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 동악컬럼

동악칼럼


그동안 공문에 실렸던 주옥같은 우리회원님들의 글을 이렇게 한데 모았습니다.

소중히 간직하시고 다시한번 음미해보시기 바랍니다.


어느덧 20여년이 훌쩍... / 이한직
티벳엔 왜 갔노? / 유태원
오리알 될 뻔한 사연 / 최성침
인수릿지에 도전하다. / 김환기
티벳에 공허를 가슴 속에... / 유태원
하꼬비 시절의 하계(夏季) / 김진성
얼굴 / 윤길중
봄 春. 산 山. 술 酒 / 성인혜
23년 만에 다시 찾은 소백산 / 최성침
나는 왜 山에 오를까? / 김형우

1. <어느덧 20여년이 훌쩍..../이한직 회원(81) 2001년 7월 공문중>


철없던 시절... 아직도 그 시절이 그리워 보고 또 보자며 목메어 서로를 찾아 헤매이다 문득 자신을 뒤돌아본다.

남들이 말하는 불혹의 나이... 빈 소주병이 쌓여가는 동안 아이들은 저만큼 커져있고 무엇하며 이 나이가 됐나 싶어 답답한 마음이 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은 전화기에 가 있다. 그렇게 얼굴 보고 헤헤거리면 인생살이 답답한 마음 어디론가 흩어지고, 술잔이 돌고 도는 가운데 산이며, 들이며, 물이며, 해외등반이며, 밤하늘의 별들만큼이나 헤아릴 수 없이 다녀오지만 정작 일년 산행일수가 두손가락안에서 맴을 도니 또 서글퍼진다. 그래도 우리들의 그런 마음이 좋아 또 만나고 만나서 옛정 이야기 하나 보다

그나마 이런 재미도 모르고 살아가는 슬픈 회원이 있다면 우리 모두 손 내밀어 당겨주며 같이 동행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그래서 앞으로도 더욱더 오래도록 소중한 시간을 지켜갈 수 있고, 또 지난 철없던 수십여년은 차곡차곡 쌓이며 더욱 연륜이 붙어 살찌워지고, 앞으로 내게로 다가올 시간이 가슴 벅차게 느껴질 수 있는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면 어떨까?>    처음으로

2. <티벳엔 왜 갔노?/ 유태원(2001년 8월공문중에서>


시계추처럼 정해진 생활을 잠시 접고 오지의 세계로 여행하는 것은 나이를 먹어도 신나고 또한 긴장되는 것은 마찬가지인가 보다. 올여름 여행은 중국 중앙도시 성도에서 1300km 떨어진 서역티벳의 수도 라사를 기점으로 북위 29도선을 따라 서쪽으로 이동, 에베레스트, 초오유, 시샤팡마 사이로 히말라야를 넘어 티벳 국경도시 장무에 이르고 거기서 다시 중국국경을 넘어 네팔 국경도시 코다리를 거쳐 카투만두에 이르는 여행을 하였다. 무한대로 펼쳐진 티벳 고원은 해발 4~5,000m의 고원으로 땅은 척박하고 풍경은 삭막하기는 하나 수많은 양과 말, 그리고 야크가 대지와 더불어 생명력을 같이 하고 있었다. 그곳 티벳인들은 문명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평화롭고 온순하면서도 강인한 면을 지니고 있었으며, 넉넉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다. 여름철에 티벳쪽에서 히말라야 산맥군을 본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매일 비가 오고 개스가 끼어서 도무지 불가능한 것이다. 히말아야 파노라마를 볼 수 있는 지역인 라사에서 650km떨어진 팅그리(4390m)에서 행운을 잡았다. 이날은 K2정상 등정 하루전이었다. 정말 멋진 파노라마를 보았다. 찬란하게 빛나는 피나클과 웅장하게 버티고 서있는 초오유, 아름다운 시샤팡마, 그리고 허리에 띠를 두르고 머리만 내밀고 있는 에베레스트를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멈춰지는 것 같다. 멀리 그러나 손에 잡힐 듯이 분명히 보이는 히말의 자태는 마음을 텅 비게 하고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아무 생각도 없는 무아의 경지에 이른 기분이다. 아침의 찬란한 햇살이 고원을 뒤덮고 뽀얀 안개가 띠를 이루고 안개띠 사이사이에 말들이 풀을 뜯고, 멀리 그리고 가까이에 너무나 흰 피나클과 햇살을 받아 붉에 빛나는 피나클의 조화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 오직 ‘아~’ 짧은 한마디 뿐 이었다. 바로 이것. 이 서역에서 히말라야의 파노라마와 환상적인 피나클들을 보기 위해 엄청난 고생을 감수하였고 이젠 행복하다. 아~ 마치 시계의 태엽이 꽉 감겨진 것 같은 팽팽한 전율이 온몸을 휘감아 온다.>    처음으로


