시령에서 운행이 끝나길 바랬지만, 음료수를 마시고 다시 운행 시작이다. 아쉬운 마음을 이끌고 다시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경사가 무척 가파르다. 그런데 이곳은 등산객들이 많아서 그런지 산중턱에 약수터가 있었다. 바라지 않았던 곳에 물이 있어서 무척 기뻤지만 동호 형이 한 사발로 제한해서 너무 아쉬웠다. 계속 위로 올라친 끝에 마치 이름을 있을 것 같은 봉우리에 도착했다. 우리를 뒤따라오시던 한 아저씨가 여기가 신선봉이라는 것이다. 정말 믿기지 않았지만 믿고 싶었다. 우리가 축지법을 쓴 것일까... 그렇다면 이제 마산도 가깝다는 것인데... 괜히 기분이 들뜬다. 그런데 동호 형이 신선봉이라는 것을 믿지 않아서 왠지 찝찝하다. 하지만 우린 신선봉이라고 생각하고 그 밑에 안부에서 야영을 했다. 이제 내일이면 종주가 끝이다. 힘든 일도 많았지만 멋지게 마무리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2001년 8월13일
05:00 기상.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아무래도 종주를 멋지게 마무리할 것 같다. 비를 맞으면서 짐정리를 하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을 것 같다. 배낭이 가벼워지나 했더니 다시 무거워진다. 7시에 운행을 시작해서 계속 위로 올라친 끝에 도착한 곳은 바로 신선봉. 어제의 그 봉우리가 신선봉이 아니다니... 날씨가 계속해서 흐려서 신선봉에서 길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30분 여 동안 길을 찾은 끝에 마지막 코스인 마산으로 가는 길을 발견. 바쁘게 움직였다. 비가 와서 특별히 운행에 신경을 써야 했다. 마산으로 가는 길도 만만치 않다. 봉우리를 넘고 또 넘어 새이령에 도착. 또 다시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 비가 와서 걸음도 더디고 등산화는 그 동안의 피로로 게거품을 문다. 새이령에서 잠시 쉬고 다시 운행 시작, 몇 번을 속은 끝에 마산에 도착했다. 멀리 보이는 마을, 도로 그리고 알프스 리조트. 꿈만 같다. 뒤돌아보면 아득한데, 바로 눈앞에 목적지가 있다니...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라고 동호 형이 당부하신다. 진부령까지 가는 내리막길은 정말 미끄러웠다. 걷는다기 보다는 스키를 타듯 미끄러져 내려왔다. 알프스 리조트에 도착해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보니 꼴이 말이 아니다. 6일 사이에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바로 산사나이. 다른 것은 잘 모르겠지만 옷차림에 있어서는 산사나이가 되어 있었다. 진부령에 도착해서 설악동으로 가는 버스에서 아늑함을 원했지만 성능 좋은 버스에서 에어컨이 터지도록 냉기를 뿜어내서 홀딱 젖은 몸이 얼어버리는 줄 알았다. 저녁 늦게 설악동 C지구 야영장에 도착했다.
2001년 8월 15일
06:00 운행 시작 시간이다. 전날의 술자리 때문인지 우리가 일어난 시간은 7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더군다나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려서 장비와 식량 준비가 늦어졌다. 형들 얼굴이 심상치 않다. ‘베이스에 와서 긴장이 풀어진 탓일까...’ 다행히 PT 체조 100여회로 몸을 풀었다. 오늘의 등반지는 천화대였는데, 비가 온 관계로 취소되었다. 종주 기간 동안 기다려온 릿지 등반인데, 너무 아쉽다. 그런데 즐거워하는 요선이의 모습...대신 울산암과 비룡폭포를 갔다. 종주 기간 동안 어깨를 짓누른 어택 대신 오늘은 간편한 랩색이다. 발걸음을 옮기기도 수월하다. 울산암까지 가는 길은 종주 기간 동안 운행한 등산로에 비하면 거의 평지였다. 일반 등산객들이 많이 다녀서 그런지 길도 편하다. 수 백개 정도의 철계단을 오른 끝에 울산암 정상에 도착했다. 울산암에서 시열이 형이 준비한 과일을 먹은 뒤 곧바로 비룡폭포로 향했다. 확실히 종주 때보단 몸이 가벼웠다. 그런데 걸음걸이는 그대로인 것 같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비룡 폭포까지 다녀온 뒤 저녁 늦게서야 베이스에 도착했다. 모두들 허기에 지쳐있다. 잽싸게 라면을 끓여 먹은 뒤 저녁을 먹고 있는데 시열이 형이 피자를 사 오셨다. 세상에 베이스에서 피자를 먹다니, 정말 꿈만 같았다. 확실히 베이스 생활이 편하기는 하다. 하지만 종주 때만큼의 긴장감을 느낄 수 없어 아쉽다. 내일은 날씨가 좋아서 꼭 천화대 등반을 하고 싶다. 물론 요선이는 비가 오길 바라겠지만...
2001년 8월 16일
05:50 운행 시작. 설악산 소공원으로 가는 첫차를 타고 천화대로 향했다. 다행히 날씨가 맑다. 비선대까지는 지루한 평지길. 산노래를 흥얼거리며 운행을 했다. 설악골 입구에 도착해서 요선이의 리드로 몸을 풀었다. 사고가 다발하는 곳이어서 긴장이 된다. 오늘은 강모 형이 특히 안전을 강조하신다.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곳인가 보다. 천화대 등반 시작. 기다려온 릿지 등반이라서 기대가 된다. 우리가 아침부터 서둘러서 그런지 뒤따라오는 팀들이 많다. 처음 등반 코스는 습기가 많은 곳이라서 너무 미끄러웠다. 시작부터 까다롭다. 등반 순서는 강모 형이 탑, 내가 세컨을 보고 다음은 호찬이, 시열이 형, 요선이, 동호 형이었다. 요선이의 얼굴이 긴장되어있다. 더군다나 바위에 대해 두려움이 많은데 걱정이다. 하지만 하계에 오기 전에 축대에서도 연습하고 응봉 암장에서도 연습해서 그런지 전보단 수월하게 오른다. 오늘은 천화대의 왕관봉까지 가는 것이다. 종주 때와는 달리 우리의 목적지가 눈앞에 보여서 마음이 한결 놓인다. 하지만 그곳까지 가는 데는 10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니 쉽지는 않은 길인가 보다. 종주 때와는 달리 확보를 하면서 쉬는 시간이 많아서 몸은 편하다. 하지만 강모 형 말대로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정말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예상 시간보다 일찍 왕관봉에 도착. 왜 이름이 왕관봉인지 확인했다. 왕관봉에서 하강해서 설악골로 향했다. 해가 지는가 싶더니 금방 어두워진다. 하산 길에는 구르는 돌이 많아서 등반보다 더 위험했다. 계곡에 다다랐을 때, 앞에 컴컴해서 길을 찾기가 정말 어려웠다. 하지만 역시 노련한 동호 형, 안전하게 처음 출발했던 장소까지 우리를 인도했다. 앞이 보이질 않아서 당황했었는데, 이제야 조금 마음이 놓인다. 동호 형이 짬밥이 되면 다 할 수 있다고 하는데, 과연 나도 할 수 있을지... 저녁 늦게 되어서야 베이스에 도착했다. 모두들 피로에 지쳐있다. 내일은 어떤 곳에서 릿지 등반을 할런지 지금부터 기대가 된다.
2001년 8월 17일
오늘은 노적봉의 ‘한편의 시를 위한 길’이라는 코스이다. 경원대 산악부가 개척할 당시 주위에 펼쳐진 경치를 보고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우리가 그곳에 도착했을 땐, 먼저 다른 팀이 등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늘은 ‘양 탑’이라고 불리우는 시열이 형이 탑을 서신다고 한다. 은근히 기대가 된다. 동호 형 말대로 확실히 오늘은 천화대보다는 등반하기가 편했다. 요선이도 이제는 릿지를 즐기는 것 같다. 칼날 바위를 말타는 자세로 넘는 호찬이가 즐거워보인다. 마지막 노적봉 등반을 남기고 갑자기 날씨가 안 좋아진다. 멀리 보이던 권금성 산장 케이블도 안개에 가려 희미하다. 약간 까다로운 오버행 코스를 통과. 노적봉 정상에 도착했다. 하강하는 길도 만만치 않다. 구르는 돌을 신경쓰면서 계속해서 클라이밍 다운. 어렵게 길을 찾은 끝에 마지막 하강할 수 있는 볼트를 찾았다. 하강은 했지만 어제처럼 구르는 돌이 많은 하산길이다. 오를 때는 좋았는데... 그래도 설악골보다는 거리가 짧아서 다행이다. 릿지 이틀째, 암벽 등반보다 훨씬 위험하다는 것을 몸 전체로 느꼈다. 오늘도 저녁 늦게 베이스에 도착할 것 같다. 이제 마지막 용아장성 릿지를 남겨두고 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하계가 이제 며칠 뒤면 끝이 나다니, 아쉬움이 앞선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지...
2001년 8월 18일
오늘은 용아장성 릿지 등반을 하기 위해서 수렴동 근처까지 운행을 했다. 비선대를 지나 옆으로 적벽과 장군봉을 보면서 가파른 경사를 올라 친 끝에 마등령에 도착했다. 공룡능선을 끝내고 보았던 마등령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종주 기간 때 보다는 수월하게 물을 찾아왔다. 마등령에서 간단히 라면을 먹고 이제부터는 내리막길. 그런데 날씨가 어두워지더니 비가 쏟아진다. 아무래도 릿지 등반도 멋지게 마지막을 장식할 것 같다. 물론 신발도 게거품을 물테고...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 끝에 오세암에 도착. 맛있는 주먹밥이 기다리고 있었다. 비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용의 이빨’이라는 용아 장성을 등반하기 위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내일 등반이 걱정된다. 무심하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수렴동 근처 계곡에서 야영을 했다. 제발 내일 비가 안 왔으면 좋겠다.
2001년 8월 19일
아침에 약간씩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비가 안 올 것 같기도 한데... 수렴동 계곡을 따라 봉정암으로 향하고 있는데, 날씨가 조금씩 개이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용아장성으로 인적도 없는 길을 올라쳤다. 전날 비가 와서 그런지 굉장히 미끄러웠다. 믿을 만한 돌이 하나도 없다. 하마터면 내 실수로 낙석 때문에 뒤따라오던 성대 형이 다칠 뻔 했다. 사뭇 긴장이 된다. 미답봉을 몇 번 오르락내리락 한 끝에 옥녀봉이 뒤로 보이는 용아 장성에 도달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정말 웅장하다. 오늘도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은데... 멀리 보이는 오세암을 비롯해서 내설악의 장관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장성’이라는 이름 그대로 정말 길다. 가도 가도 끝이 없다. 다행히 위험한 봉은 우회로가 나 있었다. 마지막 가장 위험한 코스를 클라이밍 다운. 용아 장성도 무사히 끝마쳤다. 이제는 베이스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거의 이주일 동안 땀으로 누비고 다녔던 설악산을 떠나려고 하니 발걸음을 옮기기가 쉽지 않다. 종주 때 지겨워서 설악가의 한 구절인 ‘.... 잘 있거라 설악아....’를 생각하면서 운행을 했는데... 봉정암을 지나 소청봉에 도착, 가파른 경사의 등산로를 통해 희운각으로 향했다. 물이 있는 곳을 향해 무조건 걸어서 도달했던 희운각. 오늘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다. 귀떼기청에서 물 고생을 하며 이를 악물고 운행을 했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하계가 끝을 보이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그날 저녁은 가야동 계곡으로 이어지는 곳에서 야영을 했다.