3. <오리알 될 뻔한 사연 / 최성침(77) : 2001년 9월공문중에서>


이번 화악산 월례산행을 다녀오고 새삼스럽게 내가 얼마나 산과 멀어져 살아가고 있는가를 깨달았다. 버스에 내려서 예약된 음식집에서 마련해준 자리가 바로 계곡 초입의 평상이었다. 술이나 한잔 하다 가기로 마음먹은 듯 곧바로 평상에 진을 친 선배님들도 있었지만, 곧바로 술판에 끼었다가는 온전히 집에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불안이 엄습했다.

어떻게 하다보니 정상까지 가는 팀에 합류하여 뒤꽁무니에 쳐저 가고있는데, 범균이가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핀잔을 들을 것 같다는 예상을 하며 범균이한테 다가가며, 범균이의 내 두배만한 다리통을 보면서 기가 질렸다. 그런데 범균이가 던진 말은 예상을 깨고 “형, 내려갑시다. 저 양반들은 맨날 산에 다니는 사람들인데 쫓아갔다가는 고생만 직사하게 할게 뻔해요.”라는 거였다.

범균이도 그동안 산행을 많이 안한 까닭으로 뺑이칠게 뻔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조금 힘은 들겠지만 못가겠냐싶어 범균이만 내려보내고 계속 올랐다. 앞서가는 형들과의 거리는 조금 있었지만 속도는 그런대로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 예상으로는 본대가 술자리를 끝내고 출발할 쯤이면 충분히 하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20분쯤마다 호근이 형의 고웨이 소리를 들으며 있는 힘을 다해 따라가다 보니 역시 정상은 나타나고 말았다. 가다보면 정상은 나온다는 것, 산에 다니면서 얻은 변하지 않는 원리이다. 정상 바로 밑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보통 술을 한잔 하다보면 안주 한 두점 먹고 도시락은 그대로 가져오는 경우가 많아 마누라한테 미안했는데, 오늘은 2인분 도시락을 다 비워버렸으니 오랜만에 당당하게 집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 하산길이니 한 40분이면 그럭저럭 버스가 대기하고있는 계곡초입에 다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완전히 착각이었다. 이놈의 계곡이 얼마나 긴지 한시간 40분은 걸린 모양이다.

형들은 보이지도 않고 두어번 엉덩방아를 찧고나니 완전히 맛이 갔다. 그래도 나 때문에 기다릴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멈추지 않고 내려갔더니 한대는 떠나고 나머지 인내심 많은 선후배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자리를 빌어 사과드립니다.)

그래도 능선의 시원한 바람이 다시 그리워진다.>    처음으로


4. <인수릿지에 도전하다/ 김환기(79) : 2001년 10월 공문중에서>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9월 29일(토요일) 인수릿지를 하기 위해서 9시 6번 버스 종점에 집합. 대원은 윤태영 회원, 박정빈(동굴부 79학번)과 나 3명이다.

모두가 언제 자일을 묶어봤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는 대원들, 오랜만에 클라이밍을 한다는 설레임과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인수릿지의 출발점을 향해 산행을 시작한다.

톱쟁이 할 후배를 구하기로 하고는 못구한 죄로 톱은 팀의 막내인 윤태영 회원이 맡는다. 출발지점에서 장비를 챙기는 폼은 취나드 A도 거뜬히 할 모습이다.

몇 군데 까리한 스텝을 어거지로 돌파하며 서로 격려하면서 어렵게 올라가는데 중간에 5.13급(내 생각에...) 정도의 고난이도의 거벽(25m정도 *^^*)을 만나니 톱쟁이 태영이가 슬슬 발을 빼기 시작한다.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4명의 아저씨들(40대 중반)이 나타나더니 다람쥐처럼 그 무시무시한 거벽을 타고 넘어간다. 부럽게 그 아저씨들을 바라보며 우리가 무리할 필요가 뭐있냐 싶어, 다음에 하면 되지 하면서 서로를 위로하며 싸가지고 간 도시락만 맛있게 먹고 하산을 한다.