2001년 8월 20일
아침부터 서둘러 베이스로 향했다. 희운각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면 공룡능선, 오른쪽으로 가면 양폭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며칠 사이에 다시와 본 길에 감회가 이렇게 새로운 데, 몇 년 뒤, 몇 십년 뒤에 오면 느낌이 어떨까... 하산을 하면서 ‘잘 있거라 설악아’라는 산노래를 힘겹게 배웠다. ‘....뒤돌아보면 서북 주능선 눈감으면 떠오르는 천불동 계곡....’ 하산길은 설악산의 일반적인 코스라서 그런지 등산로가 편하다. 위험한 길에는 계단이 되어 있어서 빠르게 하산할 수 있었다. 양폭 대피소, 귀신바위를 지나 잦은 바위골 근처 계곡에서 피로를 풀었다. 운행 내내 들어가고 싶었던 계곡이다. 벌써부터 이 계곡이 그리워진다. 잠시 쉬었다가 운행 시작, 12시 정도에 베이스에 도착했다. 베이스에서 서둘러 장비를 정리해서 낙산으로 갈 채비를 꾸렸다. 어깨에는 어택을 메고 양손에는 카고백. 마치 이사를 가는 사람들처럼 짐이 무지하게 많다. 버스를 타고 낙산학사로 이동. 그곳에 짐을 풀고 간단히 해수욕을 즐겼다. 오랜 고생 끝에 누리는 편안함이라서 그런지 더 뿌듯하다. 그날 저녁은 동호 형과 시열이 형이 준비를 하셨다. 하계 동안 고생을 했으니까 오늘만큼은 쉬라는 것이었다. 형들도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하지만 몸은 편해서 좋았다. 내일이면 보고 싶은 부모님을 만날 수 있다. 내가 집에 도착하면 무슨 말을 하실지... 그리고 난 어떤 말부터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2001년 8월 21일
늦은 기상. 왠지 마음이 불안하다. 이른 기상 시간에 익숙해진 탓일까. 이렇게 느긋하게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다니, 사소한 것에도 믿기지가 않는다. 동기들 얼굴이 왠지 시무룩해 보인다. 이제 하계를 마치고 집으로 가려니 아쉬움 때문일까... 요선이의 한마디, “동호 형, 이제 학교 어떻게 다녀요?” “새벽 4시 30분에 기상해서 씻고 밥 먹고 6시 30분에 출발하면 되지...” 그때는 웃음으로 넘겼지만, 서울에서 학교에 다니면서 생활을 하다보면 설악산에서 생활했던 모든 일이 그리워질 것이다. 11시 20분 버스를 타고 서울에 도착했다. 새삼스럽게 서울은 너무 풍족한 도시라고 생각된다. 물도 많고 먹을 것도 풍족하고 모든 생활이 편리하다. 그래서 스스로 나태해지기 쉬운 것 같다. 이번 하계 산행에서는 배운 점이 참 많다. 나의 한계를 체험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큰 소득일 것이다.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열심히 배워서 후회없는 1학년 생활을 해야겠다.?> 처음으로
동계 등반 산행 보고서
◎대 상 지: 설악산 일원 ◎대 상 일: 2002년 1월 17일 ~ 2002년 1월 31일(14박 15일) ◎대 장: 양시열 ◎대 원: 최진규, 안호찬, 김요선, 윤영남, 함동호 (OB: 안규섭, 이한직, 이장원, 윤길중, 성인혜) ◎제 출 자: 최진규(사회과학부01)
2002년 1월 17일 목요일 14:10 힘찬 D-one의 함성과 함께 부실을 출발했다. 부실 출발 인원은 1학년 3명과 95학번 영남이 형과 대장이었다. 날씨가 흐리고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출발 분위기가 침울하다. 그런데 날씨가 따뜻해서 얼음이 녹고 눈도 별로 없다고 해서 동계 훈련 등반이 걱정이 된다. 15:00 강변 고속 터미널에 도착, 출발 마지막 멤버인 안규섭 선배님께서 합류하셨다. 빨간 오버 자켓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춘계 간현 등반 때 안규섭 선배님을 처음 뵈었는데, 이번 동계에 우리들을 위해서 같이 등반해 주신다니 정말 멋진 선배님이다. 홍천으로 떠나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하계 등반 때가 생각난다. 그때도 출발은 정말 산뜻했었는데... 15:40 강변 고속 터미널을 출발, 홍천으로 떠났다. 1시간 여를 쉬지 않고 달리니 17:00 경에 홍천에 도착했다. 홍천에서 내일 구룡령으로 가는 버스를 예매하고 오늘 야영할 장소를 물색했다. 주변의 학교를 알아보았지만, 방학 중인데도 보충수업을 하는 학생들이 있어서 운동장에서 야영을 허가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근처의 여관으로 향했다. 하계 때도 첫날은 복숭아 탕에서 정말 편하게 야영했는데, 이번 동계 때는 더 편하다. 하계 때 첫날 긴장이 풀려서 그 다음날 운행에 지장이 된 경험을 되새기며 긴장을 늦추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저녁 식사는 안규섭 선배님께서 사 주신 선지 해장국으로 해결했다. 난 선지가 간 같은 종류인 줄 알고 먹었는데, 알고 보니 소의 피가 응고된 것이라고 했다. 순간 무척 당황스러웠지만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다시 투숙하고 있는 여관으로 돌아와 짐정리를 하고 23:00 취침을 하였다.
2002년 1월 18일 금요일 5:50 기상, 재빠르게 준비를 하고 전날 먹었던 선지 해장국 집으로 향했다. 선지가 소의 피라고 생각하니 어제만큼 맛있게 먹지도 못했다. 식사를 어디로 했는지도 모르게 순식간에 해결하고 다시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다. 구룡령으로 가는 길은 서울에서 홍천으로 온 길보다 거리 상으론 짧지만 시간은 많이 걸렸다. 09:30 구룡령에 도착했다. 이곳에 오니 온통 눈이다. 여기저기 눈을 치우고 있었다. 구룡령 휴게소 앞에서 대원들 모두 몸을 풀고 스패츠를 착용했다. 이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여기저기 깔린 눈을 보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빨리 올라가서 눈을 밟고 싶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구룡령에서 능선에 붙기란 정말 힘들었다. 영남이 형이 간단히 킥스텝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셨지만 얼떨떨해서 잘 되지도 않고 대충 밟으면 밟았던 눈이 무너져서 넘어지기 일쑤였다. 두 손 두 발 다 사용해가며 겨우 능선에 붙을 수 있었다. 정말 이 상태로 운행이 계속된다면 동계 등반 종주는 죽음이다라는 생각뿐이었는데, 그곳을 지나고 나니 편한 길이 나와서 다행이었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날 새로 눈이 내려서 아무도 지나간 흔적이 없다. 하계 때보다 힘이 배로 들지만 주변의 경치가 정말 보기 좋았다. 종주를 하다가 가지에 내린 눈을 건드려서 목에 눈이 떨어지면 순간 깜짝 놀라기도 하였다. 그런데 하계 때보다 더욱 좋은 것은 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다. 17:00 운행종료, 첫날 운행은 예상과는 달리 쉽게 끝났다. 하계 때 경험을 되살려보면 언제나 체력의 한계를 볼 때까지 걸어야 그 날 계획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아무튼 일찍 운행이 끝나서 정말 기분이 좋았다. 재빨리 야영할 사이트를 만들기 위해 눈을 다지는 작업을 했다. 어택의 무게를 이용해서 눈을 일단 쓸어내고 대원들끼리 호흡을 맞춰가며 눈을 다졌다. 그런 뒤, 텐트를 치고 식사를 하기 위한 눈을 퍼 담았다. 동계 등반 첫날이라서 그런지 아직 손발이 맞지 않아 시간이 다소 많이 걸렸다. 그런데 내가 최악의 실수를 하고 말았다. 약간 언 상태의 후라이를 툭툭 당기다가 그만 재봉선이 찢어지면서 1m가량이 파손되었다. 모두들 너무 황당했던지 아무 말 없이 보고만 있었다. 텐트 후라이가 찢어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텐트 안에서 끓는 물이 엎지러서 발에 화상을 입었다. 그야말로 설상가상. 첫날부터 정말 고생을 많이 한다. 발이 너무 쓰라려서 저녁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오늘은 시간이 많이 지체된 관계로 산노래를 배우는 시간은 생략하고 바로 취침에 들어갔다. 새로 산 PERFECT 침낭 속으로...
장비 평가 날씨가 추워서 텐트가 약간 얼어있는 상태에서 텐트를 칠 때, 찢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 그리고 텐트 안에서 요리를 할 경우 바닥을 평평하게 만들거나 텐트 위로 끈을 연결해서 코펠을 엎지르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2002년 1월 19일 토요일 05:30 기상. 늦은 기상 그리고 손발이 더딘 관계로 출발 시간이 30분이나 늦어졌다.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지 같은 일을 하는 것인데도 매우 힘들게 했다. 그래서 기합을 받고서 07:30 운행을 시작하였다. 운행 시작하자마자 오르막 경사였다. 몸도 풀리기 전에 힘들게 올라가 보니 웬 무덤이 있었다. 지도상으론 무덤이 956고지 전에 있어야 했건만, 나는 그게 또 다른 무덤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예상은 빗나가고 우리가 어제 956고지를 밟지 못하고 그 밑에 안부에서 야영을 한 것이었다. 계속 능선을 치고 나간 결과, 우리의 판단은 더 확실해졌다. 09:50 956고지 도착한 것이다.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956이라는 것을 알기 전에 저 멀리 보이는 능선을 보며 저것은 서북주릉, 이것은 가리봉 능선이라고 하면서 한계령에 다 왔다고 정말 들뜬 분위기였는데... 우리가 못 걸은 것도 아니었다. 동기들과 산행을 같이 하면서 정말 이렇게 잘 걸은 적은 없었다. 오늘 계획은 원래 북암령까지 가는 것이었지만 정말 이런 속도로 가다가는 예상대로 한계령을 지나 서북주릉에 붙어서 C지구 야영장까지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원래 동계 때는 운행이 오후 4시 정도면 끝난다고 했는데 오늘은 18:00시가 넘어서 겨우 끝났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바로 조침령. 군사도로 상에서 야영할 장소를 다지는 작업을 했다. 조침령이라고 쓰여진 비석 앞에서 나는 어제 한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약 1m가량 찢어진 후라이를 수선했다. 고문 중에 조침문이라는 소설이 있는데 소설 제목의 조침과 조침령의 조침이 같은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조침령 앞에서 바느질을 했다. 그날 저녁 모두 우울한 표정이었다. 형들도 약간 걱정이 되는 것 같았다. 저녁 식사 후 예정 대로 산노래를 배우고 취침에 들어갔다. 역시 침낭에 들어갈 때가 가장 기분이 좋다.
장비 평가 후라이와 같은 천을 바느질 할 경우 틈이 더 생겨서 바느질하기 어려웠다. 수선구에 어느 정도의 천도 같이 가지고 다니는 것이 좋겠다. 아니면 스카프 같은 것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2002년 1월 20일 일요일 05:00 기상, 전날 기합을 받아서 그런지 아침부터 바짝 긴장해서 준비했다. 하지만 기온이 더 떨어져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텐트를 해체하는 작업이 더 어려웠다. 일단 폴 사이가 약간씩 얼어서 비벼가면서 분리를 해야했다. 그래도 전날보다는 호흡을 잘 맞춰서 준비했다. 07:20 조침령 비석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운행을 시작했다. 밤사이에 눈이 내려서 전날보다 더 깊이 쌓였다. 그래서 러셀을 하는 영남이 형이 약간 힘들어하시는 것 같았다. 정말 동계 종주란 어려운 요소가 많은 것 같다. 일단 독도하기도 쉽지 않고 산길이 보이지 않아 항상 주의 깊게 살피며 운행해야 하고... 오늘 목표는 최대한 진도를 나가는 것이었다. 일단 북암령까지 갈 계획을 세워놓고 운행을 하는데 앞에 높은 봉우리 하나 넘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오르고 또 올라도 언덕이 보이고, 역시 하계 때와 다름없이 여러 번 속은 끝에 정상을 밟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또 내려갔다 올라가고 이렇게 계속 반복하니 저 멀리 양수 발전소가 보였다. 이곳만 지나면 북암령에 거의 도착한 것이라고 하였다. 능선 상에서 간단히 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힘차게 걸었다. 오늘은 좀 더 일찍 운행을 종료시켜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정말 잘 걸었는데, 무서운 소리가 들렸다. 바로 영남이 형의 빽! 나는 얼마 안 돌아갈 줄 알았는데, 거의 1시간 정도를 돌아가야만 했다. 도착한 곳은 우리가 점심 먹었던 자리. 다시 점심을 먹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고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정말 조난 당하는게 아닌가 싶어 불안해졌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순 없고 다시 북암령을 향해 출발했다. 다행히 내려막길이 대부분이라서 걷기에는 편했다. 18:00 북암령에 도착, 오늘의 운행이 종료되었다. 하지만 이곳은 눈이 무릎 이상으로 쌓인 곳이라서 야영할 장소를 다지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아무도 없는 첩첩 산중에 그래도 동기들과 형들이 있으니 외롭지만은 않았다. 그 날 저녁 식사 후, 안규섭 선배님의 산행 경험담을 들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특히, 토왕성에 대한 경험 얘기가 인상적이었다. 나도 안규섭 선배님 나이가 되어서 아들 같은 후배들과 같이 산행을 할 수 있을지... 그러기 위해서 체력 관리가 가장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간단히 산 노래를 배우고 즐거운 취침 시간으로 들어갔다.
장비 평가 동계 때에 휘발유 버너 윤활유를 어느 정도 가지고 다녀야겠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윤활유까지 얼어버려서 펌프질을 하는데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2002년 1월 21일 월요일 05:00 기상, 식사 준비를 하고 후라이를 걷고 종주 계획이 지연된 관계로 어느 때보다도 서둘렀다. 하지만 밤사이 눈이 약간 내리고 날씨가 추워서 오늘도 폴을 접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비벼도 폴이 잘 접히질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버너를 이용해 폴을 접었다. 그리고 후라이도 얼어서 팩킹을 하는 데도 어려움이 많았다. 눈까지 같이 팩킹을 하니 식량이 줄어도 어택 무게는 가벼워진 것 같지 않았다. 07:40 북암령에서 운행을 시작하였다. 오늘도 표식기가 잘 보이지 않아서 길을 찾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운행 시간보다는 길을 찾느라고 기다린 시간이 더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몸 상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최상이었다. 이제 조금 종주에 몸이 적응을 하는 것 같았다. 저 멀리 보이는 점봉산만 넘으면 한계령이 보인다는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걸었다. 12:00 단목령에 도착하였다. 단목령까지 국립공원으로 설정되어서 여기에는 안내 표지판이 잘 되어있었다. 표지판을 보니 약 2시간 정도면 점봉산을 올라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러셀도 되어 있어서 맘만 먹으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오색으로 다운을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식량과 연료 모두 어느 정도 여유분이 없었다. 종주가 이틀 이상 지연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내려간다는 건 너무나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잘하면 한계령까지는 가능할 것 같았는데... 그래도 모험을 하기보다는 안전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14:00 오색초등학교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안규섭 선배님께서는 오색으로 빠져서 서울로 올라가신다고 했다. 종주 기간 동안 칭찬을 받기는커녕 멀쩡하게 생겨서 이상한 짓만 한다고 호되게 혼도 났지만 막상 떠나시는 선배님 얼굴을 보니 갑자기 그리워졌다. 그런데 선배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C지구에서 볼 수 있으면 다시 한번 보자고 하셨다. 그리움도 잠시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였다. 우리는 다시 버스를 갈아 타가며 15:30 경 C지구 야영장에 도착했다. 하계 때 야영을 했던 장소에 또 야영을 했다. 야영장에는 전라도 연합 팀들이 많아서 썰렁하지는 않았다. 저녁에는 영남이 형께서 오징어 회를 사오셔서 맛있게 먹었다. 오늘은 그동안 밀린 산노래를 많이 배우고 취침에 들어갔다.
장비 평가 동계 등반에 있어서 연료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는 하루였다. 항상 동계 등반 때는 연료 계획에 여유를 가지고 해야겠다.
2002년 1월 22일 화요일 05:30 기상, 야영장에는 물이 넘쳐서 눈을 퍼담아 물을 만드는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느긋하게 준비를 하였다. 08:00 운행 시작, 오늘은 빙벽 등반을 위한 정찰을 나가기로 하였다. 하지만, 폭풍 주의보로 인한 설악산 입산 통제로 야영장 뒤에 있는 피골을 골 등반하기로 했다. 하지만 피골도 얼음이 녹은 상태여서 골등반은 하지 못하고 러셀된 길을 따라 능선을 치고 올라갔다. 역시 산은 어느 곳을 올라도 경치가 멋있다. 저 멀리 보이는 속초 시내와 소공원의 호텔들... 산은 말할 것도 없고... 운행을 하다가 좋은 사이트에서 라면을 먹었다. 하지만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몸이 날아갈 정도였다. 그곳에서 간단히 설상 훈련에 대한 기초지식을 영남이 형에게 배웠다. 이제 설상 훈련이 정말 기대된다. 13:00 피골에서 야영장으로 돌아왔다. 시열이 형이 오후 시간은 개인정비 시간을 가지라고 하셨다. 개인정비 시간이라... 나름대로 짐정리도 하고 텐트 수선도 하고 보니 시간이 많이 남았다. 정말 자고 싶었는데 자도 되는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옆에 있던 요선이와 호찬이가 쓰러지는 것을 보니 혼날 땐 혼나더라도 확실하게 자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침낭을 펴고 푹 잤다. 다행히 아무 일도 없어서 다행이었다. 저녁 때는 전주대와 대면식을 가졌다. 전주대는 거의 한 달 동안을 야영장에 있어서 그런지 야영 생활에 있어서 우리가 배울 점이 많았다. 텐트에 건조대를 잡끈으로 하지 않고 해먹으로 한다든가. 버너 받침대를 따로 준비한다든가. 아무튼 여러 가지로 배울 점이 많아서 유익하였다. 내일은 예비일이라서 오늘 저녁은 확실하게 놀았다.
장비 평가 동계 때 이제부터 텐트 안의 건조대를 해먹으로 해야겠다. 그리고 따로 가벼운 받침대를 준비해서 버너 사용하는데 안정성을 높여야겠다. 그리고 활동화를 꼭 준비해서 야영장에서 이동이 편하도록 해야겠다.
2002년 1월 23일 수요일 정말 푹 자고서 11:30 야영장을 출발, 짐 수령을 위해 속초로 출발했다. 속초 중앙 시장에서 순대국도 먹고 목욕탕에서 깔끔하게 목욕을 했다. 정말 개운하고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영남이 형은 오늘 서울로 돌아가셨다. 돌아가시는 뒷모습을 보니 역시 아쉬움과 그리움이 남는다. 우리가 좀 더 열심히 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렸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안타까움도 남았다. 영남이 형을 배웅하고 우리는 다시 ATS로 돌아갔다. 우리들끼리 쓰는 용어인데 풀어쓰자면 Animal Training System 이다. 무시무시한 동계 장비와 식량을 어택에 메고 카고 백을 들고 16:00 야영장에 도착했다.
2002년 1월 24일 목요일 05:00 기상, 오늘은 설상 훈련지를 찾으러 정찰을 나간다고 한다. 07:30 야영장 출발하여 1시간 가량 걸어서 소토왕 계곡 연습 빙폭 앞에 도착했다. 얼음 상태를 보니 거의 녹아서 빙벽을 하기엔 어려웠다. 그곳에서 아이젠 꽝꽝을 비롯해서 빙벽 기초 훈련을 하였다. 빙벽은 위험한 만큼 정말 기초를 탄탄히 다져야겠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였다. 그런데 아이젠 꽝꽝을 하면서 산노래를 부르는 것을 정말 어려웠다. 더욱이 새노래를 배우는 것은 배로 어려웠다. 13:30 빙벽 기초 훈련을 마치고 비룡 폭포로 향했다. 하계 때도 비룡 폭포에 갔었는데 그곳에서는 설상 훈련을 할 수 있는 좋은 장소를 찾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비룡 폭포 쪽에서도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했다. 다시 야영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출발했다. 그런데 버스 정류장 앞에서 시열이 형이 스패츠를 벗으라고 하였다. 시간이 많이 남은 관계로 야영장까지 걸어간다고 했다. 버스 타고 올 때는 금방이어서 쉽게 갈 줄 알았는데 산노래를 배우면서 가니 왜 그리도 길이 멀기만 한지... 오늘은 확실하고 찐하게 토왕성 찬가를 배웠다. 17:50 야영장 도착, 저녁 식사를 정말 맛있게 하고 역시 산노래를 배우고 취침시간에 들어갔다.
장비 평가 야영장에서 소공원 안으로 이동할 때 분실하기 쉬운 장비는 앞에 가게에 맡기고 가는 것이 좋겠다. 짐 한 개당 1,000원이다.
2002년 1월 25일 금요일 05:30 기상, 오늘은 토막골과 형제폭으로 빙벽 정찰을 나간다고 한다. 07:20 야영장을 출발하여 09:30 경 토막골 형제폭에 도착했다. 형제폭에 오르는 도중 발을 헛디뎌서 미끄러져 넘어졌다. 순간 얼굴에 약간 긁히는 느낌이 있었지만 상처가 크게 날 줄은 몰랐다. 피가 줄줄 흐르고 정말 이번 동계에는 상처가 많이 났다. 형제폭은 등반하는 팀이 정말 많았다. 여기저기서 낙빙을 외치며 쉴 틈도 없이 얼음이 떨어졌다. 정말 저런 상황에서 어떻게 등반을 할지 걱정이 되었다. 형제폭 근처에서 프론트 포인팅, 아이젠 꽝꽝 등의 기초 빙벽 훈련을 마치고 철수했다. 다시 잦은 바위골 쪽으로 이동했다. 잦은 바위골은 처음부터 장난이 아니었다. 거의 릿지 하는 수준으로 어려운 곳을 조심스레 넘어 가야했다. 하지만 경치도 장난이 아니었다. 내가 가본 계곡 중에서 정말 제일 멋있는 곳이었다. 깍아지른 절벽하며 우뚝 솟아오른 봉우리. 하계 때, 다시 오면 더 멋있을 것 같았다. 시열이 형이 왔을 때는 눈이 하도 많이 내려서 거의 걸어갔다고 했는데, 우리는 몇몇 난코스를 거쳐 가야했다. 15:00 저 멀리에 50m폭이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다시 하강을 해야지 갈 수 있어서 그냥 사진 촬영만 하고 철수했다. 50m폭에는 등반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계 때 50m폭이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했다. 정말 잊지 못할 멋진 곳이었다. 17:00 가 되어서야 잦은 바위골을 탈출했다. 18:00 야영장에 도착했다. 오늘은 인혜 누나와 이한직 선배님께서 서포트를 들어오신다고 하셔서 저녁 식사를 최소로 했다. 역시 인혜 누나는 우리가 적어 준 목록대로 김밥, 햄버거, 치킨 등 정말 맛있는 음식을 많이 사오셨다. 우리는 하나도 남김없이 다 먹어치웠다. 그리고 저녁에는 이한직 선배님께서 대포항에서 회를 사주셨다. 먹는 것도 참 즐거운 일이다. 회도 양껏 배부르게 먹고 정말 행복한 하루였다.
장비 평가 텐트 후라이에 연결된 끈이 바람에 날려서 연결 고리가 뜯어졌다. 바람이 많이 불 때, 텐트가 손상되지 않도록 대처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2002년 1월 26일 토요일 어제 저녁 너무 무리를 해서 그런지 아침 기상 시간이 많이 늦어졌다. 아무리 늦게 자더라도 출발 시간은 지켜야 했는데... 계획보다 늦은 09:00 야영장을 출발했다. 1시간 정도 걸려서 10:00 지난번에 왔었던 소토왕 계곡 연습 빙폭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도 역시 아이젠 꽝꽝을 했다. 처음에는 열심히 기초를 다진다는 기분으로 했는데 3일 동안 하니깐 그런 생각은 아예 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우리를 도와줄 것만 같았던 인혜 누나가 무서운 조교로 등장. 확실하게 아이젠 꽝광을 했다. 빙벽 기초 훈련을 마친 뒤, 연습 빙폭을 톱로핑으로 등반했다. 거의 누운 상태라서 걸어가도 무난한 정도였다. 17:00 빙벽 훈련을 마치고 야영장으로 향햤다. 오늘 저녁엔 92학번이신 윤길중 선배님과 이장원 선배님이 서포트 들어오신다고 하셨다. 오늘 저녁도 즐거운 시간이 될 것 같다. 18:00 야영장에 도착해서 선배님들을 맞을 준비를 했다. 저녁 식사는 어제 대포항에서 먹은 횟집에서 마련해준 매운탕이었다. 호찬이가 과연 잘 해 낼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역시 우리의 짬장 호찬이. 정말 맛있게 잘 끓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호찬이의 손맛에 익어가는 것 같다. 다른 건 몰라도 호찬이가 연맹 짬장 중에서도 제일 잘 하지 않을지...