하산중에 진성이(김진성, 83학번)를 만났다. 그래도 마음들은 다 산에 와 있구나 하며 옛날 분기를 잡아보려 하는데, 한직이가 우이동 집에 왔다며 핸드폰이 온다. 내친김에 동기인 경필이한테도 연락을 해서 우이동에서 함께 술한잔을 하게 되었다.

맨날 하던 얘기에 양념좀 쳐서 술안주 삼아 한잔 두잔 하게 되자 취가가 좀 오를 즘 경필이가 호기를 부리며 알피니스트란 놈들이 챙피하게 인수 릿지도 못오르고 백을 했다며 열을 올린다.

유구무언이요,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다. 그러나 다음에는 경필이를 반드시 톱을 세우고 다시 가 봐야겠다. >    처음으로


5. <티벳의 공허를 가슴 속에..... /유태원(71) : 2001년 12월 공문중에서>


천지창조 이후 누구도 망가뜨리지 않은 땅 티벳.

공허하게 신이 잠들어 있는 땅 티벳.

고요하면서 광활하고 웅장하게 잠들어있는 아시아 중심 티벳 고원지대의 찬란한 태양은 첫날의 그 빛이 아닌가 싶다. 수백 킬로를 달려가도 인적을 찾아보기 힘들고 오직 황량한 벌판과 노년기에 접어든 고원의 산들이 사막으로 변하는 대지는 자연의 섭리대로 변하고 있고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는 양떼와 야크 몇 마리를 몰고 다니며 유목생활을 하는 목동들은 문명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자연인 그대로 살고 있다.

야크와 양에서 털을 모아 실을 꼬고 젖을 짜서 천막집을 짓고 그것으로 옷도 지어 입고 또 젖을 짜서 먹으며 손수 치즈도 만들고 보리 농사를 지어 보리미수가루가 주식이고 일년에 몇 번은 양을 잡아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며 그 가죽으로는 물통과 신발을 만들어 쓰면서 방랑생활을 하고 있다.

고산지대라 물이 부족하고 추워서 세면은 물론 목욕은 1년에 한두 번 하기 힘들며 모든 것은 자급자족하고 살고 있는 티벳 유목민족.

아침이면 기침으로 기상하여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들 때까지 끝없이 노동하면서 생활하고 잠시도 손에서 일을 놓지 않는다. 연료가 부족하여 야크 똥을 말려서 땔감으로 쓰고 빗물을 모아 식수로 사용하는 척박한 땅 티벳.

전기도 텔레비전도 없고 전화도 없다. 라디오도 없다. 우리는 너무 너무 불편해 하루도 지내기 힘들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항상 미소가 가득하고 삶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친절하고 호기심 많으며 묵묵히 자연을 받아들이고 살고 있다.

그들은 걱정을 하지 않는다.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오직 오늘에 충실하고 만족하며 살고 있다.

욕심부리지 않고 홀로 서기를 하며 척박하고 황량한 대지에서 그들만의 사는 방법을 터득하며 살고 있었다. 그들은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우리들은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고무신 신을 때 운동화 한 켤레 갖고 싶었고 운동화가 생기면 자전거 그리고 차 그리고 더 좋은 차 더 좋은 집.... 욕심이 한도 끝도 없다. 새들이 식량을 창고에 쌓아 놓지 않아도 죽지 않고 잘 살고 있다.

걱정 때문에 욕심을 부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오지를 여행하고 높고 깊은 산을 오르면서 과연 나는 누구이며 왜 살고 있는가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지 묻는다. 진취적인 생각과 항상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가를 또 묻는다. 여행을 통하여 경쟁과 욕심으로 가득한 마음을 깨끗하게 비우고 새로운 삶을 받아들일 수 있는 텅 빈 마음의 자리를 마련한다면 한해를 보내는 어수선한 연말에 우리들의 피곤한 영혼을 편하게 잠들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처음으로


6. <하꼬비 시절의 하계(夏季)추억 /김진성 회원(83):2002년 1월공문 중에서>


386세대의 83년 하계(夏季) 설악산 등반때는 1학년이 8명 참여하게 되었다. 동기들은 많이 가서 좋다고들 했지만 어쩐지 줄을 잘 서야 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많은 선배들이 찾아온 마장동 수복여관에서부터 등반(정확히는 燈酒)은 시작 되었다. 새로 맞춘 기슬링을 멋지게 지고 원통에 도착하니 길도 없는데 큰 내를 건너 산판길로 올라가야 한단다. 종행형은 마을 사람들에게 연신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었다. 동계때와 지형이 다르다나 어쩌다나. 아! 결정권은 없었지만 줄을 잘 선 줄 알았는데... 서북주능팀은 관광객 다니는 십이선녀탕으로 올라간다 한다. 어쨌든 우리파티가 서북주능 파티보다 종행형, 승호형, 성훈이, 승규 등등 똘똘한 사람들이 모인 것 같아 일단 안심 하기로 자위하였다.

능선에서 2박을 한후 주걱봉을 지나 한계령에 도착하니 화장품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거울로 본 우리들의 몰골도 볼만하여 단시간에 사람의 형태를 바꾸어 놓는 가리봉의 위대함에 새삼 놀랐다.

중청봉, 천불동 계곡을 지나 설악골에서 전대원이 모였다. 복환형이 이끈 서북주릉 파티는 길을 잘못들어 내설악 거의 끝까지 떨어졌다 다시 올라왔단다. 민호를 비롯한 동기들은 눈빛만 살아있고 말이 거의 없다. 기슬링 매고 극기훈련(?) 했으니... 말한마디에 사람 잡겠다는 속담이 불현듯 떠올랐다. Not bad.

예비일 저녁에 영석이가 들어왔다. 이놈은 나보다 입회도 늦은데 하는 모양새가 범상치 않다. 선배들 특히 복환이형 하고 잘 어울린다. 그렇게 친하기는 했어도 아직도 서로 상면하기는 싫은가 보다. 어느 누구보다도 윗세상 면접볼 기회가 많았는데도... 그리고 꼭 중요한 게임(종주) 끝마친 다음에 요란하게 들어온단 말이야. 역시 프로선수답다. 애증(愛憎)의 마음이 들면서도 그 당시 1학년으로 어머님이 단합대회 가는 줄 알고 해주신 쇠고기장조림에 과일, 그리고 학생들에게 귀한 솔 담배를 뿌려대니 선배들 왈 "앞으로가 중요한 등반" 이라며 별말들이 없었다. 분명 우리에게는 종주등반이 하계의 꽃이라 했는데. 물론 저녁 딱갈이 시간에 동기들에게도 듬뿍 뿌리니 우리야 뭐 친군데 금방 희희낙락들이었다. 이날 영석이는 한발자국도 걷지 않고 동기들의 입과 무용담을 통해 가볍게 가리봉과 서북주릉 종주를 끝마쳤다.내,외설악 릿지등반을 끝내고 토왕성 계곡에다 베이스를 쳤다. 좁은 협곡 큰바위 위에 텐트를 쳤다. 나는 비만 오지 않기를 기도하며 잤다. 여름철 토왕성 하단은 떨어지는 낙석으로 인해 "피웅,피웅" 기관총 소리가 요란했다. 종행형 군입대 기념으로 토왕성 우벽 등반을 마친 승규가 연방 웃으며 뭘 돌리면서 내려온다. 내게 던지길래 슬링 주웠나 했더니 살아있는 뱀이었다. 산뱀을 처음 만져본 나는 거의 까무러칠 뻔 하였다. 그날 별빛과 물빛이 한데 어울려 쏟아지는 토왕성에서 범균형의 뱀강의가 있은 후에 기름기가 자글자글한 제일 중요한 부분은 당연 고참인 형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beautiful.

토왕성에서 울산암으로 베이스를 이동하는 날, 설악동에서 군입대로 서울로 올라가는 종행형과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기념으로 전대원 15명인가가 수박 한 통을 쪼개 먹었다. 처음엔 수박껍질을 모아 버렸는데 원래 수박은 껍질이 맛있다며 동기 중 한명이 껍질을 먹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렇지 않은 줄 알면서도 같이 먹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던 수박껍질이었다. 울산암 밑에 베이스를 치니 비가 매일 주룩주룩 온다. 여름에도 바위하다 얼어죽을 수 있음을 경험하며 하강은 항상 철계단을 이용하였다. 텐트에서 본 토왕폭은 며칠전과는 달리 엄청난 수량을 쏟아붓고 있었다. 울산암 일정도 끝날 즈음, 당시 오이씨관광을 운영하고 계시던 인섭형(73학번)이 울산암으로 들어오셔서 낙산으로 이동하였다. 낙산비치가 있기 전이라 그 밑에는 그림같은 아주 조그마한 어촌이 있었다. 그곳에 도착해 전복죽이 나오길래 "남들 한삽 풀 때 두삽 푸고, 있을 때 먹고 없을 때 굶는" 나의 신조를 산에서와 마찬가지로 유감없이 발휘하여 동기들 눈치도 아랑곳 없이 빈그릇을 쌓아갔다. 포만감이 극에 달했을 때 본게임인 회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죽만 먹고 가는 줄 알았다. 그날 태어나서 가장 많이 회를 먹어 보았다. 몇가닥들 걸치지 않은 선남선녀들 피서하고 있는 낙산해수욕장에서 찌는 듯한 8월에 니커바지와 스타킹의 완전무결한 복장에 기슬링 매고 행군하며 노래도 가장 많이 불러 보았다. 어느누구도 우리들에게 시끄럽다는 얘기를 걸지 않아 기분이 좋았다. Hot and good.