장비 평가 바일이나 스크류 사용 후 관리를 잘해야겠다. 바일 날이 상하지 않도록 고무 호스를 준비하고 스크류도 마찬가지고 날 끝뿐만 아니라 몸통부분에도 신경을 써야겠다.
2002년 1월 27일 일요일 06:30 기상, 아침 식사를 준비하려고 장비 텐트에 들어가 보니 전날 비로 인해서 물바다가 된 장비 텐트에 동호 형이 주무시고 계셨다. 새벽에 들어오셨는데, 텐트를 잘못 골라서 침낭도 젖고 고생을 많이 하신 것 같았다. 아무튼 오랜만에 동호 형을 보니 무척 반가웠다. 이상하게도 동호 형 특유의 갈굼도 즐겁게 느껴진다. 08:00 운행 시작, 토막골의 형제폭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전날 눈으로 인한 비선대에서 입산을 통제했다. 시열이 형이 선배님들과 상의를 하더니 야영장에서 철수해서 장수대 실폭으로 이동한다고 했다. 소공원 입구에서 일명 '쌍다구'라고 불리우는 아저씨한테 동계 등반 기념 접시 사진을 찍었다. 13:00 장수대 실폭에 도착했다. 이곳은 자유산행이지만, 내가 첫산행으로 온 곳이라서 그런지 모든 것이 낯설지 않았다. 재빨리 등반 장비를 챙겨서 실폭으로 이동, 장원이 형한테 기초 빙벽 자세에 대해서 배웠다. 하지만, 설명을 듣고서 따라하기는 정말 어려웠다. 동호 형이 무사히 선등을 서시는 것을 보시고 길중이 형과 장원이 형 그리고 인혜 누나는 서울로 돌아가셨다. 바쁜 가운데서도 후배들을 위해서 항상 관심을 갖아 주시는 선배님들이 무척 고마웠다. 늦게 등반을 시작해서 한 번씩 밖에 등반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작년 3월에 등반했을 때보다도 훨씬 무서웠다. 아마도 주변에서 낙빙이 많이 떨어져서 그런 것 같다. 그래도 오랜만에 등반을 하니 기분을 무척 좋았다. 그날 저녁 호찬이의 맛있는 사천 짜장밥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장비 평가 장수대 실폭 야영장은 바닥이 돌이고 또 얼은 상태라서 팩이 잘 박히지 않았다. 다른 팀들을 보니 대못을 준비해서 팩 대용으로 쓰고 있던데 정말 좋은 방법이다. 다음 번 장수대 등반을 할 때는 필히 대못을 준비하도록 해야겠다.
2002년 1월 28일 월요일 05:30 기상, 07:00 운행을 시작하였다. 장수대는 어프로치도 짧아서 정말 편하다. 하지만 계곡을 건널 때 하마터면 빠질 수도 있어서 항상 주의를 요했다. 오늘은 등반 팀이 정말 많았다. 우리가 먼저 도착해서 등반을 시작하였기에 다행이지 늦게 도착했으면 좋은 자리를 확보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지난 3월 필중이 형의 말대로 색색의 자일에 실폭에 걸리니 마치 커튼이 걸려있는 것 같았다. 한번에 여러 명이 등반을 하다보니 낙빙도 더 조심해야 하고 하강 도중에 등반하는 사람에게도 상당히 위험했다. 그런데 내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정말 사고가 날 뻔했다고 한다. 위에서 낙이라는 외침과 동시에 무언가 떨어졌는데 얼음은 아니고 그것이 바일이었다고 한다. 밑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는데 하마터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이번 겨울에 구곡 폭포, 토왕성 폭포, 죽음의 계곡 등 사고가 빈번했는데 실폭도 매스컴에 오를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래서 더욱 긴장을 늦추지 않고 등반을 했다. 전날보다 얼음에 대한 두려움도 많이 사라지고 이제는 자세에 신경을 써가면서 등반을 했다. 빙벽은 무엇보다도 균형 감각이 중요한 것 같다. 균형을 잘 생각하면서 등반을 해야지 효율적이고 빠른 등반이 가능하였다. 나와 호찬이 요선이 모두 4회 씩 등반을 했다. 할수록 실력이 점점 느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요선이도 바위와는 달리 얼음은 정말 잘했다. 이제 든든한 빙벽 탑쟁이가 생기겠구나 하니 기분이 좋았다. 17:00 등반을 종료하고 야영장으로 돌아갔다. 동계 내내 뭔가 깨름직한 기분이었는데, 오늘 그런 기분을 한꺼번에 날려 버린 것 같다. 그 날 저녁 동호 형께서 서울 킴스클럽에서부터 공수해 오신 순대를 먹었다. 평소 순대를 좋아하지 않는데, 산에서 먹는 순대가 정말 맛있었다.
장비 평가 빙벽 등반 자일을 관리할 때, 좀 더 세심하게 해야겠다. 그 날 저녁 자일을 건조시키고 자일도 약간 남은 물기 때문에 다음날 얼어버려서 등반하기에 불가능한 상태가 되는데 개선 방안을 생각해 보아야겠다.
2002년 1월 29일 화요일 06:00 기상, 07:30 운행을 시작하였다. 오늘도 전날과 마찬가지로 실폭을 등반한다. 등반지도 가깝고 야영 생활을 하기도 편했지만 3일째가 되니 왠지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오늘은 적은 인원으로 등반을 할 수 있었다. 영남대 탐험대와 우리 밖에 팀이 없었다. 실폭을 완전히 우리 팀이 접수한 것이다. 그래서 어느 날보다도 낙빙에 대한 위험이 적었고, 나와 호찬이 요선이 모두 다섯 번씩 등반을 하였다. 오늘은 동호 형이 세심하게 빙벽 등반의 자세도 교정해주셨다. 무턱대고 올라가기 보다 생각하면서 등반을 하니 빙벽 등반의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빙벽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동호 형이 평가해 주시기를 이번 동계는 어느 때보다도 빙벽 훈련은 열심히 했다고 하셨다. 설상 훈련을 못해서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빙벽은 확실하게 배운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빙벽 등반을 하고 나서 완료를 외친 뒤, 뜨거워지는 손가락 끝의 느낌이 매우 좋았다. 해가 지니까 실폭이 북향이라 바람도 많이 불고 무척 추웠다. 거의 18:00 가 다 되어서 등반을 종료하고 야영장으로 향했다. 내려가면서 부른 하루의 살림살이. 정말 가슴 속에 깊이 와 닿았다. 하루의 살림살이는 북한산으로 처음 야영을 갔을 때 배운 산노래인데 가사가 간단하면서도 많은 걸 느끼게 한다. 산노래가 모두 그렇긴 하지만...
2002년 1월 30일 수요일 07:50 운행을 시작하였다. 오늘은 반대편에 있는 대승폭포로 정찰을 간다고 한다. 실폭을 등반하면서 멀리 중간에 허리가 짤린 대승폭포를 보았는데... 08:40 경 대승폭포 전망대에 도착했다. 대승폭포는 난이도가 어렵다고 하셨다. 주로 믹스 등반을 하는데 톱로핑으로 등반을 해야지 낙빙이 많아서 사고가 날 우려가 크다고 하셨다. 우리가 보는 동안에도 수도 없이 얼음이 떨어져 나갔다. 대승 폭포를 바라보며 기념 사진 촬영을 하고 아득가와 스키어의 노래를 정말 우렁차게 불렀다. 동기 셋과 딱 맞춰서 부르고 나니 가슴 속부터 올라오는 뜨거운 희열이 느껴졌다. 대승 폭포 전망대에서 하산하면서 즐거운 산노래 시간을 가졌다. 10:00 다시 장수대 야영장에 도착, 간단히 라면으로 점심을 먹고 짐정리를 했다. 이제 낙산으로 떠난다고 하셨다. 원래 계획보다 하루가 줄은 것이다. 갑자기 흐뭇해지는 얼굴들. 일찍 집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해진다. 12:00 장수대를 철수하여 낙산으로 출발했다. 낙산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뭔가 아쉬움이 가득 남았다. 정말 힘들었지만 정든 이 설악산을 떠난다고 하니... 그래도 올 여름을 기대해야지... 13:00 우리의 낙원, 낙산 학사에 도착했다. 간단히 짐만 풀고, 다시 척산 온천으로 이동했다. 시열이 형 성격이 깔끔해서 그런지 이번 동계 등반 때는 목욕을 잘 했다. 척산 온천 물은 정말 좋았다. 동계 기간 내내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풀리는 것 같았다. 목욕을 마치고 다시 옷을 입으려고 하니 풍기는 냄새. 정말 이 냄새를 우리가 몰고 다녔을지. 주변 사람들이 접근을 안 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다시 낙산으로 이동해서 전진항에서 광어회를 먹었다. 멀리 낙산 해수욕장과 파도를 바라보며 흥겨운 시간을 가졌다. 작년 3월에도 이곳에서 강모 형과 필중이 형, 동호 형과 함께 실폭 등반을 마치고 회를 먹었었는데... 마치 그 때로 되돌아간 느낌이 든다. 그래도 지금이 더 좋은 건, 하계와 동계 등반까지도 무사히 마친 우리 호찬이와 요선이 두 명이 동기가 같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낙산 학사로 돌아가서 아쉬움에 뒤풀이를 더하고 취침을 하였다.