이렇게 결코 돌아오지 않는 18년 전 우리들의 하계(夏季)는 낙산의 일몰과 함께 저물어갔다.>    처음으로


7. <얼굴/윤길중(92) : 2002년 3월공문중에서>


이 지면을 이용해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사는 法중에 아주 기본적인 전략이면서도 가장 훌륭한 작전을 소개할까 한다.

나이가 40이면 이름에 책임을 지고 나이가 50이면 얼굴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첫 인상이 중요함은 일러 무삼하리오 !이 모든 것들의 중심에는 “얼굴”이 있다.

일란성 쌍둥이의 체형이나 얼굴이 꼭 닮는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같은 분위기, 같은 상황에서 자라나야 닮는 것이지 그렇지 않은 상태 즉, 서로 다른 상황과 분위기에 적응하며 긴 세월이 지나고 나면 누구도 일란성 쌍둥이라고는 전혀 믿을 수 없을 만큼 변하게 되었다는 내용을 어느 신문잡지에서 보았다.

“얼굴”이 무엇인가? ‘얼굴’의 15C 표기형식은 ‘얼골’이었다. 얼골은 ‘얼’+’골’이며, 이는 얼+骨 얼의 뼈 즉, ‘인간 사고의 외적표현’이라고 예전 사람들의 단어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하는 것들의 외적표현이 얼굴이라는 것인데, 흔히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말하듯 얼굴 또한 그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는 매개체 중 가장 확실하며, 가장 큰 것일 것이다.

좋은 생각과 바른 마음을 간직하고 살면 그 사람의 얼굴이 밝고, 맑고, 좋은 인상(印象)을 준다. 반면에 남을 이용하려하고, 나쁜 생각과 마음을 간직하고 살면, 그 사람의 얼굴은 시나브로 일그러져 나쁜 인상을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름이 많다고 인상이 나쁜 것은 아니다. 주름이 많더라도 인상이 좋은 사람이 있으며, 얼굴이 매끈하더라도 인상이 곱지 못한 사람이 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결국은 ‘낙숫물에 댓돌이 뚫어지듯’ 얼굴로 표현된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 모두는 좀더 맑고, 밝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나이가 들대로 들어 인생을 초연한 더 이상 주름질 틈이 없는 노인들의 미소가 한없이 밝고, 포근하게 느껴짐은 아마도 우리가 작으나마 그네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삶의 지혜를 익혔기 때문이리라.

우리들이 산에 가는 이유 중 하나는 일상에서 벗어나 아무런 생각 없이 산에 가서 산친구들과 지내며 마음 편하게 시름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만나 삶의 우열이나 자웅(雌雄)을 따질 일이 드물고 흉금(胸襟)없이 마음 편하게 쓴 소주 한잔에도 즐겁게 지낼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

내가 산악부에 들어온 지도 이 달로 만 10년이 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할 터인데 그때부터 보아온 선배님들의 얼굴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수 만년이 지나도 한결같은 금강석처럼 여전한 것은 산에 다니는 사람들이 늘 즐겁고, 밝고, 맑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살아가니 그 얼굴이야 바늘에 실 가듯 하는 게 아니겠는가 !

내세에 천국이나 극락에서 살고자 하지말고 현세에 그리하자는 재세이화(在世理化)의 사상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고 손바닥 뒤집기만큼이나 쉬운 일이다.

그것은 바로 조금만 더 마음을 밝고, 맑고, 곱게 쓰므로 해서 자신의 얼굴이 밝고, 맑고, 고와지며, 그로 인해 주위 사람들이 ‘쇳가루가 지남철에 끌리듯’이 모아지고, 일파만파(一波萬波)로 모든 사람들이 좋은 생각을 가지고 마음 곱게 살아간다면,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천국이며, 낙원인 것이다.

내 바램이 있다면, 그런 낙원을 만드는데 우리 山岳會員들과 앞장을 서는데 선봉(先鋒)이 되어 歲歲千年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처음으로


8. <봄 春. 산 山. 술 酒/ 성인혜(96) : 2002년 4월공문중에서>


봄은 만물이 생동하는 계절이다. 만물이 생동하니, 우리도 움직여야 하지 않겠는가. 겨우내 얼어있던 몸과 마음을 풀어야 할 때인 것이다. 어디로 움직일 것인지 고민하지 말자. 어느 곳 어느 데, 봄이 아닌 곳은 없으니 말이다. 더욱이 우리가 고민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늘 그곳에 산이 있기 때문에……. 산에 올라 봄이 온 흔적만 가려낼 것인가.

우리에겐 또 하나의 즐거운 벗, 술이 있지 않은가. 옛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한번 풍류를 즐겨보자. 술 한 잔에 봄산이 떠있고, 또 한 잔에 봄의 노곤함을 잊은 우리네 모습이 담겨 있지 않을까? 술잔에 푹 빠져 버리고 싶은 충동만 가라앉힐 수 있다면 신선 놀음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선되기는 어려우리라 짐작된다. 그렇다면 다음의 시들을 읊어 보는 건 어떨까? 술 한 잔에 시 한 수 안주 삼아, 봄산을 벗삼아 풍류(風流)를 즐겨보자.

“산속에서 *유인과 함께 마시는 술 “/이백 둘이 마주 앉아 술을 마시는데 산꽃이 피었구나한 잔 한 잔 또 한 잔 나 취하여 졸리우니 이 사람아 돌아가게나 내일 생각 있거든 거문고나 안고 오시게”(山中與幽人對酌 李白兩人對酌山花開, 一杯一杯復一杯. 我醉欲眠卿且去, 明朝有意抱琴來)*유인:속세를 떠나 숨어사는 사람.은둔자. 이 시는 중국 당대의 시인, 이백의 시로 속세의 예법을 초탈한 시인 이백과 세속명리를 떠나 산중에 은거하고 있는 유인의 의기와 정감이 투합, 융화된 호탕한 장면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마주 앉아 술을 마시되 서로 상대에게 신경을 쓰지 않을 만큼 뜻이 맞는 친구이기에 다음날의 보다 즐거운 만남을 기약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이렇게 다시 읊어보아도 좋을 것 같다. “산속에서 악우(岳友)와 함께 마시는 술”우리 마주 앉아 술을 마시는데 바위가 눈앞이네 한 잔 한 잔 또 한 잔 나 취하여 졸리우니 이 사람아 산노래 불러주오 내일 생각 있거든 자일 매고 같이 오르세 “종남산에서” /왕안석

종일토록 산을 봐도 산은 싫지가 않아 산을 사서 그곳에서 늙어가리라 산에 핀 꽃 다 져도 산은 그대로이고 산골물 흘러만 가는데도 산은 마냥 한가롭구나

遊鍾山 王安石終日看山不厭山, 買山終待老山間. 山花落盡山長在, 山水空流山自閑.

이 시는 중국 송대의 시인 왕안석의 시로, 산이 좋아서 산에서 살겠다는 뜻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그 당시 시대 배경으로 보아, 정쟁의 와중에서 그가 느낀 인간에 대한 불신을 산에서 보상받고자 함인 듯 하다. ‘산을 사다(買山)’ 라는 표현은 산에 대한 사랑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산에 올라 자리 펴고 누우면, 산이 집보다 편하니 우리는 굳이 산을 살 필요도 없지 않겠는가? 아니, 꼬박꼬박 입산료를 내고 있으니 조금씩 조금씩 산을 사고 있다 해야 할까?

“제자에게” /범 중 엄푸른 산 그윽히 아름다운 경색조상이 후손에게 물려주신 것 후손들아 얻었다고 기뻐만 하지 마라 다시 그것 거두어 갈 사람 뒤에 있느니라“

書扇示門人 范仲淹一派靑山景色幽, 前人田地後人收. 後人收得休歡喜, 還有收人在後頭.

이 시는 중국 송대의 시인 범중엄의 시로, 시인은 눈앞에 산뜻하게 펼쳐진 푸른 산의 아름다운 경색을 감상하다가 문득 그 속에서 삶을 영위하다가 간 옛사람의 모습을 떠올리고, 다시 뒷날 그 속에서 살아갈 후손들을 생각하며 모두가 하나의 고리같은 존재임을 확인하고 있다.