2002년 1월 31일 목요일 07:10 기상, 일출을 보려고 했지만 날씨가 흐려서 계란 후라이 같은 것밖에 보질 못했다. 다시 낙산 학사로 돌아와 짐정리를 하고 간단히 남은 떡국용 떡으로 떡볶이를 만들어 먹었다. 호찬이는 떡볶이를 처음한다고 했지만 역시 맛있게 잘 만들었다. 낙산학사를 퇴실하고 11:30 경 서울행 고속버스에 탑승했다. 정말 이 순간도 놓칠 수 없는 행복한 순간이다. 마음 놓고 푹 잘 수 있으니 말이다. 15:00 강변 고속 터미널에 도착. 다시 ATS로 돌아갔다. 부실까지는 어택을 메고 카고백을 들고 가야하니까... 16:00 부실에 도착, 다같이 "휴식"을 외치며 짐을 풀었다. 조금 기다리니 인혜 누나도 오셔서 우리를 즐겁게 맞이해 주셨다. 그날 저녁 강모 형과 필중이 형이 오셔서 안동 찜닭에서 뒤풀이를 하였다. 그날 찜닭을 처음 먹어봤는데 정말 맛있어서 나 혼자 2마리 정도는 먹은 것 같았다. 이번 동계는 출발 직전 날씨가 따뜻해서 얼음이 녹고 눈이 별로 없다는 걱정 속에 출발을 했지만 그래도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해 훈련을 했다. 내가 군데 군데 많이 다치긴 했지만 운행에 지장이 갈 정도는 아니었고 모두들 무사하게 훈련 등반을 마쳐서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바쁘신 와중에도 항상 관심을 가져주시는 형들에게 정말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비록 사정으로 초기 계획대로 하지 못했고 거의 수정된 계획으로 하였지만 계획을 세울 때 가장 중요한 말 "상기 계획은 사정에 의해서 바뀔 수 있습니다."라는 것을 확실하게 배운 것도 중요한 소득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튼 여러 가지 생각들을 잘 정리해서 후배들에게 유익한 선배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이제 나도 동악의 2학년이니까.?> 처음으로
산행일: 2002. 8. 8-21 대상지: 설악산 일원 대 장: 김요선 대 원: 최진규, 안호찬, 김현준, 박성근, 임형식, 함동호 OB: 안규섭, 이장원, 윤길중 제출자: 김현준
8월 8일 5시 10분 부실을 출발하여 터미널로 향했다. 전날의 음주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동기들과 형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나서 어택을 짊어지고 뒤뚱뒤뚱 걷기 시작했다.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게 터미널에 도착했다. 만나기로 했던 안규섭 선배님을 만났다. 안규섭 선배님께서 우동을 사주셨지만 먹는 족족 다 올라와서 먹기를 포기했다. 이 상태로 잘 걸을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다. 우동을 다 먹은 후 버스를 타고 대관령을 향해 출발했다. 대관령에 도착했을 때 점심때가 되어서 안규섭 선배님께서 또 점심을 사주셨다. 역시 나는 먹지 못하고 화장실 앞에서 죽치고 있었다. 물만 먹어도 올라오는 그런 상태였다. 결국 근처 약국에서 약을 사먹었다. 11시 15분 택시를 타고 국사 성황당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물을 긷고 종주를 시작했다. 몸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았기 때문에 걷기가 힘이 들었다. 아무 것도 먹지 못했기 때문에 더 힘들었다. 머리는 헤롱헤롱 하고 몸은 무거워만 졌다. 내가 지금 걷는 건지 다리가 날 끌고 가는 건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걸었다. 선배님과 형들은 주위 경치도 구경하면서 여유가 있는 것 같은데 나는 경치 볼 정신이 없었다. 그저 땅만 보고 걸을 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내려서 걷기가 더 힘들었다. 짐도 물을 먹어서 더 무거웠다. 가끔 있는 쉬는 시간에 다리가 아파서 앉고 싶었는데 비 때문에 마땅히 앉을 자리가 없었다. 그렇게 계속 오르락 내리락 걷다가 4시 30분 드디어 오늘 목적지에 도착했다. 출발 전에 예상했던대로 물이 많았다. 하지만 마실만한 물은 별로 없었다. 간신히 마실만한 물을 찾아 그 옆에 텐트를 쳤다. 저녁식사때 안규섭 선배님께서 여러 가지 맛있는 것들을 가지고 오셔서 맛있게 먹었다. 작년에 진규형이 고기 굽기로 칭찬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고기 굽기에 도전했는데 실패했다. 고기를 먹는 도중에 성근이가 프라이펜을 쇠젓가락으로 찍어서 안규섭 선배님께 혼나기도 했다. 그렇게 첫날을 무사히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8월 9일 아침 5시에 기상하여 아침밥을 시작했다. 형들의 충고로 어제 쌀을 씻어놓아서 밖에 나가지 않고 텐트 안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안규섭 선배님도 모셔와서 밥을 먹는데 일이 터졌다. 밥에 돌이 너무 많았다. 어제 형식이가 밤에 쌀을 씻었는데 어두워서 못 본 모양이었다. 안규섭 선배님께서는 한술 뜨시더니 그냥 수저를 내려놓으셨다. 과장 좀 섞어서 밥 반 돌 반이었기 때문에 나도 별로 먹고 싶지 않았지만 꾸역꾸역 다 먹었다. 옆에서 안규섭 선배님이 니들 나이 때는 돌을 먹어도 소화가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이 정말인지 별 탈은 없었다. 이런 저런 사건 때문에 출발 시간이 늦어서 기합을 받았다. 기합 후에 어제와 마찬가지로 마냥 걸었다. 요선이 형이 종주 기간의 하이라이트라면서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은 동대산이 오늘의 최대 난관이었다.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컨디션이 회복되어서 제법 걸을만해졌다. 물론 힘은 들었지만 주위 경치도 눈에 들어오고 걸을만했다. 걸으면서 요선이 형이 노래를 시켰다. 오르막에서 힘들어 죽겠는데 노래를 시켜서 짧은걸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학교종이 땡땡땡을 불렀다. 목소리만은 크게 해서 요선이형 맘에 들었던지 통과되었다. 걷는 도중에 형식이가 팔 마비를 호소했다. 형식이가 왼쪽 팔이 마비되어서 왼팔에 힘을 못썼다. 어떻게든 오늘 목적지까지는 가야했기 때문에 진고개 휴게소까지 걸었다. 진고개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집에 안부 전화도 한 통화 한 후 드디어 종주의 하이라이트 동대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동대산은 경사가 꽤 심했다. 한 걸음 떼기가 힘들었다. 1/3쯤 산을 올랐을 때 일이 터졌다. 성근이가 탈진을 한 것이다. 계속 비를 맞으며 걸어서인지 성근이가 많이 지쳐있었다. 자기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안규섭 선배님께서 막 화를 내시면서 스틱으로 쳐도 성근이는 몸을 가누지 못했다. 나중에 성근이가 정말로 탈진한 것인지 알아보시려고 그렇게 하신것이었다는 것을 형들에게서 들었다. 요선이형이 성근이가 더 이상 걷지를 못 할 것으로 판단해서 팔 마비 증상을 보였던 형식이와 함께 진고개 휴게소로 내려갔다. 산위에는 안규섭 선배님, 호찬이형, 나 이렇게 셋만 남았다. 선배님께서 일단 식량과 텐트를 호찬이형과 내 어택에 옮겨놓으라고 하셨다. 그렇지않아도 무겁던 베낭이 더 무거워졌다. 선배님께서 일단 호찬이형과 내가 성근이와 형식이 어택을 메고 진고개 휴게소로 가서 성근이와 형식이 상태가 괜찮으면 다 같이 가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우리 셋만이라도 가야한다고 하셨다. 성근이와 형식이 짐을 지고 호찬이형과 진고개 휴게소로 내려갔다. 내려갔더니 성근이는 연대 간호학과 산악부 사람들에게 간호를 받고 있었다. 도저히 걸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요선이 형은 성근이 형식이와 함께 휴게소에 남고 호찬이형과 나는 안규섭 선배님이 계시는 곳으로 출발했다. 안규섭 선배님과 합류하여 다시 동대산을 치기 시작했다. 종주 기간 동안에 "올라쳐" 라는 말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되었다. 거의 다 올라온 줄 알았던 동대산이 가도가도 끝이 없었다. 호찬이형의 재촉을 받으며 동대산 정상에 올랐을 때에는 이미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동대산 꼭대기에서 야영을 하는줄 알고 이제 끝났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안규섭 선배님께서 물 포인트까지 가려면 2시간은 더 걸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비를 맞으면 밤에 동대산 내리막길을 걷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길도 별로 좋지 않았다. 걷는 족족 어택이 나무에 걸려서 짜증이 났다. 그렇게 2시간 반을 걸었는데도 물 포인트에 도착하지 못했다. 그때 나는 거의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다. 안규섭 선배님께서 내 상태를 보시더니 그 곳에서 야영을 결정하셨다. 물 포인트가 아니었기 때문에 물을 마실 수가 없었다. 저녁을 라면으로 대충 때웠다. 하도 목이 말라서 빗물을 받아 마시면 안되냐고 선배님께 여쭈어 보았다가 혼이 났다. 자꾸 어리버리하게 일을 잘 못해서 잠자기 전까지 선배님께 계속 혼났다. 잠을 청했지만 목이 말라서 잠도 제대로 못잤다. 그렇게 힘든 하루가 지났다.
8월 10일 6시 경에 일어나서 아침 식사를 했다. 아침이라고 해봤자 스프에 건빵이었다. 게다가 난 목이 말라서 잘 먹지도 못했다. 7시에 오늘 목적지인 구룡령 휴게소를 향해 출발했다. 어제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했었기 때문에 오늘 그만큼 더 걸어야 했다. '오늘은 죽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2시간 정도 걸으니 어제 목표로 했던 목적지가 나왔다. 그곳에서 물도 실컷 마시고 잠시 쉬었다. 안규섭 선배님께서 오늘 구룡령까지 못 갈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탈출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탈출해서 버스를 타고 구룡령 휴게소로 가는 것 보다 그냥 이대로 걸어서 가는 것이 더 빠르겠다는 말씀을 하셔서 원래 계획대로 구룡령 휴게소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중간에 점심으로 라면을 먹고 갈 계획이었지만 시간이 많이 지연되어서 점심도 안 먹고 그대로 걸었다. 어제부터 제대로 먹지 못한대다가 3일을 계속 비를 맞으며 걷다보니 몸도 많이 지쳐있었다. 잠시 쉬는 시간도 추위 때문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빨리 구룡령에 도착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5시 정도 되어서 안규섭 선배님께서 먼저 구룡령에 가셔서 사람을 보내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안규섭 선배님은 속력을 내어서 먼저 가시고 나와 호찬이형 둘이서 걷기 시작했다. 오르막의 연속이었다. 이것만 오르면 계속 내리막이겠지 했지만 오르막이 또 나오고 또 나오고 미칠 것 같았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여기서 야영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호찬이형은 앞에서 묵묵히 걷기만 했다. 계속 걷다보니 호찬이형이 무슨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차소리였다. 이제 거의 다 왔구나, 이것만 올라치면 끝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올라가 보니 또 오르막이 있었다. 미칠 지경이었다. 날이 점점 어두워져서 호찬이 형이 빨리 가자고 재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계속 걷다가 요선이형의 에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걸으니 요선이형과 성근이가 우리를 마중 나와 있었다. 만난 곳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구룡령 휴게소로 출발했다. 이미 밤이 되어서 앞이 잘 안보였다. 내리막도 경사가 심해서 내려가는데 애를 먹었다. 1시간쯤 더 걸어서 드디어 구룡령 휴게소에 도착했다. 시간을 보니 10시였다. 도착해서 다행이었다. 휴게소에서 텐트를 치고 잠잘 준비를 했다. 오늘은 편안히 잘 수 있었다.
8월 11일 구룡령 휴게소에서 일박을 한 후 하루에 한번 밖에 안온다는 버스를 타기 위해 구룡령 휴게소 앞에 진을 치고 앉아 있었다. 안규섭 선배님께서는 원래의 계획대로 서울로 돌아가셨다. 버스를 타고 C지구 야영장으로 들어갔다. 야영장이 생각했던 것 보다 괜찮았다. 산에서의 계속 비를 맞는 생활에 비하면 천국이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약간의 휴식 시간이 있었다.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주위를 잠시 살펴봤다. 야영장은 놀러 온 사람들로 북적댔다. 충남인가 충북인가의 연맹 애들도 와 있었다. 덕분에 너무 시끄러워서 밤에 자는데 애를 먹었다. 내일을 기약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8월 12일 오늘도 역시 늦잠 때문에 출발 시간이 늦어졌다. 의례 하는 데로 기합을 받고 설악산 대청봉을 향해 출발했다. 종주를 많이 못했기 때문에 종주 연습을 하려고 계속 걸었다. 가면서 양폭을 봤는데 우리 선배님들이 가장 먼저 정복하셨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설악산을 우리 동네 뒷산 정도로 생각했던 나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가파른 길을 계속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가면서 외국인도 만나서 서로 사진도 찍어줬다. 대청봉에 도착했다. 대단한걸 기대했던 나에게는 좀 실망스러웠다. 별게 없었다. 대청봉에서 의례행사인 기념 촬영을 한 후 간식을 먹었다. 간식을 먹는데 다람쥐떼의 습격을 받았다. 이놈들은 의례 보던 다람쥐와를 달랐다. 사람을 겁내지 않고 바로 내 발 앞까지 와서 우리들이 흘린 부스러기를 먹었다. 평소 생각처럼 다람쥐들이 귀엽지가 않았다. 간식을 먹은 후 야영지를 향해 내려가려는데 갑자기 비가 왔다. 비가 이제는 지긋지긋했다. 중간쯤 내려가니 날도 어둑어둑해졌다. 내려가다가 휴게소에서 잠시 따뜻한 커피로 몸을 녹이고 다시 내려갔다. 요선이 형이 계곡은 위험하다고 해서 거의 달리다시피 내려갔다. 설악산 입구 매표소에 도착했을 때 이미 10시가 넘었다. 거기서 또 야영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밤에 설악산을 달려 내려오느라고 모두 진이 빠져있었다. 야영장까지 어떻게 걸어왔는지도 모르겠다. 야영지에 도착하니 긴장이 풀리면서 몸에 피곤이 몰려왔다. 빨리 밥을 먹고 자야하는데 몸이 피곤하니 움직이기가 싫었다. 그러다가 또 혼나고 저녁식사를 했다. 식사 후 간단한 술자리가 있었다. 모두 피곤했는지 정말 간단히 끝났다.
8월 13일 예비일이라 아침을 먹은 후 형들은 카고를 찾으러 가고 우리들은 밥먹은 설거지를 하고 대기하고 있었다. 설거지를 한 후 잠시 쉬고 있으려니까 호찬이형이 우리를 데리러 왔다. 같이 고속 버스 터미널로 나와서 성근이, 형식이, 호찬이형은 카고를 들고 먼저 야영장으로 출발하고 요선이형과 나는 오늘 먹을 먹거리를 사러 나갔다. 마트에서 여러 가지 반찬을 사고 포도주도 한 병 샀다. 시장에서 오징어 회도 샀다. 야영장에 돌아오니 우리 학교의 트레이드 마크인 UFO텐트가 다 쳐져 있었다. 넓은 텐트 안으로 짐을 다 옮기고 밤에 밥을 해 먹고 술자리를 벌였다. 회를 먹으며 이것저것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내가 회를 못먹어서 호찬이형이 회고문을 시키기도 했다. 기분 좋게 한잔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8월 14일 어제 술을 마시고 좀 늦게 잤는데 3시 30분쯤 되어서 우리 학교 에코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일어났더니 장원이형과 길중이형께서 오셨다. 여러 가지 맛있는 것들을 사오셔서 또 술자리가 이어졌다.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형들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길중이 형이 쿨피스 한통을 원샷 하라고 하셔서 원샷을 했다. 배가 불러서 먹고 싶었던 삼겹살을 많이 못먹었다. 1시간 30분쯤 술자리가 이어지고 형들은 주무시러 차로 돌아가셨다. 자지 않으려고 했지만 설거지를 하러 나갔다 와보니 모두 자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기분으로 나도 그냥 자버렸다. 덕분에 오늘 산행이 매우 아주 많이 상당히 늦어졌다. 아침겸 점심을 먹고 재빨리 노적봉으로 출발했다. 장원이형과 길중이형도 함께 하셨다. 원래 7시에 일어나서 8시에는 노적봉에 붙을 예정이었는데 많이 늦어져서 12시 반에야 겨우 노적봉을 오르기 시작했다. 형들이 릿지 등반은 경치도 보면서 슬슬 할 수 있고 또 노적봉은 초보자도 쉽게 할 수 있는 코스라고 하셔서 평소 바위에 자신이 없었던 나는 비교적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길같지도 않은 좁을 길이 있고 양쪽은 모두 낭떨어지였다. 겁을 너무 집어먹어서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했다. 빨리 빨리 움직여야 하는데 떨어질까봐 겁이 나서 어기적어기적 움직였다. 내가 거의 마지막으로 갔는데 뒤에서 계속 요선이형이 빨리 가라고 독촉을 했다. 짜증과 함께 무서움, 형들에 대한 원망 등 여러 가지 미묘한 감정이 섞였다. 중간에 탈출로가 있었다. 형들이 여기서 탈출을 하느냐 마느냐로 상의를 하시기 시작했다. 솔직히 그냥 하강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결론은 그냥 가는 것으로 났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하강을 시도하려니까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내려오다가 성근이가 넘어져서 허벅지에 심하게 상처를 입었다. 날이 어두워져서 내려오는데 길을 잘못 들기도 했다. 야영지에 도착하니 역시나 10시가 넘어 있었다. 빨리 밥을 해 먹고 형들과 잠깐동안 술자리를 가졌다. 간단한 술자리 후에 잠자리에 들었다.
8월 15일 예상외로 오늘은 다들 일찍 일어났다. 형들은 아직 자고 있었고 우리 동기 셋은 아침 준비를 시작했다. 아침을 준비하면서 셋이 얘기를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산악부에 대한 불만이 튀어나왔다. 형들이 우리들을 너무 종부리듯 부리는게 아니냐, 이러다가 괜히 골병드는게 아니냐, 욕먹으면서 이짓을 꼭 해야겠냐 등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모두들 흥분했다. 아침 만드는걸 그만 두고 모두 계속 이야기만 했다. 8시쯤 되어서 형들을 깨우고서 산악부를 나가겠다는 폭탄 선언을 했다. 형들과의 진지한 대화 후 우리는 그대로 앉아 있었고 형들은 장원이형, 길중이형과 상의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셋이서 탈출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었는데 모두 돈이 없는대다가 형식이의 카드를 호찬이 형이 맡고 있어서 그 계획은 무산되었다. 그날 하루 동안 형들과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서울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형들 생각은 그게 아니었는 모양이다. 게다가 밤에는 동호형과 진규형이 오셔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소리 소문 없이 사그라들었다. 그날 밤 정말 광란의 밤을 보냈다. 형들과 여러 가지 진지한 이야기들도 많이 하고 시끄럽게 떠들다가 주위의 텐트 사람들한테 집단 다구리를 당할 번도 하고 사건이 많은 밤이었다. 우리의 폭탄 선언은 묵살된 채 그렇게 하루가 또 지났다.
8월 16일 아침부터 동호형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우리들은 빠릿빠릿한 움직임으로 재빨리 아침 식사 준비를 했다. 동호형이 시간을 재면서 빨리 하라고 재촉을 해서 국도 대충 소금만 넣고 말았다. 아침 식사를 하다가 내가 큰 실수를 해서 동호형에게 무지 혼났다. 식사를 마친 후 장원이형의 봉고차를 타고 설악산을 향해 출발했다. 오늘은 천화대를 하기로 했다. 천화대로 가는 동안 동호형이 노래를 시켜서 모두 노래를 했다. 사람들이 많아서 좀 쪽팔리기도 해서 빨리 끝내려서 동요를 불렀다가 동호형한테 또 혼났다. 천화대에 어퍼로치 해서 첫피치를 오르기 시작했다. 비도 좀 오고 진규형도 컨디션이 별로인지 첫피치를 제대로 오르지를 못했다. 결국 포기하고 온길을 되돌아왔다. 내려오는 길에 계곡에서 수영을 했다. 바위가 매우 미끄럽고 물이 생각보다 깊어서 내가 물에 빠질번 했다. 동호형이 다이빙을 하자고 하셨는데 나와 형식이는 수영을 못해서 사양했지만 동호형의 권유(?)로 할 수밖에 없었다.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극구 사양을 했지만 동호형은 계속 시켰다. 가만히 뻣대고 있으려니까 동호형이 손가락을 구부리기 시작했다. 울며 겨자먹는 식으로 다이빙을 했다. 무사이 건너편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형식이 차례다. 형식이는 바닷가 출신에다가 집에서 바닷가 까지의 거리가 걸어서 5분도 안된단다. 수영을 잘할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다이빙 폼은 좋았지만 깊은 곳에 빠져서 허우적댔다. 장난인줄 알았는데 장난이 이니었나보다. 살려달라고 막 소릴를 질렀다. 요선이형과 동호형이 들어가서 형식이를 구해왔다. 물에서 건져진 형식이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냥 멍하니 땅만 보고 앉아 있었다. 형식이를 데리고 산을 내려왔다. 야영지에 도착해서도 형식이는 제정신을 차리지를 못했다. 우선 형식이를 재우고 성근이와 나는 저녁밥을 짓기 시작했다. 저녁이 다 되어서 형식을 깨워서 같이 식사를 했다. 그러나 형식이는 잘 먹지를 못했다. 식사를 마치고 의례 행사인 술자리가 벌어졌다. 술자리에서 우리의 잘못된점을 지적 받았고 그동안 섭섭했던 점 등을 말했다. 술자리가 길어져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8월 17일 어제 못했던 천화대 등반을 했다. 처음으로 대원들이 다 같이 하는 등반이었다. 나는 진규형 바로 뒤에 가서 뒤에 오는 동기들 보다 매우 편했다. 그 대신 노래를 많이 불렀다. 이번 등반은 꽤 재미 있었다. 가다 쉬고 하강하고 올라가고 하는 일의 반복이었다. 고도감도 별로 느껴지지 않아서 좋았다. 등반을 하다가 진규형이 안다는 목사님도 만났다. 계속 등반을 하다가 왕관봉이 보이는 탈출로에서 하강을 했다. 성근이가 제일 뒤에 와서 그런지 지쳐보였다. 내려 오다가 다른 대원들을 내려가고 나와 호찬이형은 잠깐 자일을 사리고 있는데 어디서 이상한 냄세가 났다. 발밑을 보니 똥이 있었다. 재수 없는 날이었다. 똥냄새를 맡으며 산을 내려갔다. 어제 형식이가 빠졌던 계곡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요선이형이 말을 했다. 산행은 실질적으로 끝이고 내일은 낙산 학사에서 1박을 한다고 했다. 야영지로 돌아와서 역시 술자리를 벌였다. 술자리가 끝난 후 잠자리에 들었다.
8월 18일 짐을 다 꾸리고 낙산학사를 향해 출발했다. 버스를 타고 낙산학사에 도착하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우선 바다에 나가서 놀았다. 호찬이 형을 한번 물을 먹이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눈치가 빨라서 쉽지가 않았다. 그렇게 호찬이형만 바라보고 있다가 진규형한테 당했다. 한참 재밋게 수영을 하고 있는데 일이 터졌다. 동호형이 나에게 맡겨놓은 시계를 내가 모르고 바지 주머니에 넣고 바다에 들어간 것이다. 바다에서 나와보니 주머니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요선이 형한테 선물 받은 아미 나이프도 같이 잃어버렸다. 무지 혼날 각오를 하고 동호형께 말씀 드렸는데 다행히 별로 나무라시지 않았다. 수영 후에 신입생대 2학년으로 축구 시합을 했는데 동호형이 1학년이 지면 죽는다는 말씀을 하셨다. 죽기 살기로 싸워서 겨우 이겼다. 낙산 학사로 돌아와서 오랜만에 뜨거운 물 샤워를 하고 낮잠을 잤다. 깨어나 보니 형들은 어디 나가고 없어서 또 잤다. 깨어 보니 형들이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계셨다. 여러 가지 회들과 먹을게 많았다. 저녁때 진규형이 유럽에서 사온 팔에 묶는 줄을 주셨다. 형식이 애인에게 전화를 해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고 시끌 벅적하게 놀면서 그날을 마감했다.
8월 19일 아침에 특별식으로 짜장면을 먹고 서울로 향하기 위해 짐을 꾸렸다. 다행히 버스가 낙산학사 앞까지 온다고 해서 낙산학사에서 대기 했다. 얼마 후 버스가 와서 짐을 싣고 버스를 탔다. 서울에 도착하는 동안 계속 잤다. 일어나 보니 서울이었다. 서울에 도착해서 도실로 돌아와 장비를 정리하고 뒤풀이를 하기 위해 백상으로 갔다. 안규섭 선배님께서 마침 근처에 계셔서 같이 자리를 하셨다. 득기 형과 영남이 형도 나중에 자리를 같이 하셔서 하얀집에서 2차를 했다. 그렇게 술자리에서 시작되었던 하계는 술자리를 끝으로 끝이났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하계였다. 왜 더 잘하지 못했나 하는 후회도 조금 된다. 가장 자신없는 바위를 하면서 조금 여유가 생길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렇게 하계가 끝이 났다.?> 처음으로
대상지: 북주, 설악산 일대 대상일: 2003년 1월 13일 - 1월 26일 대 장: 김요선 대 원: 최진규 김현준 제출자: 동대산악부 02학번 김현준
1월 13일
6시 기상하여 역으로 향했다. 어제 과음을 한 탓인지 속이 매우 좋지 않았다. 울렁거리는 속을 참으며 고속버스에 올랐다. 진부령으로 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계속 토했다. 진부령에 도착해서야 속이 조금 괜찮아져서 다행이었다. 하계 때도 이런 적이 있었는데 기억해 내지 못하고 자제하지 못한 내 탓이다. 진부령에 도착하여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종주를 시작했다. 전에는 리프트를 타고 올라갔었던 알프스 스키장을 이번에는 무거운 짐을 지고 걸어올라 간다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처음 신는 이중화에 밟을 때마다 푹푹 빠지는 눈, 모든 것이 힘들었다. 형들에게 킥 스텝에 대해 배웠지만 처음 한 탓인지 제대로 되지가 않았다. 주춤주춤 계속 걷다가 오늘의 야영지인 마산에 도착했다. 빨리 짐을 풀고 텐트를 쳐야 하는데 선배들만큼 빨리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눈 다지기, 눈 퍼서 밥해먹기 등 모든 것이 생소했다. 배낭 비닐에 눈을 퍼담았다. 텐트 안에 들어가려고 이중화를 벗으려고 하는데 끈이 얼어서 잘 벗겨지지가 않았다. 버너 불로 끈을 녹이고 난 후에야 겨우 벗을 수 있었다. 내가 맡은 직책이 식량이기 때문에 요리를 해야만 했다. 요리를 잘못해서 여러 번 혼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긴장이 되었다. 메뉴는 오뎅국이었는데 다들 잘 먹어줘서 다행이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간단하게 술자리를 가진 후 잠자리에 들었다. 처음 맞는 상황에서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던 하루였다.