지금의 우리에게 경종을 울릴만한 시이다. ‘환경’의 측면에서 다시 한번 음미해보자. 봄이 한창인 이 때, 산에 올라 봄산을 내 집으로 끌어 오려 하지 말고, 내 마음 속에 살짝 품어 오면 어떨까? 그리고 봄산에서 오랜만에 여유 한번 부려보자. >    처음으로


9. <23년 만에 다시찾은 소백산 / 최성침(77) : 2002년 6월공문중에서>


지난 5월 25일 국립공원이 산불방지기간에서 해제될 무렵, 우리 일가족 다섯명은 오후 8시가 다 되어서야 소백산을 향해 출발했다. 26일 일요일은 때마침 철쭉제가 열리는 날이라 혼잡이 예상되었지만 오랜만에 떠들썩한 분위기를 느껴보는 것도 싫지 않았다.

예상대로 고속도로의 정체로 자정무렵에서야 단양의 동굴지역에 있는 민박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취사를 해서 밤참겸 저녁을 먹고, 나는 별도로 소백산 동동주를 한잔 겯들였다. 아이들이 TV를 보는 동안 나는 바깥공기가 너무 좋아 민박집 마당에서 별을 보며 잠시 호젓한 고독을 즐겼다. 23년전 소백산맥 종주를 하던 중 소백산의 티없이 맑고 장쾌한 모습에 매료되어 한없는 희열에 들떴던 순간이 마치 어제일처럼 생생하다. 아! 벌써 23년이 흘렀다니, 정말 허망한 세월이 다시금 느껴진다. 그렇게도 산에 빠져있었으면서도 산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정작 잊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만큼 산에 빠져 있을 수 있었던 그때가 정녕 행복한 세월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 그런 시간을 한 자락씩 되찾기로 마음먹은 지금도 다시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산행도 그런 계획에 의해 몇달전부터 기다려왔던 것이었다. 26일 아침, 일주일간의 생활의 피로 탓일까? 아니면 6학년, 3학년, 1학년인 아이들이 세명 그리고 별로 급할 것이 없는 아내가 딸린 탓일까? 온가족이 세수하고 화장하고, 취사해서 밥을먹고, 대충 짐을 정리하니 11시가 다돼간다. 이제는 이런 만만디식의 행동방식에 익숙해져서 짜증도 나지 않고, 또 마음이 급해지지도 않게 되었다.

아이들이 그래도 이만큼 커서 같이 산행이라도 가능하게 된 것이 오히려 내겐 큰 보람이고, 희망이다. 지난달에는 온가족이 금수산에 갔는데 아내와 1학년 서정이는 도중에서 내려갔지만 6학년인 근상이와 3학년 서영이는 1000미터가 넘는 정상을 나와 함께 밟았다. 내 자신 뿌듯함은 말할 것도 없이 아이들 자신이 활력을 얻고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았었다.

우리는 다시 차에 올라 단양쪽으로 나와서 정상인 비로봉에 이르는 최단코스의 시작점인 일명 '새밭'이라 불리는 어의곡리로 출발했다. 20분쯤 지나 새밭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예상대로 주차장은 말할 것도 없고 손바닥만한 온 동네가 차로 꽉차 있었다. 주차하기 어려운 곳이라 한 곳이 비어있어 20도 정도로 기우뚱하게 간신히 주차하고 서둘러 출발했다.

초입부터 왠지 소백산만의 특유한 향기가 느껴졌다고 말한다면 나만의 지나친 상상일까? 어쨌든 그 무성한 초목들과 맑은 계곡에서 우러나오는 상쾌한 냄새를 만끽했다. 그건 보통 평범하고 시장바닥이 다되어버린 산에서 오는 감각은 아니었다. 상상키 어려운 커다란 녹색자연의 때묻지 않은 힘이 압도해오는 그런 감각이었다. 아이들도 맑은 계곡물과 간간히 풍겨오는 상큼한 더덕냄새에 신이나 있는 듯 했다.

그러나 코스가 짧은 대신 계속 오르막이어서 아니나 다를까 막내가 한시간 반쯤 지나 찜빠를 부리기 시작한다. 이미 예상했던 일.... 명색이 소백산인 만큼 나는 아예 둘째인 서영이까지 아내과 함께 내려보내고 큰 아이와 둘이서 서둘러 오르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도중에 그만 내려가자고 하면 큰 놈은 항상 꼭대기까지 가고 싶다고 불평을 터뜨리곤 했었다. 하산파티와 헤어진 지점이 해발 750미터였는데 나머지 700미터를 오르는데 한 시간 20분 정도 소요된 것 같다.