1월 14일
아침에 늦게 기상을 해서 운행 시간이 늦어졌다. 덕분에 약간의 기합을 받았다. 밤새 눈이 많이 내려서 러셀을 하면서 가야만 했다. 운행을 시작하여 1시간 가량을 걸었는데 뭔가 이상했다. 어제 온 길을 다시 걸어왔던 것이다. 밤새 내린 눈 때문에 형들의 판단력이 흐려졌던 모양이다. 다시 1시간 동안 백을 하여 야영한 자리에 도착했다. 그 자리에서 다시 올바른 길을 찾아 조금 가다 보니 광운대 팀이 열심히 러셀을 하고 있었다. 광운대 팀과 같이 가기로 형들이 정한 것 같다. 이중화에 고어택스 자켓, 바지까지 입었건만 이미 온 몸은 젖어 있었다. 찝찝해서 미칠 것 같았다. 운행도 스무스 하게 진행되지 않고 조금 가다가 백, 조금 가다가 백을 반복해서 왔던 길을 계속 되돌아갔다. 백 소리를 한 번 들을 때마다 몸에 힘이 빠졌다. 오늘 도착해야할 도착지에 이르지 못한 탓인지 늦게까지 운행이 이어졌다. ‘그냥 적당한데서 자지’ 하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입밖에 낼 수는 없었다. 하계 때에도 비 맞으면서 야간 운행을 한 경험이 있지만 역시 같은 것은 힘들다는 것이었다. 운행을 끝내고 모든 준비를 마치고 저녁식사를 한 후의 시각이 2시였다. 내일의 운행 시작 시각은 6시란다. 적어도 5시 반에는 일어나서 식사 준비를 해야 한다. 일어 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오늘 계속 러셀을 하며 온 탓인지 형들은 매우 지쳐있었고 신경도 날카로웠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간 평생 찍힐 것 같은 그런 분위기였다. 하루를 무사히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1월 15일
역시나 아침에 늦고 말았다. 일어나 보니 해가 중천이었다. 오늘도 가야할 길이 바쁜데 엄청나게 늦어버렸다. 게다가 몸 컨디션 또한 정상이 아니었다. 잠을 잘못 잤던 탓인지 목이 움직여지지를 않았다. 앞서서 걷는 형들은 저만치 앞서 가는데 나만 계속 뒤쳐졌다. 목을 움직이지 못하니 앞도 보지 못해서 계속 엉뚱한 길로 가게 되었다. 그 때문에 형들에게 많이 혼났다. 내가 잘 걷지를 못하니까 앞서 갔던 진규형이 되돌아와서 내 짐을 받아 주려고 했다. 내 짐은 내가 지고 가겠다고 고집을 피워봤지만 운행에 차질이 생긴다는 말에 진규형에게 배낭을 주고 말았다. 몸은 가벼워 졌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이번에 같이 오게된 SBS 촬영팀도 너무 얄미웠다. 잘 걷는 멋있는 모습은 찍지도 않고 꼭 기합 받는 모습이나 지금처럼 사고가 난 경우만 찍기 때문이다. 가벼워진 몸으로 진규형을 따라가다 보니 앞서 갔던 사람들이 모두 기다리고 있었다. 나 때문에 운행이 지연되어서 매우 미안했다. 오늘은 대원들의 컨디션도 최악이고 날씨도 더욱 악화되어서 5시경에 운행을 마쳤다. 일찍 텐트를 치고 식사를 마쳤다. 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미시령에 도착하겠다는 것이 선배들의 생각이었다. 내일도 힘든 하루가 될거 같았다.
1월 16일
종주 4일째, 오늘은 다행히 늦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텐트 문을 열어 보니 눈이 높게 쌓여 있었다. 눈이 프라이를 제치고 들어와 쌓인 것이다. 간밤에 적잖은 눈이 내린 것 같았다. 재빨리 눈을 치우고 아침을 준비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운행을 시작했다. 선배들이 오늘은 기필코 미시령을 보고야 말겠단다. 운행을 시작하려는데 바람이 장난이 아니었다. 영남이형 말로는 미시령 바람에 버스까지 전복했다는데 미시령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바람은 장난이 아니었다. 쌓인 눈이 바람에 날려 볼에 맞아 볼이 매우 시리고 아팠다. 게다가 가는 길도 험하고 목도 좋지 않아서 최악의 종주가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목을 들 수가 없어서 자꾸 엉뚱한 길로 가다가 형들한테 혼나기도 했다. 눈에 덮인 로프를 파내서 잡고 올라가야 할 만큼 길이 험했다. 바람까지 세서 중심잡기도 힘들었다. 걷다 보니 날씨는 어느덧 저물어 가고 있었다. 오늘도 또 야간 운행이구나 하는 생각에 몸에 힘이 빠졌다. 힘없이 터벅터벅 걷고 있는데 내 뒤에 걷고 있던 광운대 동기가 미시령 휴게소가 보인단다. 목적지가 보인다니 힘이 나기 시작했다. 빨리 빨리 걸어서 미시령 휴게소에 도착해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미시령 휴게소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나는 바람에 날아가는 줄 알았다. 영남이형 말대로 버스가 전복할만한 바람이었다 스틱을 들고 가만히 있으니 바람 때문에 스틱이 수평으로 누웠다. 눈도 잘 떠지지 않았다. 결국 7시경에 미시령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같이 동행했던 PD는 여기서 그만 헤어지기로 했다. 광운대팀과도 여기서 헤어졌다. 미시령 휴게소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오늘 서포트 들어오기로 했던 미정이 누나와 인혜 누나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선배들은 오늘 잘 곳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오늘 잘 곳은 군용 막사였는데 잠겨져 있는 것을 억지로 열은 것이란다. 왠지 범죄자가 된 기분이었다. 두 누나들과 만나서 군용 막사에서 짐을 풀었다. 누나들이 여러 가지 맛있는 것들을 사오셔서 오랜만에 맛난 것들을 먹을 수가 있었다. 오늘의 하루는 그렇게 끝이 났다.
1월 17일
설악산으로 바로 들어갈 줄 알았는데 종주가 아직 끝나지 않았단다. 미시령을 다시 올라가 저항령으로 내려오는 것이 목적이었다. 미시령을 다시 올라가려는데 발걸음이 떼어지지가 않았다. 어제 서포트 들어오신 미정이 누나와 인혜 누나도 같이 가시는 것이기 때문에 더 잘 걸어야지 하는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왠지 흥이 나지를 않았다. 그래도 걷다보니 어제보다는 제법 속력을 내서 걸을 수 있었다. 가다가 멧돼지 발자국도 보고 주변의 경치도 볼 수 있었다. 계속 가다가 보니 암릉이 나왔다. 형들이 약간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지도를 보며 여기가 어디인지를 추측해 보고 있었다. 하계 같으면 그냥 갈 수도 있겠지만 동계 때라 눈이 쌓여 그냥 가기에는 우리들에게 너무 위험하다고 한다. 날씨도 이미 저물어져 있었다. 할 수 없이 백을 하여 잠자리를 찾는데 마땅히 잠 잘 곳이 없었다. 그래서 능선상에 텐트를 칠 수밖에 없었다. 처음 능선상에 텐트를 쳐봤는데 바닥이 울퉁불퉁 장난이 아니었다. 내일이면 목적지에 도착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형들 얘기를 들어보니 재수 없으면 내일 못 도착할 지도 모른단다. 빨리 종주를 끝내고 싶은 마음뿐이었기 때문에 내일은 어떻게든 잘 걸으리라 다짐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1월 18일
아침 식사를 마치고 진규형 영남이형이 정찰을 다녀왔다. 정찰을 다녀온 결과 이곳이 울산암 근처라는 것을 알았다. 거의 다 왔다는 말에 힘이 났다. 힘을 내서 걷다보니 저 멀리 울산암이 보였다. 눈에 보이니 거리도 얼마 안남았다는 내 생각이 어리석었다. 울산암이 보이기 시작했어도 거리는 전혀 가까워지지 않았다. 게다가 눈이 너무 많이 내려 길 찾기도 힘들었다. 계속 트레바스를 해가며 울산암쪽으로 이동했다. 형들 말로는 최장시간, 최장거리 트레바스란다. 하긴 그렇기도 하겠다. 하루 종일 거의 트레바스만 했으니.. 길을 잘못 들은 모양이었다 도대체 길 같지가 않았다. 할 수없이 길이 아닌 곳으로 미끄럼을 타가며 눈을 헤치며 계속 걸어갔다. 간식이 넉넉하다고 너무 먹었던 탓인지 오늘은 간식이 없었다. 배가 고파 미칠 것 같았다. 미끄럼을 3번 정도 타고나서 조금 걷다 보니 저 멀리서 어렴풋이 야호 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에 사람 목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이제 다왔다는 확신이 들었다. 겨우 오후 늦게 소공원에 도착 할 수가 있었다. 소공원에서 경주 캠퍼스 선배님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선배님들 덕분에 병원에도 갈 수 있었다.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어봤더니 뼈에는 아무 이상이 없고 인대가 뭉쳐서 목이 굳었단다. 다행이었다. 병원에서 약을 탄 후, 선배님들께서 우리들을 위해 맛있는 것들을 사주셨다. 물론 비선대에서 같이 먹기 위해 포장을 했다. 역에서 카고짐도 찾아서 비선대에 도착했다. 비선대에는 이미 강모형과 필중이형께서 와계셨다. 벌써 술자리는 벌어져 있었다. 왜 그렇게 배가 고팠는지 체면 차릴 것 없이 피자를 계속 먹었다. 운행중에 콜라가 매우 먹고 싶었었는데, 마침 콜라도 있어서 원없이 마셨다. 선배님들은 술자리를 계속 하셨고 우리는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종주를 무사히 끝내서 기분이 좋다.
1월 19일
아침 8시 출발이었는데 10분이 늦었다. 다행히 별탈 없이 출발했다. 오늘은 어제 들어오신 필중이 형한테 설상훈련을 받는 날이었다. 처음으로 아이젠을 신고 아이젠 꽝꽝도 해보고 여러 가지를 배웠다. 아이젠 꽝꽝을 하는데 목이 불편해서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목에 힘이 들어가지가 않아서 계속 목을 떨구고 아이젠 꽝꽝을 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필중이 형도 그 모습이 불쌍해서 더 엄하게 할 수가 없으셨다고 하신다. 그래도 우리들에게는 힘들었다. 12시 30분이 되자 필중이 형은 그만 올라가야 한다고 하셨다. 필중이 형이 내려가신 후 점심 식사를 했다. 점심 식사를 끝내고 있으려니까, 저 위에서 경주 선배님들이 내려오셨다. 경주 선배님들과 커피 한잔을 한 후, 선배님들에게 스트래칭을 배웠다. 평소 했던 스트래핑과는 다르게 한 번 하고 나니 몸에서 땀이 나며 몸이 풀렸다. 스트래칭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점심 식사 후에도 계속 설상 훈련의 연속이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종주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늘의 설상 훈련을 마치고 내려오다가 형들이 우리들의 눈에서 걷는 방법이 미숙하다고 느꼈는지 다시 킥스텝 훈련을 시켰다. 내려 올 때에는 미끄럼을 타고 내려와서 힘든 와중에도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비선대 산장으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한 후, 의례 행사인 술자리가 벌어졌다. 종주중 내내 같이 지냈던 광운대도 비선대에서 만나 같이 술자리에 합류했다. 내일은 예비일이다. 드디어 고대하고 고대했던 예비일이다. 내일이 기대된다.
1월 20일
예비일이다. 느즈막하게 일어나서 랩색 하나만 매고 시내로 향했다. 오늘은 목욕탕에 갔다가 밥을 먹고, 필요한 물품들을 사오는 것으로 하루 일과가 끝난다. 오랜만에 시내에 나와서 이것 저것 보게 되니까 기분이 좋았다. 목욕탕에 도착하여 탕속으로 들어가니 몸이 사르르 녹는 것이 기분이 끝내줬다. 꽤 오랜 시간 동안 탕속에 있었다. 몸에는 그동안 씻지 못해서인지 때가 장난이 아니었다. 목욕을 끝내고 다시 옷을 입으려니까 냄세 때문에 입지를 못하겠다. 옷을 모조리 부실에 놓고 왔던 것이 후회가 되었다. 목욕탕을 나서서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맛있는 것을 좀 먹었으면 좋겠는데 형들은 우리를 허름한 순대국밥집으로 데리고 갔다. 여기 순대국밥이 유명한가 하는 생각에 형들을 따라 순대국밥집으로 향했다. 나도 평소에 순대를 좋아해서 이 집의 순대국밥 맛을 기대했었는데, 내 기대를 져버렸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선배님들이 장기 등반 때 항상 오는 순대국밥집이라고 하셨다. ‘저 높은 선배님들도 이 곳에서 밥을 드셨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밑반찬과 모자른 간식을 보충한 후 비선대 산장으로 돌아왔다.