드디어 비로봉이 한눈에 들어오고 푸른 초원의 능선길이 시작되었다. 아! 23년의 세월이 어디에 갔는가? 이 초원, 광활한 초원의 능선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풀잎들의 반가운 손짓, 모두다 그대로가 아닌가. 이 순간 나는 다시금 살아있음을 느낀다.

다른 산은 몰라도 소백산만큼은 반드시 정상에 올라보아야 그 산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산이다. 1500미터의 고도에 펼쳐진 광활한 초원, 그 티없이 깨끗한 순한 풀잎들이 바람에 나부끼는 광경은 초원의 축제 그 자체다. 이 이름없는 풀들은 하늘 한 가운데에 자기들만의 세계를 마련해 놓고는 마음껏 생명력을 발산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낯선 이방인을 맞아 한 순간 수줍은 듯 얼굴을 감싼다. 그러나 내가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그들은 다시금 온몸으로 싱싱한 생명력을 발산하며 자유롭게 율동한다. 그리고 무수한 밀어들을 내게 들려준다. 무어라 번역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다정하고도 우애에 찬 분명한 목소리, 그것은 아마 생명 그 자체의 힘과 자유로움, 행복과 환희의 언어일 것이다. 어쩌면, 이들은 태고적의 내 존재의 기억을 일깨워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존재가 생명과 자유 하나로 통하고 아무런 구별이 없는 차원의 세계 말이다. 이 순간은 나와 이 풀들은 피를 나눈 형제처럼 다정하다. 이 이름없는 풀잎들을 보면서 내가 느끼는 무한한 다정함과 형언할 수 없는 행복한 희열의 비밀은 거기에 있다.

23년 변한 것은 없다. 달라진 것이라곤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것과 그리고 내 옆에 사랑하는 아들이 같이 있다는 사실 뿐. 그리고 내가 이제는 아들에게 다시금 그 옛날 내가 들었던 무수한 밀어를 들어보고, 그래서 삶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를 느껴보라고 이끌어주는 안내자로 한단계 성숙했다는 사실이다.

늙는다는 것이 전부는 아닌가 보다. 희망은 계속되는 것인가? >    처음으로


10. <나는 왜 산에 오를까? /김형우(87) : 2003년 7월공문중에서>


이제 며칠 있으면 7월 22일 , 영석형이, 아니 우리 모두가 고대하던 K2 등정을 끝으로 14좌가 끝난 날이다. 나에게 있어서도 어느 정도의 해방의 날이기도 하였다. 그렇게 고소에 시달리면서도 무심하게 14좌를 위해서 뛰어다녔던 몇 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히말라야의 첫발을 89년 영석형, 태영형과 랑탕리를 등반하기 시작하여 에베레스트 , 마나슬루 등 숱하게 등반을 다녔건만 한번도 제대로 등반도 못하고 고소에 시달리기만 했던 아픈 기억들인 것이다. 뭐 그러다 운 좋게 브로드픽을 올랐지만 아직도 고소는 절친한 친구인양 내가 어디를 가건 나를 떠나지 않고 있다.

98년 마나슬루 등반 때는 폐수종까지 걸린 적도 있었다. 다행히 더 악화되기 전에 밑으로 하산을 한 덕에 다시 회복되어 등반에 합류를 하기도 했었다. 이렇듯 고생을 하면서 왜 그렇게 히말라야를 다녔는지는 나도 모른다. 등정을 목적에 두지는 않았었다. 아니 일찌감치 포기를 했었다. 그런데 왜 ?. 글쎄 !!! . 이 문제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풀어 봐야 할 숙제인 것 같다.

좀 더 세월이 흘러 되돌아 봤을 때 좋은 추억이었는지 아님 생각하기도 싫은 과거였는지를..하지만 87년 산악부를 들어와 성훈형과 진섭이랑 온 산천을 다 뒤지면서 산에 다닌 기억들은 아직도 아련한 기억들로 남아있다.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그런 남루한 복장에 키슬링 , 땀에 절어 고개를 숙일 때마다 올라오는 그 냄새.. 아.! 그때는 몰랐었다. 그런 냄새가 이렇듯 정겹게 떠오를지는 ..인간은 추억을 되씹으며 사는 동물이라고 그 누가 얘기를 한 것 같다. 나도 그런 것 같다. 앞으로도 열심히 살아야 겠다.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들은 별로 없고 기억하고 싶은 추억들만 많게 말이다.

갑자기 이런 영화제목이 생각이 난다.나도 이제는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같이 추억을 만들어갈 사람이 필요한 것 같다.

아 !!! 장가가고 싶다.. >    처음으로



[RETURN HOME]