1월 21일
연맹 합동 등반에 참여하는 날이다. 요선이형은 원정대 훈련 때문에 빠지시고 진규형이 임시 대장을 맡게 되었다. 5시 20분 기상하여 8시 30분 비선대에서 출발했다. 소토왕폭에서 설상 훈련을 받았는데, 지금까지 몰랐던 피켈의 부분적인 명칭과 얼음, 눈 위에서의 테크닉을 배울 수 있었다. 여러 다른 학교의 친구들을 만나 같이 밥도 해먹고 노래도 부르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점심 식사 후에는 러셀 할 때 피켈의 이용방법에 대해서 배웠고 직접 러셀을 해보기도 했다. 여러 가지를 배운 후 4시경에 모든 일정을 끝냈다. 4시 50분 경에 비선대 산장에 도착하여 저녁 식사를 했다. 행동식과는 다르게 식량은 충분한 편이었고 여기 저기서 여러 가지 먹을 것들이 들어와서 포식을 할 수 가 있었다. 포만감에 젖어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1월 22일
원래는 연맹에 합류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진규형이 연맹은 우리 스타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오늘의 일정이 바뀌었다. 오늘은 형제폭과 50m, 100m폭포를 정찰하러 간다고 했다. 비선대에서는 여기저기 어프로치가 용이하다고 해서 얼마 안걸릴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시간이 꽤 소비되었다. 형제 폭에 도착하니 이미 한팀이 빙벽을 찍고 있었다. 내가 저런데를 올라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정찰 온것이라 올라가지는 않고 잠시 쉬었다가 50m, 100m폭포를 정찰하러 갔다. 50m, 100m폭포에 가기 위해서는 잣은 바위꼴이라는 곳을 지나야 하는데 길이 매우 험했다. 가는 도중에 절벽에서 로프를 잡고 이동하는 곳이 있었는데 얼음까지 얼어 있어서 매우 미끄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을 건너다가 발이 미끄러졌다. 아래에는 딛을 곳이 없어서 로프를 잡고 올라가려고 바둥거려봤지만 당황한 탓인지 자꾸 헛발질만 해댔다. 놀란 진규형이 재빨리 와서 끌어올려줬다. 구사일생이었다. 진규형이 오늘은 무리라고 생각했던지 철수하자고 했다. 지환이와 진규형이 다시 넘어올때가지 쉬고 있으니까 놀란 가슴이 조금 진정이 되었다. 온길을 다시 되돌아가 비선대 산장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고 있는 중에 성대팀을 만나서 같이 얘기를 하는데 진규형이 오늘 잣은바위꼴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며 날 놀렸다. 생명의 은인인 앞으로 잘모시란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웃으면서 놀리는 것을 보니 왠지 얄미웠다. 오늘 역시 포식을 하고 약간의 술자리 후 잠자리에 들었다.
1월 23일
5시 30분 기상하여 아침식사 후 8시 비선대를 출발했다. 어젯 밤부터 내렸던 눈이 아직도 쏟아지고 있었다. 오늘의 일정은 소토왕폭에서 설상훈련을 하고 그 위의 폭포에서 빙벽을 한번 찍어보는 것이었다. 소토왕폭으로 가다가 산장 주인 아저씨를 만났는데 오늘같이 눈이 많이 오는 날은 조난 당할지도 모르니 산장으로 돌아가라고 하신다. 하지만 우리가 언제 날씨 따지고 산행을 했던가. 무조건 소토왕폭으로 갔다. 러셀을 하면서 가야했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렸다. 진규형이 러셀을 하번 해보라고 해서 한번 해봤는데 그냥 눈만 헤치고 가면 되는게 아니었다. 밤새 내린 눈 때문에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10시에 소토왕폭에 도착하여 설상훈련을 받았다. 계속되는 아이젠 꽝꽝 때문에 힘이 들었다. 숨은 벽 찬가를 배웠는데, 아이젠 꽝꽝으로 박자를 맞추어 가며 노래를 부르려니 숨이 차서 잘 되지가 않았다. 가사를 잊어버려도 아이젠 꽝꽝, 음정을 못 맞추어도 아이젠 꽝꽝 무조건 아이젠 꽝꽝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아이젠 꽝꽝을 계속 하다가 점심 식사 때가 되어 점심식사를 했다. 휘발유가 모자르고 가스는 남아돌아서 가스 버너를 가져왔는데 화력이 너무 약했다. 덕분에 덜된 라면을 씹어먹었다. 식사 후 빙벽을 찍을 폭포를 향해 출발했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한번 밟을 때마다 가슴까지 허리까지 빠졌다. 경사가 진 곳은 가슴까지 빠지기도 했다. 가는 도중에 꽝꽝 얼은 얼음이라고 생각해서 밟은 곳이 깨져서 이중화가 다 젖기도 했다. 앞서 러셀을 하면서 가던 진규형이 힘들었던지 우리들에게 러셀을 시켰다. 과연 진규형이 힘들어 할 만 했다. 우리들은 둘이서 번갈아 가며 하는데도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겨우겨우 폭포에 도착하니 이미 4시가 되어 있었다 날도 어둑어둑 해지고 돌아가야만 했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에 비선대를 향해 출발했다. 비선대까지 오는 길도 만만치가 않았다. 사람들이 눈온 길에 미끄럼을 타고 다녀서 땅이 다 얼어 있었다. 종종 걸음으로 비선대에 도착해보니 8시였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포식을 했다. 이러다가 돼지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정도로 저녁을 잘먹고 있다. 잠자리에 들려고 침낭속으로 들어갔는데 배가 너무 불러서 잠이 오지를 않았다. 잠을 계속 설치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1월 24일
형제폭으로 빙벽을 찍으러 갔다. 오늘 아침 7시 출발이었는데 너무 늦어버렸다. 8시 30분이 되어서야 형제폭을 향해 출발했다. 오늘은 출발하기 전에 아무런 말이 없어서 그냥 넘어가나 보다 했던 역시나였다. 형제폭으로 가는 길을 오리걸음으로 올라가란다. 눈 쌓인 길을 오리걸음으로 올라가려니 미끄러워서 가기가 힘들었다. 운행 시간이 늦어서 조금 하다가 말 줄 알았는데 진규형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계속 오리걸음을 걷다보니 조금씩 열이 받기 시작했다. 내가 왜 사서 이런 고생을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냥 때려치울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까지 있었던 것이 아까웠다. 계속 걷다가 진규형의 그만 하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 때 좀 열이 받아 있어서 대답을 좀 소홀히 했더니 역시나 되돌아오는 것은 오리걸음 뿐 이었다. 몇 번을 그렇게 되풀이했다. 계속 오리걸음을 걷고 있는데 뒤에서 연맹 애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오리걸음을 걷는 것 때문에 뒤에서 기다리는 것을 보자 진규형이 그만 하고 그냥 올라가라고 했다. 형제 폭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빙벽을 찍고 있었다. 나는 점심 식사 준비를 위해 물을 뜨러 내려갔다. 물을 떠와보니 진규형과 지환이가 안보였다. 어디 있나 찾다가 빙벽 위에서 진규형을 볼 수 있었다. 진규형이 빙벽 선등을 서고 있었다. 진규형이 자일을 깔고 내려오자 이제는 우리들 차례가 되었다. 지환이가 먼저 올라가고 내가 빌레이를 보았다. 지환이는 뒤뚱거리면서도 잘 올라갔다. 이윽고 내 차례가 되었는데, 그 때 기분은 약간 겁도 나고 흥분도 되는 묘한 상태였다. 바일을 들고 한번 얼음을 찍어봤는데 생각만큼 잘 박히지가 않았다. 바일을 확실하게 박지 않아서 올라가다가 떨어지기도 했다. 그래도 끝까지 올라가 보니 생각만큼 어렵지도 않고 꽤 재미가 있었다. 그렇게 2~3번을 반복한 후 점심 식사를 했다. 점심 식사 후 다시 빙벽을 찍었는데 처음 할 때 보다는 능숙하게 찍을 수 있었다. 진규형이 쓰던 바일로 찍어보니 더 잘 찍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예전에 광운대 대장형이 말했던 장비가 생명이라는 말이 절실히 느껴졌다. 빙벽을 마친 후 비선대로 돌아와 내일 일정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내일 아침 느즈막하게 일어나서 낙산으로 떠나는 줄 알았는데 강모형과 같이 대청봉에 올라가기로 했단다. 기상시간은 5시. 알람을 5시에 맞추어 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1월 25일
누군가 나를 깨웠다. 시계를 봤더니 4시였다. 더 자고 싶은 욕심에 모르는 척 했는데 누가 계속 건드렸다. 짜증이 나서 왜 깨우냐고 버럭 소리를 질렀는데 얼굴을 보니 강모형이었다. 빨리 일어나서 대청봉에 갈 준비를 했다. 일행은 우리와 강모형, 강모형 동생 준상이형 그리고 동굴의 교을이형이었다. 최소한 간결하게 짐을 싼 후 대청봉으로 향했다. 가다가 양폭에서 떡국으로 아침을 때우고 다시 출발했다. 희운각 대피소까지는 별로 힘을 안들이고 갔는데 희운각부터 소청까지는 사람들이 다 글리세딩으로 내려와서 길이 매우 미끄러웠다. 게다가 경사까지 있어서 올라가기가 힘들었다. 소청에 올라가니 능선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진규형이 이건 무슨 능선 이건 무슨 능선 하고 설명을 해줬는데 그걸 다 외웠다고 생각하니 대단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나는 명색이 산악부인데 하나도 모르는 것이 부끄러웠다. 중청을 지나 드디어 대청에 도착했다 대청에서 잠깐 쉬면서 진규형에게 배웠던 아득가를 불렀다. 내려오는 길은 매우 쉽고 재미있었다. 미끄럼만 타면 되니까... 희운각까지 별 힘 안들이고 빨리 내려올 수 있었다. 희운각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비선대를 향해 출발했다. 내려갈때는 내가 진규형 바로 뒤에서 걸었는데 진규형의 스피드를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놓칠세라 열심히 쫓아갔다. 드디어 비선대에 도착했다. 이제 등반은 다 끝나고 낙산으로 가는 것이다. 소공원까지 카고를 어떻게 들고 가나 고민했었는데 준상이형이 들어주신단다. 이것 저것 다 때려넣은 탓인지 배낭이 매우 무거웠다. 그리고 땅도 미끄러웠기 때문에 빨리 걸을 수가 없었다. 느릿느릿 소공원에 도착하니 이미 밤이 깊어 있었다. 소공원에서 버스를 타고 낙산에 도착해 보니 낙산학사는 잠겨 있었다. 할 수 없이 근처 민박집에 짐을 풀었다. 민박집에서 형들이 여러 가지 맛있는 것들을 사주셔서 맛있게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1월 26일
드디어 동계도 막바지다. 서울로 출발하기 위해 민박집을 나섰다. 10시에 고속버스에 올랐다. 3~4시간이면 도착할 줄 알았는데 서울에 도착해 보니 4시였다. 서둘러 부실에 도착해 보니 이미 5시가 넘어 있었다. 재빨리 짐을 정리하고 선배님들과의 술자리로 향했다. 많은 선배님들께서 우리를 위해 나와계셨다. 바쁘신데도 이렇게 나와주신 선배님들께 무척 감사했고 회가에 적혀 있는데로 우리는 정말 한 핏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그 집 서빙하는 아저씨가 TV에 나온 우리 모습을 봤나보다. 요선이 형도 사람들이 알아봤다고 하고 TV의 위력을 새삼느끼게 되었다. 기분 좋게 술자리를 마친 후 집으로 향했다. 드디어 동계 끝이다. 형들 말대로 할때는 힘들지만 하고 나니 나름대로의 성취감이 느껴진다. 이런 성취감을 또 느끼고 싶다.? 처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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